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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9, Feb 2024

김설아
Kim Seola

통증의 전이, 상상의 전이

● 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장 ● 이미지 작가 제공

'2022 청년작가초대전: 김설아-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 전시 전경 2022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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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김설아의 시선은 작고 연약하며 온전하지 못한 상태의 존재들에 머물러 있다. 그 존재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것들을 확대해 놓은 모습으로 이미 본 적이 있는 혹은 상상해 본 적이 있을 법한 무엇인가와 닮았다. 곰팡이의 균사, 재, 나무껍질이나 뱀 껍질, 애벌레, 곤충, 미생물을 관찰하고 다시 보기를 반복하고, 중첩해 놓은 형상들은 기괴하고 불길해 보인다. 더군다나 눈, 코, 입, 귀, 배설기관 등 인간의 신체 일부분과 결합한 불완전한 생명체들은 괴기스럽고 꺼림칙한 공포감을 유발한다. 일체의 배경이 없는 화면의 중심에 위치한, 부분이지만 그 자체로 전체이며, 불완전하지만 밀도감 있는 형상들은 궁금증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폐허와 같은 공간에 남겨진 아주 작은 존재들,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경계에 놓여 흔적과 같이 자리한 것들, 본래 있었던 곳에서 떨어져 여기저기 부유하는 존재들을 통해 김설아는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상상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보고 왜 설명하기 힘든 통증을 느끼며 무언가를 상상하는가?



<사자의 은유> 2019 비단에 수묵 200×440cm



김설아는 지금은 여수 국가산업단지의 일부가 되어버린 바닷가 인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화학공장단지가 점점 확장됨에 따라 떠밀리듯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사를 거듭하며 성년이 될 때까지 살았다. 영취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웠던 고향은 점차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갔고, 오염되었으며, 사람들은 인체 유해 성분과 사고위험 때문에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결국 고향은 화학공장단지로 잠식되어 모두 떠나고 사라졌다. 고향을 떠난 후에도 그는 여러 도시에 머물렀다.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인도 바로다는 사막과 인접한 도시로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모든 것이 날리고 흐트러지는 건조한 곳이다. 그곳에서 생의 결핍을 마주 보았다.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로 머물렀던 일본 요코하마는 멀리서 보면 정교하고 세련된 도시지만,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바다의 습기로 인해 많은 곳이 녹슬고 부식되어 있었다. 바닷물의 순환과 멈춤 사이의 경계에서 피어난 곰팡이들의 모습에서 묵시록적 풍경을 보았다. 부스러지고 흩어지고 부식되고 사라지는 풍경들,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 발견하고 목격한 존재들은 파괴된 고향의 기억을 통증으로 되살리며, 소멸해 가는 곳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것들의 움직임과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였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일, 특히 아픈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는 일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그러나 예술가가 내뱉는 언어가 강력한 힘(공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부(기억과 경험)로부터 나와야 한다. 김설아 또한 인도의 스승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 주제를 다뤄야 하는지?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얼마만큼 유효한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끝없는 질문을 받았다.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곳, 너무나 건조하고 모든 게 섞여 돌아다니는 폐허 혹은 카오스적 장소 인도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홉 개의 검은 구멍, 숨소리> 2021 
종이에 수묵 230×600cm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사이(경계)를 보다


김설아는 예민한 감각으로 흩어져 있는 것들, 아주 미세한 것들을 붙들어 관찰하고, 기억과 상상과 바람과 같은 감정을 가미해 하나의 생명체로 되살린다. 세필로 쌓고 쌓아 모습을 드러낸 형상들은 구상적이지만 추상적이고 가상적이다. 실재하지 않는 존재임에도 엄청난 밀도감으로 실재성을 부여받는다.

무언가를 재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재현하지 않으며,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오묘한 형상이자 상태다. 또한 평면적이고 선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촉수나 털들의 무수한 집적(선들의 중첩)은 유동성과 운동성을 부여하고, 촉각적 감각과 청각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자의 은유’에서 바다와 도시의 경계 지점에서 발견한 곰팡이를 통해 생사(生死)의 경계를 목격했으며, 무수한 균사의 떨림을 통해 죽음에 다다르기 직전의 신음과도 같은 소리를 연상시킨다.

형상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작품은 경계나 틈, 사이의 이중적 의미를 포함한다. 그것들은 유기체의 주름, 막, 피부, 구멍 등을 통해 드러나며, 때로 작품명 ‘침묵의 목소리’, ‘눈물, 그 건조한 풍경’과도 같이 상호 반대적 의미의 단어의 조합으로 보여진다. 수많은 주름을 가진 애벌레 형상의 작품 ‘숨에서 숨으로’에서 주름은 안과 밖 공기의 순환 통로, 즉 숨길(숨이 지나가는 자리)이다.

‘침묵의 목소리’는 수많은 다리를 가진 곤충이 온몸을 떨며 우는 모습을 연상시키며, 부분이 전체인 존재의 연약함과 고통의 크기가 증폭된다. 그 우는 소리를 온전히 듣고자하는 바람이 담긴 작품 ‘들었다’는 몸 전체가 털과 주름으로 이뤄진 번데기 형상인데, 벌겋게 열린 막(구멍)을 가진 존재다. 타자의 소리를 귀 기울인다(공감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상처(구멍)을 내야 하는 것, 즉 통증이 함께함을 의미한다.



<사자의 은유> (부분) 2019 
비단에 수묵 200×440cm



막(구멍)은 김설아 작품의 중요한 메타포다. 막(구멍)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이자 통로로서, 열림과 막힘에 의해 생사가 구분되고 자신 이외의 존재들과의 유기적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몸은 ‘아홉 개의 문이 있는 도시(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이며, 아홉 개의 구멍이 난 상처(밀린다팡하 (Milinda Panha))’라는 인도의 경전*은 김설아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는 ‘인간의 몸에 아홉 개의 구멍이 있고 그곳에서는 오물이 흘러나오니, 이를 한 평생 보살피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연약함에 관한 글’(작가노트)이다. 김설아는 이를 ‘징후, 소문, 무너진 음성, 흉흉, 숨소리, 분열’로 이루어진 연작 ‘아홉 개의 검은 구멍’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고향에 관한 아픈 기억을 가장 깊숙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1970년부터 2008년까지 화학공장단지의 침범과 이주, 고향의 소멸까지의 기나긴 통증의 시간이 담겨있다. 고향 사람들은 매연과 냄새, 폭발 사고와 같은 위험에 시달려야 했으며 환경오염과 피해, 그로 인한 알 수 없는 병을 몸의 변화를 통해 증명해야만 했다. ‘아홉 개의 검은 구멍’은 외부와의 통로이자 내부 배설물을 배출하는 내밀하고 연약한 기관인 구멍들(두 눈, 두 콧구멍, 두 귀와 입과 항문과 요도)의 부서지고 단절되고 막힌 상태를 몸으로 증언하는 존재들과 결합한다.

몸으로 증언하는 존재들은 생명력을 상실한 상태로서 존재하며, 말라버린 지렁이는 부서진 청각기관과 짓이겨진 벌레는 썩은 배설물이 나오는 배설기관과 죽음의 경계를 목격한 포자는 멀어버린 시각기관과 뿌리를 상실한 몸은 뒤엉킨 호흡기관과 연결된다. 볼수록 아프고 소름 끼치는 극한으로 몰고 가는 괴기스러운 이미지는 공포나 예리한 통증을 유발하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들었다>, <침묵의 목소리>, <숨에서 숨으로>
 ‘제11회 광주비엔날레’ 설치 전경 2016 광주비엔날레관



시대의 불안정을 증언하다

고향을 떠나온 후 여러 지역을 떠돌며 예술과 생존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설아는 여전히 사회적 타자이며, 현재의 삶과 소외와 결핍의 과거는 중첩되는 지점이 있다. 미세한(연약한, 부서진, 부유하는, 본래의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생사의 경계에 놓인) 존재들에 대한 관심과 기록은 자신이 겪었던 아픈 기억에 관한 증언이자 애도다. 김설아가 미세한 존재를 들여보는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의미한다. 그러한 존재들을 통해 아픈 기억을 끊임없이 떠올려 마주하는 과정은 샤먼이 불안한 영혼을 소환해 행하는 영적 치료행위와 유사하다.

나아가 작가는 타자로서의 미세한 존재들과 자신의 기억을 연결함으로써 시대의 불안정, 즉 산업화, 무분별한 개발, 환경오염과 생태변화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김설아의 작업은 형상이 있으나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며, 강렬한 이미지지만 모호하고 함축적이다. 직접적 발언이 아닌 연약하고 부유하며 미세한 존재들 이면에 투영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상기시키며, 통로로서 예술을 실천한다. PA

*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는 인도의 힌두 경전이며 ‘밀린다팡하(Milinda Panha)’는 나가세나( Nagasena)와 밀린다(Milinda)왕이 불교에 관해 토론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설아 작가



작가 김설아는 1983년생으로 인도 바로다 마하라자 사야지라오(Maharaja Sayajirao University of Baroda) 예술대학 순수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2022 청년작가초대전: 김설아-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2022), <잃어버린 대상을 찾아서-그리고 상실은 욕망이 된다>(무안군오승우미술관, 2019) 등이 있고 <이퀼리브리엄/인간과 환경의 경계에서>(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0), <주관적 변용>(이강하미술관, 2020)을 비롯 2021년과 2016년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ACC 아시아 창작공간 네트워크 레지던시(2018)와 일본 요코하마 뱅크아트스튜디오 NYK 레지던시(2017)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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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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