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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6, Jan 2023

이광호
Lee Kwangho

알쏭달쏭 질문투성이

● 정송 프리랜스 에디터 ● 이미지 작가 제공

'나일론 벤치(Nylon Bench)' 2022 나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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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아직 만들어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한다”고 말한다. 일상의 틈을 찾아 균열을 내고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결합한다. 그는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 그곳이 어딘지는 본인만 알고 있을 터. 아직 머릿속을 유유히 머무는 아이디어를 전부 쏟아내지 못했다.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으며 확장하기 위해 늘 고민을 거듭하는 이광호이기에, 그의 작업에는 알쏭달쏭함이 묻어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그는 결코 본인의 입으로 자신이 디자이너인지, 아니면 현대미술 작가인지에 대해 내뱉은 적이 없다. 예술과 디자인계에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라는 장르가 새롭게 등장했을 때 그는 작품으로도 감상할 수 있고,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로 매스컴에 소개됐다. 실제로 그를 대표하는 작품인 전선으로 꼬아서 만든 의자 ‘Obsession Series’ 덕이 컸다. 하지만 작가는 분명히 밝혔다. “나는 결코 의자를 만든 적이 없다”고. 그는 사람들이 앉아도 되고, 또 앉지 않고 감상해도 되고, 혹은 그 둘을 한꺼번에 해도 되는 무언가를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일론 큐브(Nylon Cubes)> 2018 나일론



결국 이광호는 ‘나는 의도하지 않을 테니, 당신이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즐기십시오’라고 선언한 셈이다. 이러한 이광호의 도발적인 모습은 남들과 같지 않은 길을 걸어온 그의 과거가 합쳐져 완성됐다. 현재는 금속조형 디자인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광호는 홍익대학교 금속공예과를 졸업하고, 첫 눈에 띄는 행보로 2008년 캐나다에 위치한 커미세어(Commisaire)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시작을 알렸다. 그에게는 일종에 모험이었을 테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업으로 공간을 채운 전시가 성공을 거두며 지금의 이광호가 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광호의 작품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선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순한 매듭을 거듭 꼬는 반복적인 행위가 어떠한 형태를 만들어내고 그 형태에 쓰임새를 더하는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수작업, 수공예의 의미를 극대화한다. 그에게 강박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을 책임지고자 하는 작업적 집념이 담긴 셈이다. 오랫동안 이어온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Obsession Series’도 손을 사용한 ‘단순노동 집약적’ 행위가 강조되는 작업이다. 이는 뜨개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그냥 굵은 줄을 꼬아 매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선과 호스, PVC 튜브 등이 가진 본래의 목적은 지우고 ‘이광호의 작품’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를 자신의 작업을 만드는 매체로 삼으면서, 작가는 말 그대로 ‘강박적’인 작업의 면모를 보여준다.



<나일론 스툴(Nylon Stool)> 2021 나일론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그에게 말 그대로 방식일 뿐, 사실 이광호가 주목하는 것은 매체 그 자체다. 전선, 호스, PVC 튜브 외에도 스티로폼, 구리를 비롯한 금속 재료, 대리석 등 다소 평범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그 재료가 가진 고유성을 탈피하고 사물에 모호함을 더해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광호는 그가 만든 사물과 이를 이루는 재료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작가는 일상과 비일상 속 균열과 탈주를 반복하다가 작업으로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호함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이를 분명하게 선보인 전시가 바로 2014년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연 <모호한 사물>이다.

거대한 ‘Obsession Series’ 작업과 함께 전시장 곳곳에 평평한 단면이 있는 대리석과 칠보 유약 작품 ‘The Moment of Eclipse’ 시리즈를 설치했는데, 그중 어떤 것은 단면을 위로 설치해 의자나 벤치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어떤 것은 옆으로 세워 의도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설치 작업으로 남겼다. 이러한 해석의 다양성은 이광호의 전시를 매우 흥미롭게 만든다. 어떤 곳에서 마음껏 앉을 수 있는 의자인 사물이 이곳에서는 작품이 되어 유유히 시각적 감상을 유도하면서, 이광호와 그의 작품을 선뜻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지점으로 우리를 내몬다.



<펠트 벤치 & 스툴(Felt Bench & Stool)> 2016 펠트



이는 최근 3년간 리안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의 두 번의 개인전 <Composition in Blue>와 <Antifragile>까지 이어져 확장됐다. 특히 2020년 열린 <Composition in Blue>는 그간 꾸준히 선보여 온 짜기 기법의 작품을 배제하고 적동과 칠보를 사용한 메탈 연작으로 구성했는데, 동판과 동파이프를 모듈화해 일정한 단위로 자르고 이어 붙여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만들었다. 작가에게는 이미 익숙한 소재에 다시 한번 균열을 내면서 기존 가구와 같은 사물을 만드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조형법을 택한 것이다.

벽면에 설치된 푸른 칠보의 정육면체, 바닥에 놓인 동파이프 작업 등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작품을 보고 인식하는 과정까지 건든다. 예컨대 바닥에 놓인 동파이프 작품은 어떤 위치에서 보면 파도치듯 요동치고, 어떤 위치에서는 빛과 그림자의 형태만 인지할 수 있게 설치됐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사물의 부분적 이미지의 편린을 조합해 지각한다. 이광호는 작품의 모호함을 일반적인 지각과 인식의 메커니즘과 연결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만들었다.




<이광호, XXX: Second Language> 
전시 전경 2019 원앤제이 갤러리



2021년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연 <Antifragile>에서는 금속 작업과 짜기 기법 연작을 또다시 다르게 해석하고 형상화했다. 외부의 압력이나 충격으로 인해 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해지는 것을 뜻하는 용어에서 이광호는 자신의 모호함, 불확실한 개념이 시간이 지나며 단련되어,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간 조금은 정제된 작업을 선보여왔던 그는 이번에 자신의 머릿속을 부유하던 이미지를 꺼내 과감하게 조형했다. ‘Floorpiece’, ‘Wallpiece’, ‘Hangingpiece’와 같이 명명된 작품은 구체적인 형체 없이 이광호의 손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잘린 전선의 단면을 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구불구불한 선을 유연하게 이리 휘고 저리 휘면서 작가는 창작 활동의 즐거움에서 적절한 텐션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모호하지만, 그 속에 있는 이광호의 질서가 응집된 전시로 남았다.



<노란색 PVC 스툴(Yellow PVC Stool)> 2016 PVC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과거로부터 지속해온 반복 행위가 쌓여 지금의 이광호를 만든 것에서 그는 자신의 작업에 ‘시간성’이 담겼다고 본다. 그래서 이광호는 자신과 자신의 작업을 규정하지 않기 위해 말을 아낀다. 과거의 이광호가 지금의 이광호를 만들었듯이 지금 그가 하는 작업이 앞으로 어떠한 곳으로 그를 이끌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무슨 작업을 하는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중요치 않다. 다양한 작업에 깃든 모호함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창작’으로 귀결되기 때문에.PA



오설록 티하우스 작품 설치 전경 2018 전선



이광호



작가 이광호는 1981년생으로 2007년 홍익대학교 금속조형 디자인과 졸업 후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표현 기법을 모색해왔다. 반복성과 시간성을 담은 사물과 사물을 구성하는 매체 그리고 공간의 관계에 모두 주목하고 있다. 2008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커미세어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벨기에, 독일,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개인전과 그룹전,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자신의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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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 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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