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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8, Mar 2023

오웬 라이언
Eoghan Ryan

뒷걸음질 치며

● 이가진 미술 저널리스트 ● 이미지 작가 제공

[A Sod State] 2021 Film Still ©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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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한 일상과 느슨한 마음에 예기치 않은 균열을 낸다. 이 시대가 오직 아름다움을 향한 찬미나 시각적 즐거움, 위안과 위로, 사색과 관조만을 예술에 요구하며 그럴듯하게 치켜세우는 양 눈속임하려 한다고 해도, 예술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매사에 불편한 의문을 제기하고, 오감을 긴장시키고,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꺼내어 불쾌함조차 마주하게 하는 예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아일랜드 출신 예술가 오웬 라이언(Eoghan Ryan)의 작품 앞에서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다고 서둘러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라이언의 작업은 대개 “공공장소와 개인적 트라우마, 행위와 반응 사이의 틈”에 위치한다. 가령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듯 출발한 작품이 정치 사회적 사건,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관념들 혹은 서구 사회의 규범, 미술사와 미술 시스템, 박테리아와 생물까지 확장되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려는 듯 서로 낯선 개념을 교차한다. 이를 위해 무빙 이미지, 설치, 퍼포먼스, 조각, 콜라주 등의 다양한 형식을 채택한다.



<Doggerel> 2022 Video Installation UHD video 
across three screens 13mins 57secs loop  
Courtesy of the Busan Biennale Organizing Committee 
 © the artist Commissioned by the Busan Biennale
 2022 Photo: Kim Sangtae



‘2022부산비엔날레’ 커미션 작품인 <Doggerel>(2022)를 보자. 3채널 영상 설치로 우리말로 ‘개소리’로 번역된 작업은 암전 속에서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말아요”라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해 감미롭기까지 한 노랫소리로 시작한다. 이내 속도를 높이는 영상의 화자는 스스로 ‘사탄’임을 밝히며 분위기를 전환한다. 처키를 닮은 외모의 소년 인형이 불규칙한 압운시를 외며 북을 두드린다. 이 작품은 귄터 그라스(Gunter Grass)의 소설 『양철북(Die Blechtrommel)』(1959)에서 내용과 형태를 취했다. 주인공 오스카 마체라트는 3살에 스스로 성장을 멈춘 서른 살의 청년으로, 소설은 정신병원에 갇힌 현재의 그가 회고하는 과거의 이야기다. 오스카의 삶은 곧 독일 현대사의 굴곡이다. <Doggerel>로 환생한 오스카는 20세기 전반 유럽의 상황과 현재를 병치한다.

현실을 빼닮은 작품 속 1989년 겨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갈등과 반목의 시대가 끝나고 해빙의 계절이 오리라 믿었다. 순진한 낙관이 득세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도, 연인도 미리 알려줄 수 없다. 라이언은 미니어처 인형들로 만든 이미지의 세계와 영상으로 기록된 현실의 푸티지를 교차 편집하며, 국경을 넘어야 사는 사람들과 그들을 막고자 하는 이들의 갈등을 리드미컬하게 진술한다. 결국 유럽이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2020년 겨울 브렉시트(Brexit)가 발생했다. 작가가 속한 ‘유러피언’들이 목격한 정치·역사적 사건 앞에서 21세기의 오스카는 과연 성장할까 성장을 거부할까. 다시 암전 속에서 북소리만 울릴 뿐이다.



<Untitled (Knifed/Knifography)> 2017
 Ink drawing 84×59cm © the artist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부조리의 인간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묘사한다”고 했다. 라이언의 묘사는 강박적일 정도다. <Truly Rural>(2019)는 비디오 설치와 퍼포먼스로 구성된 작품이다. 영상에는 다층위의 내러티브와 형식, 이미지가 콜라주처럼 엮인다. 독일 헤센주의 카니발 기념행사와 1990년대 영국의 광우병(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 위기에 대한 다큐멘터리, 인터뷰 혹은 심리 치료 형식을 띤 두 남녀와의 대화, 자신을 ‘통제의 수단’이라고 소개하는 한 소년, 스펀지를 바늘로 기워 만든 인형(광우병 및 인간 광우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이 이해할 수 없는 병으로 자기 파괴적 양상을 보이는 등 여러 요소를 결합한다. 빠른 비트의 음악을 배경으로 춤추고, 즐기는 듯한 군중의 모습은 폭발 및 폭력의 장면과 겹친다. 가차 없이 폐기되는 소의 사체와 판매용 다짐육을 제조하는 과정 또한 중첩된다. 영상의 후반부, 인형은 자신의 이름을 ‘폭력’, ‘사회’, ‘문화’, ‘유럽’이라고 소개한다. 여기에서 다시금 도입부를 떠올린다. “인생의 어느 순간, 당신은 본인 내부의 파시즘과 마주하지만, 그냥 무시해버리기로 한다.”

비디오 바깥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로는 5명의 퍼포머가 병든 소와 군중의 행동 양식을 표현한다. 젖소 무늬 코스튬을 입고 얼굴을 분장한 그들은 유유자적 우유를 마시거나, 음악에 맞춰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을 이뤄 춤추듯 몸을 움직인다. 관람객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일종의 바이러스 전염과 변이를 상상케 하는 퍼포먼스는 “일상적 질서에 잠재된 광기와 구축된 정체성과의 과잉동일시(overidentification)를 통해 어떤 자유가 포용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Installation view of <Truly Rural> 2019 
Video installation and performance © the artist
 Photo: Gert Jan van Rooij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퍼포먼스를 생성하는 사람들과 함께 축적과 파열 사이의 순간들을 생성하고, 속도를 아주 느리게 만드는, 약간은 사도마조히즘적인 공간을 찾고 싶다”며 “파열이 생길 때엔 보는 이들에게 그 어떤 안도감도 주지 않길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의도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퍼포먼스에 나선 <The Modern Dance (In Light of Today’s Questions)>(2017)에서도 드러난다.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운드, 무빙 이미지, 조각, 텍스트 등이 혼재하는 작업이지만,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위해 예술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적용했다. 표면적으로 이 작업은 세속적인 서구의 문화, 특히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제도적인 환경에서 신성시되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묻는다.

퍼포먼스에서 아버지가 표상하는 이전 세대의 문화 자본으로부터 물려받은 개념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공존을 도모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신체적, 정서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본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부자 사이의 관계 개선을 위해 수많은 심리 치료를 받았다는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할 즈음 그의 아버지는 반강제적으로 은퇴를 맞이했다고. 라이언은 함께 예술 작품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아버지-아들의 해묵은 관계를 재구축하고자 도모한다. 폐쇄된 목욕탕을 배경으로 반나체의 부자가 대화와 동작을 이어가고, 편치 않은 감정의 누수를 경험하는 그들 주변에서 어린 합창단원들이 노래를 부른다. 이처럼 자신의 인생, 관계에 대한 관찰은 집단, 시스템, 국가, 예술이라는 더 큰 범주로 번진다.



<The Modern Dance (In Light of Today’s Questions)> 
2017 Performance © the artist Commissioned by 
IMMA - Irish Museum of Modern Art, 2017
 Photo: Louis Haugh



비디오 설치작업인 <A Sod State>(2021)는 사회적으로 당면한 이슈를 다룬 한 편의 우화로 ‘Sod’는 골치 아픈 것,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일컫는 영국 속어다. 브렉시트를 전후로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반복적인 정치 연극”으로 상정해, ‘Sod State’라는 문자 그대로 골치 아픈 나라라고 지칭한 것이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내면의 악마로 계급, 신앙, 정체성 및 국경과 관련한 양면성의 모순을 연기한다. 정치는 물론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넘나드는 테러 행위, 폭력, 깊은 증오심이 작품을 장악한다. 경찰 차량이 불타고, 대치하는 시위 장면, 믹 재거(Mick Jagger)부터 신실한 기독교인을 아우르는 일련의 인터뷰, 무대에 열광하는 군중 등의 이미지가 뒤섞인다.

설교와 독백, 울부짖음과 기계음, 경쾌한 사운드를 헤집고 “안녕하시오, 거기 현대미술 관람객들”이라며 말문을 여는 기괴한 인형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한다. 이어 화면 밖 우리를 “힘든 시기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여기는 듯하지만 쏟아지는 이미지들 앞에서 “관람객, 목격자 그 무엇이든 우리는 이야기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끝 무렵, 돼지 마스크를 쓴 인형은 본격적으로 화두를 던진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마치 한 몸 안에 여러 존재가 머무는 것과 같다고 전제한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나는 목격자, 신봉자, 도덕률, 목사, 정치인, 예술가, 희생자, 모욕, 시위자, 국가, 외국인, 착취, 불평등, 식민지 과거사, 페미니스트, 바로크적인 사람, 독일 적군파(Rote Armee Fraktion, RAF), 면도날, 경찰 범죄, 가해자, 자본주의, 부패한 시스템, 시간의 파괴자”임을 선언한다. 종교, 대중문화, 정치가 공고히 하는 갈등과 편견의 이미지가 초래하는 횡포를 거듭해서 보여주는 이 작품으로 작가는 예술과 미디어의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



Installation view of <Truly Rural>
 Kunstverein Freiburg, 2021
 © the artist Photo: Marc Doradzillo



라이언은 예술 작품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날 것 특유의 거북함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어떤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게 한다. 주제든, 형식이든, 모두 결합한 결과물로든, 예술이 고통받고, 반목하고, 비위 상하고, 신경을 거스르고, 잔인하기까지 한 것을 표현할 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문을 열기도 한다. 언제나 문을 열면 더한 악몽이 우리 앞에 있다.PA



오웬 라이언



작가 오웬 라이언은 1987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라익스아카데미(Rijksakademie) 오픈스튜디오(2021, 2019)를 비롯해 영국 런던 로잉(Rowing)에서 <Cut It off at the Trunk>(2017), 사우스 런던 갤러리(South London Gallery)에서 <Oh Wicked Flesh!>(2013)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다. 2022년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오는 4월부터 7월까지 이탈리아 트렌토에 위치한 센트랄레 피스(Centrale Fies)에서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라이언은 현재 암스테르담과 벨기에 브뤼셀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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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진 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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