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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7, Feb 2023

에이미 셰럴드
Amy Sherald

관념적 기억과 셰럴드 뉴런의 마찰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작가, Hauser & Wirth 제공

'A God Blessed Land (Empire of Dirt)' 2022 Oil on linen 244.3×330.6×6.4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my Sherald Photo: Alex Delf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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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1990년대 젊음과 열기를 머금은 서울 신촌의 카페 10곳 중 1곳에는 꼭 같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소위 ‘세기의 키스’ 혹은 ‘수병의 키스’로 불리는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Alfred Eisenstaedt)의 <V-J Day in Times Square>가 그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단 소식이 전해진 1945년 8월 14일 아이젠슈타트는 널따란 광장에서 해군 수병과 간호사가 기쁨에 넘쳐 입 맞추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는 곧 자신이 소속된 잡지 『Life』에 ‘키스(The Kiss)’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게재했고 이는 머지않아 세계적 유명세를 얻었다. 그리고 그 명성은 청춘이 넘실댔던 20세기 끝 무렵까지 대한민국 수도의 카페 인테리어로도 유효하게 사용됐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증표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표현인 키스에, 드디어 끝난 전쟁의 환희까지 추가된 이 흑백사진엔 너무 많은 상징과 은유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A Midsummer Afternoon Dream> 2020 
Oil on canvas 269.2×256.6×6.4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my Sherald Photo: Joseph Hyde  



미국 대표 현대 초상화가 에이미 셰럴드(Amy Sherald)의 <For love, and for country>(2022)는 누구나 짐작하듯 아이젠슈타트의 사진을 모티브 삼은 것이다. 쉬이 인식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일상적 설정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삽입함으로써, 보는 이의 사고를 환기시키고 예술사적 규범을 재맥락화하는 셰럴드는 모두에게 익숙한 이 백인 이성애자 커플을 흑인 남성 커플로 대체해 작품을 완성했다. 높이 3m 12cm에 이르는 거대 회화엔 훤칠한 해병이 샛노란 바지에 세일러복을 매치한 연인을 끌어안고 깊숙이 입을 맞춘다. 활처럼 휜 연인의 허리, 수줍은 듯 들어 올린 연인의 뒤꿈치, 연인의 머리를 감싼 해병의 손아귀, 꾹 감은 두 사람의 눈에서 그들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진다.

시간이 흐른 뒤 아이젠슈타트의 사진 속 남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 그날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작가 스스로 1945년 당시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앞에 보이는 뚱뚱하든, 날씬하든, 늙었든 상관없이 모든 여자들을 잡아채고 있는 한 수병을 보곤 극적인 타이밍을 엿보다 드디어 간호사에게 키스하는 찰나를 찍은 것이라고 술회했기 때문이다. 내막은 그렇지만 이 장면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대중의 뇌리에 사랑의 상징 ‘키스’를 분명하게 인식시킨 대상으로 남았다. 셰럴드가 초점 맞춘 부분도 바로 그러한 사회가 지닌 관념적 기억이다.      



<For love, and for country> 2022 
Oil on linen 312.4×236.2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my Sherald
Photo: Joseph Hyde



정치화된 내러티브에서 결코 보편적 삶을 살수 없었던 흑인 남성, 여성, 가족, 예술가에 집중해온 셰럴드는 다양한 사료와 사진들을 통해 전쟁에서 돌아온 흑인 군인들이 끊임없는 불평등에 직면해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흑인 퀴어 커플이 공공장소에서 얼마든지 사랑을 표현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피력하고자 했다. 그렇게 완성된 셰럴드의 작품은 크고 웅장하며 선명하고 명확한 이미지로 공개 직후 매스컴을 장식했다. 셰럴드는 LGBTQ에 대한 새로운 법안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반대에 직면하자 자신의 친구를 비롯해 수많은 미국의 게이 및 트랜스젠더 권리가 위험에 처했음을 실감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기를 바라며 그림을 그렸다. 동성 결혼이 위협받고, 종종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에 대한 치명적 폭력이 일어나는 곳에 살고 있는 우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는 평소보다 더 큰 화폭을 색으로 메웠다. 동성애를 짓누르는 오랜 검열과 삭제의 역사가 아직까지도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직시하며 아름답고 또렷한 게이의 키스를 창조한 것이다.



Installation view of <Amy Sherald. The World We Make> 
Hauser & Wirth London, 12 October - 23 December 2022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my Sherald 
Photo: Alex Delfanne



또 다른 작품 <A God Blessed Land (Empire of Dirt)>(2022)에는 트랙터 위에 늠름하게 올라선 남자가 있다. 19세기 미국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보편화된 전통적 농장 그림을 참조한 셰럴드는 화면 안에 토지 소유권 및 체계적 토지 손실에 대한 아이디어뿐 아니라 예술에 끌고 들어오는 농업의 역사까지 쓸어 담는다. 셰럴드는 근작에 오토바이와 트랙터 같은 탈것의 묘사를 통해 오래도록 미국이 추구해온 강인한 상징과 그 기저에 깔린 남성성에 관한 시의적절한 해석을 시도한다. 그 같은 맥락에서 3m가 넘는 대형 작업 <Deliverance>(2022)에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듯 한 공간에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공중에 떠 있는 두 명의 바이커가 등장한다. 자신이 살았던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자전거 문화에서 영감 받아 그린 작품에 작가는 라이딩의 전부인 자유로움을 풍부하게 묘사한다. 트랙터와 오토바이 등을 통해  우리 삶과 사회에서 개인이 갖는 능동적, 진취적 특성을 탐구하는 셰럴드는 이것이 새로운 변화와 이동 등을 은유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An Ocean Away> 2020 Oil on canvas 
330.2×274.3×6.4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my Sherald 
Photo: Joseph Hyde



물리적으로 거대한 셰럴드의 초상화는 어디선가 마주쳤을법한 모습에 친밀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피사체의 평범함과 비범한 본질을 포착하는 동시에 대담한 색상으로 꾸며진 배경이 현실과 확실한 구분을 짓는다. 익숙한 옷을 입은 채 포즈와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림 속 주인공들은 프라이버시와 신비감에 휩싸여있다. 쨍한 보라색 배경의 작품 <To tell her story you must walk in her shoes>(2022)도 그렇다. 한 여성이 유니크한 헤어스타일과 볼드한 귀걸이를 한 채 삭막한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주인공이 청바지 위에 입은 니트가 시선을 잡아끄는데, 총천연색의 스타킹과 구두를 신은 각선미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그들의 워킹과 무심하게 정지된 것 같은 인물의 표정이 언밸런스를 이루며 의식을 환기시킨다. 한편 항상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주인공 삼는 셰럴드는 흑인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색상의 부재인 그리자이유(grisaille)로만 피부 톤을 계속 렌더링 한다.      



<As American as apple pie> 2020 
Oil on canvas 312.4×256.5×6.4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my Sherald Photo: Joseph Hyde 



셰럴드의 작품 제목은 이야기적이고 암시적이지만 주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글 앞에 언급한 ‘For love, and for country’의 경우도 특정 사진을 참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저 장면을 재현하는 방식에 자기만의 은유를 한 방울 곁들인다. 그는 사랑을 먼저 내세운다. 이 작품과 제목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 복무를 금지한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미군 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내막이 깔린 것이기도 하다.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의 초상화로 셰럴드의 대중적 인지도는 상승했다. 그러나 단지 감각적인 그림이기 때문에 그의 그림이 화제를 모은 것이 아니다. 상징적 이미지와 대중문화, 예술사의 어떤 장면들을 레퍼런스 삼아 원본을 전복시키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줄거리를 불어넣는 그의 재주가 증명됐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초상화를 완성하고도 작가는 말했다. “초상화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은 개념적이다. 그림이 완성되면 모델은 더 이상 내 그림에 그대로 살지 않는다. 나는 더 크고 더 상징적인 원형을 본다.”



<Deliverance> 2022 Oil on linen 
275.4×631.1×6.4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my Sherald 
Photo: Alex Delfanne



정치인, 선원, 자전거 타는 사람, 어린이 등 눈앞에 있는 인물들을 그리는 셰럴드는 실제로 길에서 만났거나 관심을 끌었던 옛친구 혹은 이웃을 화폭에 기록한다. 작가는 백인들만 있었던 곳에 동시대 흑인 미국인을 배치해 미술사를 다시 쓰려 하진 않는다. 대신, 그는 작품을 통해 그들의 역사적 장르를 새롭게 설계한다. 강렬한 존재감으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백인들의 권력과 계급의 내러티브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세련되고 끝내주는 셰럴드의 초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인종 및 표현에 대한 관념에 보다 적극적으로 토론하게 만들며 미국 예술의 중심에 흑인 유산을 배치하도록 독려한다.PA



Amy Sherald in <The World We Make> 
at Hauser & Wirth London, 2022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my Sherald 
Photo: Olivia Lifungula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나 현재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 에이미 셰럴드는 시선을 사로잡는 초상화를 통해 미국 아프리카계 현대인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워싱턴 D.C.의 National Portrait Gallery가 주관한 ‘2016 Outwin Boochever Portrait Competition’에서 대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셰럴드는 ‘2017 Anonymous Was A Woman’상과 ‘2019 Smithsonian Ingenuity Award’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2018년 워싱턴 D.C.의 National Portrait Gallery의 공식 커미션으로 영부인 미셸 오바마를 그린 후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셰럴드의 작품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을 비롯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국립 초상화 갤러리 등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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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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