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Issue 208, Jan 2024

장지연
Daphne Jiyeon Jang

움직이는 조각

● 도연희 독립큐레이터 (팀서화) ● 이미지 작가 제공

'Uncanny Nature' 설치 전경 2023 ‘언폴드엑스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이미지 제공: 서울문화재단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서사를 중심으로 인간의 신체를 정밀하게 재현한 구상 작품들은 점점 찾아보기 힘든 추세다. 반면 추상적 형태에 개념적 의미가 부여된, 새로운 물성으로 촉각적 특징이 강조된 작품들은 점점 떠오르고 있다. 이미 전통적 조각 작품이 넘쳐나니 그 역사에 또 다른 맥을 부여하며 이어 나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일 테다. 그런 까닭으로 인체 소조에 애정을 가진, 투박한 흙의 질감과 회화적인 손맛에 향수를 느끼는 작가들도 자신의 작업 세계 메인 자리를 구상 조각으로 채우기를 망설인다. 그러나 장지연의 작품에선 그런 ‘클래식’ 조각상들이 당당히 주인공이 된다.

장지연은 조소를 전공했다. 진행형인 장면을 포착한 듯한 동세감에 매료되어 인체 작업들에 몰두했었다고 한다. 이후 작가는 3D 모델링 및 애니메이션을 통해 가상의 공간에서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상에서 조각을 만드는 과정은 실제와 다르지 않았다. 심봉 위에 흙을 붙이듯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붙여 나갔다.


만들어진 조각상은 미디어 파사드,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등 다양한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를 통해 현실의 실체로 시각화되었다. 사실적인 조각은 헬레니즘 시대에 꽃을 피웠고 그 시기 이후의 서양 조각들은 곧 움직일 듯한 생명력을 지녀 아직까지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작가의 작품에선 그런 조각들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 작가는 고전 조각들을 살아 숨 쉬게 만들어 클래식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구현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런 자신의 작업 방식에 ‘움직이는 조각(Moving Sculptur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Uncanny Nature> 2023 싱글채널 프로젝션 맵핑, 
멀티채널 홀로그램 비디오 설치, 조경 설치
 6분 13초 언폴드엑스 창·제작지원



작가가 작업의 내러티브를 꾸리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가 사회에 시사하고자 하는 바는 대체로 역사적 서사, 사건, 고전 신화 등에서 출발한다. 과거의 가치와 본질을 현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으로 끌고 와 지금 우리 삶과 연결함으로써 재고하기를 제안해왔다. <Reconciled Glory - 화해한 영광>(2022)은 영국과 그리스 국가 간 문화재 반환과 보상에 대한 이슈에 주목했는데,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로 더욱 알려진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은 오랜 기간 반환의 타당성을 논하고 있음에도 인간의 허영심 때문에 지혜롭게 해결되지 못한 채 역사를 온전히 품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


작가는 이러한 점을 꼬집어 예술과 기술의 융합으로나마 해당 문화재의 영광스러웠던 모습을 회복시킴으로써 제국주의의 잔재 청산에 대해 질문하게 했다. 또한 ‘BABEL’(2019-2021) 시리즈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을 가상 공간에 위태롭게 쌓아 올렸다. 평등을 말하지만 현대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 계층구조를 시각화했고, 나아가 팬데믹과 같은 범지구적 위기를 마주했을 땐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함을 은유했다.

최근 문화역서울284에 마련된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3-달로 가는 정거장>에서 작가는 <언캐니 네이처(Uncanny Nature)>(2023)를 선보였다. 이전에는 특정 조각상에 얽힌 상징성에서 시작되었던 메시지가 자신의 작업 실현에서 중요한 매체인 기술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와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해당 작품은 작가가 2022년 로얄 스코티시 아카데미(Royal Scottish Academy) 스콜라(Scholar)로 리서치 트립을 다녀왔을 때 느낀 기묘한 감정에서 촉발되었다. 이제 국제적으로 문화재 복원 분야도 기술과 함께 고도로 발전하고 있다.




<BABEL- MODERN HUMAN HIERARCHY: Symbiosis> 
설치 전경 2021 플랫폼엘



유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각상들일수록 최첨단 기술 관리를 받아, 마치 갓 완성된 작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 자연 속에 자리한 조각상은 최소한의 관리를 받고 적당히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세월의 흔적을 두르게 된다. 작가는 특히 피렌체 보볼리 정원의 작자 미상의 조각들이 자연의 순리에 맞게 이끼와 어우러진 모습이 다시 한 번 살아 숨 쉬는 조각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다고 말한다, 그러한 감정은 작가로 하여금 기술과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관리 및 개입의 정도를 질문하게 했다.  

‘언캐니(Uncanny).’ 신비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친숙하게 생각했던 것이 낯설고 기이한 심리. 어느새 기술은 자연처럼 우리에게 당연해졌고, 오히려 자연이 주는 시간 감각과 공간감이 낯설게 느껴진다. 작가가 기술과 자연을 비교한 것이 탁월하다 생각했다. 둘 모두 우리에게 이롭지만 언제고 재앙처럼 세상을 휩쓸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이에 작가는 어느 것에도 잠식되지 않고 적당한 균형점을 찾는 인간의 위치와 능력을 염원한다.


발전시키면서도 보존해야 하는 것, 적절히 관리하면서도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탐구이며 의무라 주장한다. 또한 작가로서 장지연이 예술과 기술 사이에서 꿈꾸는 균형 또한 명확하다. 끊임없는 기술의 변화와 발전으로 인해, 예술가가 적합한 창작의 도구로서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이끌려 맥락 없이 화려한 기술을 사용하는, 일종의 테크니션으로 전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Uncanny Nature> 2023 ‘언폴드엑스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이미지 제공: 서울문화재단



기술을 주요 창작 도구로 곁에 둔다는 건 양날의 검을 쥐고 있는 것과도 같다. 언제고 위치가 전복될지 모르는 파트너를 둔 작가는 그와의 균형에 대한 고민을 단적으로 체감한 개인적 사건을 이번 작품의 내러티브로 차근차근 풀어 나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시대 미디어 아티스트 모두가 이에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미디어아트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지자체, 기관, 기업들에선 너 나 할 것 없이 미디어 전시를 요구했다. 그러한 현상이 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로 찾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예술성보다는 빠른 제작과 송출이 특징인 업체들에 씁쓸히 그 자리를 내어주기도 했다. 이에 일부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차별성을 작품 콘텐츠 자체보다는 최첨단의 기술 활용에 두기도 했다.

반면 장지연은 생소한 첨단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관람객에게 기술력보다 시각적 경험이 먼저 닿길 바랐다. <언캐니 네이처>에는 3D 모델 제작, 캐릭터와 배경 스캔, 애니메이션 등이 활용됐고 몰입형 프로젝션 맵핑과 하이퍼비전(HyperVSN) 홀로그램을 통해 인간과 자연, 생명의 언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효과적으로 서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앞쪽으로 실제 흙과 이끼, 시간에 맞춰 나오는 연무기의 연기를 통해 촉각적·후각적 감각을 더했다.




<Theodoric> 2022




자연과 기술을 논하기 위한 연출이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특성의 묘한 대비는 가장 클래식한 조각들을 가상 공간에 들여온 작가다운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이처럼 대비의 묘미와 균형을 활용할 수 있는 작가라면 ‘기술을 위한 예술이 되지 않는’ 창작을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달로 가는 정거장>에는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Sistine Chapel)>이 함께 전시되기도 했는데,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독일관에서 발표된 당시에는 나무 선반 위 브라운관(CRT) 프로젝터들이 사방의 벽과 천장을 메우는 형태였다면, 현재는 철제 비계 위로 액정표시장치(LCD) 프로젝터로 교체되어 전시되었다. 이 <시스틴 채플>의 브라운관 교체를 처음 시도했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큐레이터 발렌티나 라바글리아(Valentina Ravaglia)의 말을 빌려 장지연에 대한 글을 정리하려 한다.


“백남준에게 본 작품은 어떤 기기로 송출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해체하고 활용하여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는 개념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PA




장지연 작가



작가 장지연은 조소 베이스의 미디어 아티스트다. 가천대학교(경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 에딘버러 예술대학(Edinburgh College of Art – The 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현대미술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미국, 영국, 이탈리아, 홍콩 등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국제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최근 로얄 스코티시 아카데미(Royal Scottish Academy) 스콜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 리서치 트립을 다녀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작업한 <언캐니 네이처>로 서울문화재단 주관 ‘언폴드엑스’ 선정 작가로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3-달로 가는 정거장>에 참여해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구글 아트앤컬처(Google Art&Culture)에 아카이빙 됐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을 비롯해 여러 기관에 소장돼있다.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도연희 독립큐레이터 (팀서화)

Tags

More Article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