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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9, Feb 2024

호다 카시하
Hoda Kashiha

우리를 둘러싼 세계

● 이가진 미술 저널리스트 ● 이미지 작가, 나탈리 오바디아 갤러리 제공

Exhibition view of 'I am Here, I am not Here' Art Basel Unlimited 2023, Basel, Switzerland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ssels Photo: Dawn Black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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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부터 국적, 종교, 정치 등 개인적 배경을 뛰어넘어 편재하는 동시대적 미감을 가늠케 하는 작품이 있다. 어떤 기시감 혹은 미시감. 호다 카시하(Hoda Kashiha)라는 낯선 이름의 작가 그리고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도 그러했다. 구상과 추상의 모호한 경계, 이모티콘, 만화 등에서 차용한 이미지, 에어브러시의 흔적과 강렬한 컬러 팔레트, 디지털 페인팅 도구의 활용, 캔버스 위에서 물감과 결합된 페이퍼 컷-아웃, 콜라주 등 우리 주변의 작가들에게서 한 번쯤 봤음 직한 시도의 익숙함을 반기며 작품에 다가서면, 곧이어 생경한 맥락의 블랙 유머, 겹과 층을 이루는 내러티브 뒤에 몸을 숨긴 날카로운 주제가 슬그머니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내게 그림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구름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기분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To me, painting is not an end in itself; it rather gives me a chance to express my moods and thoughts that come to my head and vanish, like clouds).”



<Orange like fire burns us into the sunset.
 Yes! This is the beginning of summer. Hot summer.>
 2022 Acrylic and silicon powder on canvas
 Variable dimensions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ssels 
Photo: Aurélien Mole



카시하는 1986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2009년에 테헤란 대학교(Tehran University) 졸업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2014년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 회화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작업에 매진한 작가는 중국, 페르시아만 출신 컬렉터들의 관심을 등에 업고 도약을 꿈꾸는 이란 미술계에서 떠오르는 신성으로 이란뿐 아니라 유럽, 미국 일대에서 차근차근 전시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카시하는 자신이 나고 자란 이란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주제로 삼되 미국에서 경험한 자유로운 스타일을 결합한다.

드러난 것과 감춰야 하는 것 사이의 끝없는 유희를 표현하기 위해 곳곳에서 습득한 요소 하나하나를 퍼즐 조각 삼아 작품에 접근한다. 언뜻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만화적 기법과 스타일을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대사나 말풍선의 응용보다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불분명하게 하고, 제스처나 심볼, 색채 등으로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작가 본인이 꼽는 지속적인 작업 주제이자 기본 원칙은 ‘비선형적 내러티브, 어두운 유머, 신화적, 종교적, 모더니즘적 아이콘’으로, 개방성, 자유,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대담하고 분방한 화풍으로 그려낸다.



<Even the last red one...> 2022 
Acrylic on canvas 180×15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ssels
Photo: We Document Art



작가는 다방면의 자기표현을 비롯해 각종 요구와 저항을 위한 이미지와 언어가 넘실대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현실 세계를 성찰한다. 2020년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이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격추된 사건과 관련해, 이란의 많은 사람이 인스타그램에 연대의 의미로 검은색 사각형을 공유했다. 작가는 이를 계기로 검은색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림에 검은색 사각형을 넣기 시작했다.

카시하는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란의 시국과 상황이 작품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성실하게 밝혀 왔다. 2022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끝내 의문사한 대학생 마흐샤 아미니(Mahsa Amini)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미니의 죽음은 이란에서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의 상징이 되었고, 대규모 시위가 이란 전역을 뒤흔들었다. 카시하는 “마흐샤 아미니가 경찰 구금 중 사망한 이후 이란에서 탄력을 받은 시위가 작업의 초점을 바꾸게 했다. 이 저항 운동의 중심에는 여성의 신체가 있다.



<Getting Caught Between East and West> 
2022 Acrylic and silicon powder on canvas 
120×15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ssels  Photo: Aurélien Mole



그리고 내 작업의 큰 주제는 신체의 파편화, 즉 몸이 어떻게 검열되고, 어떻게 사라졌으며, 어떻게 사회적 연속성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나아가 권력이 몸을 없앨 수는 있지만, 뿌리에서부터 잘라낼 수는 없다는 점을 다룬다. 물리적으로 신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사상과 영혼은 남아 다른 신체에서 계속 이어진다. 이란의 저항 운동을 통해 내가 몸으로 작업하는 이유를 훨씬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고국에 대한 유대감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간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신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거듭 강조해 왔다. 몸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스스로의 욕망과 정체성을 이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체의 표현은 비단 개인적 삶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를 투영하는 것이라 여겼고,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또 다른 사각형인 캔버스 역시 카시하에게는 궁극적으로 내면을 드러내고 표출하는 공간인 셈이다.

작품에 미술사적 참고 자료를 적극적으로 접목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카시하는 예술의 역사와 예술가의 인생에 자신의 감정과 해석을 융합한다. 가령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에 자신의 열정, 저항, 영원이라는 감정을 이입하고,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버전의 <The Sacrifice of Isaac>(1635)을 다시 그리기도 했다.



<Purple is healing the wound between sword and neck>
 2022 Acrylic on canvas 180×15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ssels 
Photo: We Document Art



아브라함이 자신의 믿음과 순종을 증명하기 위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창세기의 유명한 장면을 표현한 이 그림에서는 누군가의 얼굴을 짓누르는 손과 무방비 상태의 목을 노리는 듯한 칼날이 묘사되어 있다. 이 외에도 카라바조(Caravaggio)부터 인상파 화가들, 이란의 전통 미니어처 그림, 일본 목판화,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Black Square>까지 카시하는 지난 시대의 그림에서 자신의 시대를 읽거나 새로운 창작의 씨앗을 취한다.

지난 2023년 9월,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나탈리 오바디아 갤러리(Galerie Nathalie Obadia)에서 치른 개인전 <Another World is Waiting for Us>는 이러한 작업 경향을 두루 관찰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의 주제는 폭력, 권력, 자기애적 시선 등 현대 사회의 지배 욕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개념들.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작가는 일종의 우회로를 선택했다. 본 작업에 앞서 예비 스케치를 거듭함으로써 불연속성을 도입해 내러티브를 쪼갰고, 현실의 불안정성을 강조하듯 받침대를 활용해 캔버스를 벽에 비스듬히 기대거나, 삐뚤어진 각도로 뉘어 놓기도 했다.



<The banished sun> 2021 
Acrylic on canvas 150×12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ssels Photo: Aurélien Mole



새, 꽃, 성별이 명확하지 않은 인물, 무기 등의 모티프가 여러 작품에 연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도상은 현실의 복잡함을 은유한다. 꽃을 꺾으려는 듯한, 서로 쫓기고 쫓는, 불운하게도 머리에 새똥을 맞는 그림 속 인물과 오브제는 모호하게 얽혀 있다. 이란에서는 전쟁, 혁명 등을 거치며 ‘유머’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로써 통용된다고 한다. 카시하 역시 유머를 앞세워 자신이 다루는 주제의 무게추를 슬쩍 가린다. 밝고 유쾌한 장면과 가볍고 신선한 화면 구성 속에 사뭇 어둡고, 낯선, 까다로운 의미를 심어 두는 식이다. 이러한 유머를 통해 작가는 관람객들 또한 캐릭터와 친밀감을 느끼고, 새로운 의미를 찾는 열린 토론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

만화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Loop the Loop>(2022), <FLOWERS ARE PICKED ONE BY ONE...>(2022)같은 작품이나 그라피티를 연상시키는 <I am Angry but Everything is Fine>(2021) 등 카시하의 선과 색이 모여 구현하는 풍경은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와 비존재, 사물과 세계의 피부를 포착하려는 시도”로 귀결된다.



<Flowers are picked one by one...> 
2022 Acrylic on canvas 170×2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ssels Photo: We Document Art



오늘날 우리가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지만, 과연 두 발로 걸어본 반경 내의 삶 너머 어떤 것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이따금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는 작품이나 전시를 마주할 때마다 인간이 이토록 닮았다는 사실에, 동시에 어쩌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는지 매번 놀라곤 한다. 타나토스(Thanatos)와 에로스(Eros), 관능과 폭력, 고통과 행복이 명쾌하게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그 역설의 미학을 공유하기 위해 조심스레 운을 띄우기. 그 우연한 만남은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가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는 예술적 공명에 다름 아니다.PA



Portrait of Hoda Kashiha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ssels Photo: Matin Jameie



작가 호다 카시하는 1986년생으로 이란 테헤란 대학교와 미국 보스턴 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맥도웰 콜로니 펠로우십(MacDowell Colony Fellowship)과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의 조안 미첼 재단 보조금(Mitchell Foundation Grant) 등을 수상한 그는 2006년 <Untitled>을 시작으로 <Hoda Kashiha, Yasaman Safa : Recent Works>(2013), <I Scream Louder Than You>(2014), <Dear St. Agatha I am witness of your tears In the land of Tulips>(2020), <I am Here, I am not Here>(2022)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하며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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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진 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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