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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1, Oct 2021

곽인탄
Kwak Intan

PUBLIC ART NEW HERO 2021
터지고 비어져 나오는 뒤죽박죽의 자유

곽인탄의 작업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가 있다. 강박 그리고 자유다. 반복되고 누적되는 고통스러운 강박과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심리, 대치되는 두 가지 동력은 조각을 위한 발단이 되어 준다. 말하자면 강박과 자유 사이, 실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조각이 배태된다는 것인데, 널리 알려졌듯 실존을 위한 인간의 의지는 근대 조각이 발아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했다. 막대한 현실에서 강박을 경험하며, 작가는 고전적 주제를 거쳐 조각을 출발시킨다.
● 최태만 미술평론가 ● 이미지 작가 제공

'발작' 2020 레진, 퍼티, 시멘트, 철, 아이소 핑크, 우레탄 폼, 기존 조각의 파편물 73×40×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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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의 초기 작업에서는 고통스러운 강박을 외재화한 듯 느껴지는 구상적 조각이 자주 보였다. 인상을 찌푸린 채 눈을 감은 일그러진 두상부터 신체 일부를 반복적으로, 또 강박적으로 겹쳐 놓은 작은 조각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어쩌면 이처럼 고전적인 주제 아래에서 작업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조각의 (비교적) 새로운 주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확실히 그의 조각은 ‘확장된 장(expanded field)’으로 열리거나, 해체된 경계를 넘어 사물과 비물질의 세계로 나아가는 대신 조각의 영역에 머무르곤 했다. 


그런 만큼 초기의 작업에는 어느 정도 구습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2019년에 이르러 곽인탄의 작업은 신체를 강박적으로 재현하는 모양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추상화되기 시작한다(그룹전 <coverversion>). 발단은 역사였다. 작가는 과거의 미술사에 관심을 기울이며 역사적 작품을 모방하기 시작했는데,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의 유명한 조각에서부터 나움 가보(Naum Gabo)와 앤서니 카로(Anthony Caro), 이응노와 하종현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추상을 전유하며 그의 조각 형태는 현저하게 변화했다. 하지만 이 변환에는 어딘가 수상쩍은 부분이 있었다. 온갖 과거가 준칙이나 양식 없이 임의로, 불투명하게 뒤섞였기 때문이다.




<조각의 문: 앉아있는 사람> 2020

 석고, 레진, 철, 타공망 15×57×57cm




그러나 이 임의성 혹은 불투명성은 필연적이기도 했다. 경험 가능한 현실 자체가 임의적이고, 또 불투명한 것으로 변해버린 탓이다. 디지털 환경이 보편화한 이후 현실은 변화했다. 모두가 하나씩 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이미지를 캡처한 뒤, 시간 및 공간을 초월하며 연결된 디지털 세상으로 흘려보낸다는 세계상. 그렇게 축적 혹은 분산된 무작위의 이미지가 현실 그 자체보다 어마해진 양 느껴지는 시기. 임의의 이미지가 넘치며 온갖 시간을 동원하는 동안 선형적 시간은 불가해진다. 선형적 시간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 과거는 현실보다 또렷해지고, 임의적이고 불투명한 채로 어느새 온다. 고해상도 이미지로 복원된 과거에 의해 현재의 시간이 영향받고 심지어 침해되는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인간이 대응해야만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조각이라는 오래된 주제는 과거와 언제나 연동될 수밖에 없으므로, 현재에 앞서는 과거라는 현상을 긴요하게 잡아챌 수 있었다. 구습적 조각의 시대착오는 어느 순간 바뀌어 버린 세계에 대응하는 작가만의 방도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조각의 문: 머리의 전개> 2020 

철, 타공망, 스텐, 시멘트, 석고, 레진 52×80×80cm




다만 말했듯, 과거는 작가가 필요로 했던 것이라기보단 난데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전유된 위의 과거가 혼잡스럽고 수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의도된 수법이라기보단 즉각적인 반응에 따른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모든 것은 투명한 듯 보이지만 지극히 불투명하다. 웹페이지는 어느새 소실되고, 뉴스는 출처 없이 공유된다. 소프트웨어는 코드를 숨기며 이진수의 문법은 인간의 어법을 따르지 않는다. 개편된 현실의 가장 중요한 행위체로 부상한 플랫폼의 경제는 개인을 비가시적인 피해자로 착취하며 비가시적인 가해자가 되게끔 유도한다. 어쩌면 불투명하게 섞여버린 조각의 과거 또한 과거로부터 비가시적인 피해를 보고(변화한 현실) 비가시적인 가해를 입힌(임의적인 전유) 결과일지 모른다. 




<Movement 21-2> 2021 

레진, 아크릴릭, 철 110×60×40cm




고로 예의 불투명성도, 불투명함 속에서 점차 혼잡스러운 풍경으로 변해가는 곽인탄의 작업도, 모두 어색한 일은 아니다. 2019년 열린 개인전 <Unique Form>을 통해 작가는 과거에 제작한 두상, 강박과 자유의 심리를 풀어낸 두상을 해부하고 재구축한 뒤 과거를 전유한 새로운 조각과 겹쳐 둔다. 역사적 과거를 전유한 다음 자기 자신의 과거를 재차 전유할 때, 역사와 자신이 명확하게 분별되지 않는 조각적 시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이 혼종적인 시공간에서는 많은 것이 뒤섞인다. 작가 자신과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술사와 유럽, 미국의 미술사가 섞이고, 먹의 흐르는 물성이 용접된 쇳조각의 흐르는 물성과 비견되며 수묵과 조각이 섞이고, 철제 골조 위에 레진과 아크릴 물감이 함께 달라붙으며 회화와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위계와 역사를 갖는 전통적 매체가 뒤섞인다. 




<흰 머리> 2020 

석고, 레진, 타공망, 철, 스텐 142×25×23cm




게다가 완성된 조각과 쓰고 남은 조각의 파편들이 섞이면서 작품으로서의 조각과 조각을 지지하기 위한 좌대가 섞이는데, 이것은 여실히 복잡한 혼합인지라 딱 알맞은 비율로 녹아들어 간다기보다 터져서 비어져 나오고 가끔은 독해하기 힘들 정도로 제멋대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처럼 알 수 없는 혼합의 과정이 조각의 원리와 요소를 새로 탐구하기 위한 제멋대로의 기반으로 적절히 자리 잡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하나의 개인이 언제까지 임의성과 불투명성을 감수할 수 있을까? 멋대로 뒤죽박죽 섞이며 혼란해진 조각은 결국 노이즈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곽인탄의 어떤 조각은 노이즈를 넘어 결국 비어져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불투명성을 넘어, 그러나 그 자국을 온몸으로 남기면서, 조각으로부터 다시 조각으로 되돌아간다.PA




곽인탄




작가 곽인탄은 1986년생으로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실시간으로 조형을 시도하며 미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그는 개인전 <3의 영역>(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갤러리, 2016), <Unique Form>(studio 148, 2019), <Sculpture Gate>(space 9, 2020)를 통해 작품을 선보여 왔다. 또한 2017년 SeMA 창고 <SeMA예술가길드 - 표본창고>, 2020년 온수공간 <에피파니아>, 2021년 김세중미술관 <Against>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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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황재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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