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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7, Dec 2023

황영성
Hwang Youngsung

우주로 확장된 가족의 개념과 끌어안음에 대하여

● 이기모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관 ● 이미지 작가,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가족이야기' 1999 금속에 채색 100×6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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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생애에 걸쳐 가족이란 화두를 탐구해온 작가 황영성의 개인전 <우주가족 이야기>가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최 중이다. 여든을 넘은 작가의 회고전을 보면서 세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작가는 ‘가족’이라는 화두에 몰두했는가? 작가에게 가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의 후기 회화에 등장하는 기호화된 가족 구성원과 화면의 격자 형태 구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얼마 전 광주에 위치한 황영성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눈에 들어왔던 두 개의 부처 두상이 가족이라는 화두와 오버랩 되며 슬며시 기억났다. 전남도립미술관으로 대부분의 작품이 운송되고 남은 넓은 작업실 안, 두 개의 부처 두상이 책장 맨 꼭대기에 자리 잡고서 사람들이 담소하는 응접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물에 구분이 없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을 가진 불교 용어 ‘범아일체(範我一體)’를 전시 제목 ‘우주가족 이야기’와 맺어보았다.



<Small Family> 
캔버스에 유채 200×100cm



‘가족’이라는 화두

비록 작가 자신은 종교나 동양철학이 자신의 작품세계에 끼친 영향 관계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본 바가 없다고 진술했지만, 작가가 2017년 광주 무각사에 안치하고자 반야심경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반야심경 가족이야기’라는 주제로 탱화를 제작하고 봉안식을 올린 것을 생각해볼 때, 그의 작품세계가 동양사상과 인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황영성은 강원도 철원 출생으로 어린 시절 전쟁과 가난으로 부모를 여의고 전라남도 광주의 한 고아원에서 성장했다. 그 삶의 과정을 회고하며 작가는 노트에 “처음에 가족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라고 적고 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1973년 국전에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한 작품 <온고>를 보면 그 감정을 다소간 짐작할 수 있다.




<Family Story> 
1999 캔버스에 종이 컷팅 80×54cm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는 오래된 초가집 마루에 걸터앉아 곰방대를 들고 있는 한 노인의 모습에서 세상사에 의연한 관조적 여유와 더불어 인간적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상상할 수 있다. 평론가 이일은 황영성의 작품 양식 변천사를 구분하며 1970년대를 ‘회색시대’로 분류한 바 있는데,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에는 시골집 특유의 다세대 대가족이 함께 사는 모습이 아닌 외로운 초가집의 모습이 등장한다. 채도 낮은 은은한 색채로 초가집 전면과 돌계단을 묘사한 1971년 작품 <토방>에는 미학적으로 찬란한 빛과 어둠의 대조는 있으나 인기척이 없다.

<노인들>(1972)에서는 민머리의 두 노인이 어느 여름날 부채를 들고 낡은 초가집 방 안에 누워 쉬는 모습이 보인다. 가족이 부재한 두 노인이 가족이 되어 서로 의지한다는 스토리텔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두 노인의 민머리는 마치 탁발승의 머리와 같아 보이지만, 머리맡에 놓인 담뱃갑과 재떨이는 그들의 세속적 습관을 보여주며 그들이 승려가 아님을 추측하게 한다. 동시에 노인들의 외로움 또한 엿보게 한다. 그런데 1972년 작품 <소와 농부>에서는 ‘소’가 가족의 일원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다양한 양식의 변화를 거치며 다양한 양태로 소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끌어들인다.



<무제> 2020 
캔버스에 유채 259.1×193.9cm



기호화된 가족과 격자의 의미

소는 1980년대 ‘녹색시대’의 핵심 소재로 등장한다. 1986년 작품 <농경도>를 비롯해 농촌 마을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에서는 논과 숲, 마을 길을 표현할 때 녹색을 다채롭게 사용하면서 조감도와 같은 시선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분할된 화면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농지와 도로를 나타내며, 단순화된 사람과 소, 집, 나무, 산 등의 형태는 앞으로 전격적으로 등장할 기호화된 대상의 출현을 예견한다.

작가는 인터뷰 중, 1980-1990년대에 해외에서 작품을 위한 연구 시간을 보낸 것이 자신의 독특한 작품세계 형성의 변곡점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인의 뿌리 또는 본질을 찾고자 작가는 의도적으로 한국을 벗어나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근 1년간 여행했다. 알래스카, 캐나다, 미국을 거쳐 과테말라, 페루까지 여행하며 고대 마야와 잉카 문명도 연구했다. 이후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전시하며 예술적 시야를 확장해나갔다.



<우주가족 이야기> 
전시 전경 2023 전남도립미술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이후 계속해서 등장하는 기호화된 형상들은 격자로 구획된 화면에 칸칸이 자리 잡는다. 이 격자 형식은 1980년대 녹색시대에 등장하는 조감도 형식의 화면 분할 형태를 추상적으로 단순화한 양식으로 보인다. 마치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이 구체적인 사물을 점점 추상화해 결국은 가로세로 교차 선만을 남겼던 것과 같은 태도다.

격자의 칸에는 집, 나무, 소, 사람, 새, 뱀, 물결, 태풍, 헤어드라이어, 휴대폰, 가위, 문자 등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을 포함해 삼라만상을 기호화해서 채워 넣었다. 2023년 현재에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는 작가의 일상은 마치 세상을 축소판으로 상징화한 화면의 격자 위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기호화해서 그려 넣으려는 끊임없는 업(業)의 관성(慣性)으로 보인다.



<무제> 1996
캔버스에 유채 72.7×60.6cm



가족의 범위

황영성의 작품세계에서 ‘소’는 인간과 동등한 가치를 갖거나 우위를 점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1993년 작품 <사람과 소>는 단순화된 사람들과 소의 형상을 보여주는데, 구획된 각자의 공간 안에서 사람은 사람대로 소는 소대로 끼리끼리 모여 있다. 검은 바탕색으로 구분된 공간은 소들의 영역으로, 작가는 소의 영역을 중앙에 배치하고 그 주위에 이불을 덮고 잠든 듯한 사람들을 그려 넣었다.

어두운 밤에 소를 지키는 것은 사람들인가? 아니면 오히려 잠든 사람들에게 안위를 주는 것이 소들인가? 이후 작가의 직계 가족을 그린 작품에도 항상 소가 등장한다. 소는 그에게 확고한 가족의 일원인 것이다. 또한 소는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인간과 대별되는 모든 비인간 범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소에서 시작해서 호랑이, 물고기, 바람, 공기, 초승달, 인공적 생산품, 문자와 숫자 등 다양한 비인간을 자신의 가족 구성원으로 기꺼이 초대한다. 1998년 <Family Story>, 2007년 <가족이야기>, 2015 <단색가족이야기> 이후 연이어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 연작에는 다양한 비인간이 인간과 함께 가족을 구성하며 작품의 소재가 된다.



<봄의 언덕> 1988 
캔버스에 유채 72.7×60.6cm



가족 구성원의 범위는 우주로까지 확장된다. 2006년 작품 <Round Family>의 가족 구성원은 지구나 목성 같은 행성을 비롯해 태양과 같은 항성 그리고 달과 같은 위성 등 가족 유사성을 갖는 외계의 존재를 포함한다. 가족의 범위는 태양계뿐만 아니라 우리 은하계를 비롯해 전 우주, 다중 우주까지 시공과 차원을 초월하며 그 지평을 넓히고, 작가는 만물을 가족으로 끌어안는다.

작가는 노트에서 “요즘 나의 가족이야기는 우주 가족이다”라고 쓰고 있으며, “이제 내 가족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가족주의가 우리 새 인류가 우리 새 자연이 우리 새 우주가 살아갈 방법이 아닐까?”라고 덧붙인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기후와 환경위기에 직면한 인류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비인간과 우주 전체를 끌어안고 보살핀다는 의미의 ‘코스모필리아(Cosmophilia, 우주애)’라는 말이 아마도 황영성의 방법론을 지칭할 수 있을 것 같다.

2023년 작품 <무제>는 올해 제작한 신작으로 소와 사람이 어우러진 영역을 검은색으로 구획하고 그 바깥에 한 인물의 얼굴만을 분리해 놓고 있다. 바로 옆에는 ‘HWANG.YS-2023’이라는 서명이 있다. 지금까지 소와 인간의 관계는 가족으로서 함께하는 관계로 묘사되어 왔다. 그런데 올해의 작품에는 이 한 사람만이 동떨어져 가족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우주와 하나 된 가족의 순행을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만물을 긍휼히 여기는 현자의 마음을 동시에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PA



황영성 작가



작가 황영성은 1941년생으로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회색시대’(1970년대), ‘녹색시대’(1980년대), ‘모노크롬 시대’(1990년대 이후)를 거치며 변화무쌍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그는 한국적인 서정성과 향토성을 서구적인 추상과 접목한 세련된 화면을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샤르자 비엔날레(Sharjah Biennial)’(2001), ‘베이징 국제 미술 비엔날레(Beijing International Art Biennale)’(2005)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국전 ‘문공부장관상’, ‘이인성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광주시립미술관장,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이사 등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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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홍예지 컨트리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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