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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7, Dec 2023

안나 웨얀트
Anna Weyant

추락도 비상도 그의 날개만이 결정할 일

● 홍예지 컨트리뷰터 ● 이미지 작가, 가고시안 제공

'Quicksand Roses' 2020 Oil on canvas 76.2×61.6cm Courtesy Gagosian © Anna Weyant Photo: Thomas Lan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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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응시하며 때를 기다려온 사람. 그 타이밍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몰라도, 반드시 인생에 한 번은 기회가 오리라 예감했던 사람. 마침내 막이 오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운에 올라타는 법을 몰랐을 것이다. 경솔한 타입이라면 일찌감치 흥에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나 웨얀트(Anna Weyant)는 달랐다. 그는 “자존심을 버리고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며 천정부지로 치솟은 경매가에 대해서 “걱정할 일도 아니고 자랑스러워할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내 이야기에서 아주 작은 부분처럼 느껴진다”고 아주 사사로운 듯 부연한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대중은 그를 둘러싼 이야기에 관심이 많겠지만, 우리는 그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속을 알고 싶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내고 싶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심각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 내밀한 이면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그에겐 뭔가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우리는 모두 비밀, 미스터리, 스릴에 굶주려 있지 않은가? 배후의 진실을 캐내고 상상하는 것만큼 재미난 일도 없지 않은가?



<The Return of The Girls Next Door> 
2022-2023 Oil on canvas 121.9×91.4×3.8cm 
Courtesy Gagosian © Anna Weyant 
Photo: Rob McKeever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콘텐츠는 드물다. 그리고 콘텐츠가 계속해서 흥미를 끌려면 결국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선 작가 자신이 매력적이어야 하고, 그가 내세우는 인물들이 독특해야 하고(어딘가 결함이 있고 왜곡됐지만 사랑스러워야 한다. 비극적인 일을 겪더라도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보는 사람이 부담스러우니까.),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설켜서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어야 한다. 그리고 절대적인 룰 한 가지. 100% 다 보여줘서는 안 된다.

웨얀트가 우리에게 드러내는 모습만큼이나 작품도 비밀스럽다. 그의 그림은 일종의 단서이자 무대 세팅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자기 자신이 최초의 관람객인 추리극이다. 어릴 때 갖고 놀던 인형의 집을 모티프로 한 작업은, 조건을 설정하고 과정을 설계하며 무엇이 벌어지는지 관찰하는 일이다. 함정을 만들면서 동시에 거기 빠져드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놀이는 치명적인 즐거움을 준다. 끝없는 매혹과 관능, 중독이 뒤따른다. 이제 나를 잃어버리는 몰입은 나를 내던지는 몰락이 된다. 수없이 뛰어내리며 인생의 어두운 면을 탐사해온 작가는 두려움을 모른다. 이미 여러 번 겪었으므로, 내리막길이 나오더라도 주춤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미끄러져 내려올 것이다. 땅에 곤두박질치는 게 아니라.



<May I Have Your Attention, Please?>
 2023 Oil on canvas 121.9×91.4×3.8cm 
 Courtesy Gagosian © Anna Weyant 
Photo: Rob McKeever



그가 수많은 추락을 경험했고 또 연습해왔다는 사실은 2020년에 그려진 일련의 그림에서 짐작할 수 있다. <Falling Woman>에서는 입을 딱 벌린 채 수직 낙하하는 여자가 나오고, <Feted>에서는 층층이 쌓아 올린 웨딩 케이크에서 웬 여자가 튀어나와 시체처럼 몸을 늘어뜨린다. 영롱한 진주 귀걸이, 목걸이에 공주 같은 드레스를 차려 입고서. 많은 이에게 축하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날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한편, 같은 시기에 그려진 <Loose Screw>는 와인 한잔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여자를 보여준다.

상체를 앞쪽으로 기울인 채 누군가의 얘기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짙은 와인색 입술이 활짝 벌어지며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다. 전혀 문제될 것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꺼림칙함이 추가된다. 와인잔을 잡은 손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그걸 보는 순간 세련된 옷차림 뒤에 가려진 맥락이 궁금해진다. 뭐 하다가 다쳤을까? 누가 그랬을까?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공기가 달라진다.

아늑하게 몸을 감싼 어둠이 의뭉스러운 암흑으로 뒤바뀐다. 이렇게 웨얀트는 삶의 변함없는 아이러니를 그린다. 정점을 찍고 나면 바닥 칠 일만 남았고, 그 누구도 추락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화려한 기쁨 속에 언제나 불길함이 스며 있다는 것을. 그게 폭력의 흔적이든 다가오는 파멸의 징조이든 간에.



<This Is a Life?> 2022-2023 
Oil on canvas 121.9×91.4×3.8cm 
Courtesy Gagosian © Anna Weyant 
Photo: Rob McKeever



그래, 이것이 인생인가? <This Is a Life?>에서 작가는 되묻는다. 그림 속 창틀에 어정쩡하게 놓인 꽃병은 무엇을 폭로하고 있나? 얇은 꽃잎이 말려 들어가 있고, 그 위로 얼룩덜룩 그림자가 졌다. 은빛 꽃병에 흐르는 광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로로 길게 늘어난, 화장기 있는 얼굴이 비춰 보인다. 물끄러미 꽃을 바라보는 이 여자는 누군가? 그림 밖의 여자는 또 어떤 사연을 품고 있나? 알 수 없지만, 한편으론 알 것 같기도 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꺾인 꽃을 바라보며 ‘이게 삶이냐’고 따지는 심정을. 만약 꽃이 여자이고 여자가 꽃이라면. 그리고 가짜 꽃처럼 보이는 질감도 음울한 분위기에 한몫 한다. 인생의 허무함을 짙게 풍긴다고 할까?

메마른 삶 세 송이가 거짓 위안처럼 꽂혀 있다. <May I Have Your Attention, Please?>에 등장하는 거울과 커튼도 비슷한 톤으로 다가온다. 여자는 밋밋하게 만화체로 그려진 반면, 거울을 반쯤 가리는 커튼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화면 가득 정면에 놓인 거울은 원래 관람객을 비춰야 할 것 같지만, 측면에서 다가온 여자만 달랑 비춘다.

거울 속 여자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의 깊이도 없고 과장된 표정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여자는 거울과 커튼 사이 어딘가, 애매한 지점에 대고 소리친다. “잠시만 주목해 주시겠어요?” 이 장면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은 이것이다. 우리의 시선이 엇갈린다는 것. 서로 마주 볼 수 없다는 것. 나조차도 제대로 비춰 볼 수 없다는 것. 이제 암막 커튼처럼 드리운 피상성만이 접근 가능한 진실이 되었다.      



<Loose Screw> 2020 
Oil on canvas 122.2×91.4cm 
© Anna Weyant Photo: © 2022 
Christie’s Images Limited



현재 가고시안 파리에서 열리는 웨얀트의 유럽 데뷔전 <The Guitar Man>은 이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한다. 전시의 테마를 단 한 점의 이미지로 요약한다면 <House Exterior>가 될 것이다. 기괴한 운명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집이다. 그림 속 삼층집은 외관부터 수상하다. 발코니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가 하면, 시커먼 동굴 입구처럼 뻥 뚫려 있는 창문은 금방이라도 방문객을 집어삼킬 것 같다. 안락함과 안전 대신에 재앙이 깃든다. 사람이 소리소문없이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것 없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집 모형을 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층 더 초현실적인 장소를 구축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House Exterior>에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고, 또 다른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암시된다. <Girl with Candlestick>에 그려진 소녀가 대표적이다. 눈을 치켜뜬 채, 한 손에 촛대를 들고 나타난 그는 몽유병 환자나 유령처럼 보인다. 긴 머리카락 끝에 불이 붙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딴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천장 한쪽 구석에 눈길이 닿는데 거기 뭐가 있는지,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좇을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다. 촛불 뒤로는 경계를 알 수 없는 어둠만이 짙게 깔려 있다. 문득 소녀도 나도 어디에 있는 건지 불확실해지면서 공포가 밀려온다. 뒤돌아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House Exterior> 2023 Oil on canvas
 121.9×91.4×3.8cm Courtesy Gagosian 
© Anna Weyant Photo: Rob McKeever



이 모든 게 단순히 상상 속 장면이나 특수한 상황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것에 동요한다는 사실이 수면 아래 실재하는 무언가를 보여준다. 각자 비밀 장소에 깊숙이 숨겨 둔 기억이나 아직 해명하지 못한 유년의 경험이 이미지의 형태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웨얀트의 그림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선 빛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인상적인 조명을 연출한 덕분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림이 우리 안의 심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검게 물든 작가의 내면은 관람객의 내면과 닮아 있다. 그림 속에서 상연되는 미스터리는 우리 자신의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삶의 이면을 이루는 가장 난해한 상처는 성적 판타지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The Return of The Girls Next Door>는 스르르 풀어질 것 같은 가느다란 리본과 살이 비쳐 보이는 하얀 팬티로 관람객을 유혹한다. 하지만 뒤따라 나오는 건 지독한 배신이다. 소녀의 머리에 달린 리본을 보라. <Lily>(2021)의 권총에 묶인 리본과 비슷하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건 아주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니다. 가까이에 있지만 만질 수 없고, 경계가 있지만 불분명한 영역에 있는 대상이 언제나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인간은 자주 거리 조절에 실패한다. ‘옆집’ 같은 근접성에 속아 넘어가면 실수한다. 그 결과는 파국이다.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여자는 끝을 알고 있다. 결말을 아는 이는 추락하지 않는다. 그는 흐름을 타고 멀리 갈 것이다. 시간을 여는 비밀 열쇠를 쥐고서. PA



Portrait of Anna Weyant Courtesy
 Gagosian Photo: Jeff Henrikson



작가 안나 웨얀트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1995년에 태어났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이후 중국 항저우에 있는 중국 미술 아카데미(China Academy of Art)에서 공부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2019년 뉴욕에서의 <Welcome to the Dollhouse>를 시작으로 <Loose Screw>(2021), <Anna Weyant: Drawings>(2021), <Splinter>(2022), <Baby, It Ain’t Over Till It’s Over>(2022)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최근 프랑스 파리 가고시안(Gagosian)에서 유럽 데뷔 개인전 <The Guitar Man>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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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지 컨트리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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