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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9, Aug 2021

안현곤
Ahn Hyungon

경계를 넘어

● 김진엽 미술평론가 ● 이미지 작가 제공

‘스튜디오 벽 드로잉 시리즈’ 2003-2004 각 100×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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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안현곤을 처음 만난 것은 2008년경이다. 당시 그는 8년간의 독일 유학을 마친 후 경기도 광주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개인전을 준비 중이었다. 그 당시도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었다. 많은 대화 중에서도 독일 유학 이전의 생활에 대한 것이 인상에 남았다. 독일에서의 작업이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마치 운동선수들이 스프링 캠프를 통해 시즌을 준비하는 것처럼,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작업에 집중했단다. 사실 이러한 치밀함과 계획성, 작업에 대한 고집이 바로 안현곤 작업의 토대다. 철저하게 주변과 고립된 채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리고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예술적으로 조망하는, 그래서 그의 그림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안현곤의 화면에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숨 2> 73×73cm




2. 그림으로 일기를 적다 


안현곤의 독일 유학 이전 199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작업들은 암각화 벽화를 연상시키는 형태들이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묻혀있던 고분에서 발굴된 듯한 느낌의 화면에는 식물과 토기 등의 다양한 상징적인 문양들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도가의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주관과 대상의 명확한 구별을 통해 절대적인 관점을 확립한 후 세상과 자연을 계측하는 과학적 방식이 아니라, 주관과 대상이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서 서로 얽혀져 있고 거기에서 새로운 조화를 모색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그러한 조화를 좀 더 내밀한 시각에서 보고자 했다. 일상의 흔적을 작업으로 기록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이 세상과의 교류의 흔적을 화면에 담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작업이 시작된다.


독일 유학은 바로 이러한 작업의 시작점을 심화시키는 기간이었다. 안현곤은 우리의 삶과 전통, 동양적인 사유들을 독일의 존재론적인 사유를 통해 작업을 정제하고 확립한다. 유학 이전의 작업도 현실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기록하는 방식이었지만, 그것은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감성적인 방식보다는 심화된 사유의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또 존재론적 의미에서 대상과 나와의 관계를 폭넓게 정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드로잉을 자신의 중심 작업으로 설정한다.




<생각의 유혹 2> 2008 LED 100×100cm




안현곤의 드로잉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대상의 묘사보다는 대상과 나와의 관계를 토대로 식물, 문자나 숫자 등 단순한 형상들을 개념화시켜 화면에 각인하고, 부분적인 채색을 통해 그 형상들이 시간의 흐름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 전후로 제작된 ‘스튜디오 벽 드로잉’ 시리즈다. 이 작업은 1×1m의 캔버스를 아래위로 열을 지어 배치하는 것으로, 부분적으로는 독립된 작품이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순환적인 작업이다. 개별 화면들에는 자연 속에 흩어져 있는 유기물들, 역사적인 유물에서 모티프를 얻은 형상들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형상들은 아름답거나 추한 미의식의 산물이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완전한 기억들이 표현된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우리 삶의 기억의 편린들이 펼쳐진 것처럼.


이런 식으로 방법을 넘어서고 만물의 근원을 무(無)로 보는 동양의 사상을 좀 더 내밀화하는 작업이 바로 안현곤의 작업이다. 우리 삶을 기록하는 그의 작업은 그래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우리의 눈에 들어온다. 왜냐하면 그의 드로잉은 작가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바로 우리들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외면적인 부분보다 내면을 조망하고, 또 그것들을 개념화시켜 구체화하는 안현곤의 작업은 그래서 “내면의 탐구”라 부를 수 있다.




<생각하는 나무 1> 2008 혼합재료 244×244cm




3. 내면의 탐구에서 생각의 지형도로


2010년 전후로 제작된 ‘스튜디오 벽 드로잉’ 시리즈를 시작으로 안현곤은 동심원과 나비를 주제로 한 시리즈를 통해 실험을 지속했다. 이외에도 ‘부유하는 씨앗’, ‘생각하는 나무’ 시리즈들을 통해 그는 내면 탐구의 폭을 점차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작업은 대략 2018년까지 이어졌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안현곤의 ‘내면의 탐구’가 ‘생각의 지형도’로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반성(反省)된 내면으로 세계를 조망하는 작가의 시선은 점차 삶에 밀착될 수밖에 없다. 초기의 ‘내면 탐구’에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기록들이 화면을 구성했다면,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즉 문화와 사회의 다양한 양상들로 점차 그 시각이 확장되는 것이다. 기록하는 내면에서 소통하는 내면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업은 <생각하는 나무>에서 보듯이 사유의 끝이 다시 우리의 삶이고, 우리 인간 존재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세렌디피티> 2018 160×132cm




삶의 흔적들이 숨어 있는 공간을 이어가면서, 우리의 생각이 단순히 하나의 개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들마저도 포괄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에 대한 접근이 화면에 전개되는 것이다. ‘생각의 지형도’는 기존의 내포적인 상징성에서 포괄적인 상징성으로 작업이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이후 안현곤의 작업은 환유에서 메타포로 점차 나아간다. 일단 색채가 다양해지고 미디어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병렬적인 나열에서 추구하는 환유적인 의미가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변했고 작업의 의미가 더 풍부해지게 됐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재해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비밀스러운 기호와 선, 문자들은 이전의 무거운 의미에서 벗어나 좀 더 자연스러운 조형 이미지를 연출한다. 또 하나의 선이나 형태의 상징성보다는 형태나 선들을 다양한 시각 이미지로 연출하면서 그의 작업의 폭이 넓어지게 된 것이다.


최근 안현곤과의 대화는 무거운 주제보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의 내면 탐구가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의 무거운 자세에서 벗어나 한결 가벼워졌고, 주변 삶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탐구가 극단적인 원형의 상징에서 일상의 상징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풀어놓는, 나비의 날갯짓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처럼, 그의 작업도 무거운 이정표에서 벗어나 생각의 변주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삶은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에 그 실마리가 사라진다. 삶은 그 자체로 인간이 순응하고 자연스러움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제 안현곤의 ‘원’은 닫힌 결말의 ‘원’이 아니고, 나비의 움직임도 더 이상 정형화되지 않는다. 이제 그의 ‘생각의 지형도’는 어느 한 곳을 향해 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그저 뻗어나갈 뿐이다. PA




안현곤

사진: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작가 안현곤은 독일 브레멘 국립조형예술대학교 순수미술 디플롬, 마이스터슐러 과정을 졸업했다. 2013년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을 비롯 국내는 물론 독일, 미국 뉴욕 등 20여 회가 넘는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강릉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독일 St.Joseph Stift 종합병원, DKV 독일의료보험본부 등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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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진엽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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