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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Bayrle:Playtime
2018.6.20-2018.9.2 뉴욕, 뉴 뮤지엄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하는 뉴 뮤지엄(New Museum)은 건물의 외양만큼이나 신선한 동시대 작가들의 전시를 매 시즌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여름 이 미술관의 3층과 4층에서 관람객은 독일 출신 작가 토마스 바일레(Thomas Bayrle) 의 회고전을 만나볼 수 있었다. “언제부터 아티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했는가”라는 큐레이터의 질문에 작가는 “꽤 늦게서야”라는 답을 내놓았다. 직조 공장의 견습공, 출판사 대표, 광고 그래픽 디자이너 등 바일레는 다양한 길을 돌아왔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언제나 ‘예술가'라는 정의 끄트머리 즈음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196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약 20여 년이 흐른 시점에야 바일레는 자신을 스스로 예술가라 칭했다.
● 정하영 미국 통신원 ● 사진 New Museum 제공

'Thomas Bayrle: Playtime' 2018 Exhibition view: New Museum, New York 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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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가 다른 작가들과 차별성을 갖는 그만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그의 이전 경험들은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한다. 1958년 스무 살 무렵 바일레는 패턴 제조 과정을 익히기 위해 독일 남부 소도시에 위치한 방직 공장에서 견습공 생활을 시작한다. 그 당시 직물에 디자인을 새겨 넣기 위해 대부분 공장에서는 재카드 문직기(Jacquard machine)를 이용했다. 무늬에 따라 특정한 수의 날실을 끌어올린 후 그 벌어진 틈에 씨실을 넣는 방식이었다. 바일레는 이진법과 흡사한 이 직조 과정에 매료되었고, 직조공으로의 경험은 이후 주제와 매체를 넘어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적 표현 방식인 반복으로 자리 잡는다


1960년 중반 작은 인물이나 사물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배치해 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하나의 큰 환영을 만들어내는 페인티드 머신(painted machine)에서부터, 동일한 디지털 이미지의 형태를 하나의 단위로 활용하는 최근 작업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한편 바일레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광고에서 봤을 법한 이미지가 넘쳐난다. 여기서 그가 출판사 대표 및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몇 년 동안 직조 기술을 익힌 뒤,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디자인 스쿨에 진학한다. 졸업 이후 그는 아티스트나 학생들을 위해 포스터, 책자 등을 소량으로 제작하는 걸리버 프레스(Gulliver-Press)라는 출판사를 설립한다. 이 경험을 토대로 1960년대 후반, 판지를 이용한 입체 선전물을 제작하는 바일레 & 캘러만(Bayrle & Kellermann)라는 또 다른 회사를 세우고, 대형 기업들이 발주한 상업적 프로젝트에 활발히 참여한다. 


따라서 상업 미술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바로 그 중심에서 활동한 작가의 경험은 당시 독일 사회가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도록 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독 사회는 복합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미국 및 외국 자본과 그들과의 긴밀한 정치적 관계를 바탕으로 서독은 공업 생산에 집중하며 1950년대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 빠르게 편입한다. 그리고 1960년대 서독은 우리가 흔히 라인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경제 성장을 급속도로 이룬다. 





<Bierrakete (Beer Rocket)> 1969 Silkscreen 

print on cardboard 18 1/8×16 1/2 in (46×42cm) 

Edition of 15 Photo: Wolfgang Günzel

 




여기에 소득이 증가했음에도  히틀러 치하 전쟁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억눌려왔던 사람들의 소비 욕구 분출도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64년 그는 움직이는 작품(kinetic construction)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 작품들을 페인티드 머신이라 불렀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형상들이 스위치를 켜면 각 사이클에 맞는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그 중 <Super Colgate>(1965) <Ajax>(1966)에서 작가는 당시 독일 시장에 진출했던 대표적인 미국 소비재 기업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주제 면에서 이 두 작품은 작가가 마주한 서독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이를 통해 바일레는 광고가 (광고주가 바라는) 이상적인 소비자를 만들어낸다는 개념을 풀어냈다. 콜게이트(Colgate)와 에이젝스(Ajax)는 각각 치약과 세제의 대표 브랜드로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제품을 생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가는 전후 서독 국민들 사이에는 미국형 자본주의와 그에 파생되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전쟁의 과오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욕구가 암묵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광고 이미지의 차용은 1950년대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생겨난 팝 아트(Pop Art) 작품을 연상시킨다.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앤디 워홀(Andy Warhol)과 같은 작가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른바 평범한 이미지를 빌려오고 더불어 그 시각적 정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추구했다. 그들의 작업에는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다. 주제 면에서 미국이라는 도시적 삶의 평범함에서 출발하고 점과 표현 방식에서는 이전 추상표현주의자들의 감성적인 양식으로부터 탈피해 대중매체에서 사용하는 시각적 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바일레 역시 리히텐슈타인, 워홀과 같은 팝 아트 작가들의 활동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사조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독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아이디어와 테마에 집중하고자 했다. <Ajax>에서 다뤘듯 독일 국민의 과거 청산에 대한 열망은 미국 사회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현상이라는 점을 덧붙이며 말이다. 이 맥락에서 바일레는 뒤셀도르프를 거점으로 한 제로 그룹(Zero Group)과의 교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제로 그룹에 속한 아티스트 중 일부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에 큰 관심을 보였다. 





<Glücksklee-Dose (Glücksklee Can)> 1969/ 1996 

Evaporated milk cans 70 7/8×70 7/8×70 7/8in 

(180×180×180cm) Photo: Rolf Abraham  





옵티컬 아트는 패턴과 색을 이용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환영을 만들어 내며 단순한 시각적 자극의 영역을 뛰어넘는 작업이다. 빅토르 바사렐리(Victor Vasarely) 의 격자무늬 혹은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의 흑백 선이 주는 효과는 사람의 눈, 망막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은 움직이는 듯한 이차원의 환영이 마치 자신들의 육체적인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제로 그룹과의 교류를 통해 습득한 시각적 자극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직조 경험을 결합하며 그의 초기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말한다. 더불어 동시대 작가였던 피터 로어(Peter Roehr)는 바일레에게 순수 예술 활동 이전의 경험을 버리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조언을 하며 작가가 특정한 사조가 아닌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데 큰 영향을 줬다. 


1960년대 작가는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 페레로(Ferrero)와 같은 다국적 기업 마케팅 프로젝트에 디자이너로 참여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67년 이탈리아 밀라노 아폴리네르 갤러리(Galleria Apollinaire)에서 그만의 색이 완연한 첫 개인전 <Produzione Bayrle>를 열고, 슈퍼 폼(super form)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이전의 페인티드 머신이 여전히 전통적인 유화 작업에 바탕을 두고 있음에 반해 여기서 작가가 선보인 작업은 산업화의 결과 중 하나인 프린팅을 기반으로 했다. 그리고 바일레는 하나의 작은 이미지를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 배치해 멀리서 봤을 때 특정한 형상을 가진 형태를 만들어 내는 기법을 슈퍼 폼이라 이름 붙였다. 이 전시에서 슈퍼 폼은 실크스크린 프린터기를 사용해 벽에 걸린 페인팅뿐 아니라 카펫, 벽지, 옷 등에 프린팅되었고, 관람객이 접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메웠다. 


뉴 뮤지엄 3층 전시장에 첫발을 내디디면 관람객은 1967년의 전시를 재현한 공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치즈 브랜드에 사용되는 웃고 있는 소 캐릭터의 모습이 반복되는 하늘색의 벽, 끊임없는 신발 이미지로 채워진 연두색 바닥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단순히 포토제닉하다는 감상을 뛰어넘어 작가의 의도를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제공한다. 바일레는 공업화된 대량 생산이 생산 과정 자체뿐 아니라 광고, 그리고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여겼다. 이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광고에 사용되는 소모성 이미지를 프린팅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무한히 복제하는 셈이다. 전시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소비자인) 관람객은 그들이 마주한 자본주의 일면을 직시하게 된다. 





<Madonna doro (Golden Madonna)> 1988 Photocopy collage and 

gold leaf on wood 78×57 1/2in (198×146cm) Photo: Wolfgang Günzel  





바일레의 작품 세계에 있어 서독의 경제적 변화는 깊은 영향을 미치지만, 그의 관심사가 이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독일 정부에 독단적인 정책에 반하는 진보 성향의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정치적 인물의 형상 등을 작품에 빌어온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Mao Zedong)의 초상 <Mao>(1966)는 그의 대표적인 초기작이다. 페인티드 머신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수백 명의 작은 초상이 모여 마오쩌둥의 초상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스위치를 누르면 공산당을 상징하는 붉은 별 문양으로 뒤바뀐다. 바일레는 당시 중국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활발히 이뤄진 매스 게임에 큰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수많은 군중이 모여 일정한 동작을 하는 이 집단 체조의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개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집단으로서의 움직임만 남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치 <Mao>에서 개개의 인물 형상들이 마오쩌둥이라는 한 인물을 이루는 단위가 되었듯 말이다. 1970년대 중반 바일레의 관심사는 그가 마주한 도시의 풍경으로 옮겨온다.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라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도시의 풍경 또한 급격히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중 전쟁 가운데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들은 완전히 새롭지만 거대하고 무미건조한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특히 작가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는 당시 자본의 유입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 중 하나로 급성장했고, 우리가 오늘날 금융의 중심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릴 법한 현대적이고 단조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Stadt>(1977)는 그가 이러한 시각적 자극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했는지 보여주는 콜라주 작품이다. 


그는 사진 혹은 드로잉에 담긴 도시의 건물과 길의 이미지를 하나의 모듈로 만들고 이 모듈을 이용해 전체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도시의 모습, 하지만 사람 없이 비어 있기에 어느 도시나 될 수 있는 풍경이 무한한 궤도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얻었지만, 198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경험이 막상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다시 떠나는 도시 앞에서 그는 이 작품의 표현 방식을 구체화했다. 동시에 종교는 바일레가 1980년대 접어들며 점차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주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오랜 시간 천주교 의식과 도상학에 매료되어 있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신교도 집안에서 자랐지만, 유년기 중 일부를 천주교가 지배적인 마을에서 보내며 반복적으로 종교적인 이미지에 노출되었다. 훗날 작가가 러시아의 도상화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그 화면을 채우고 있는 형태가 이미 그에게 익숙한 표준화된 상징에 약간의 변형만이 더해진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바일레가 그만의 아이콘을 만들어 내는 바탕이 된다. 십자가나 성모 마리아와 같은 종교적 상징을 작은 단위의 집합체들로 표현한 것이다. 





<Thomas Bayrle: Playtime> 2018 Exhibition view:

 New Museum, New York 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Madonna doro>(1988)가 그 대표적인 예다. 관람객의 신장을 훌쩍 넘는 스케일의 이 작품을 한걸음 물러서 바라보면 금색 바탕을 뒤로한 성모 마리아와 그 품에 안긴 아기 예수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고 작은 십자가로 이뤄진 형태임이 드러난다. 이러한 효과를 주기 위해 작가는 일정한 이미지를 고무에 프린팅한 뒤 원하는 형태로 구부려 찍어내고, 복사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또 작가는 전체를 이루는 작은 단위에 십자가라는 상징물을 이용했지만, 다른 종교적 형상을 보이는 작품에서는 고급 승용차나 아우토반과 같은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결과물을 차용한다. 


이처럼 바일레는 그 만의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종교의 역할마저 대체하게 된 (예를 들어, 구원받는 길은  기도가 아니라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다는 믿음) 서독의 상황을 그려냈다. 4층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바일레의 이러한 다양한 관심사가 하나로 어우러진 최근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작가가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종교와 산업 생산간의 관계가 새로운 형식으로 관람객에게 제시되고 있다. 벽 전체를 메우는 대형 프린팅이 둘러싸고 있는 갤러리의 중앙 공간에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프레잉 머신(praying machine)들이 놓여있다. 1950년대 바일레는 성당 예식 중 묵주 기도를 반복하는 한 무리의 신도들을 목격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던 도중 불교 승려들이 그들의 명상을 위해 관악기를 사용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프레잉 머신은 이러한 경험들에 착안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자동차, 오토바이, 혹은 비행기의 부품 일부를 가져와 움직이는 조각으로 재구성한다. 각각의 조각은 기도문을 낭독하는 소리 등 종교적 색채가 묻어있는 사운드트랙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흘러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바일레는 종교의식에서 기도를 드리는 인간의 노력과 기계의 각 부분을 움직이게 하는데 필요한 엔진의 노력이 등가일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기계와 인간의 흐려지는 경계가 수면으로 떠 오르고 있는 이슈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번 전시의 제목 플레이타임(playtime)은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 자크 타티(Jacques Tati) 1967년 작 동명 영화에서 따왔다. 이 영화에서 노동과 여가의 반복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현대 사회의 노동자들을 그려낸다. 바일레와 타티는 전쟁 이후 서유럽 국가 내 벌어졌던 복합적인 사회의 변화를 그들만의(결코 무겁지 않지만, 단순히 경쾌하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처럼 1964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바일레는 그의 개인적인 삶과 사회가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전시에 포함된 그의 최근작 (2017)은 디지털 시대의 산물의 대표적 예인 아이폰으로 이뤄진 종교적 형상, 피에타(Pieta)의 모습을 담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오늘의 사회를 앞으로 바일레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담아낼까.     

 

 

글쓴이 정하영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한 후 한동안 투자은행에서 일했다. 이후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뉴욕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이론 석사 취득 후 구겐하임 및 현대미술관(모마)에서 뮤지엄 신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아트투어/컨설팅 회사 ITDA(잇다)를 운영하며 뉴욕 미술 시장에 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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