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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7, Oct 2014

이수성

2014.8.29 – 2014.9.20 시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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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궁전에서  



이수성은 자신이 놓인 조건의 일부를 문자 그대로 솟아나게 하거나, 또는 적어도 눈에 뜨이게 하는 작업을 종종 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증대된 가시성이 뭔가 중대한 문제를 역설하는 선동적인 소리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소리는 그가 쌓아놓은 물질 더미에 곧잘 먹혀버린다. 간혹 끼어드는 명분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커다랗고 침묵하는 것은 아무래도 고장난 듯이 보이기 마련이다. 작가의 성실한 노동은 이 고장난 기계를 더욱 커다랗고 더욱 침묵하게 만들었다. 이 무의미의 그림자는 너무나 크고 넓어서 때로는 작가 자신도 그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수성의 첫번째 개인전 <Bachelor Party>는 지난 5년 가까이 계속된 이 고난의 행군을 결산하는 전시다. 작가는 자신의 전작들과 그것들이 놓였던 다른 시공간들을 시청각의 시공간에 이어붙이면서 연쇄적인 연상의 회로를 구축한다. 기억은 영혼의 질료라는 오랜 격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수성이 구성한 이 조그만 기억의 궁전은 단순한 시간의 아카이브에 머물지 않고 그 시간의 결과로 구축된 한 명의 입체적인 인물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그 인물은 물론 작가 자신이다. 하지만 그 인물은, 이수성의 피조물이 언제나 그렇듯이, 커다랗고 침묵하는 고장난 기계이기도 하다. 




<오벨리스크> 2014




전시장 입구에서 맨 처음 보이는 것은 시청각의 비뚤비뚤한 공간에 부재하는 수직수평을 기념비적으로 소환하는 검정색 입방체 <모노리스>다. 이는 2010년 꿀풀 레지던시에서 네모난 작은 방 전체를 검정 구두약으로 광을 낸 <광장>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당시 그는 건물의 여기저기를 문질러 광을 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 무용한 행위는 다시 그의 군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시간은 반짝반짝하게 광을 낸 시청각 마당의 수도꼭지 <심지어 열리지 않았다>로 또 한번 반복된다. 그런데 비밀이지만, 사실 이 수도꼭지는 열린다. 수도꼭지에서 받은 물은 에메랄드색으로 칠한 시청각 마당 <Emerald Pool>에 고여 수영장을 이루고, 수영장에서 증발된 물은 제습기로 빨려들며, 제습기에서 응축된 물은 다시 수영장으로 흘러내리면서 작은 순환의 회로를 이룬다. 그런데 이 회로는 아무 것도 축적하지 못한다. 오히려 물은 조금씩 증발해서 결국 다 마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작가는 가끔 몰래 수도꼭지를 열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워터프루프 파라다이스> 2014




물이 쏟아지듯이. 원래 아트스페이스 풀의 취소된 전시를 위해 계획했던 이 수영장은 과거의 불발된 시간을 되살린다. 하지만 모든 부활은 변형이며 지나간 시간은 대체될 수 없다. 2009년 <중산층 아버지를 둔 88만원 세대 좌파 현대 미술가를 위한 기념비>의 에어컨은 <오벨리스크>로 변형되고, 2013년 <낙원>의 피라미드형 계단은 <워터프루프 파라다이스>로 재건된다. 그 시간과 그 장소와 그 맥락에 특정했던 것들이 짧은 인생의 주마등처럼 2014년의 시청각에 모여든다. 심지어 추상적인 컴퍼지션 또는 방금 출고된 신제품처럼 보이는 <홈 파인 상자 (A.R.)>나 <휘어진 의자 (S.A.L.)>조차 작가가 만진 재료들, 그가 눈으로 또는 손끝으로 훑었던 형태들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마당에 고인 물처럼 조만간 흩어지겠지만, 적어도 지금 여기서 작가는 시청각 전체를 자신의 몸체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몸체는 ‘관계적’이라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차라리 부조리극의 무대에 가까운 작은 순환계로 나타난다. 2010년대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불가해하고 거의 불가능한 오디세이의 기록으로서, <Bachelor Party>는 더이상 시대적 조건 또는 세대론적 표본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 작가의 고유한 소우주를 보여준다. 2013년 말 개관한 시청각의 첫번째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끝없는 소진을 요구하는 당대의 공통적 조건에 맞서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아이러니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 <휘어진 의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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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윤원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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