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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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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27 – 2014.5.18 커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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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시장



커먼센터 개관전 <오늘의 살롱>은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 차 있다. 참여 작가만 69명에 총 작품이 148점이며, 1층부터 4층에 이르는 전시 공간 자체도 오래 방치된 건물 특유의 폐허 같은 위용을 과시한다. 중간 중간에 창밖으로 보이는 영등포역 주변의 살풍경 역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현란한 누추함 속에서 이 전시가 구현하는, 또는 적어도 재현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이라고 불러야 할 법한 어떤 고전적인 이상이다. <오늘의 살롱>은 교통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가치들이 생성되는 이상적 시장을 지향하면서, 오늘의 미술을 생산하는 조금은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시장으로서의 전시장


<오늘의 살롱>을 보기 위해 커먼센터의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양가적인 인상을 받게 된다. 한편에서 이 전시는 상업적인 쇼케이스의 형식을 연상시킨다. 사람이 살던 흔적이 반쯤 벗겨져나간 칸칸의 작은 방에 3-5점의 회화들이 짝지어져 늘어선 모습은 상업화랑들이 호텔을 빌려서 미술품 매매를 하는 풍경의 비관적 미래상처럼 보인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지 아무도 모를, 벌집처럼 다닥다닥 이어진 공간 사이를 헤매다 보면 이 모든 것이 현실의 미술시장에 대한 패러디 또는 출구가 없는 나쁜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나는 그 인상이 착오라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이 전시는 실제로 상업적인 쇼케이스이기도 하며,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실제로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커먼센터는 상업화랑의 일반적인 외양 또는 기본적인 인프라와 한참 동떨어진 물질적 조건에서 출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술거래를 통해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 운영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개관전은 센터 자체가 어엿한 ‘상점’으로 거듭날 낙관적 미래를 바라보면서 불확정한 비전을 제시하는 또 하나의 개관준비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장의 붕괴와 시장의 재건이라는 두 개의 환상. 이를 걷어내면 다시 크고 작은 회화들로 빼곡이 채워진 커먼센터 건물로 돌아온다. 전시 기획부터 내용까지 <오늘의 살롱>이라는 사태를 정직하게 바라보자면, 그것은 미술시장의 거품이 부풀면서 상업화랑 관계자들이 미술대학 졸업전을 휩쓸던 과거 몇 년의 유산이다. 그 앞에 서면, 비록 상품으로 의도되어 생산된 물체라도 그것이 시장에서 교환가치가 있는 진짜 ‘상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도약에 성공해야 한다는 난해한 말이 전혀 난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각의 젊은 미술가들이 직면했을 다양한 선택의 국면들과 이유들을 한 마디로 뭉뚱그려서는 안 되겠지만, 미술가로서의 활동이 곧 상업화랑에서의 활동을 뜻하는 듯이 보였던 2000년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회화의 문지방이 낮아졌다는 것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그 이전에는 회화라는 매체를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회화에 천착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가 있었던 데 반해, 그 이후에는 회화가 제도 내에서 공인된 작품의 형식이자 상품의 형식으로서 좀 더 쉽게 번져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열된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시장은 위험부담이 큰 신진 미술가들보다 좀 더 안정적인 상품에 주력하기 시작했고, 젊은 미술가들은 취업의 문턱과 비정규직의 불안정성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또래 집단과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경험을 해야 했다. 최근 젊은 세대가 시장의 언어로 미술을 말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를 넘어 질책의 목소리를 내는 모양이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시장의 바깥은 사막이다. 거기서는 신기루조차 보기 어렵다. <오늘의 살롱>은 그런 오늘의 살롱이다.




오희원 <Blind Site: Vacant> 2013 

캔버스에 유채, 162×97cm




회화라는 문제


무수한 반역의 시도와 사형 선고 속에서도 회화가 미술시장의 주류로 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미술의 신화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특별한 상품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벽화에서 캔버스화가 분리되는 순간은 화가가 다른 모든 상위의 질서와 절연된 독자적 영토를 확보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림이 이동과 소유가 가능한 하나의 사물로 독립하여 교환의 장에 뛰어들 채비를 마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신화적인 물체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과 자유로운 교환 가능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것들은 자기 창조적인 화가의 신비로운 형상을 이루는 방대한 몸체의 한 조각이지만 언제나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화가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그것들은 대량으로 생산되지만 언제나 단독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오늘의 살롱>을 돌아보고 있으면 회화라는 매체가 원래 그런 것은 아니며 회화 작업을 한다고 자동으로 다 그런 화가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회화의 신화적 또는 신학적 구조는 작가의 작품 활동으로 환원되지 않는 더 복잡하고 거대한 규모에서 매번 새롭게 쌓아올려진다. 회화가 이른바 ‘회화’가 되기 위해서는 담론과 물질이 교통하는 이중의 시장에서 목숨을 건 도약에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커먼센터에 모인 회화들은 그 도약의 경계선에서 얼어붙어 있다. 물론 시장에 매물로 나온 모든 상품은 언제나 그와 같은 상태에 처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회화 전시가 이 도약에 이미 성공한 것처럼 연출하는 데 반해, <오늘의 살롱>은 이 임무를 미묘하게 방기한다. 그것은 여기 모인 회화들이 ‘작품’으로서 세속의 교환가치를 넘어서는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듯이 포즈를 잡아 주지 않는다. 말없이 작품들을 경외하기보다 무심하게 작품들과 공존하는, 때로는 작품의 시각적 목소리를 침범하기도 하는 불친절한 환경은 예산의 한계로 설명될 수도 있다. 하지만 참여 작가들을 엄정한 기준에 따라 선별된 최상급의 신예 화가들이 아니라 “우연히 채집된 화가들의 목록”으로 호명하는 데는 각 전시물들의 가치 또는 위상을 미리 정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전시물들을 벌거벗기는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살롱>에 모인 전시물들은 종종 회화라는 잘 정의된 실체라기보다는 아직 미결정 상태의, ‘흥미로울 수도 있는’ 삼차원 물체처럼 보이며, 그럼으로써 양질 또는 저질의 회화로 평가되기 이전에 회화라는 범주의 성립과 그 가치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이것이 작가들 개개인이 아니라 기획자의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부지불식간에 전시의 재료로서 채집되어 버린 작가들은 심사가 불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시물들을 다시 보자. 참여 작가들 중 상당수는 그 자체가 우연과 강박, 흥미와 의도 사이에서 이미지들을 채집하고 재배치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미지들은 모든 곳에서 복수형으로 존재하고, 일시적인 배치 속에서 한시적인 의미를 얻는다. 그 속에서 회화의 몸체와 그 특권적 지위는 이미 언제나 이질적이고 불확실한 것으로 나타난다. 당연하지만 <오늘의 살롱>이 회화를 해체하지는 못한다. 회화라는 신화가 해체된 것은 오늘의 일이라기보다는 어제의 일, 이미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회화는 해체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아마도 오래된 회화일수록 더 오래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 다만 <오늘의 살롱>이 제안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회화의 시간을 과거로부터 답습되는 지루하고 자명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오늘의 수수께끼로 직면해 보자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그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끌고 나가보자는 것이다.




배윤환 <Black mannerism 2> 2012 

캔버스에 스프레이와 아크릴릭 162.2×130.3cm  




미술의 시장


전시는 그 자체로 일시적인 배치에 불과하며, 그것이 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유예와 환기의 시간은 더욱 짧다. 관객의 눈 속에서 전시물들은 결국 훌륭한 회화 또는 신통치 않은 회화로 돌아올 것이고, 그중 일부는 거래가 성사되어 팔려 나갈 것이다. 또 일부는 작가의 작업실에 축적되어 또 다른 배치에, 가능하다면 좀 더 영속적인 배치에 속하게 될 날을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이 일시적인 배치의 효과는 좀 지나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내가 이 전시를 처음 보러 갔을 때, 가장 집중해서 전시를 보는 관객들은 대개 작가들처럼 보였다. 만약에 커먼센터가 고유한 배치들을 축적하여 나름의 중력장을 형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젊은 미술가들의 궤적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굴절시킬 수도 있다. 교류, 축적, 전파. 이런 말들은 도시의 원형으로서의 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말을 기억해낸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원래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때 관용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자유로운 담론의 교류가 보장되어야 그 속에서 참과 거짓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표현도 미리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론장을 시장에 빗대어 옹호하는 수사법이 혹자에게는 낯설거나 심지어 부적절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론장은 언제나 시장의 자식이었다.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시장이 전능하다 또는 양가적인 의미에서 ‘불가촉하다’는 믿음이다. 사물들과 사상들이 저 자신을 드러내고 서로 겨루며 상호적으로 형성되는 교통의 장으로서의 시장을 상상할 수 없다면, 우리 손에는 현실의 시장이 허용하는 한줌의 인화성 문화와 국가가 이른바 ‘다양성’이라든가 ‘공공성’ 같은 명사화되기 힘든 가치의 이름으로 보호하는 다른 한줌의 불활성 문화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커먼센터가 세대라는 이름으로 어떤 ‘우리’를 결집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 ‘우리’가 가진 의외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드러내어 더욱 분화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살롱>이 무언가 선언하거나 높이 추켜세우는 대신에 현상을 드러내 밝히고 시장을 교정 또는 확충하려는 시도로 출발하는 것은 사뭇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한치 앞도 안심하고 내다볼 수 없는 시도다. 수익을 내지만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커먼센터의 취지는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자본의 축적보다 문화의 축적을 우선하겠다는 소리지만, 그 이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만약에 정말로 커먼센터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 궤도에 오른다 해도, 그때는 작품 매매와 전시 기획을 단일화하는 특유의 구조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단은 오늘만을 바라보는 좁은 안목으로, <오늘의 살롱>에서 남은 시간 동안 더욱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 1층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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