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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7, Dec 2013

민성식
Min Song Sik

황홀한 형식, 은닉된 파워게임

평편하고 강렬한 색면을 가르는 직선. 팽팽한 긴장감 속에 기하학적으로 구축된 화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프레임 속 공간은 일상의 광경.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 있다. 강렬한 색감과 원근법을 따르지 않는 구도, 익숙하지 않은 시점 등은 관람객들을 현실과 환상 사이의 어디쯤엔가 위치시킨다. ‘회화의 형식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생각을 정리할 쯤, 문득 조그만 오브제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내 조용히 읊조리는 듯하다. 찬연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화려하고 부러질 듯 절제된 형식 너머로, 그렇게 서서히 민성식의 회화는 숨기고 있던 이야기를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파워게임’이다.
● 문선아 기자 ● 사진 서지연

'오렌지 파워(The orange power)' 2011 Oil on canvas 130.3×19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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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평면 작업은 두 가지 위치에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멀리서 전체적 구성을 파악하고, 가까이에서 디테일을 보는 일반적인 평면작업의 감상 방식 말이다. 그러나 민성식의 그림은 여기에 하나의 과정을 보태야 한다. 먼 거리와 가까운 거리, 그 사이에 중간거리에서 보는 것 하나를 끼워 넣어야 한다. 우선 먼 거리에서 민성식의 회화는 원색의 대비로 시선을 끈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회화 형식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데, 작가는 색의 대비를 극대화하여 긴장감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회화의 평면성까지도 강조한다. 회화의 표면을 날카롭게 분할하고 있는 선들 역시 색 면과 대비를 이루며 평면성 강조하기에 힘을 보태는데, 평면성이 모더니즘기의 회화를 대변하는 특성이었다는 것을 환기한다면 이 표현들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한편, 균일하고 평편하게 칠해진 듯 보이는 회화의 표면은 가까이에서 보면 붓의 질감이 드러나도록 표현되어 추상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작업의 또 다른 특징. 이렇듯 민성식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을 오가며 회화의 형식적 가치를 되묻고 있다.




<리버와일드(River wild)> 

2012 Oil on canvas 130.3×194cm  




한편, 회화를 향해 한 발자국 더 걸어 들어가면 ‘뒤틀어진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화면의 공간은 큰 덩어리들로 구획되어있고, 흔히 구상회화에 적용되는 원근법이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 세잔이 우리 눈이 실제로 보는 방식대로 표현하고자 다시점(多視點)을 연결하여 뒤틀어진 공간성을 표현했듯, 민성식의 작업에서도 다시점이 연결된 상태가 나타난다. 이에 따라 공간을 이루는 테두리는 더 이상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네모반듯한 모양이 아니고, 오히려 각이 더 많은 형태를 이룬다. 또한 작업 전체를 아우르는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시점 역시 뒤틀어진 공간성을 만들어낸다. ‘부감시’라고 일컫는 수직고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 높은 층의 커다란 창문에서 빗겨 내려다보는 시점 등이 주시점을 이루는데, 이는 사물과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기도 하는 것. 민성식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현실의 요소들을 비현실적 구도·구성으로 상상하여 표현하면서 관람객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위치시킨다.  




<맥주공장(A brewhouse)>

 2011 Oil on canvas 112×194cm  




작업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치명적 매력을 내뿜는다. 너른 화면의 곳곳에 작가가 연출해 놓은 소소한 사물들과 작은 크기로 그려, 잘 분간되지 않는 인물들이 그것이다. 이 디테일한 흔적들은 재치 있는 제목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제공하며, 그 이야기는 주로 유머러스한(humorous) 일상의 코드를 대변하거나 심각한 사회상을 환기한다. 가벼운 뉘앙스로 ‘힘겨루기 상태(파워게임)’에 있는 현실의 권력구조를 다루는 작가특유의 성향은 사실 작업에서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장난감 총을 회화로 표현한 ‘훈련무기’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약육강식의 사회 구조를 훈육하고 답습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바 있으며, 그의 대표 이미지라고 말할 수도 있는 ‘자연과 인공물의 대비’ 역시 그와 결을 같이한다. 화려한 색감, 뒤틀어진 공간성으로 대변되는 회화 형식에 대한 고민 이면에 작가는 ‘파워게임’에 관한 내러티브를 숨겨온 것. 작업에서 ‘크기’가 제각각인데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을 때에도 작가는 “현실에서의 힘겨루기 상태”라고 대답했다.




<술취한(Drunken)> 

2012 Oil on canvas 65×91cm




그런 의미에서 <맥주창고>를 보면 이렇다. 이번에도 가장 먼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나 선명한 주황색과 촘촘해 보이는 파란색의 균형이다. 하단부의 화면을 가로지르는 대각선의 바(bar)가 보이고, 그 위엔 거품이 적당히 찬 탐스러운 맥주 한 잔이 놓여있다. 옆에 이제 막 포크를 꽂은 것 같은 소시지 하나. 왼쪽에는 맥주 공장 아래 수영장 밑으로 거대한 잠수정이 하나 보인다. 미사일 폭탄, 핵폭탄 등 위험 무기를 탑재하고 몸을 숨긴 채 보이지 않는 바다 밑을 조용히 돌아다니는 잠수정은 맥주와 소시지를 이제 막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한가로운 풍경과 대비되는데, 이를 통해 민성식은 우리사회에 은닉해있는 파워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공항(An airport)> 

2012 Oil on canvas 65×91cm  




작가 민성식은 한남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대전 롯데화랑을 시작으로 갤러리 현대, 두산갤러리, 닥터 박 갤러리, 아뜰리에아키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예술의 전당, 인터알리아, 루프 등 다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의 그룹전에 참가했다. 2006년 중앙미술대전 선정 작가였으며, 뉴욕의 두산레지던시, 파리의 시테 인터내셔널 레지던시를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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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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