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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8, Jan 2014

이배
lee bae

숯, 시간의 계열을 가로지르다

작가/예술가는 다양한 층위의 시간/계열이 교차하여 뚫고 지나가는 자리이다. 거기가 항상 현재인 존재가 화가이다. 이배는 숯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신화적이다. 미술로서 회화에 대한 기원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또 전설을 낳기도 한다. 유년기 숯으로 그림을 그렸던 이가 솔거인가? 그는 화가로는 정사의 본전에 오른 드문 사람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족성도 없는 미천한 출신으로, 어느 시기에 나서 활동하였는지조차 명백치 않게 기록되어 있으나,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을 그렸다 하였으므로 단속사가 창건되는 8세기 중엽 이후의 인물”이라고 최완수는 적고 있다.
● 김병수 미술평론가 ● 사진 서지연

'무제' 1997 종이 위에 숯 114×14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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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찬사가 신화적으로 나타나기 위한 유년기의 행적이 숯으로 그림-그리기였다. “그는 나면서부터 천부의 소질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그가 일찍이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는데, 둥치에 소나무 껍질이 비늘처럼 일어서고 가지와 잎이 서리고 어리어 온갖 새들이 종종 진짜인 줄 잘못 알고 날아들다가 미끌어져 떨어졌으나, 뒤에 오래되어 색이 바래자 중들이 단청으로 보수하매 새들이 다시 날아들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분황사의 관음보살과 단속사의 유마거사상도 그의 그림으로서, 세상에 신화로 전해진다고 하였다.” 한 문화의 극성기에 활동하더라도 그 출발은 소박한 에피소드에 그 기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숯이라는 모티브로 솔거와 이배를 비교 혹은 비유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물질적 상상력이 간직하는 근원적 역사성은 아주 강력하다.    


그리고 “천재란 의식적으로 되찾은 유년 시절, 즉 자신을 표현해 낼 수 있을 만큼 성인의 기관과 더불어,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재료들을 질서 지을 수 있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유년 시절이다.”(보들레르) 여기서 천재란 화가로 바꾸어서 생각해도 좋다. 이배가 작가로서 집착처럼 붙잡고 있는 숯이 바로 어제의 미술과 오늘의 미술을 이어서 감당하려는 상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상징계로서 회화를 수업한 그로서는 비교적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욕망에 대하여 덜 요구받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림에는 그림으로서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적은 없었다. 눈에 익숙한 것이 새로움 혹은 충격이라는 이름으로 폄훼되어서는 곤란하다. 낯설지 않음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미감이 회화에는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은 철학자의 미학이 아니라 화가의 창조력과 테크놀로지가 결합하여 구축해낸다. 이러한 그림의 아름다움은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독특한 회화미를 가지고 있는 지역을 회화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세계 모든 곳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 




<설치> 1998 구운 숯 조각 지름 35cm(각각)  




인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초기에는 단순한 검은 선으로 동물이나 집 모양의 무늬들을 그리던 것이 선의 굵기라는 변화를 거쳐서 검은색으로 평도(平塗)를 한다. 그림판을 평면적으로 얼룩 없이 칠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를 비롯해서, 장식성을 존중한 작품과 동아시아 회화에서 이 기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근대회화에 있어서 색과 면을 구성할 때 이러한 방식이 채택되는데 고갱 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한 회화 사유는 동아시아 회화와 접촉하면서 촉발되었다. 20세기 야수파나 추상회화 등에서도 단순한 표현을 가능케하는 묘법(描法)의 하나로서 유화에서도 많이 쓰이게 되었다. 동아시아 회화에서는 밑그림인 선묘(線描) 위를 거침없이 평평하게 색을 넣어 가기도 한다. 불투명한 안료를 쓰면 밑의 선묘가 감춰져서 묻혀버리고 마는데, 이런 의미에서는 평도는 요철도(凹凸塗)와 대립되는 말이다. 또 색채의 농담 변화, 원근, 요철을 나타내기 위해서 동아시아 회화에서 채용하는 색의 바림과는 대조되는 의미를 띄기도 한다. 평도에 이어 선과 음영에 의한 아주 정밀한 선각화를 거쳐 검은색의 농담으로 음영을 나타내게 된다. 또 붉은 색의 점묘를 가하다가 마침내 검은 선으로 윤곽을 만들고 다채로운 채색을 쓰기에까지 이른다. 이미 우리는 눈치 챌 수 있는데 이배는 이러한 다양한 회화 계열들을 가로지르고 있는 장소이다. 




<설치> 1998

통나무를 구운 숯, 검정 고무끈 1×1×1m(각각)  




기억한다는 것과 보존한다는 것은 다르다. 보존은 기억과 망각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 그래서 엘렌 디사나야케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잘 성장하는 협동적 단체의 유(類)를 풍부하게 지속함에 의해 개인들의 재생산의 성공을 확장하는 ‘특수를 만드는’ 형식이다.” 예술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불과 2〜3백년전 서유럽에서 탄생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거의 망각했다. 그럼에도 특별한 구체적 욕망으로서 미적인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호모 에스테티쿠스’이다. 그래서 “최근까지도—예술이 유희나 연예가 아니었을 때(이것들은 인간의 삶을 일상적인 것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적절하고 오래된 방식들이다)—예술은 진지하고 긴요한 관심사들을 다루거나, 적어도 그것을 암시하거나 연상시키기 위해 이용되었다. 우리 현대인들은 ‘예술’을 개인적 충동으로, 자신의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어떤 것을 주조하거나 만들어 내려는 개인적 욕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예술은 공공 활동으로서 출현하고 번성했다.” 기억과 망각의 동시성이야말로 이른바 역사성이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지역이다. 한편, 이배의 회화미학은 수묵미학과 모노크롬이 동시 접속하는 자리를 형성한다. 




왼쪽부터

<무제> 2011 캔버스위에 숯검정, 아크릴 미디엄 194×260cm  

<무제> 2011 캔버스위에 숯검정, 아크릴 미디엄 194×260cm  

<무제> 2011 캔버스위에 숯검정, 아크릴 미디엄 194×260cm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이룩하는데 요체를 간직하고 있는 수묵미학은 일단 물과 먹〔墨〕을 근간으로 한다. 수묵은 회화에서 재료적인 측면이다. 하나는 색채가 없이 먹과 물에 의해서만 필(筆)을 구사하는 순수묵이고, 다른 하나는 투명한 정도의 담채(淡彩)를 같이 사용하는 수묵담채이다. 그 이전 묵이 논의되던 영역은 서예 분야였다. 이때의 묵은 점(點)과 획(劃)을 위주로 하면서도 농담(濃淡)의 변화가 크게 없는 서법에 포함되어 다뤄졌었다. 이배의 작업 방식에 대하여 스스로 “작가로서 단순한 행위만 덧붙였을 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는데 다음의 구절들은 아주 소중하다. 1. 뜻을 얻으면 형상은 버린다.(得意忘象) 2. 정신이 이어져 그림으로 드러난다.(傳神寫照) 3. 마음을 맑게 만들어 형상을 음미한다.(澄懷味像) 4. 힘의 리듬을 살아있게 한다.(氣韻生動) 5. 밖으로는 자연의 조화를 배우고 안으로는 깊이를 깨닫는다.(外師造化 中得心源) 6. 마음의 뜻이 그림의 선보다 우선한다.(意在筆先) 7. 홀로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다.(獨得玄門) 8. 멀리서 보아야 전체를 알 수 있다.(遠望可盡) 9. 마음 깊은 곳에 동요하지 않는 힘이 있다.(胸中逸氣) 10. 세계와 주체의 경계를 넘어선다.(物我兩忘)




<불의 이슈> 2000 캔버스 위에 숯 92×73cm  




수묵미학 vs. 모노크롬. 서유럽의 모더니즘 회화가 가서 닿았던 미니멀리즘 가운데서도 모노크롬의 방식을 이배는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이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문화권과 접속하면 그 문화권에 대응하는 회화권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공통된 면을 지니게 된다. 그것은 개인으로서 작가/예술가의 숙명이다. 문화에 의해 탄생되는 개인으로서 예술가는 역설적이게도 다시 시간/계열이 교차하여 뚫고 지나가는 자리, 거기에서 비연속적 다선형을 감당해내고야 만다. 그렇다면 이배에게 다시 묻게 된다. 숯이라는 물질과 그것의 상상력은 그 상징과 거리가 얼마 만큼일까? 문화 상징은 중심이 되는 곳과 주변 지역이 모두 각각의 특색이 있지만 그 영향력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회화권에도 중심과 주변이 있다. 이것이 회화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나 의미의 유통방식에서 중심적인 것이 주도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실물 경제의 상황에서 섬세한 마음의 작가는 자신을 어떻게 보살필 수 있을까? 그래서 초기의 “작가로서 단순한 행위만 덧붙였을 뿐”이라는 작품 제작의 방식에서 “재료가 의미를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도록” 하는 입장으로의 전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변화인가, 혹은 심화인가? 역사적 일회성과 현대적 영원성이 혼융하는 현실적 마음가짐과 화면의 관계 또한 새로운 시간의 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중인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lee bae




작가 이배는 1956년 생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89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미국, 프랑스, 중국 등 해외에서 20여년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국내외를 오가며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4년 대구시립미술관, 2015년 프랑스 보르도 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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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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