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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1, Aug 2017

모빌

2017.6.7 – 2017.7.5 두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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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목의 공동체를 조직하기

 


연인인 남녀가 도로의 반대편에서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며 이동한다. 상대방의 프레임 안에 담긴, 상대방을 촬영하는 그들 각각의 표정은 오묘하다. 그것은 기쁨이나 분노, 행복과 불행, 경멸과 환희 어느 한쪽으로도 수렴되지 않아 매우 포착하기 힘든 감정의 기표다. 사랑이라는 표현에서 여분으로 남는 것들과 무언가로 통합되지 못하거나 일치되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적인 것들.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혐한 시위와 그에 대한 카운터 시위가 결국 하나의 자리에서 겹쳐진다는 . 파트타임스위트의 <TOLOVERUIN>(2017) 불일치를 중첩시키고 일치를 쪼개어 놓으면서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관계와 사건의 작동 방식을 운용한다. 우리는 과연 무언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질문이 다소 암암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우회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 이해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TOLOVERUIN>에서 시위의 양상을 재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미디어다. 미디어의 일방향적인 기능은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다. 관계와 사건은 단선적이지 않지만, 그것을 경험 가능하게 하는 방식들(media) 단선적일 있다.

 

<모빌> 주요하게 기능하는 지점은 바로 방식 있다. 어떤 공동체가 같은 시공간에 군집으로 모여 하나의 목적을 표상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단일한 합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전시의 문제의식은 분명 지난겨울의 거대한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시공간에서 어떤 공동체를 구성했을까? 혹은, 공동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만 할까? <모빌> 작품과 관객이 모여 있는 전시장을 일종의 상상적 공동체로 상정하면서 질문에 대해 탐구한다. ‘모빌이라는 오브제는 모든 개체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개별의 움직임을 지닌다. 그것은 하나의 정형화된 형상을 내보이지도 않으며 그저 불특정하게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미적 특성으로 삼는다. 따라서모빌 이견(dissensus) 반목(antagonism) 공동체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전시 자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방법론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모빌>전에서 중요한 것은 방법론과 방법론에 따른 관람 경험의 구조화이며, 중요한 것은 방법론을 구현 가능하게 만든 작업의 특성에 있다.

 

박주연의 <접미사, 접다>(2017) 전시장 대부분의 부피를 차지한다. 35mm 슬라이드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은 앞에 놓여 제자리에서 돌아가는 거울 통해 전시장 전체를 훑는다. 속에는 둥근 원의 윤곽이 어렴풋하고, 이는 철사로 만들어져 곳곳에 설치된 구조물과 겹쳐졌다가 분리되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언어의 문법적 요소 접미사 작가가 집중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언어가 세계를 재현하고 전달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 하나라면, 언어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요소들의 역할은 서로 다르다. 명사와 동사가 의미와 형상을 지시하거나 설명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한다면, 접사는 의미를 변형시키고 맥락을 옮겨놓거나 혹은 무너뜨린다. 자체로는 어떠한 기능도 없기에 단독으로는 언어적인 기능을 없다. 바로 그러한 언어적 요소가 전시장에서 시각적 대상이 되었을 , 그것이 구조화하는 경험 또한 무언가를 지시하지 못하고 불명료하게 된다. 단지 관객의 시간에 달라붙어 자신의 기능을 제안할 뿐이다.

 

이미래의 <지지하고, 미끄럽게 하고, 돌아가고, 전진하다>(2017) 지미집 모양의 구조물에 걸려 있는 우레탄 벨트가 천천히 돌아가며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무심하게 수행한다. 전시장 한켠에 놓여 있는 그의 다른 작업 <누워 있는 사람>(2017) 사람의 형상을 오브제인데, 거의 모든 관절이 실제 사람과 유사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전시 기간 동안 누워 있는 자세를 계속해서 바꾼다. 전시장을 채우는 작업들 모두 시간의 지속 안에서 가끔의 방식으로 움직이는데, 일정한 리듬을 지닌다거나 어떤 의미로 향하기보다는 단지 모종의 긴장을 조율할 뿐이다. 명료하게 말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불명료한 체계를 놓는 큐레토리얼은 기획자의 지난 전시 <복행술>(케이크 갤러리, 2016.11.17-12.11)과도 맞닿아 있다. 시대의 단면에 반응해 시급한 대응을 요청하면서도, 선언적이기보다는 불확실하고 유동적이고자 하는 것은 분명 당대의 중요한 정치적 태도이자 미학적 실천이다. 그러나 이전에, 근본적인 차원에서 전시는 부조리한 시대를 주조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첨예한 반응으로 보인다. 이데올로기란 <모빌> 전시와 전시가 보여주는 작업의 운동성과는 대척에 놓여있는 것일 테다. 때문에 다시, 작업의 운동성을 면밀히 읽어내는 것이 요청된다. 그것이 결국 전시가 제안하는, 세계를 마주하고 대응하는 태도를 더듬어볼 있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 파트타임스위트 <TOLOVERUIN> 2017 LED 스팟조명, 레이저, IR 조명, 스탠드, 컨트롤러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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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한범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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