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 Art in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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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 Made in Korea |
유럽과 미국에서는 예술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시대적으로 변화해온 콘셉트와 계보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다소 유럽사회 중심적인(Eurocentric) 면모가 가득한 전시들과 시장 환경 속에서, 대중들과 예술가들은 조금 더 새로움을 찾으며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기존 환경의 한계에서 벗어나, 대륙을 넘어 새로운 소재와 주제를 전달하는 이번 전시는 그만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다. 갤러리 큐레이터 오세이 본수(Osei Bonsu) 또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작품의 해석을 한정짓는 것이 아닌 각양각색의 시각과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소개해 작가 개개인의 세계를 인정하고 싶었다”며 전시의 취지를 강조했다. 이 전시는 식민지 시대로부터 잔존해온 문화적 배경, 급격한 도시화, 이주문제와 정치, 경제적인 마찰 등의 주제를 통해 ‘타인(The other)’들의 새로운 경험을 시각적으로 가져다주며, 궁극적으로는 타인(The Other)과 관객들(Self)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화이트 큐브 공간을 가득 메운 9만 7,000개의 푸른색 봉지로 만든 설치작품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장 프랑수와 보클레(Jean-François Boclé)의 <Everything Must Go!>(2014)로 산업화와 문명화가 만들어낸 허상이 마치 쓰레기더미로 가득한 바다와 같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300년 동안 노예무역이 성행했던 당시 바다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도 한다. 왠지 상점에서 산 물건들로 가득 차있을 것 같지만 단지 공기로 가득 채워진 봉지들은 마치 가치로 매길 수 없는 근본적인 존재인 인간이 상품화 돼버린 현실을 상징하는 듯하다. 작품 자체는 그렇게 사라져간 존재를 현실화시키고 잊힌 기억을 시각화한다. 어쩌면 바다라는 매체 또한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만나고 섞이며 온 세계를 탐험하는 유기체임을 드러내는 작품은 판게아라는 전시 제목에 잘 부합되는 듯했다.
Aldia Cervantes <Horizonte en Calma> 2011
Oil on wood panel 152.4×213.4cm
두 번째 전시장에 있는 피아 카밀(Pia Camil) 의 조형물 시리즈 <Fragmento>(2014)는 빌보드 잡지를 재사용해 만듦으로서 기존 소비문화를 재조명 한다. 상업적인 성격을 가진 잡지에 작가는 더 이상 많은 의미를 두지 않으며, 또한 계속해서 모양을 만들고 다양한 색을 입혀 ‘재창조’하는데, 다소 의미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은 모든 상징성을 부정하는 듯하다. 『문화의 위치: 탈식민지주의 문화이론(Location of Culture)』의 저자 호미 바바(Homi K. Bhabha)는 개인이 가지는 정체성이 일차적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환경의 영향을 받지만 결국은 이들이 가진 ‘상징성’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렇게 작가의 작품에서 상징성에 대한 부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표면적인 의미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작품들의 특징은 아무래도 밝은 색감들의 사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전통적인 특징을 고려하자면 이번 전시는 시각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지만, 전시 자체의 의도를 파악하자면 이 또한 이해가 가리라 생각된다. 쿠바에서 망명돼 마요르카 섬에 거주하는 조지 마옛(Jorge Mayet)의 작품들은 그의 기억에서 기인한 모국 이미지와 현재 삶의 괴리감을 잘 표현한다. <Entre Dos Aguas>(2008)과 <De Mis Vivos Y Mis Muertos>(2008)은 두 개의 땅에 작은 사이즈의 나무가 아슬아슬하게 뿌리를 걸치고 있으며, 하나는 땅이 없이 허공에 떠있는 소형설치 작품이다. 나무의 생명력과 뿌리와 땅이 주는 상징성으로보아, 그는 전통과 현 문화, 기억과 현재에서 ‘집(Home)’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의 부재로 안주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러한 ‘언홈리(Unhomely)’한 현상은 이렇게 탈식민지 사회에서 경험되며, 좀 더 나아가‘다름(Difference)’ 혹은 ‘타인(The Other)’임을 거부하는 새로운 경계를 만든다. 그렇게 마옛은 그가 처한 환경으로부터 작품 속에 새로움을 표현해냈다.
Ephrem Solomon <Untitled Life 4> 2013
Woodcut and mixed media 95×90cm
지금까지 소개한 작가들이 탈식민지 시대와 소비문화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불러일으켰다면, 알디아 세르반테스(Aldia Cervantes)는 식민지 문화에 대해 시각적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17세기부터 18세기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고, 스페인이 멕시코를 지배하며 발생한 계급 체계, 인종 및 성차별, 폭력에 대한 메시지를 주로 담는다. 강자와 약자,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의 부분에 대한 표현은 보는 이 조차 불편하게 하며, 부자연스럽고 다소 딱딱해 보이는 움직임은 마치 날카로운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있는 듯 거세다.
한편 이디오피아 출신 에프렘 솔로몬(Ephrem Solomon)의 작품은 세르반테스의 작품들에 비해 무척 단조롭다. 그는 이디오피아인들의 평범하고 다소 지루한 일상 모습들을 담는다. 슬리퍼를 신고 편한 옷차림에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표정이 없고,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마냥 기다리는것에 익숙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작품 곳곳에 붙어있는 신문지들은 사람들의 개인적 이야기가 되고, 단지 일상일 뿐 별다른 의미는 부여되지 않는다. 그렇게 한 방을 가득 채운 그의 작품들은 <무제(Untitled)> 혹은 <알 수 없는 여인(The Unknown Lady)>과 같이 정체성이 부여되지 않는 제목들이 대부분이다. 조금 독특하기까지 한 초상화형태의 작품들은 어쩌면 억압과 통제의 역사에서 생긴 존재의 상실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그들의 단조로운 일상은 연민마저 느끼게 했다.
마틴 헤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그의 저서 『집(짓기) 거주하기 사고하기(Building Dwelling Thinking)』에서 “경계선은 어느 부분의 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새로운 존재가 인식되는 지점”이라고 했다. 경계의 틀이 모호해지는 현대사회의 계속되는 변화는 과거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적절히 융합된 새로운 ‘상상의 사회(Imagined Communities)’를 만든다고 했다. 이 전시는 다양한 작가군과 작품들로 새로운 대륙, 판게아를 재창조하는데 성공적이었다. 작가 개개인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으며, 이러한 공감과 교감을 통해 마냥 ‘타인(The Other)’의 이야기만이 아닌 조금 더 가까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판게아 개념이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뿐만이 아닌 다른 대륙으로 뻗어나가, 계속해서 의미 있는 전시들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본다.
Pia Camil <Fragmento> 2014
Low temperature ceramic Installation view
글쓴이 김보람은 영국 골드스미스컬리지(Goldsmith College)에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소더비 인스티튜트오브아트(Sotheby's Institute of Art)에서 아트 비지니스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런던 소재 예술 프로젝트 기업에서 전시기획, 교육, 저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현재는 독립으로 일하며 예술 관련 번역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