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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그라소_아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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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4 - 2023.6.17 페로탕 도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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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력(Clairvoyance)


라틴어 아니마(ANIMA)는 ‘영혼, 정신, 생명’을 뜻한다. 한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에서 아니마는 ‘남성 속의 여성’을 뜻한다.1)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의 개인전 제목이 ‘아니마’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떠올렸다. 일단 소개 글과 작가의 설명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첫 번째 의미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인 영상 <아니마(Anima)>(2022)를 보면, 산과 돌에 신령스러운 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나는 아니마의 두 번째 의미를 같이 참조하여 전시를 읽고자 한다. 그랬을 때 작가가 겹쳐 놓은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지리라 믿는다. 영상과 동명의 조각 <아니마(Anima)>(2023)가 그 단서가 된다.

갤러리 입구 쪽, 복도 끝에 놓인 청동 조각 <아니마> 는 여우를 가슴에 안고 있는 소년의 형상이다. 소년의 얼굴을 살펴보니 두 눈이 없다. 여우는 영상 <아니마>에 여러 번 등장하는 그 여우다. 어린아이와 여우의 조합은 첫눈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의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를 연상시킨다. “내 비밀은 이거야. 정말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2) 소년의 품 안에서 여우가 속삭이는 듯하다. 가시적인 것 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라고.

그런데 눈 없는 소년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그는 마음의 눈으로 본다. 그걸 ‘심안(心眼)’이라 부르든 ‘제3의 눈’이라 부르든, 중요한 건 소년이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소년의 시선은 자연물의 겉껍데기를 가볍게 투과한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단숨에 관통한다. 이렇듯 투시력과 예지력을 지닌 소년은 눈멂에 대한 오랜 은유와 연결된다. 공교롭게도, 호메로스처럼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혜를 지닌 인간은 시력을 잃었거나 아주 약한 시력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생물학적 의미로든 상징적 의미로든, 눈멂은 영적 개안(開眼)의 대가이거나 전제 조건처럼 여겨진다. <아니마>의 눈 없는 소년은 이번 전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통상적인 시각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시각임을 암시한다.

우리는 영상 <아니마>를 통해 소년이 보는 방식을 체험할 수 있다. 이 영상은 의미심장하게도 맹인으로 태어났다가 시력을 회복한 성녀 오딜(Odile of Alsace)을 기리는 순례지, 생뜨오딜르 산(Mont Sainte-Odile)에서 촬영됐다. 작가는 LIDAR 스캐너를 활용하여 두꺼운 바위를 투명하게 만드는데, 이는 시각적 한계를 초월하여 만물을 투시하는 효과를 낸다. 영상에서 바위는 인간 뇌의 신경망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차원의 우주가 하나로 응축된 그물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맨눈으로 볼 땐 투박한 돌덩어리에 불과한 것이, 수많은 통로와 촘촘한 구멍으로 이루어진 포털로 변신한다. 이렇듯 새로운 감각을 통해 들여다본 산은 고대와 현대, 먼 곳과 가까운 곳을 연결하는 시간여행 장치가 된다.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작가, 페로탕 사진: 황정욱



특히 산중 공터에 낮게 떠 있는 구름은 그 자체로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미디어로서, 시공간의 초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상 속 구름은 미끄러지듯 흘러나와 다른 차원의 현실로 옮겨 간다. 우리는 전시장 1층에 걸려 있는 ‘과거에 대한 고찰(Studies into the Past)’ 연작에서 17-19세기의 건축물 속으로 진입한 구름들을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이동할 수도 있다. 영상 <아니마>와 함께 설치된 회화 연작  ‘미래의 식물표본실(Future Herbarium)’은 가까운 미래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꽃들을 보여준다. 이 꽃들이 존재하는 세계는 일종의 평행 우주로서,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생뜨오딜르 산과 맞대어 있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이다.

영적인 힘을 간직한 바위, 여우, 인간, 19세기 악기 파이로폰 소리와 워렌 엘리스(Warren Ellis)가 작곡한 배경 음악, 신기술로 구현한 가상 이미지까지.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된 영상 미디어는 “자연의 요소와 인간의 가공물이 더해진 앙상블”이다.3) 한편 존 더럼 피터스(John Durham Peters)의 말처럼, “미디어가 환경”이라는 오래된 아이디어를 뒤집으면 “환경 역시 미디어”다. “물, 불, 공기, 흙, 에테르는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안락하고 숭고하고 위험하고 멋진 원소들이며, 우리는 아직도 이 원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파악하지 못했다.”4) <아니마>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구름, 불, 바위는 일종의 ‘원소 미디어’이며, 무궁무진한 탐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마침 영상에 나오는 은발의 남자는 환생한 중세의 연금술사 혹은 먼 미래에서 날아온 과학자처럼 보인다. 그는 무언가를 예감한 듯,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며칠 밤을 꼬박 샌 눈빛으로 산 속을 거닌다. 꼼짝 않고 서서 구름을 관찰하고, 파이로폰의 유리관 속 불꽃이 흔들리면서 서서히 공기가 데워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처럼 자연에 내재한 비밀스러운 힘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을 매혹하는 가장 큰 미스터리다. 신비주의자, 철학자, 과학자는 여기에 매혹되어 일생을 바친 한 인간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이 목록에 예술가를 추가할 수 있으며, 그라소 역시 이 계보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아니마>의 소년에게 돌아가 보자. 자연에 깃든 정신과 광활한 시간에 이어, 소년이 꿰뚫어 보아야 하는 층위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신의 내면세계다. 두터운 의식층을 뚫고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길은 무척 험해서 반드시 안내자가 필요하다. 이때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내적 인격인 아니마다. 아니마와 원활한 관계를 맺은 남성은 자신 안의 창조성을 일깨우고 놀라운 통찰을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갑자기 불안정한 기분(mood)에 휩싸이거나 우울감에 빠져들 수 있다. (영상 <아니마> 속 남자는 굉장히 침울한(moody) 표정을 하고 있다. 아직 그는 아니마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



<Studies into the Past> 나무에 유채 
122×81×7cm 이미지 제공: 작가, 페로탕  
© Laurent Grasso / ADAGP, Paris, 2023 
사진: Claire Dorn



융의 제자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Marie-Louise von Franz)는 아니마 개념을 통해 신화나 민담 등에서 발견되는 ‘영원한 소년’(‘신적 어린이’)의 원형을 분석했는데, 재미있게도 주요 텍스트는 『어린 왕자』였다. 폰 프란츠에 따르면, 여우는 교활함의 상징일 뿐 아니라 “믿음과 예견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우는 (시각과 더불어) 예민한 청각을 활용하여 사물의 비밀을 탐구하는 존재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아는 존재”이며, 자신의 지혜로 소년을 인도한다.5) 이와 마찬가지로 그라소의 작업에서 여우는 소년의 충실한 안내자, 즉 아니마의 현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상을 분석해 보자. 남자가 화면 밖으로 나간 뒤 여우 한 마리가 화면에 들어온다. 마른 몸에 퀭한 눈을 지닌 여우는 왠지 모르게 남자를 닮았으며 그의 분신 같다. 이제 카메라의 움직임은 남자가 아니라 산길을 헤쳐나가는 여우의 시점을 보여준다. 몸을 바짝 낮춘 채, 바위 표면을 샅샅이 훑으며 지나가는 시선을. 영상에 흐르는 기묘한 사운드는 여우가 민감한 청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에너지의 흐름을 표현한다. 여우는 매우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산속을 탐사한다. 여우의 길 찾기는 일차적으로 자연이라는 외부 세계를 탐사하는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남자의 내면세계 속 지형을 탐사하는 일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전시 <아니마>는 외부와 내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경계를 초월하면서 양자를 고차원의 인식으로 통합하고자 한다. 그리고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이 아니라 전방위로 펼쳐지면서 모든 차원에 가 닿는 지혜다. 자연과 시간,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탁월한 통찰은 인간의 두 눈이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 이는 만물에 눈이 있는데 그 눈을 동시에 가동해서 보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아니마>의 소년은 여우의 눈을 통해 보기도 하지만, <파놉테스(Panoptes)>(2022)의 나뭇가지에 달린 수많은 눈을 통해 보기도 한다.

요컨대 전시 <아니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봄으로써 더욱 완전하게 보는 능력을 활성화하는 장이다. 이 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이제까지 알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자연은 둔탁하고 무감각한 사물이 아니라는 것. 과거, 현재, 미래는 넘을 수 없는 선처럼 분명한 경계를 갖지 않으며, 오히려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평행 우주의 ‘지금, 여기’로 압축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지극히 제한된 의미로 시각을 이해할 때에는 알 수 없었던 비밀이다.  

[각주]
1)  융은 인격을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페르조나’, 후자는 ‘아니마(남성 속의 여성)’ 혹은 ‘아니무스(여성 속의 남성)’로 불린다. 페르조나가 인간이 외부 세계와 관계 맺는 데 필요하다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자신의 내면 세계, 즉 무의식과 관계 맺는 데 필요하다. 이부영, 『아니마와 아니무스』(제2판), 한길사, 2021, pp. 30-31
2) Antoine de Saint-Exupery, Le Petit Prince: 신유진 엮고 옮김, 『생텍쥐페리의 문장들』, 마음산책, 2023, p. 41
3) John Durham Peters, The Marvelous Clouds: Toward a Philosophy of Elemental Media: 이희은 옮김, 『자연과 미디어』, 컬처룩, 2018, p. 25
4)  John Durham Peters, 위의 책, pp. 24-25 5)  Marie-Louise von Franz, The Problem of the Puer Aeternus: 홍숙기 옮김, 『영원한 소년과 창조성』, 한국융연구원, 2015, p. 123



*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작가, 페로탕 사진: 황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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