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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길릭_워크 라이프 이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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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6 - 2021.6.27 광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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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길릭의 실험실에 가다:랑데부의 미학과 생활세계 효과



1. 물리학에서 어떤 상태가 달라질 때 그 기준이 되는 값을 ‘문턱값(threshold value)’이라고 한다. 예컨대 물이 얼음이 되는 현상에서 온도의 문턱값은 0이다. 액체상인 물이 얼음이라는 고체상으로 바뀔 때 액체상의 상태가 소멸되면서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일어나고 상(相)의 기준온도도 0이 되기 때문이다. 상전이의 아카이브인 역사도 전이가 일어날 때마다 그 ‘문턱값 찾기’에 급급하다. 역사가들(기록자인건 비평가이건)은 그 값의 지배적 원인이나 결정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로 여긴다. ‘문턱값 찾기’와 그것의 원인 규명은 조형예술의 아카이브인 미술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상전이가 재현(동일성)의 거부와 종말, 나아가 전복을 그 문턱값으로 치른 경우가 그러하다. 


미술의 종말, 또는 회화의 죽음과 같은 자폐어로 원본에 대한 재현(동일성)의 효력 상실을 강요하며 그 문턱을 넘어선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준값이 차별성(다름), 개체성(파편화), 다원성(다양화)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에서의 위기와 종말은 끊임없이 회자되어온 상투어다. 그것은 다가오는 다음 문턱을 가리키는 프롤로그나 다름없다. 그 때문에 『관계의 미학』(1998)의 저자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도 “모더니티가 종말을 맞은 것이 아니라 그 이상주의적이고 목적론적인 진술이 종말을 맞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같음’을 지향해온 ‘눈속임’의 언설들이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도록 해체의 수사들이 향연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리요는 “재현에 귀속된 실천의 장  미술사 - 안에서 아직도 세계에 대한 관계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질문한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2006년 ‘베를린 비엔날레(Berlin Biennale)’을 큐레이팅했던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말을 빌려 “달콤한 유토피아(dolce utopia)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21세기 문지방을 두고 일어났던 세기말의 상전이 현장에서 부리요가 찾아낸 문턱값으로서 ‘관계미’에 대한 비유적 메타포였다. 미술의 세계는 해석을 허용하는 한 본질적으로 ‘관계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개체 관계 맵핑> 2021 

검정 무광 시트커팅 855×980cm




2. 부리요가 생각하기에 미술도 이제 인간들 사이 관계의 영역에 몰두한다. 실험적인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업과 관람객과의 ‘만남’을 야기하고 미술과의 랑데부(Rendez-vous d’art)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관람객과의 사이에서 만들게 될 관계들을 발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부리요가 보기에도 그들은 공격적인 방식을 통해 관계들의 조직 안으로 침투하고 있다. 예컨대 리암 길릭(Liam Gillick)이 그러하다. 부리요도 길릭은 1990년대에 이미 ‘판들(boards)’이라는 표면 오브제(surfaces-object)에 의해 현대의 사회체(socius) 내에서 ‘관계적 소영토(micro-territoires)’를 구축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길릭은 일상적 분위기 안에서 표면 오브제들의 자유로운 설치(탈정착화와 탈영토화)에 의해 비선형적인 상황들을 임의로 구축함으로써 부단히 재영토화를 실험해오고 있다. 


부리요는 이를 두고 주체성을 탈정착화하고 탈영토화하려는 노력, 또는 주체성에 선결된 영역으로부터 주체성을 몰아내기 위한 노력이라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말해 길릭의 실험은 ‘주체성의 재발명’이라는 것이다. 부리요는 길릭의 작업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정박지와 같은 닫힌 이데올로기 대신 자율화가 실현 가능한 주체성만이 조형적 재현을 다양한 관계미의 발산이라는 열린 예술의 실험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길릭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실험들이 그것이다. 특히 <워크 라이프 이펙트 스트럭처 A>는 ‘영토’라는 관계적 공간개념의 전복이자 파괴다. 이를 위해 그는 벽도 없고, 문도 없는 방의 ‘형태’만을 설치했다. 그는 건물에서 방이 벽이나 문으로 나눠진다면 그것은 방이 아니라 피난처인 동시에 사회적 신분의 위계를 만드는 공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는 관계를 단절시키는 숨김이나 감춤의 장치로서 건물의 벽이나 문들을 지목한다. 벽과 문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가 ‘열림’이라는 관계적 장치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부리요는 길릭의 이러한 상전이 실험을 통해 혼란스러운 상황을 모델화하고 전파하는, 사회성의 이질적인 양상을 발전시키는 상생적 관계의 형태를 일상의 ‘마이크로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부리요는 길릭이 실험하는 이런 관계의 장들이야말로 상호작용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기까지 한다. 길릭의 의도도 상생 공간의 형태화를 통해, 관람객의 참여가 자유롭거나 응시자의 개입과 침투가 열려있는 장을 통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좋은(bon) 시간(heur), 즉 행복(bonheur)에 대한 공명이 가능한 실험실을 만드는 데 있다. 그가 지금 광주에서 닫힌 공간(관계)에 대한 문턱값을 치르면서 받아온 관계의 폐역을 탈영토화한 자신의 관계적 소영토를 선보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는 유리(경계)가 없는 뻥 뚫린 문턱 부재의 방을 자유왕래할 수 있는 참여자들에게 관계의 장치와 생활효과(life effect)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문턱값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전시 전경




3. 관계의 미학이 실험의 복권이라면 ‘랑데부의 미학’은 관람객의 재발견이다. 하나의 미술 작품은 그것이 전시되는 순간, 즉 응시자가 전시에 참여하는 순간 상호주체성 안에서 만남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랑데부의 미학’을 지향하는 길릭의 공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길릭의 작품은 관계의 시그니처이자 공존의 표지나 다름없다. 그가 기대하는 것이 바로 ‘공명(resonance)’인 탓이다. 그에게 공명은 무경계의 관계에서 기준이 되는 문턱값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관계들의 배경 또한 상호작용을 위한 동기부여로써 그러한 공명의 힘을 가진 곳이어야 한다. 그가 일찍이 <Mirrored Image: A Volvo Bar>(2008)에서 공명의 힘을 실험한 까닭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가 2018년 작품 <There Should Be Fresh Springs>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로 다가가는 ‘근접(proximum)’을 각인시키려 했던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그는 ‘가장 가까이 다가감’이란 낚시에서의 미끼처럼 불특정 다수의 공명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랑데부의 미학’을 구축하려는 관계의 방마다 그 문지방의 입장권으로서 이른바 ‘근접학(proxemics)’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장면(Mis-en-Scène) 읽기와 같은 공명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행복 방정식> 2021 네온



4. 4월의 끝자락, 길릭의 실험실(광주의 전시실)로 가는 길가마다 신록으로 수놓은 신의 손길은 더 이상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는 필자의 발길을 붙잡는 의문들이 잊혀질 기미 없이 이제껏 머릿속을 맴돈다. 필자는 이번 광주 이벤트의 파트너임을 빌미 삼아 이 지면을 통해 길릭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을 전한다. 우선 불특정한 타자와의 랑데부(만남의 관계)에서 그는 왜 공명을 기대하는지? 그에게는 공명의 주체적 의미는 무엇인지? 만일 공명이 ‘좋은’ ‘시간’(행복)에 대한 공감이고 공유라면 그것은 심리주의적(아리스토텔레스적)인지, 공리주의적(벤담적)인지, 아니면 제3의 무엇인지? 다음으로 부리요가 이미 그에게 던진 질문이지만 길릭의 조형예술적 가치인 ‘초과실재들(hyperréalités)’에 의해 구체적으로 생산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결국 그의 작업 대상이 되는지? 그리고 그는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작업하는지? 오로지 ‘역사의 지표’가 되기 위해서일 뿐인지? 



* <눈 속의 공장(우편 배달부의 시간)> 2007 미디 파일, 스노우 머신 7분 24초 (반복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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