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 Art in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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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 Made in Korea |
박상혁 <우리는 모두 별이다> 2019 공기 조형물, 나무, 우레탄 페인트 280×400×500cm
이와 더불어 공공미술은 대부분 장소 특정의 형태를 많이 띠는데, 장소 특정 미술작품은 구성상 해당 공간의 배치된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본 아이디어의 기원, 그리고 현장 자체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조각 요소를 포함할 수는 있지만 갤러리 또는 다른 공간 설정은 특정 사이트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갤러리 유형의 조각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맥락 특정(context specific) 작품은 방법론적 의미에서 도시의 역사, 사회 이론, 구조 언어, 건축 등 다양한 유형의 맥락화 메커니즘을 포함하는 특정 장소나 공간에 대한 탐구에서 파생된다.
현대 미술의 논의에서, 맥락의 특이성은 장소 특이성을 지나치게 압도하여 실제로는 지역이나 대중이라는 개념이 사이트와 대중 예술가라는 개념과 혼재되고, 공공미술에서 있어 문제 인식이나 요구사항 등을 정의하기 어렵고, 정의하기 어려운 실체를 정의해야 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 노후화, 사회적 불균형 또는 세대 간 의사소통과 같은 문제는 공간에 미술을 설치하는 문제만큼 예술가들에게 매우 중요해진다. 특정 제도적, 역사적 맥락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병원, 노동조합, 지역 사회 센터, 교도소 및 청소년 홀과 같이 작업하기도 하고, 지역 사회 기반의 조직이나 단체, 청소년 단체나 심지어 사회 복지사와 함께 일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그들 작업의 관심 축이 공공 공간에서 공공의 관심사로 옮겨가고 있다.
베로니카 리히테로바(Veronki Richterová) <On the river> 2019 페트, 가변 설치
공공 공간이라는 용어의 정의는 공공 접근 권한과 사용에 대한 권한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의미에서 공공장소는 모든 사람이 경제적 또는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배제되지 않고 접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곳이며, 서로 다른 그룹과 개인의 권리가 충돌하지 않는 모든 활동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근래에는 이 공적 접근의 용이성조차 도시 마케팅에 결부시키면서 건축뿐만 아니라 공공미술도 도시 마케팅의 전략수단으로 치부되어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시각언어에 함몰되어 전망, 스펙터클, 환경 및 시뮬레이션과 결부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요소나 역할이 반드시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강조되면, 기 드보(Guy Debord)의 주장대로 일상성을 담지 못하는 스펙터클의 도시공간만 남게 된다. 공공미술이 일회적 도시 경험의 환상을 만드는 전략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공미술에서 다루던 사안이 확장되고 그 작동기능이 다변화되면서 공공미술은 단순히 수치적 좌표화의 형태로 성장하는 도시공간에 장소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로 전개되고 있다.
장소화는 그동안 도시 공간조성에서 관광객 시선 수준에서의 인지와 공간 매핑 프로세스를 뒤집고, 거주자들 중심의 장소 감각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인적 문화적 정체성은 장소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짧은 기간 진행되지만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가 13년 동안 매해 진행된 만큼 울산의 관광 장소에 초점을 맞춘 이벤트이기보다는 시민의 일상성과 호흡하는 행사이어야 하며 긴 시간 동안 만들어온 공공미술의 시공간적 맥락을 앞으로도 지속해서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용면 <조왕> 2018 스테인리스 스틸, 철골, 에폭시, 유화물감 230×230×350cm
이번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위에 열거된 공공미술의 역할이 골고루 수행될 수 있도록 주제선정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집단적 역사 인식이 공유되거나 시민의 문화 인식을 환기시키기거나 태화강을 기억 속에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체 소속감을 일깨우기에 전시가 열리는 열흘이라는 시간은 매우 짧게 느껴진다. 이러한 점을 상쇄하기 위해 오픈식 야간에 현장성이 강한 미디어아트 퍼포먼스를 통해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빅풋(Bigfoot)의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시에 의해 장소성은 만들어지기를 꾀하고 있다. 기존의 미디어 아트가 미리 만들어진 영상을 감상하는 방식이었다면 빅풋은 거대조형물과 3D 프로젝션맵핑을 기반으로 영상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형식을 이용하여 현장에서 라이브 사운드와 함께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영상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공간적 구성뿐만 아니라 시간적 구성을 고민함으로써 짧은 전시 기간에 장소성에 대한 시간성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심이라고는 하지만 태화강의 고수부지와 숲으로 이뤄진 전시장소는 시민들의 휴식과 영감의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다.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배치된 작품 중 강과 가장 길게 면해 있는 A와 B 구역에 배치된 작품들은 강변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공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별이다>(박상혁 작)와 <바람의 노래>(김준현 작)와 <자유의 혼> (김언배 작)은 도시 안의 물과 바람이라는 자연적 요소에 대한 미술적 인지를 일깨워준다. <조왕>(강용면 작), <기원의 문>(유미연), <더듬이가 긴 남자>(문병탁 작), <행복의 추구>(찰리 브라우어 작), <희망과 믿음의 탑> (리타나 살리 작), <바람의 길·물의 길>(오쿠보 에이지 작)은 ‘잉태의 공간, 기원의 시간’이라는 전시주제를 깊이 대변하고 있다.
박종영 <마리오네트 프로젝트 1-1> 2010-2019
홍송, 미송, 전기모터, 낚싯줄, LED램프, 동작감지센서, 센서컨트롤러, 스테인리스 스틸 가변 설치
보다 위요감있는 숲에 배치된 <마리오네트 프로젝트>(박종영 작)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움직이는 오브제로서, <바다에서 오는 것들로부터의 위로>(엄아롱 작)는 군집한 나무를 배경으로 바다 위 쓰레기가 되어 부유하는 플라스틱 부표를 숲의 열매로 재탄생 시켜 나무와 결합하고 대비하고 있는 모습은 숲에 스며들어 배치되어 있다. 공공 공간에서 미술 작품이 장소성 형성에 기여하는 효과적 전략은 불편하지 않은 존재감에 있다. 두 작품의 공간적 배치는 이러한 부분을 잘 실천하고 있다. 공공미술이 도시공간에 미치는 다양한 순기능을 고민하여 골고루 안배한 기획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공동체의 상상까지 파고들어 공감과 영감을 끌어내는데 역할을 하고 있을까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도시민의 산책길에 작은 이벤트가 되기보다 좀 더 선언적인 전시언어로 사람들을 뒤돌아보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짧은 전시 기간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공공미술이 담아야 하는 여러 기능에 대한 무난한 안배가 오히려 이러한 부분의 아쉬움을 낳을 수도 있다. 더불어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공공 프로젝트의 특성상, 행정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 정원의 큰 맥락 안에서 공간을 차지하기는 하나 국가 정원선포식 행사와 어우러져 같이 진행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공공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 항상 그러하듯이 기획 기간이 부족하여 조화를 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면서 놓친다. 넓게는 국가 정원 네트워크와 좁게는 울산의 도시계획의 맥락과 보조를 맞추어 개최되었다면 국토개발의 질을 높여줄 기회였음에도 상위행사(태화강국가정원 선포식)의 준비 시간 부족으로 함께하지 못한 것은 상당히 아쉽다. 공공미술의 성패가 공감되는 주제로 공간의 맥락에 따라 잘 구성하는 것만큼 도시의 다른 시간의 맥락들과 리듬을 함께 할 때 그 영향이 커지고 도시 생활의 풍요함에 더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공공미술을 너머 도시의 미래와 장소성의 관점에서 시사점을 남긴다. 근래 우리나라의 지방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도시쇠퇴와 소멸은 도시공간이 우리의 생활양식과 함께 호흡하는 유기체라는 것을 증명한다. 복잡도가 높아지고 있는 사회구조 안에서 우리의 생활양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도시공간이 이를 담아내지 못하면 바로 쇠퇴와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공공미술이 도시공간의 보완적이고 소극적인 전략을 뛰어넘어 시민과 호흡하는 장소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매우 유연하고 강력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가 공공미술을 너머 도시공간의 미래에 매력적인 전략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글쓴이 한은주는 공간건축에서 실무 후 영국왕립예술대학원에서 도시공간에서의 위치기반 인터렉션디자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iggraph 2009’에서 건축과 미디어 아트가 결합된 작품을 발표했으며,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초대작가다. ‘2017 한국건축가협회 특별상’, ‘25th 세계건축상(WA)’, ‘아메리카 건축상(AAP)’, ‘2018 한국공간문화대상’, ‘2019 한국공간학회연합회 초대작가상’, ‘레드닷어워드 본상’, ‘대한민국 스마트도시건축대상’을 수상했다. 『SPACE』 편집장, 공간건축 이사를 지냈으며,현재 ㈜소프트아키텍쳐랩의 대표로 예술작업, 글쓰기, 혁신디자인공학 등의 작업을 통해 도시와 건축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