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 Art in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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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 Made in Korea |
과격한 전위와 지독한 재현의 친절한 만남
한국의 1세대 전위미술 작가 김구림은 현재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90년대 학번인 김영성은 현재 극사실주의 작가로 전향하여 사진이 담을 수 없는 감정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전자는 과격할 정도로 전위적이고, 후자는 지독할 정도로 재현적이다. 김구림이 견고한 사유 끝에 생성되는 순간적 에너지를 작품에 투영한다면, 김영성은 오랜 시간 동안 이미지를 매만지며 작품에 혼을 스며 넣고 있다. 이렇듯 성향이 다른 두 작가가 하나의 전시에서 만났다. 그래서 <그냥 지금 하자>는 이 두 작가의 성향을 얼마만큼 잘 조율하여 구성하느냐가 관건이 되는 전시였다. 그렇다면 잘 조율되었는가? 그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글 말미에 밝히기로 하고, 전시 전반을 살펴보자.
이번 <그냥 지금 하자>는 김구림으로 시작해 김영성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전시 전체는 세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층의 ‘문명인을 위한 애도’는 김구림 작품들로, 2층의 ‘사라진 자연에 관한 진술’은 두 작가의 작품들이 구분되어 함께, 3층의 ‘가장 작은 이들과의 만남’은 김영성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언뜻 보면 두 작가가 동등한 전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층의 2/3가량을 김구림 작품이 차지하고 있고, 3층이 1층의 절반 정도 크기의 전시장임을 고려하면, 이 전시의 무게추는 김구림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영성 <無·生·物> 2015 캔버스에 유채
73×117cm
김구림의 이번 전시 작품들은 1980년대부터 깊이 파고든 ‘음과 양’의 개념에 초점을 맞춘 최근 작업으로, 상충하는 다양한 사물들과 이미지들을 하나로 끌어안으면서 생성되는 단일하게 정의할 수 없는 감정과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층의 ‘문명인을 위한 애도’ 섹션에 전시된 신작 <음과 양-무덤>(2015)은 죽음의 상징인 거대한 무덤과 그 위에 놓여 있는 갈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용한 내비게이션 모니터들, 인간의 상징인 무덤 안에 놓여 있는 마네킹을 통해 물질문명의 무용함과 그것에 갇혀 죽음으로 향하는 현대인의 상황을 직접 드러내고 있다. 2층의 ‘사라진 자연에 관한 진술’ 섹션에서는 평면과 설치 형태의 ‘음과 양’ 시리즈를 지나야 만나게 되는 <진한 장미>(2014)가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독립공간에 상영되고 있는 영상 작업으로, 먼저 성적인 상징의 붉은 입술을 보여주고 이어서 동양의 옛 성현들이 남긴 말씀들을 위쪽으로 끊임없이 스크롤 하면서 작가 본인이 가르침을 설파하는 듯이 그 말씀들을 성자처럼 읊조리는 작품이다. 그로 인해 육체와 정신, 육욕과 달관, 속세와 선계(仙界) 등을 하나의 표상으로 수렴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김영성의 작품들은 2층의 ‘사라진 자연에 관한 진술’에서 3층 ‘가장 작은 이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데, 극사실적인 최근 회화작품들로 구성된 3층 섹션이 두드러진다. 그는 90년대 초기 작업부터 <무·생·물>이란 제목으로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이 제목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비생명체(인공물)와 뒤섞이면서 겪고 있는 물질문명 사회의 위협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3층의 ‘가장 작은이들과의 만남’ 섹션은 2000년대 들어서 제작하기 시작한 극사실회화로 작은 생명(곤충, 달팽이, 개구리, 물고기)과 인공물을 결합하여 문명 속의 생명에 대한 문제와 작은 생명의 가치에 대한 환기를 끌어내고 있다. 치열하게 그린 그의 극사실회화는 노동의 진실을 담고 있기에 사진이 가질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며 작은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에 이르게 한다.
김구림 <음과 양 12-S.26.> 2015
194×660×94cm
성향이 다른 이 두 작가를 하나의 전시로 아우르기 위해 기획자는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두 작가의 작품에서 ‘생명’과 ‘문명’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끌어내고, 세 섹션으로 나눠 작가의 색채를 보여줄 수 있는 섹션을 각각 한 섹션씩 부여하고, 두 작가를 하나로 묶는 섹션을 구성하여 중간에 배치한 것 등에서 기획자의 고민과 수고가 느껴졌다. 그런데도, 전시 제목이 김구림의 “뭘 나중에 해, 그냥 지금 하자”라는 말에 발 딛고 서 있는 점이나, 최근작으로 전시된 김구림 작품들과의 연관성을 형성하기 위해 김영성의 1990년대 구작들을 끌어와서 전시에 접붙인 점, 한 작가에게 전시 공간을 치우치게 구성한 점 등은 (한국 미술사에서 그 비중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2인전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결어를 대신해서, 이 전시가 대가의 명성과 신진의 신선함에 기대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원로 작가와 젊은 작가의 매칭 전시라는 흐름 속에서 기획된 것이 아니길, 그리고 그런 전시 중의 하나로 기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