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 Art in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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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 Made in Korea |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태어난 버니 로저스는 1990년생으로 올해 30살이 되었다. 2012년 뉴욕 파슨스 디자인 대학(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시각 예술을 전공하고
2017년 스웨덴 왕립예술원 스톡홀름 미술대학(konstakademien)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졸업 후 바로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
초대되어 개인전을 가졌고 파리의 루이비통 재단(Foundation Louis Vuitton), 베를린의
함부어거 반 호프(Hamburger Bahnhof)에서 열린 그룹 전에 초대되었다. 이렇듯 그에게 쏟아지는 미술계의 관심은 이 젊은 미국 작가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버니 로저스는 한 인터뷰에서 6살에 드로잉을 시작했고 곧 컴퓨터,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디지털 작업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이곳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존 에프 케네디(John Fitzgerald “Jack” Kennedy), 클레오파트라(Cleopatra) 등도 살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소녀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의 클론인 조안 오브 아크(Joan of Arc)는 작가 스스로와 동일시되며 여러 작품에서 작가의 초상화 이미지로 사용된다. 이번 전시에서도 전시 엽서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경험한 슬픔, 두려움, 분노를 어린 시절의 미성숙하고 순진한 감정들로 치부해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그때의 감정들을 작품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다. “저는 순수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에 노출되고 그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의 이전 작품에서 공통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의 주관적인 감정들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지 보여준다.
<Lady train set> 2017 Installation view Brig Und Ladder,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2017
Photo: Bill Orcutt © the artist, Société, Berlin
<콜럼바인 도서관(Columbine Library)>(2014)와 <콜럼바인 카페테리아(Columbine Cafeteria)>(2016), <콜럼바인 강당에서의 아주 특별한 휴일 퍼포먼스(A Very Special Holiday Performance in Columbine Auditorium)>(2017)와 같은 작품은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참혹했던 1999년 4월 20일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 이 사건은 버니 로저스의 작업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두 학생 에릭 해리스(Eric Harris)와 딜런 클리볼드(Dylan Klebold)가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사를 죽이고, 23명의 학생을 다치게 했으며 자신들 또한 체포 직전 자살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던져준 이들은 이후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 수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게임 영화 다큐멘터리 등에 등장하거나 다른 살인 사건에 모티브가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영웅처럼 미화돼 그들을 따르는 팬층이 생기기도 했다. 이 끔찍했던 비극은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다시 각자의 방식으로 공유되었다. 기억 속에 있는 공통의 장소가 우리를 주관적인 애도로 이끈다며 작업을 선보여 온 그의 새 전시가 오스트리아 브레겐츠(Bregenz)에서 열리고 있다.
브레겐츠는 인구 3만의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로
독일의 린다우(Lindau)라는 도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
두 도시는 독일어로는 보덴 호(Bodensee) 영어로는 콘스탄스 호(Lake
Constance)라고 불리는 큰 호수를 끼고 있는데 이 호수의 아름다움이 이를 둘러싼 크고 작은 도시들에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브레겐츠 역에서 내리면 바로 이 호수가 보이는데 미술관은 바로 이 호숫가에 위치하고 있다. 외벽이 유리 패널로 만들어져 빛에 따라 오묘한 색을 내는 이 미술관이 바로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Kunsthaus Bregenz)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빛과 물성을 중요시했던 그의 건축 철학이 현대미술과 만나 거의
완벽한 전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 미술관은 외부의 자연광이 유리 패널을 통해 전 층으로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페터 춤토르는 “이 미술관은 보덴 호수의 빛 속에 서 있다”라고 표현했다.
<Memorial> 2020 Installation view ground floor,
Kunsthaus Bregenz, 2020 Photo: Markus Tretter
© the artist, Kunsthaus Bregenz
미술관이 2020년 첫 전시로 기획한 버니 로저스의 <친절한 왕국(Kind Kingdom)>은 이 공간의 특성을 한껏 이용한다. 로저스는 1층부터 4층에 각각 하나의 장면을 구성했는데 이는 전시 입구에 놓인 전시 안내서에서도 드러난다. 각 층의 설치 작품은 각각 하나의 제목과 한 장의 드로잉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주로 사용하던 미디어의 인물들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클론 하이의 인물들이나 콜럼바인의 3D 공간도 없다. 이번 전시는 후각, 촉각, 청각, 시각을 통해 어떤 기억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에 가깝다. 3D 가상공간이었지만 훨씬 구체적이었던 이전의 공간보다 이번 전시 공간은 훨씬 추상적이고 감각적이다. 이전의 작업에서 음악과 시를 통해 전달되던 많은 것들이 이번 전시에서는 냄새와 소리, 그리고 촉각 등으로 추상화된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면 어둡고 커다란 1층의 전시장이 보인다. 1층의 <추도식(Memorial)>(2020)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실제 잔디밭의 강렬한 흙냄새, 풀냄새는 대형 무대 커튼, 푸른 조명과 함께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 들어서는 기괴한 느낌을 들게 한다. 그 잔디 위에는 작가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와 커다란 자신의 무덤 그리고 그 앞에는 수많은 장미 화환들이 놓여있다. 대형 커튼 위로 비치는 파란 조명이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더한다. 서서히 잔디밭 사이를 걷다 보면 눈이 어둠에 적응되면서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LED 조명 반딧불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지점이 이 작품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이다. 영화 속에 아름답게 연출된 미장센처럼 매력적으로 구성된 이 첫 번째 장면은 작가 자신의 죽음이다.
<Cement Garden> 2020 Installation view second floor,
Kunsthaus Bregenz, 2020
Photo: Markus Tretter © the artist, Kunsthaus Bregenz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잔디밭이 나온다. <쓰레기더미(Trash Mound)>(2020)란 제목의 2층은 마치 어젯밤의 화려한 축제 이후의 우울한 아침 같은 모습이다. 전시장 천장으로 가득 들어오는 환한 자연광은 이곳이 야외 공간의 한 조각인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여기저기에 버려진 버드와이저 맥주병, 와인병, 콜라 캔, 먹다 남은 케이크, 그 냄새를 맡고 모여든 날 파리 떼, 말라버린 장미들. 바람 빠진 풍선, 버려진 타이타닉 주제가 테이프, 쓰레기 더미 사이로 보이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이 실린 잡지, 찢어서 벽에 붙인 잡지에는 영국의 요절한 가수 앤디 깁(Andy Gibb)의 공연사진이 있다. 1990년대라는 화려하고 우울한 축제가 끝난 듯한 이 잔디밭 위에는 이렇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흔적이 가득하고 그 한편에는 아래층의 무덤을 상기시키는 거대한 검정 쓰레기 봉지 더미가 있다. 로저스의 작업 곳곳에는 요절한 유명인사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다이애나 왕세자비, 앤디 깁, 엘리어트 스미스(Elliott Smith) 등이다. 미디어를 통해 더욱 낭만적으로 미화된 이 인물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일찍 세상을 떠난 그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더 강렬한 감정을 끌어낸다.
3층으로 올라가면 <시멘트 정원(Cement Garden)>(2020)이 나온다. 색색으로 염색된 장미를 넣어 떠낸 작은 시멘트 기둥들은 그가 제목에 붙인 정원이란 말과 함께 멜랑꼴리하면서도 아름답다. 전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펜스(fence)들에는 이미 그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리본들이 구조물에 직물을 짜는 듯한 방식으로 엮여있다.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상태의 리본을 그는 어릴 때부터 강박적으로 모았다고 한다. 이전의 초상화나 아니면 나중에 인물로 묘사되는 대걸레 등에 자주 리본 장식이 나타나는데 이 역시 리본의 온전한 부드러움을 통한 어떤 위로나 보호의 태도로 보인다.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커지는 호기심을 따라 마지막 층에 들어서면 뿌연 물안개와 함께 체육관의 샤워실 같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Locker Room> 2020 Installation view third floor, Kunsthaus Bregenz,
2020 Photo: Markus Tretter © the artist, Kunsthaus Bregenz
글쓴이 김신애는 2007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2015년 독일 뮌헨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올라프 니콜라이(Olaf Nicolai) 교수 아래서 마이스터슐러를 취득했다. 졸업 후 베를린에서 작업 활동을 지속하다 2017년에 런던으로 이주해 공간이나 형태를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