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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환상: 이지적인 조형 질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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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nd Illusion
An Intellectual Formative Rule Experiment
LEE SEUNG JIO 9.1-10.30 국제갤러리 K1, K2, K3

● 기획· 진행 편집부 ● 글 안진국 미술비평가

'Nucleus 85-21' 1985 캔버스에 유채 199×299.5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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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파이프 통의 화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별로 원치도 싫지도 않은 부름이다. 구체적인 대상의 모티프를 전제하지 않은 반복의 행위에서 오는 착시적인 물체성을 드러냄의 이름일 것이다. 물론 현대 문명의 한 상징체로서 등장시킨 것은 아니다.”*

언제나 평면 회화는 위태롭다. 평면의 평면성을 오로지 보여주고자 할 때, 쉽게 중심부와 주변부가 생기고 깊이감이 나타난다. 무심코 그은 붓질에서 입체감이 형성되고, 균일하게 칠하지 못한 색면에서 공간감이 느껴진다. 많은 이가 이승조를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입체감 있는 원통 형태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한 작가로, 일명 ‘파이프 화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파이프를 그린 것도, 일부러 원통으로 입체성을 구현하고자 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입체감에 특별히 관심이 없다. 금속 파이프 형태를 통해 산업화와 기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작가는 기하학적 형상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수행성과 이를 통해 나타나게 될 착시에 초점을 뒀다. 따라서 이승조를 ‘옵아트 계열의 선구적 작가’,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부를 뿐만 아니라, 그가 작업 과정에서 행하는 수행적 태도로 정신적인 차원의 조형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Nucleus PM-76> 
1969 캔버스에 유채 161.4×161.5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예술의 근원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전위미술

이승조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1968년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해다. 그의 작품이 지닌 대표적 특징이며, 독자적인 추상 양식인 원통형의 조형 요소를 1968년에 본격적으로 드러내면서 여러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그해 그는 <핵 77>로 ‘제1회 동아국제미술전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핵 F90>으로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특히 추상작품으로는 ‘국전’에서 최초였다. 당시 언론은 <핵 F90>에 관해 “예민한 색감과 구조형식에서 시각적으로 명쾌한 작품”이라던가, “국전 출품작에 새로운 감각을 제시한 것”, “일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대통령상감이라는 칭찬까지 받았었다” 등으로 호평했다. 박서보는 1968년 9월호 『공간』에 “전통에 없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바로 이 해에, 이승조의 활동과 함께 시작되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렇게 미술계와 대중의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이승조의 ‘핵(核, Nucleus)’ 연작이 등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지닌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작품에서 ‘금속 파이프’만 발견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를 ‘파이프 화가’로 인식했으리라.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그 시대가 이러한 시각을 조성한 측면도 있다. 사람들이 은회색 그라데이션 띠를 즉각적으로 금속 파이프로 인식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당시의 시대상과 관련 깊다. 이승조가 원통형의 조형 요소를 고유의 양식으로 정립한 1968년 즈음은 한국이 근대화의 노정에 있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표현된 은회색 그라데이션에서 즉시 금속 파이프를 떠올렸고, 파이프 형상을 바로 조국 근대화에 주력하던 한국 사회의 시대적 상징물로 연결 지었다. 어떤 이는 당대의 기계 만능주의적 사고가 그의 작품에 투사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시대가 그를 ‘파이프 화가’로 인식하도록 이끈 듯 보이기도 한다.



<Nucleus F-90-G7> 
1970 캔버스에 유채 160.5×126.5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하지만 ‘핵’ 연작을 선보이기까지 그의 궤적을 살펴보면, 이러한 해석이 전혀 근거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 얄팍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조는 그 당시 현대 미술의 최전선에서 미술의 근원을 탐색하며 이지적인 조형 질서를 실험하고 있었다.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 그는 1962년에 서승원, 최명영, 권영우, 이상락 등의 동급생 8명과 함께 ‘오리진’ 동인을 결성했다. 오리진은 앵포르멜(Informel) 경향으로 대표되는 기성 미술계의 획일적 흐름을 거부하고, 무기력해진 기성 미술을 극복하며, 새로운 전위미술을 선보이고자 결성된 동인이었다. 한국의 앵포르멜은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전쟁 후 인간의 실존에 대한 호소로서 의미 있는 예술 언어였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 전후 복구사업 및 산업화와 경제개발정책 등으로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사회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 당위성이 약화됐다.

이러한 시기에 무의미한 반복과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앵포르멜 경향에 새로운 미술 현상의 수혈이 시급했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팝아트, 옵아트, 하드에지, 누보 레알리즘, 네오 다다이즘, 아상블라주 등 새로운 미술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신문 기사와 잡지를 통해 외국에서 유행하던 미술 운동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러한 외국의 새로운 미술 운동 전개와 국내 소개는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작업 방향을 설정하는 데 주요한 토대가 되었다. 당시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들은 매너리즘에 빠진 기성 미술계의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 운동을 시작했다. 오리진 결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승조 또한 그러한 흐름 속에 활발히 활동했다. 1968년 당시 평론가들이 ‘핵’ 연작을 외국에서 최신 미술 경향이었던 옵아트와 연계해 이해했던 것도 이승조가 당시 미술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리진은 이승조의 작업 세계 근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용어가 지닌 ‘기원, 근원’이라는 기본 뜻과 더불어 영어 ‘ORIGIN’의 ‘O’를 한자 ‘원(元, 으뜸, 시초)’의 기호라는 의미까지 덧붙여 ‘예술의 근원, 모든 근원적인 것’에 대해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투영한 동인 명칭이다. 이승조의 작업은 완벽한 대칭과 점, 선, 면의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 구축되어 있는데, 이는 미술을 조형적 기본 질서로 환원하려는 태도이며 미술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추상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모는 예술의 근원을 모색하며 본질로의 환원을 주창했던 오리진의 방향성과 일치한다. 또한 작가가 연작 제목으로 꾸준히 사용했던 ‘핵’은 ‘중심’, ‘핵심’을 뜻하는 단어로, 오리진에서 영감을 받아 채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Nucleus 78-25> 
1978 캔버스에 유채 162×130.5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오리진은 결성된 후 1년 뒤인 1963년에 창립전을 열었다. 그런데 그들은 기성 미술의 거부와 새로운 전위미술 추구를 분명히 표명했음에도 이 전시에서 대체로 앵포르멜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이승조를 비롯한 오리진 동인들은 이렇다 할 회화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채 군대로, 사회로 흩어져 4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이 공백기 동안 그들은 각자 탐구와 모색을 계속 이어가며 내공을 쌓아 공백기 이후 놀라운 작업을 선보였다. 4년이 지난 1967년 겨울 오리진은 ‘무동인’, ‘신전동인’과 함께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개최했다. 여기서 그들은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이며 환골탈태한 면모를 보였다. 이승조는 평생을 두고 작업했던 ‘핵’ 연작을 이 전시에서 최초로 선보였다.

물론 여기에 전시된 4점의 ‘핵’ 연작은 작업의 트레이드마크인 원통 형태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열 번째의 <핵> 작품에서 비로소 원통 형태가 처음 등장한다)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통해 선보인 오리진 동인들의 작품은 이지적인 거리감, 기하학적 요소들의 깔끔하고 명료한 안배, 밝은 원색을 사용하고 있어, 앵포르멜 경향을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었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이들의 작품을 절제와 순수를 고수한 점에서 “귀족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승조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도 같은 기류를 타고 ‘핵’ 연작으로 발아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원통 형태를 축적한 작업을 선보임으로써 작가의 기념비적인 해를 맞이했다.



<이승조_LEE SEUNG JIO>
 전시 전경 2022 국제갤러리 2관(K2)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정신적인 차원과 마주함

오로지 ‘핵’ 연작으로 6회의 개인전과 130회에 이르는 국내외 단체전을 진행했던 이승조는 비교적 일관된 작업 양식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표현에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승조는 원통 형태가 등장한 초기 작업에서 널찍한 색면 대비에 조심스럽게 몇 개의 수직, 혹은 수평 원통 형태를 대칭적으로 배치하여 대비시킴으로써 약한 착시 효과를 보여주었다. 이후 차츰 원통 형태를 치밀하게 구성하고 규칙성을 더하면서 적층된 원통 형태가 화면 구성을 결정짓는 주도적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예를 들어 1968년작 <핵 10>과 <핵 77> 등은 원통 형태보다 색면 대비가 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같은 해에 제작된 <핵 F90>, <핵 G-99> 등은 화면 전체가 은회색 계열로 표현되고 아주 작은 부분만 강한 원색면이 나타난다. 이는 색면의 범위와 기능을 축소하고, 원통 형태를 주요하게 구성하는 방식으로 변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은 대부분 좌우 대칭이며, 적층한 원통 형태의 길이 변화를 통해 리듬감을 형성한다. 그런가 하면 1969년작 <핵 PM-76>과 1970년작 <핵 F90-G7>, <핵 G-70> 등의 작품은 원통 형태를 꺾고, 쌓고, 중첩함으로써 역동적인 율동감과 속도감을 생성하며 공간의 중층 구조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시기는 1970년대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핵’ 연작은 <핵 74-07>(1974)과 <핵 75-10>(1975)처럼, 이전 작품에서 보였던 복잡다단한 화면 구성과 원통 형태의 강한 불륨감이 사라지고, 치밀한 계산에 의한 사선 구도의 반복적 양식을 통해 원통 형태가 서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입체적 원통 형태가 꺾이고 쌓이고 다층적으로 구성되는 등의 동적인 요소들이 모두 제거되면서 중심과 주변의 개념을 상실한 채 화면 위에 균질하게 덮이는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다.

이 새로운 질서는 원통 형태와 배경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면서, 이 둘을 분리할 수 없게 만든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단색의 어두운 색조가 지배적인 것이 되면서 원통 형태와 배경의 색조가 유사해져 <핵 78-20>(1978)과 <핵 78-21>(1978)처럼 어느 것이 원통 형태의 하이라이트 부분이고 어느 것이 윤곽선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작품은 명암의 효과를 고려하여 원통 형태의 음(陰)형과 양(陽)형을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이 둘을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의 완결체를 형성한다.



<Nucleus 86-27> 
1986 캔버스에 유채 227×182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는 이승조의 회화가 다시 평면으로 되돌아가는 조형적 변화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수행성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정신적 세계로 이끌어 간다. 캔버스의 양쪽을 관통하는 원통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묘사가 아닌 무수한 반복의 수행적 행위를 통해 붓질을 축적해야 한다. 이것의 의미는 제작 과정에서 행하는 수행적 태도가 화면 위에 정신적 사유의 장을 마련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 당시 이승조는 단색조 미술현상의 태동과 확산을 주도했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와 ‘에꼴 드 서울’, ‘앙데팡당’, ‘서울현대미술제’ 등에서 주요 작가로 활동했다. 따라서 1970년대 그의 ‘핵’ 연작이 단색조 미술의 미학과 공유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지점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주요해 보이는 지점은 수행성을 끌어낸 평면화로의 환원인 듯하다.

단색조 미술 현상은 물질을 정신세계로 끌어올려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1970년대 이승조 회화는 평면화 경향을 통해 우리를 정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유동하는 주체와 배경이 형성한 중성화된 차원을 경험함으로써, 화면 안에 현존하는 것이 원통 형태와 그 구축성도 아니고 물질감도 아닌, 보이는 것 너머의 내면, 본질, 정신의 차원임을 깨닫게 된다. 이후 1980년대의 ‘핵’ 연작은 더욱 다층적인 구조로 이전 시기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조형 세계를 펼친다. 이 시기는 1970년대 이전 작품의 특징인 날카롭고 견고한 원통 형태와 1970년대 이후에 등장하는 평면 전체의 구조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이승조는 가시적 대상과 비가시적 개념을 관통하는 새로운 추상회화를 제시했다. 그의 이지적인 조형 질서에 대한 실험은 전위미술과 아카데미즘 미술, 구상과 추상,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기하학적 추상과 단색조 미술을 넘나드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며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지평을 넓힌 전위적 예술가다. 전통에 뿌리를 두지 않은 그의 추상회화는 ‘예술의 근원’, ‘본질로의 환원’을 향한 수행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의 ‘핵’은 정신적 근원에까지 닿아 있다.PA



<Nucleus 77> 
1968 캔버스에 유채 173.7×130.9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각주]
* 이승조 인터뷰 (이일, 「이승조 근작에 대하여 -그의 여섯 번째 개인전에 즈음하여), 1987)


글쓴이 안진국은 홍익대학교에서 판화와 국어국문학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디지털문화정책을 공부했다. 2015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 평론에 당선되어 평론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미술정책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불타는 유토피아』(2020), 『한국현대판화 1981-1996』(2019), 『비평의 조건』(공저,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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