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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비하인드 스토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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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battery park city
뉴욕 배터리 파크 시티

뉴욕에서 길을 가던 뉴요커를 붙잡고 가볼 만한 곳을 물어 본다면, 대부분 하나같이 로워 맨하튼(Lower Manhattan)에 위치한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의 에스플라나드(esplanade)를 추천한다. 80년대 맨하튼의 낙후 지역을 민-관 협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재생시켰다고 평가받는 배터리 파크 시티. 허드슨 강변을 따라 길게 나있는 아름다운 산책로와, 최고 수준의 공공미술 작품들은 프로젝트의 ‘화룡점정'이다. 대규모 자본과 합리적인 마스터플랜에 의거하여 진행된 배터리 파크 시티의 공공미술(디자인)은 기존의 도시 조경, 건축과 미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뉴요커의 초이스, 걷고 싶은 거리인 에스플라나드 또한 메리 미스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우스 코브(South Cove)>의 한 부분이다.
● 기획·글 안대웅 기자

'사우스 코브(South Cove)'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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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도시 재개발 계획에서도 이 ‘시티'는 항상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제는 좌초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계획을 비롯하여, 동자동 아스테리움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동탄 신도시의 메타폴리스, 인천의 송도 신도시, 충북 청주의 지웰시티, 충남의 내포 신도시, 부산의 마린시티. 그리고 계획 단계인 부산의 명지 신도시와 애월국제문화복합단지. 줄줄이 나열한 이 모든 신도시개발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시티'가 바로 배터리 파크 시티다. 이번 달에는 여러 저명한 건축상과 도시디자인 상을 휩쓸었으며, 아직까지 많은 도시공학자나 디자이너로 부터 회자되는 배터리 파크 시티 재개발 프로젝트의 면모와 그 속의 공공미술을 알아본다. 나아가 현재 거론되고 있는 비평적 논점까지 살펴 보았다.  


프로젝트의 배경과 1960년대 뉴욕의 상황

1968년 시작된 배터리 파크 시티 재개발 계획은 로워 맨하튼의 업무 기능이 주변의 미드타운(midtown) 맨하튼 , 코네티컷, 뉴저지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추진되었다. 1960년대 후반 당시 동향을 살펴보면, 자유무역주의의 바람으로 세계 무역 장벽이 제거되고 있었고, 동시에 미국 내 기업들의 생산과잉과 경쟁격화로 인해 해외진출이 활발해졌다. 나아가 다국적 기업은 고급 노동력과 전문적인 서비스를 찾아 ‘세계도시’로 본사를 집중시키고 있었다. 한편 정보통신의 발달로 아이디어만으로도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벤처기업의 시대가 열렸다. 기존의 제조업에 비해 입지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새로운 산업의 기수들은, 다른 산업과 즉각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 여건과 품격 높은 여가와 문화생활을 가능케 하는 혁신적인 생활 공간을 요구해 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비스업, 특히 의료, 금융, 교육, 관광, 통신, 법률 분야가 빠른 성장을 보였다. 반대로 전통적 제조업에 종사하던 많은 사람들은 탈산업화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높은 지대로 인해, 혹은 더 좋은 환경을 찾아서 중산층은 계속해서 교외도시로 빠져나갔고 많은 대기업들이 본사를 교외 또는 먼 도시로 이전했다. 도시, 특히 국제적 기업이 많았던 뉴욕의 불안정성이 가중되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각 도시는 기업을 유치하여, 안정적인 제정기반을 확보하고 쇠퇴를 방지하기 위해 도시환경을 전략적으로 바꾸는, 이른바 ‘장소마케팅’을 도입한다.

1960년대에 오면 ‘월 스트리트’상징되는 세계 경제의 수도, 뉴욕의 로워 맨하튼도 그 위상을 조금씩 상실하며 쇠퇴하고 있었다. 중산층과 기업이 하나 둘씩 뉴저지나 코네티컷 등 교외로 빠져나갔다. 노동인구가 미드타운으로 이동하기 시작함에 따라 맨해튼 남부의 오피스 수요는 줄어들고 있었고, 반대로 미드타운은 신흥 오피스 구역으로 발달했다. 도심 공동화로 인해 도시 내부공간 중 일부가 슬럼화 됐다. 이에, 체이스맨하튼 은행의 회장이자  기업협의회(BCA)의  수장이었던  데이빗  록펠러는 1960년 체이스 사옥을 월 스트리트에 신축함과 동시에, 뉴욕 주지사였던 그의 형 넬슨 록펠러,  뉴욕  항만국, 그리고 뉴저지 주와 합세하여 ‘다운타운 로워 맨하튼 협회(DTMA, Downtown Lower Manhattan Association)’를 설립하고 미드타운으로 흐르는 경제의 흐름을 월스트리트(Wall street)에 붙잡아 놓고자 했다. 마침내 DTMA는 1966년부터 7년간에 걸쳐 그 유명한 세계무역센터를 건립한다. 동시에 무역센터 서남쪽에 위치한 방치된 공간을 미래의 중산층을 위한 주거 커뮤니티로 바꾸기 위해 재개발에 착수했다. 바로 로워 맨하튼의 항구를 말하는 것으로, 1930년 이후 교통의 발달과 물류 운송 체계의 변화로 인해 쇠퇴한 이후, 황폐화된 시설로 방치된 채, 부랑자와 쓰레기로 넘쳐나는 실정이었다. 세계무역센터의 건립을 위해 굴착한 자갈과 흙이 그대로 부두에 매립됐다. 새로운 빈 땅이 만들어지면서 맨해튼에서는 극히 보기 힘든 마스터 플랜에 따른 거대한 계획 공동체가 구상됐다. 상업지구의 고층빌딩군, 최신식 거주지, 항구변의 공원 공간으로 이루어진 배터리 파크 시티 계획안이 바로 그것이다.




Michael Van Valkenburgh, 
Ann Hamilton, Michael Mercil 협력 
<눈물 공원(Teardrop Park)> 조경 2004




프로젝트 진행의 추이

뉴욕주는 뉴욕시와의 합의를 통해 1968년 특별목적기구인 배터리 파크 시티 개발공사(BPCA, Battery Park City Authority)를 설립한다. 하지만 곧바로 세계무역센터의 건립이 완성될 무렵인 1973-4년, 미국은 석유파동으로 국가적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뉴욕주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아, 배터리의 경우, 1976년 부지매립만 완료한 채 BPCA의 파산과 함께 사업이 중단됐다. 1979년 재개된 BPCA는 신임 뉴욕 주지사 휴케리에 의해 뉴욕 주 도시개발공사로 편입되었다. 기존의 마스터플랜은 건축가 알렉산더 쿠퍼와 스탠턴 엑스터드의 설계로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건축 중심의 과시적 개발 대신, 기존 장소와의 조화와 뉴욕시민 전체의 삶의 질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BPCA는 뉴욕시로부터 토지를 99년간 장기 임대 계약하여 차입함과 동시에 토지소유권을 인수받은 후 인프라시설을 정비했다. 이에 따라 BPCA가 토지를 소유하고, 민간개발자는 이를 2069년까지 장기 임대하여 건물을 지은 다음, 수요자들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개발사례에서 지역민이나 시민들의 세금으로부터 자원을 조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배터리 파크 공공시설의 설치비용은 수혜자 부담 원칙에 따라 배터리 파크 내 입주민과 기업이 부담했다.

뒤이어 1980년대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1980-81년부터 배터리 파크 시티 내에는 주거 빌딩이 하나 둘 씩 세워지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13개의 섹션이 완성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로버트 와그너 주니어 공원(Robert Wagner Jr. Park)을 시작으로 맨하탄 항구가 바라다 보이는 사우스 코브(South Cove),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웨스트 타머스 공원(West Thames Park),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길 에스플라나드, 정원이 조성된 렉터 공원(Rector Park), 유아들의 놀이터가 마련된 먼시그너 존 과우스키 플라자(Monsignor John Kowsky Plaza), 배구코트와 벤치가 설치된 에스플라나드 플라자(Esplanade Plaza), 수상택시가 서고 맨하탄 요트장이 있는 노스 코브(North Cove), 허드슨 강변을 감상할 수 있는 세계금융플라자(WFC Plaza), 전세계의 기아들을 기념하는 아이리쉬 헝거 메모리얼(Irish Hunger Memorial), 축구와 야구 등 구기 종목의 운동을 할 수 있는 배터리 시티 개발공사볼필드(Battery Park City Authority Ballfields), 앤 해밀턴의 조각 빙벽과 샌드박스 그리고 바위의자가 마련되어 있는 눈물 공원(Teardrop Park), 넓은 잔디밭이 조성돼 있는 닐슨 록펠러 공원(Nelson Rockefeller Park)이다. 결과적으로 록펠러 사단의 소원대로 배터리 파크 시티는 뉴욕 기업과 엘리트들이 꿈꾸는 최상,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내며 장소마케팅에 성공하게 된다.




Louise Bourgeois <눈(Eyes)> 
화강암 1×1×1m 1995  




배터리 파크 시티의 공공미술:
장소로서의 미술로

쿠퍼와 엑스터드가 새로 설계한 1979년 배터리 마스터플랜의 특별한 점은, 바로 공공미술이 도시개발의 첫 단계부터 통합적 환경의 일부로 고려되어 기획됐다는 점일 것이다. 60, 70년대의 주요 공공미술의 형태가 건축물을 장식하는 미니멀한 조각 형태(장소 속의 미술)이었다면, 1980년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공간의 물리성을 넘어 공공장소와 공중 사이의 심리적 조우를 강조했고, 동시에 접근성과 실용성 향상에도 힘썼다. 제도적으로는 미술  퍼센트법과  NEA의 ‘시각미술과 디자인(Visual Arts and Design)’(1982-) 프로그램이 공공영역에서 건축가와 미술가가 함께 작업하도록 하는 지침을 설정함으로써 이러한 양상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그 결과 벤치, 가로등, 산책로 등의 실용적인 목적을 띤, 공간 혹은 건축물과의 융합하는 형태의 공공미술의 형태가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공공미술 제2기 패러다임인 ‘장소로서의 미술’이다. 배터리의 공공장소에는 총 6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예정되었는데, 이 중 <사우스 코브(South Cove)>, <노스 코브(North Cove)>가 특히 ‘장소로서의 미술'의 면모를 보였다. 다른 개별 프로젝트들도 많지만, 다음에서는 두 협업 프로젝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메리 미스(Mary Miss)는 1985년 1월, <사우스 코브> 프로젝트를 위해 조경가 수잔 차일드(Susan Child), 건축가 스탠턴 엑스터드(Stanton Ekstut)를 만난다. 3인은 거듭되는 토론 끝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허드슨강을 따라 있는 해안 후미지역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사이트에 대한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거기서 그 장소의 심장이 되기를 원한다”라는 메리 미스의 말처럼, 그녀는 사우스 코브가 물과 항구에 보다 근접할 수 있는 시야와 경험을 고무하길 원했다. 이 플랜의 핵심 중의 하나는 1.2마일에 걸쳐있는 에스플라나드였는데, 클로이스터 미술관, 일반 보행자를 위한 산책로 그리고 공공미술로 이루어져 있다. 에스플라나드를 따라 사우스 코브 쪽으로 진입할 때 시민은 나선형 모양의 산책길, 전망 플랫폼, 그리고 도시거주자들이 허드슨 강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다리와 야생 식물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모든 요소들은 엑스터드와 차일드를 따라 지역의 역사와 생태학적 측면을 반영하여, 매우 단순하고 친환경적 재료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산책로는 배의 갑판을 떠올리게 하며 푸른 가로등은 해변 지역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푸른 항해 조명등을 연상시킨다. 철 조망대는 건너편의 자유의 여신상과 짝을 이룬다. 그 형태는 여신의 왕관 혹은 횃불을 연상시키면서 한편으로는 항구였던 지역성을 반영이나 하듯, 뱃머리를 은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형태들은 세계 최고의 오피스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사우스 코브, 나아가 배터리 파크 시티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

배터리 파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금융센터(World Financial Center)와  뉴욕시  요트클럽을 연결하는 구간인 <노스 코브>도 <사우스 코브>처럼 공동 프로젝트로 완성되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세자르 펠리(Cesar Pelli)가 설계한 세계금융센터는 로워 맨하튼의 4개동 건물과 윈터 가든(Winter Garden)을 아우르는 대규모 초고층 랜드마크 건물이었다. 한편 금융센터 주위의 북쪽에서 시작하여 윈터 가든 바깥쪽에 외부 콘서트를 위한 넓은 오픈 스페이스, 점심 식사를 위한 자리, 조깅이나 롤러 블레이딩을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을 위한 공간을 조경 건축가 폴 프리드버그(M. Paul Fridberg)와  미술가 스콧  버튼(Scott  Burton), 시아 아르마자니(Siah Armajani)가 맡았다. 이 프로젝트의 디자인은 “공공미술의 즉각적인 관심은 예술적인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것에 있다. 그것은 열려있고, 접근이 용이하며, 실용적이고, 일반적이고 공공장소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아르마자니의 말처럼, ‘관람’ 보다는 ‘사용’의 측면을 더욱 고려했다. 동쪽 끝에는 버튼이 디자인한 벤치가 놓여 있는데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몰을 관조하거나 아르마자니가 수변 난간에 디자인해 넣은 월트 휘트만과 프랑크 오하가의 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이후 1995년에는 <노스코브>와 페리항구 가운데 마틴 푸리어(Martin Puryear)의 <탑(Pylons)>이 설치되기도 했다. 노스 코브는 벤치에서 난간, 야외 카페를 따라 흐르는 분수에 이르기까지 전체 작업 모두가 미술품이라고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장소와 환경에 통합되어 있다.




Kristin Jones and Andrew Ginzel 
<기억술(Mnemonics)> 유리, 
스텐리스 스틸, 몰탈, 400개의 수집품 각
 20×20×10cm 1992 




뉴장르 공공미술을 향하여

배터리의 주요 미술 프로젝트가 완성된 후, 1989년 스튜비생(Stuyvesant) 고등학교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스튜비생 고등학교는 뉴욕시에서 운영하는 명문 시립 고등학교로, 1987년, 시예산 1억 5000만 달러를 들여 야심차게 건물 신축을 감행한다. 이때 뉴욕시의 ‘미술 퍼센트 프로그램’에 따라 건축 재정의 일부가 공공미술에 쓰이게 된다. 그 중 한 팀의 작품이 크리스틴 존스(Kristin Jones)와 앤드루 긴젤(Andrew  Ginzel)의 <기억술(Mnemonics)>(1989-1992). <기억술>의 기본 내용은 역사와 기억을 상기시킬 물건을 대규모로 수집해 미국이 흔히 겪고 있는 역사적 기억상실을 보강한다는 것이었다. 존스와 긴젤은 과정 전체를 통해 학교 구성원들을 참여시켰고, 이 사실 때문에 <기억술>은 이전의 공공미술과 다른, 어쩌면 뉴장르 공공미술이나 커뮤니티 아트 같은 예술 형태를 띠게 되었다. 학교 공동체는 400개의 유리 블럭을 빌딩 곳곳의 벽에 새겼다. 88개는 이 학교의 초기 역사를 재현하는 오브제를 담았고, 다른 88개는 미래를 위해 채워지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나머지 블록은 세계의 여러 문명을 대표하는 이미지나 오브제를 담았다. <기억술>에 와서는 이제 작품이 단순한 장소 특정성을 띠는 것을 넘어 작가가 공동체와 그들의 사회와 역사에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는 분명히 오브제 중심의 장소 속의 미술이나,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던 장소로서의 미술과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 형태였다. 작품이 완성된 1년 후 제인 제이콥이 기획한  시카고의 유명한 뉴장르 공공미술 프로젝트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1993)가 시작된 것을 봤을 때, <기억술>은 그것의 예고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Brian Tolle 
<아이리쉬 헝거 메모리얼(Irish Hunger Memorial)> 
유리, 아일랜드 석회암, 아이리쉬 야생화 가변크기 2002




빛 속의 어두움, 젠트리피케이션

이 아름다운 재개발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사실 이 물음은 어리석다. 이미 배터리 파크 시티에는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민-관이 합심해서 공들여 조성해 놓은 아름다운 공원과 조경, 편의시설 등은 아무리 ‘공익'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포괄하고 있는 범위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다. 하지만 사실 17세기 초 네덜란드 이주민이 처음 자리 잡고 뉴 암스테르담이라고 이름 붙였던 로워 맨하튼은, 대대로 저소득층과 이주민들이 살던 낙후된 지역이었다. 이후 뉴욕은 2차세계대전 중 주요 도시로 등장했고, 그 중에서도 월 스트리트가 미국의 경제를 주도하게 되었다. 뉴욕의 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도시 재개발이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때 1960년대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다. 그의 진두지휘 아래 슬럼지역의 철거와 신주택 건설이 본격화 되었다. 그 결과 뉴욕 거주민 50만 명이 좋든 싫든 이주를 경험했다. 재개발에 사용된 지역은 주로 저임금 노동자계층의 거주지였다.

그들은 재개발 이후 대규모로 추방될 수밖에 없었는데 맨하튼 주변에서 게토를 형성하였다. 한편, 뉴욕은 계속해서 상승하는 지대와 지가로 인해, 주거기능을 점점 상실한 채 업무지구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고, 인구는 계속해서 교외로 빠져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고위층이 할 수 있었던 ‘내 땅 지키기’가 바로 앞서 언급한 장소마케팅이다. 배터리 파크 시티의 목표는 중간계층 이상의 가구들이 매력을 느낄 고급 주택을 제공해, 최종적으로 ‘경제 개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 결과 맨하튼 내 노동자 중 중간계층 이하는 살 공간을 자연스럽게 잃어 버렸다. 이 현상을 일러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저소득층의 주거지가 고소득층의 주거지로 변하는 것)'이라 한다. 도시 산업구조의 변화 추세를 아주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재개발의 핵심 주체인 민간 개발업자들이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업무용 사무실과 고급의 주거, 소매 시설들에 치우치는 것이 더 문제라고 비판자들은 말한다.  


[참고문헌]
김기호, 「도시개발의 새로운 접근, 1 :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의 경험과 교훈」, 「환경논총」, 39, 2001.
김기호, 김대성,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의 전략과 기업에 관한 연구 - 뉴욕 배터리 파크 시티와 런던 도크랜드 개발 사례를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18(10), 2002.
김진아, 「뉴욕의 (재)개발 사업과 공공미술 : 배터리 파크시티(Battery Park City)를 중심으로」, 「현대미술학 논문집」, 12, 2008.
박진빈, 「1970년대 이후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 「역사비평」, 89, 2009, 겨울호.
정일훈, 「세계를 품은 도시 뉴욕」, 「국토」, 207,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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