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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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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Estate in Art

우리나라 뉴스와 SNS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뭘까. 의심의 여지없이 언제나 핫하고 유효하며 집중적 관심을 받는 ‘부동산’은 선거에 돌입하고 있는 지금, 보다 더 주요하고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했다. 특히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과 종부세 부담으로 무주택자, 1주택자, 다주택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손해를 보는 ‘마이너스 섬(minus sum)’에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2021년 현재, 당장 나부터도 머리에 ‘부동산’을 새긴 채 도시 숲을 이룬 아파트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한숨을 쉬게 된다.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은 물론 개인의 삶 자체에 미시적 관계를 맺고 있는 부동산. 이는 과연 동시대 미술과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이번 기획은 문화예술이 지역의 장소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도시문화정책을 통한 도시와 예술은 물론 그것과 부동산의 역학관계까지 알아본다. 이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는 부동산 정책과 현대미술의 상관관계를 톺고, 끝으로 근현대 미술작품에 재현된 집의 형태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사회적 관계 양상을 살핀다.
● 기획 · 진행 정일주 편집장, 김미혜 기자

박찬민 'BL215375573126950232' 2015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121×15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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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No. 1
도시와 문화예술, 부동산의 역학관계_박은실    

SPECIAL FEATURE No. 2
부동산 정책과 미술_송수진    

SPECIAL FEATURE No. 3
미술에 재현된 집의 변화_소현  





스튜디오 히치 <서울어반핀볼머신>

포스터 2021 서울도시건축전시관






Special Feature No. 1

도시와 문화예술, 부동산의 역학관계

● 박은실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문화예술로 상승하는 장소정체성과 어메니티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부동산은 거주와 생활공간인 동시에 재산을 보호하거나 증식시킬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상인은 저서 『아파트에 미치다』(2009)에서 한국에서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아파트가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으로 이해됨과 동시에 한국에서 부를 축적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시대에 따라서 아파트의 형태에도 변화가 나타나는데 자산을 상승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문화적 환경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자연경관과 문화시설을 갖춘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하고 주거·상업·문화공간이 복합된 초고층 단지가 인기인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아파트단지 자체가 문화와 예술 경관으로 조성되고, 대형 상점이나 백화점도 단순 상품판매 공간을 넘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는 제3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시설이 입지하거나 도시공원이 자리한 지역, 창의적인 크리에이터가 밀집한 거리 자체가 활기와 매력이 넘쳐나는 곳으로 인식되면서 지가의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듯 도시의 문화적인 환경과 어메니티(amenity)의 형성은 도시민의 생활 질과 매우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지역의 질(Quality of Space)이 생활양식, 자연환경, 편의시설 그리고 예술과 문화적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도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업무, 주거 공간과 더불어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여가와 문화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고급문화시설이나 특정 장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길거리의 벽화, 공공미술, 다양한 예술 활동, 광장, 카페, 공원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환경을 의미한다. 문화예술은 지역의 장소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도시 어메니티를 상승시킨다는 점에서 국내외 도시문화정책 사례를 통해 문화예술과 부동산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류준열 <아파트 숲-20>

2017 해질녘의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전경,

촬영일 기준으로 관리처분인가 통과 이후

30%의 주민이 이주를 완료했고 듬성듬성

불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도시계획과 문화전략

문화와 도시계획과의 관계성은 도시의 탄생에서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도시는 다양한 계층과 인종이 혼합되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자 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 도시계획이 탄생한 20세기를 기점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시계획에 있어서 문화전략의 등장 배경은 정책적인 목표와 관계가 깊다. 근대 초기 도시 형태는 권력을 상징하는 권위의 공간으로서 아름답고 위엄 있게 정비되었다. 17-18세기 도시는 절대군주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조망축인 불바르(Boulevard)의 건설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도시계획은 특정계층을 위한 기념비적인 건설을 통해 공간적, 상징적 구역을 구분하였고 문화는 정치 권력의 부산물로서 존재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박물관, 도서관, 공공정원, 갤러리, 콘서트홀 등의 고급예술을 대변하는 문화시설과 댄스홀이나 펍과 같은 일상적 대중문화시설을 공간적으로 분리해 계획했다.


시민사회가 형성된 이후에도 고급문화시설과 대중문화시설은 지역이나 장소에 따라 구분돼돼 설립되었는데 이는 사회적 계층 간의 공간에 의한 의도적인 구분 짓기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마스터플랜 개념이 도입됨에 따라 문화시설은 조닝(zoning)으로 나뉘어 구역별로 균등하게 배치되었다. 이후 도시가 확산되면서 도시의 용도와 기능에 의해 토지이용 계획이 수립되었고 용도지역별로 문화시설이 조성됐다. 공원이나 광장이 발달한 서양의 도시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도시는 공공공간이 부족한 형태로 발전하였으나 최근 이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강변, 호수, 공원, 가로, 광장에서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거나 공공공간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전개되는 지역의 부동산의 가치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정희정 <즐거운 나의 집>

2021 싱글채널 비디오 8분 30초




국내외 사례로 본 부동산과 문화예술의 관계
주거, 업무 상업시설의 복합개발과 문화를 통한 장소마케팅


최근에는 대규모 복합시설의 개발 초기부터 문화시설을 설치하거나 계획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세계의 주요한 도시들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경쟁적으로 진행되면서 문화와 예술을 콘셉트로 하는 전략이 도시개발전략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간주도의 복합재개발을 할 경우 기부채납이나 개발이익의 환수, 사회공헌 차원의 기업 이미지 제고 등을 위해서 문화시설을 배치하기도 하는데 공공 주도의 단지개발에서도 문화전략은 주효한 장소마케팅 전략으로 구사된다. 도쿄 도심 활성화를 위해 모리사가 개발한 롯폰기 힐스는 가장 최상층에 모리미술관과 도서관 등의 문화시설을 배치하고 ‘도시 속의 도시, 문화도시 창조’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다. 이어 개관한 미드타운은 산토리미술관, 21세기 디자인뮤지엄 등을 유치하고 ‘디자인허브’를 지향한다. 인근의 국립신미술관은 롯폰기 힐스의 모리미술관, 미드타운의 산토리 미술관과 더불어 롯폰기 아트트라이앵글로 불리며 민관협력의 공동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재개발이나 도심 재생 사업에서 통합적 문화계획 전략이 필수적인 마케팅 요소가 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SIFC), 파크원에 위치한 더 현대는 유통공간이지만 그린과 다양한 문화체험공간을 조성해 화제가 되었다. 서울 서부의 마곡지구는 주거, 업무, 상업, 문화 등 모든 기능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자족기능의 콤팩트 시티(Compact City)의 개념으로 개발되었는데 서울식물원, LG아트센터 등이 위치해서 새로운 명소로서 거듭나고 있다. 주거단지가 밀집한 아파트단지의 변화도 눈에 띄는데 서울숲의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주상복합건물에 디뮤지엄이 이전하여 장소매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강이나 호수, 산이나 공원 등의 조망과 자연경관이 결합돼 조성된 입지는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는데 아파트단지 내에 문화·상업시설을 결합한 앨리웨이 광교는 아파트단지의 진화를 보여준다. 광장 등 공공공간에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담으면서 부동산을 넘어서 라이프 스타일을 새롭게 창출한다는 네오 디벨롭먼트(Neo Development) 방식을 표방하고 있다.




오제성 <광기의 시공간-시간의 침묵>

2018 싱글채널 비디오 11분 1초 사진: 고정균




문화시설이나 공공미술을 통한 도시재생


도시재생이란 경제적·환경적·사회문화적인 쇠퇴로 수반되는 물리적인 환경이 낙후된 시가지의 재생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쇠퇴하는 구산업의 도심부 침체를 경험한 후기 산업사회 도시들은 몰락한 도시의 재생을 위해 문화예술을 도시 매력도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전략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공·민간의 다양한 주체들이 이동하는 기업, 주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고 강력한 브랜드를 창출하는 선도적 개발(Flagship Development) 방식을 구사했다. 따라서 대규모 문화시설을 건립하거나 대형 이벤트를 개최하는 문화주도형 도시재생전략은 1980년대를 전후해 후기산업사회를 경험한 대부분의 도시에 의해 시도되었다. 샤론 주킨(Sharon Zukin)은 현대 도시에서 문화는 강력한 상징 경제(Symbolic Economy)로 작용한다고 주장하며 문화를 담고 발현시키는 공공공간(Public Space)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주목했다. 한동안 구겐하임 빌바오를 비롯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통한 도시-리브랜딩이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져갔고 우리나라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DDP, 지난 7월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 등이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 문화시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송현동에 건립 예정인 이건희 기증관에 대한 관심과 입지경쟁이 최근 치열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사례와 같이 ‘광주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등의 문화행사가 도시정체성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한편으로 공공미술이 도시계획과 연계되어 도시재생에 기여하기도 하였는데 공공미술이 도시개발과정과 연계하여 통합적으로 추진되거나 기존 도심 내에서 예술축제로 설치되는 경우, 새로 조성되는 공공공간과 통합하여 진행되는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레이쳐 레인 비욘드 공공미술 프로젝트,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 공공미술 등이 있다. 도시 공원은 장소 어메니티를 상승시켜 주변 지역의 가치를 향상시킨다. 대표적인 예로 뉴욕의 센트럴파크 주변의 57번가를 중심으로 빌리어네어 로우 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ONE57 등의 초고층 빌라들이 즐비하게 생기고 있다. 성수동에 서울숲이 조성되면서 주변에 고급주택이 들어서고 청년과 크리에이터들이 몰려들면서 지가가 상승한 사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심철웅 <서울압류> 2017 싱글채널 비디오




창조인력 밀집과 젠트리피케이션


지역발전의 경쟁력과 장소정체성은 물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지역 내의 공유되는 삶의 스타일, 사회적 관계 그리고 공동체 등 지역의 고유한 사람, 활동, 상품,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연발생적인 창조지구의 조성은 다양한 문화자원의 유입과 예술가들의 집적에 의해 가능하며 창조지구는 문화형성의 인큐베이터로서 장소의 다양성, 독특성, 독창성을 지니며 되고 문화생태계가 자리잡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대표적 창조지구로서 독일 에센지역, 런던 이스트엔드의 혹스톤 지역, 뉴욕 첼시, 덤보, 윌리엄스버그, 이스트빌리지 등은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창조지구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의 현대미술 창조지구인 첼시와 미트패킹 주변으로 재개관한 뉴뮤지엄과 하이라인 지역은 시각예술의 창작기능과 시장기능이 점점 발달하고 있다. 또한 스위스 취리히 웨스트의 산업지구인 아웃서질에는 공장과 조선소, 창고 등을 개조한 미술관, 공연장, 클럽 등의 문화시설로 즐비하다. 특히 림마트스트라세의 공장은 대표적인 문화거점공간으로 성장하였고 지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런던에서는 금융지구 주변에 입지한 쇼디치 올드스트리트와 같은 곳에서 창조산업이 활발하게 촉진되었다. 이 지역은 2009년부터 예술, 패션, IT 등의 문화자원이 밀집되어 고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2012년과 2015년 사이에 올드 스트리트 주변 부동산 가격이 43%나 오르면서 예술가와 소규모 창조기업, 스타트업 등의 창조인력이 지역을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가 대두됐다. 인근 달스톤이나 펙햄 등의 지역들도 이러한 현상을 겪고 있으며 쇼디치처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진행되는 것을 빗대어 쇼디치피케이션(shoreditchfication)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2014년 런던시의회는 많은 예술가들이 베를린, 로테르담, 브뤼셀, 포루토 등 임대료가 싼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는 분석하에 다양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낙후한 지역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사람과 자본을 불러들인다. 이어 광범위한 부동산 투자가 뒤따르고 개발이 진행되면 장소의 상품화가 가속화되어 지가가 상승하고 예술가들은 내몰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홍대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합정, 연남, 상수, 문래동으로 옮겨가거나 성수동, 경리단, 가로수길 같은 소호 거리가 자본의 유입으로 상업화되고 예술가들이 밀려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위와 같이 공공문화시설과 예술가를 비롯한 창조인력의 밀집이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주변의 부동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지가상승에 의한 원주민과 예술가들의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상품화된 장소 이미지의 일방적 소비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과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랜드리는 저서 『The Art of City Making』(2007)에서 도시계획은 엔지니어링의 영역이지만 도시를 만드는 시티메이킹(City-making)은 도시적인 요소를 모두 아우르는 계획이자 지속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향후 창조도시, 문화도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되기를 바라며 문화예술이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과 관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A

[참고문헌]
박은실, 『문화예술과 도시』, 정한책방, 2018
전상인, 『아파트에 미치다』, 이숲, 2009
조경진, 「도시개발 및 재생의 수단으로 통합적 공공미술 추진 전략 연구」, 한국도시설계학회지 제15권 제1호, 2014년 2월, p. 91
Florida, R.,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Perseus Books Group, N.Y., 2002
Landry. C., The Art of City Making, Routledge, 2007
Zukin, S., The Cultures of Cities, Blackwell, 1995



글쓴이 박은실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사, 미국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예술학석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도시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도시재생특별위원회, 문화도시심의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경영, 지역문화, 창조·문화도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차지량 <내세 After Life>

2020.7.1-10.1 31분 43초





Special Feature No. 2

부동산 정책과 미술

● 송수진 『KBS』 기자



부동산 정책을 공간의 관점에서 정의하자면 국토라는 한정된 재화를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맞게 시장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배분하는 제도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정부가 한정된 공간을 주택 소비자(실수요자)에게 먼저 배분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다면 공급 위주 정책을 짜고 개발자, 투기 세력을 규제하려 들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 현재 문재인 정부가 이런 정책 기조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2003년에 들어선 참여정부는 ‘기준시가’ 대신 실거래가 기준을 적용해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투기 수요자들을 관리하려 했다.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oan to Value Ratio, LTV)이 투기 방지 대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김대중 정부 때부터였다. 노무현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유세 성격의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가 신설된 것도 이 무렵이었고 분양권 전매 제한,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같은 강력한 규제 대책이 매년 새로 나왔다. 그러나 정부 바람과 달리 시장은 정상화되지 못했고 2003년 62.4였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2007년 말 97까지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서민들에게 많은 박탈감을 드리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함으로써 무주택자나 서민들, 청년, 신혼부부들에게 내집 마련의 기회를 충분히 드리지 못했단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일부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은 정책 기조와 달리 정부가 당장 집값 안정보다 경기 부양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부동산 시장 부양 쪽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이 쏠리게 되는데 주로 1980년대 초와 1997년 IMF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 정책이 그랬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부동산 시장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자 분양가 전면 자율화 같은 규제 완화 대책이 쏟아졌다. 앞서 1980년대는 지나친 규제 완화가 과열로 이어져 10년 내내 부동산 광풍이 몰아쳤다.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부총리의 “빚내서 집 사라”는 말은 부진한 소비를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만회하려 했던 당시의 정책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정부 말대로 너도나도 빚을 냈더니 가계 부채가 폭증해 이자 부담이 늘면서 오히려 소비가 위축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렇듯 각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해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듯하지만, 모든 정부 부동산 정책의 고갱이는 딱 하나일지 모른다. 집값이 너무 급등하지도, 급락하지도 않도록 완만하게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 그래서 유권자들의 현재 표심이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다.




김이박 <이사하는 정원-강남아파트>

2018 잡초, 식물, 흙 가변 크기 사진: 고정균




부동산과 자산으로서의 미술  

각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부터 미술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우선 미술을 부동산과 같은 자산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미술시장과 부동산 정책 간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분석한 연구를 찾기는 어려웠다. 대신 경기(景氣) 사이클과 미술시장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있었는데 서진수 강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우리나라 경기와 미술시장의 변화를 비교 관찰한 결과,1) 2005년부터 2007년 호황기 때 화랑과 경매 회사가 성장했고 아트 펀드가 처음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미술품 수출이나 수입도 늘었다. 반면 2008년과 2009년 경기 침체 국면에선 미술시장 역시 위축돼 국내 4대 화랑의 매출액이 평균 51.5% 감소하고 2대 메이저 경매 회사의 낙찰 총액도 평균 39.5%가 줄었다. 결론은 경기 호황기에 미술시장 역시 발전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 역시 국가 경제의 큰 흐름 속에 움직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미술시장 역시 활성화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부의 효과(Wealth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부동산 시장과 증시를 부양시켜 국민들의 재산이 증가하면 국민들이 “아, 나도 부자가 됐구나”라는 생각에 소비를 늘린다는 것이다. 이 ‘소비’ 안에 미술품이 포함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미술품을 감상할 여유도 생겨나리라 보는 게 자연스럽다. 이른바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보다는 부양책이 미술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위치재(Positional Goods)로서 미술품의 가치 역시 자산 가치가 내려갔을 때보다 올랐을 때 더 쉽게 인식될 수 있다. 위치재는 영국 경제학자 프레드 허쉬(Fred Hirsch)가 제안했는데 소수만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치가 상승하는 재화를 말한다. 고가의 미술품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말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역시 과시할 심적, 물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단 점에서 자산 가치 상승은 미술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측면에서 종부세 과세 대상이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최근 소식은 국가 예산을 짜는 기획재정부뿐만 아니라 미술계에도 나쁜 뉴스는 아닌 것 같다. 2020년 66만 7,000여 명이던 종부세 납세 대상자는 올해 94만 7,00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1가구 1주택자 납세자들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냥 있었을 뿐인데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됐다. 자산 가치가 전형적으로 상승한 경우다. 그리고 지난해 12만 명이었던 이들은 올해 13만 2,000명으로 10% 늘었다.




정재호 <노들회관> 2018

한지에 아크릴릭 210×680cm




부동산 세금제도와 미술

아파트를 살 땐 취득세를 내야하고 보유 과정에선 재산세와 경우에 따라 종부세를 내야 한다. 처분할 때 발생한 시세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도 내야 하는데 역대 정부는 양도소득세의 세율을 높여 투기 세력을 잡고자 했다. 세금 제도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 혹은 규제를 위한 정책수단이었던 셈이다. 반면 미술품은 취득세와 재산세 부담이 전혀 없다.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조치인데, 만약 국내 생존 작가의 작품이 6,000만 원 이하라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작고한 작가의 6,000만 원 이상 작품의 경우 과세되긴 하지만 필요 경비의 90%까지 인정해주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다. 그래서 나오는 주장이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미술시장으로 돈이 몰린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많을까? 아파트를 재테크 수단으로 삼을 정도라면 다주택자일 가능성이 크고 여기에 더해 세금을 제하고도 수억 원대 시세 차익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소유 중인 아파트의 실거래 가격 최소 10억 원 정도는 돼야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주택소유통계」를 보면 전국 화랑의 절반 정도인 261개가 몰려있는2) 서울 지역의 다주택자는 38만 6,000여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2주택자이고 세 채 이상 소유한 사람은 9만 8,600여 명 정도 된다. 추정컨대, 서울 지역 3주택 이상 소유자 9만여 명이 국내 미술시장의 실구매층 혹은 잠재적 구매층이 아닐까. 또한 3주택 이상 보유자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종로구에 주로 살고 있는데3) 우연인지 몰라도 서울 지역 화랑은 종로구와 강남 일대에 몰려있다. 또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는 계층 가운데서도 미술품을 실제 고수익 투자처로 여기는 비율은 매우 낮다는 점이다. KB 금융그룹이 예금이나 주식 같은 금융투자상품에 10억 원 이상 예치한 이른바 ‘자산가’ 고객에게 앞으로 고수익이 예상되는 투자처를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60.5%가 주식이라고 답했다. 그 다음은 펀드(19.0%), 금·보석(15.0%), 투자 및 저축성 보험(12.3%), 채권(5.5%)순이었다. 예술품이라고 답한 자산가는 1.5%에 불과했다.4) 미술품 투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크게 확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매각을 통한 시세 차익에 매겨지는 세금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미술품에 대신 투자하는 경향이 자산가들 사이에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요약하자면 세금을 매개로 부동산과 미술품을 동일한 선택지로 보고 ‘세율 높은 부동산 대신 세율 낮은 미술품을 선택한다’는 가정은 극히 일부 고소득 자산가의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민경 <그녀와 나는 같은 포물선을 그렸다>

설치 전경 2020 임시공간




대규모 공공개발과 미술가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media)로서 미술가는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매우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결과물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다채로워서 부동산 혹은 그 정책이 미술가 개인의 삶에 끼치는 개별적 영향까지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미술가’라고 집단화시킨다면 부동산 정책과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문화기반 시설 확대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수도권 쏠림 현상이 멈출 줄 모르자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는 인위적인 자원 재분배 정책인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이 2005년 무렵부터 시행됐던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 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기업도시개발 특별법’,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이다.


이 법들은 공통적으로 ‘수준 높은 주거·교육·문화시설을 갖춘 미래형 도시’ 조성을 목표로 개발계획 수립 단계부터 꼭 문화 기반 시설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즉, 지방 이전 공공기관이 늘수록, 이에 따른 도시 인프라 개발 사업이 활성화될수록, 미술관 같은 문화기반 시설은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경남 진주 혁신도시에 있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진주시는 2008년 이성자 화백과 미술품 기증 협약을 맺었으나 별도의 미술관은 설립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미술관 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더 많은 공공기관이 이전해 정주 여건이 좋은 기반 도시가 조성된다면 지역 미술 인프라가 늘어날 것이고 이 인프라 위에서 지역문화와 미술이, 지역민과 미술이 만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1차 이전을 마친 153개 공공기관 말고도 산업은행, 한국은행 같은 100여 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2차 지방 이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지만 2022년 3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 만큼 2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은 현재로선 실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고양레지던시 외부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1%룰과 창작 레지던시

부동산 정책이 예술가에게 주는 직접적인 영향을 언급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이른바 ‘1%룰’,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다. 이 제도는 전체 면적이 1만㎡를 넘는 건축물을 지을 때 건축비의 1% 이상을 미술 작품 설치에 쓰도록 한 것인데 1972년 처음 제정됐을 때는 권장사항이었다가 1995년부터 의무화됐다. 특이한 것은 ‘건축물’에 대한 의무사항이지만 부동산이나 건축 관련 법률이 아니라 각종 예술지원 정책의 모법(母法)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진흥법이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법에 따라 2019년 한 해 공공미술품 886점이 새로 설치됐고 설치금액도 973억여 원에 이른다.5) 단순하게 보자면, 연 면적 1만㎡ 이상의 대형 건물이 많이 지어질수록 공공 미술시장도 활성화된다. 그러나 당초 제도의 취지에 맞게 공공미술품이 늘어날수록 미술계가 ‘제대로 진흥’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소수의 작가가 여러 개의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경기도는 지난 2019년에 1%룰이 적용되는 미술품을 공모를 통해 선발하도록 하는 ‘건축물 미술품 공모제’를 경기도 조례 제정을 통해 도입하기도 했는데 실제 어떤 성과가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예술가 지망생들이 전업작가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쓰는 작업 공간을 실비에 제공하는 지원 제도인 ‘창작 레지던시’. 예전에는 국전이 신진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면 국전 폐지 이후에는 각종 미술상과 함께 어느 레지던시 출신인지가 중요 이력 가운데 하나로 판단되고 이 창작 레지던시도 부동산 정책의 하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 제도의 법적 근거는 1999년에 재정된 ‘폐교 재산의 활용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다. 이 법 2조에는 ‘폐교를 문화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이에 근거해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폐교를 문화예술창작 스튜디오로 활용하고 있다. 공식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 법의 취지는 문화예술 진흥이 아니라 국가 자산인 폐교를 활용해 국가 재산 가치를 유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창작 레지던시 운영과 관리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좀 어려운 관료적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PA


[각주]
1) 서진수, 「한국 미술시장과 경기변동 - 2005~2009년 미술시장을 중심으로」, 현대미술학회, 2009
2) 「2020 미술시장 실태조사」, 문화체육관광부, 2020
3) 「2020년 주택소유통계」, 통계청, 2020
4) 「2021년 한국부자보고서」, KB 경영연구소, 2021
5) 「2020 미술시장 실태조사」, 문화체육관광부, 2020



글쓴이 송수진은 『KBS』 기자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 『KBS』에 입사했다. 창원총국,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쳐 <저널리즘토크쇼 J> 제작을 담당했고, 지금은 탐사보도부에서 취재 중이다.




1960-1970년대 청계천변 판자촌 모형

이미지 제공: 청계천박물관





Special Feature No. 3
미술에 재현된 집의 변화

● 소현 미술평론가



인간은 늘 집과 함께 해왔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 옛날 구석기인도 현대인과 다를 바 없다. 집은 일반적으로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본래 정치행정 단위로서의 식읍과 식솔을 가리켰으며, 조선시대까지도 오늘날처럼 엄격한 의미의 혈연 친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1) 가족의 의미는 계속 바뀌어왔고, 그에 발맞춰 집의 형태도 변해왔다. 그리고 공간이 달라지자 사람들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도 변하게 된다. 나는 이 글에서 근현대 미술 작품에 재현된 집의 형태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사회적 관계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볼 것이다. 지면의 한계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집의 형태를 임의로 선택해 이야기한다.



일제강점기 한옥, 무너지는 질서의 공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및 서양 문물의 유입으로 전통문화가 격변의 과정을 거쳤다. 그 영향으로 도시 풍경도 달라졌다. 전통 가옥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가 끝을 향하고, 서양식 근대 건축 및 일본식 가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배운성의 <가족도>는 과거와 미래의 얽힘을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그림 속 인물들은 작가의 가족으로 추정되는데, 먼저 한옥 마당에 정렬한 일가의 중심에 작가의 어머니가 있고 그 뒤에 장남 부부로 보이는 두 인물이 흰 한복을 차려입고 서 있다. 주변에는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였으며 화면 오른쪽에 서 있는 소년은 서양식 찻잔을 손에 올린 여인의 관심을 구한다. 여인은 하녀로 짐작된다. 옆에는 휘핏으로 보이는 외국 혈통 개가 있다. 그리고 하얀 두루마기에 가죽신을 신고 화면 왼쪽에 선 인물이 바로 배운성이다. 대청마루에는 한 남성과 소년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고 사랑방 안에는 작가의 사망한 형으로 추정되는 흰옷 입은 남자가, 그 옆에는 하녀로 보이는 소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가족이 도열해 선 곳은 전통 가옥 앞마당이다. 마루, 대청, 사랑방 등 한옥의 기본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집안에 닫힌 문이 하나도 없는 게 눈에 띈다. 사랑채는 앞마당을 향해 열려 있고, 앞마당은 대청마루 너머 뒷마당과 연결된다. 보통 한옥은 (그 종류는 다양하나) 모든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개방성은 한옥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당은 집 안과 밖을 연결함으로써 공적 공간이자 사적 공간으로 기능했고,2) 창호는 완벽한 분리를 지양하며 방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했다.3) 한옥의 개방적 구조는 조선조 양반 가족의 개방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양반집은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만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머슴, 서생 등의 외부인도 그 안에 들어와 살았다. 혈연 가족과 객식구가 한 집에서 생활했지만 구조상으로는 둘의 공간이 완벽히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옥이 무작정 개방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각 가족 구성원의 생활공간이 규정돼있어 폐쇄적이기도 했다. 안채는 여성의 공간, 사랑채는 남성의 공간, 행랑채는 객식구의 공간이었다. 전통 가옥은 가족 구성원에게 각자의 위치를 규정해줌으로써 유교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4)


<가족도>는 유교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을 담아낸다. 배경의 한옥은 금융 재벌 백인기의 집으로, 배운성이 15세부터 서생 생활을 한 곳이다. 마땅히 행랑채에 머물러야 할 작가가 앞마당에서 자기 가족과 함께 주인집 행세를 하고 있다. 배운성은 이 그림을 통해 집안에 구획된 경계선을 넘어선다. 당시 가난한 사람은 손에 넣기 어려웠을 각종 서양 소품도 함께 배치해 상류층처럼 보이려고 애썼다.5) 그림 속 가족이 하녀가 포함된 대가족으로 이루어진 점도 흥미롭다. 가족 초상은 서양에서 발달한 장르로, 귀족들이 자기 과시 목적으로 많이 제작했다. <가족도>는 구도 및 소품 등을 보았을 때 서양 귀족의 가족 초상 계보를 따르고 있다. 그러므로 작품은 신분제에서 비롯된 계급 차별을 타파하려고 하기보다 유교 질서를 유지하되 권력층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여기서 전통가옥은 복고적 향수가 담긴, 무너져내리는 질서의 공간이다.





배운성 <가족도> 1930년대 캔버스에 유채

140×220cm 개인소장




판자촌, 한국 경제발전의 최전선

판잣집은 한국전쟁 때부터 1970년대까지 흔한 주거 형태 중 하나였다. 전쟁 중 피난지에 임시로 건축되기 시작한 판잣집은 1960년대에 이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도시노동자들이 값싸게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거처가 된다. 만화가 김성환은 풍속화집 『고바우 김성환의 판자촌 이야기』에 광복 직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 풍경을 담았다. 판자촌 그림이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여러 가구를 함께 그려 판자촌의 전체적인 풍광을 살펴볼 수 있다. <동대문 밖 청계천>은 1960년의 청계천 판자촌을 그린 작업인데, 집들이 적정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응집해있어 걸어 다닐 통로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모든 가구가 내외 구분 없이 뒤얽혀 있어 하천변은 앞마당 같고 주민들은 한 가족 같다. 판자촌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집처럼 보인다. 작가가 세부 디테일에도 신경을 써 집 내부도 어렴풋이 살펴볼 수 있다. 배운성 작품에 비해 적은 수의 가족이 작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집이 너무 좁기에 한옥과 달리 구성원 간 공간 구분은 모호하다. 이웃과의 공간 구획도 다를 바 없다. 가구 간 거리가 좁아 이웃의 속사정까지 낱낱이 알 수 있어 철저한 분리는 불가능한 구조다. 그런데도 그림의 전체적인 정서는 따스하다. 다투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주민들은 대화를 하거나 음식을 나눈다. 판자촌의 이러한 구조는 되레 깊은 연대를 자아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정부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이촌 향도민들의 복지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따라서 같은 처지에 놓인 판자촌 주민끼리 연대해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자생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사람들은 판자촌 네트워크를 통해 일자리나 생활정보 등을 얻을 수 있었고 금전을 융통하기도 했다. 저임금에 기반한 한국의 경제발전은 판자촌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다.6) 전통 가옥의 개방성을 이어간 셈이다. 하지만 판자촌 내부와 외부는 확연히 분리된다. 그림의 오른쪽 구석을 보면 ‘복덕방’ 깃발 아래서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중절모에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은 투자자로 짐작되고, 대화 상대방은 복덕방 주인으로 보인다. 화집에 실린 설명에 따르면 이즈음부터 부동산 열풍이 불기 시작해 복덕방이 도시 이곳저곳에 등장했다고 한다.7) 1960년대 중반부터는 정부 정책으로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그 결과 값싼 거주지를 기반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은 집을 잃게 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다. 판자촌 주민은 점차 도시 외곽으로 내몰렸다.8) 외부에서 바라본 판자촌은 빈곤층의 ‘불량거주지’이자 투자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도시 빈곤층이 사라진 자리에 중산층이 자리 잡으며 앞으로 다가올 아파트의 시대를 예고한다.





정연두 ‘상록타워’ 2001 가족사진 32점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아파트, 연결에서 차단으로

1990-2000년대가 되면 판자촌은 거의 사라지고 아파트가 주된 주거 형태가 된다. 정연두의 ‘상록타워’ 연작은 광진구 상록타워 아파트에 거주하는 32가구의 생활 풍경을 유형학적 사진으로 풀어낸 작업이다. 다양한 가구의 모습을 담았음에도 아파트 내부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거실만 보여 다른 공간을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가족 대부분이 짜 맞춘 것처럼 비슷한 위치에 소파, 텔레비전 등의 가구를 배치했다는 점을 포착할 수 있다. 아파트에서는 콘센트 위치 등을 통해 특정 자리에 특정 물건이 놓이도록 유도되기 때문이다. 이는 생활 패턴에도 영향을 끼친다. 거실은 텔레비전을 보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규정되고, 그 외 다른 행동을 상상하기는 힘들어진다.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거실, 안방, 작은방 등으로 이루어져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이성애 가족의 거주를 염두에 두고 세워진다. ‘상록타워’에 실린 가족 역시 과반수가 4인 이성애 가족이고, 대가족이나 비혈연 가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파트 내부구조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공고하기도 하는 셈이다.


아파트에서는 가구 간 분리도 판자촌보다 확실히 이루어진다. 두꺼운 벽과 육중한 현관문을 통해 거주민의 사생활 보호가 최우선이며 베란다는 밖으로 열려있기는 하지만 경치를 감상하기 위함이지 외부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함은 아니다. 그리고 마당은 거실로 대체됐다. 거실 역시 가족 구성원을 위한 폐쇄된 공용 공간이다. 방들도 다 분리돼있어 문만 닫으면 언제든지 거실과 분리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주민 간 만남은 요원해지고, 예전 같은 긴밀한 유대는 형성되기 어려워졌다. 물론 반상회 등의 모임이 상존하나, 원한다면 주민 네트워크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이 판자촌과 다르다.




조혜진 <행복하려면> 2018

수집한 자개장 문짝에 자개

165.5×169cm 사진: 고정균




고시원, 현대판 판자촌

2010년대부터는 개인주의 발전 및 경제적 원인 등으로 가족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난다. 아파트 거주비용도 계속 올라 원룸 등 1인 가구를 위한 주택이 확장된다. 원룸조차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임시거주지로 밀려난다. 사진작가 심규동이 촬영한 고시원은 현대 빈민의 거주지 중 하나다. ‘고시텔’은 고시원에 거주하는 남성들의 초상을 담은 사진 연작으로, 고시원 내부 구조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을 만한 비좁은 복도에 방문이 늘어서 있다. 부엌, 옥상, 화장실은 공용이다. 방은 사람 하나가 발을 뻗고 누우면 꽉 찰 정도로 협소하다. 다른 이와 방을 나눠 쓰는 사람은 안 보인다. 외롭고 우울해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삶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연작을 통해 고시원에도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9)


<2016년 5월 3일>은 작가가 자기 방을 촬영한 부감 사진이다. 그는 방의 절반을 차지한 침대에 누워 무료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나머지 절반의 공간에는 옷가지, 음식 등의 생필품이 상자와 쇼핑백에 수납돼 있다. 『영혼의 미술관』 책이 눈길을 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고시원 생활을 하며 꿈을 좇았던 작가의 일면이 드러나는 듯하다.10) 현대 한국 청년의 단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시텔은 한 사람의 거주를 전제한 공간이다. 따라서 이제는 거실마저 사라졌다. 방들은 분리돼 있으나 벽도 얇고 공용으로 쓰는 공간이 많아 이웃과 만남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판자촌처럼 긴밀한 네트워크는 좀처럼 형성되지 않는다. 고시원은 차단을 중시하는 아파트의 기본 골격을 따르고 있음에도 완벽한 차단은 불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거주민은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존재감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불편한 존재가 된다. 고시원에서 우정이 싹틀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쾌적함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은 사람들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11)  


이러한 환경은 신자유주의적 이성을 탑재한 개인주의와 연동된다. 주식매도 용어에서 온 ‘손절’이라는 단어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듯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관계로 인한 감정 소모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고도 경쟁 사회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까닭이다. 이는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원인이기도 하다. 작가도 한 인터뷰에서 “깨끗하고 괜찮은 고시원은 그냥 살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 미니멀한 삶도 살 수 있고. 그래서 굳이 결혼하지 않는다면… 요즘 N포세대라는 단어도 나오잖아요”라고 말했다.12)  욕심 없이 자유를 즐기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지만, ‘미니멀’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욕망과 ‘손절’하려는 듯한 느낌도 든다. 고시텔은 현대 사회의 냉소적 개인주의를 강화하는 장소라 할 수 있겠다. PA




황문정 <미래의 가치, 최고의 프리미엄!>

2018 벽화 페인트 가변 크기 사진: 고정균




[각주]
1) 박미선, 「조선시대 ‘가족(家族)’의 등장과 성리학」, 『민족문화연구』 제82호, 2019, pp. 259-261
2) 이강진, 「전통한옥의 사이와 연결의 공간적 텍스트에 대한 연구 - 마당, 그리고 창(窓), 문(門)을 중심으로」, 『한국영상학회 논문집』, 2015, p. 99
3) 위의 책, pp. 99-102
4) 윤재흥, 「한옥에 반영된 구별의 질서와 그 교육적 작용에 대한 해석 - 담과 울타리를 중심으로」, 『한국교육사학회』, pp. 84-92
5) 신채기, 「배운성의 자화상: 인종, 국가, 이국주의에 대한 교차하는 시선들」, 『한국미술사연구』 46권 46호, 2019, p. 183
6) 소정, 「판자촌에서 쪽방까지 - 우리나라 빈곤층 주거지의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복지연구회』 29권, 2006, pp. 177-179
7) 김성환, 『고바우 김성환의 판자촌 이야기』, 열림원, 2005, p. 83
8) 김묘정, 「사회사적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도시빈민의 형성배경과 주거문화 - 한국전쟁 이후 집단이주민촌부터 외환위기 이후 신빈곤층 주거까지」, 『한국주거학회 논문집』 18권 4호, 2007, p. 82
9) 이진이, ““고시원에 고시생만 사는 건 아니에요”…사진집 ‘고시텔’ 낸 심규동 작가”, 『매거진 한경』, 2017.11.12., magazine.hankyung.com/job-joy/article/202102187130d, 2021년 11월 20일 접속
10) 고시텔에 ‘인생’이 있다…사진작가 심규동”, 『YTN』, 2017.12.8., https://www.ytn.co.kr/_ln/0103_201712081501308694, 2021년 11월 20일 접속
11) 위의 글, 인터뷰에서 심규동 작가는 고시원에서도 친밀감이 형성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면서도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인 만큼 매일매일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났고, 종종 경찰이 오는 일도 있었다”고 얘기했다.
12) 위의 글



글쓴이 소현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몽펠리에 제3대학교(Université Paul-Valéry Montpellier 3)에서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영국 골드스미스(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현대미술이론학과에서 신자유주의적 저자성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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