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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지금,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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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angju Biennale

이토록 뜨거운 관심이 있을까? 올해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는 시점을 전후해, 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이 이슈를 생산하고 주관하는 재단의 실무진은 사퇴했다. 그러자 각 매체들은 필요와 정치색에 맞춰 다양한 뉴스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과거 발굴은 물론 역사를 훑기도 하고, 비엔날레 재단 행정을 탓하거나 반대로 그동안 쌓아온 그들의 업적을 시사하기도 하고 있다. 한국미술계 중요한 사건인 ‘광주비엔날레 현재’를 「퍼블릭아트」도 특집으로 다룬다. 기획 단계에 여러 가지 구성이 존재했고 실제로 많은 전문가와 실무자를 접촉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고, 첨예한 문제며 무엇보다 지금 당장 공과 과를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기에, 2014 광주비엔날레의 면면에 집중해 글과 인터뷰를 모아 소개한다.
● 기획·진행 편집부 ● 사진 광주비엔날레재단 제공

최수앙 '소음(Noise)' 2014 레진에 유채, 자석 195×195×3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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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펑크록 밴드 토킹 헤즈의 노래 ‘Burning Down the House’에서 제목을 따 “터전을 불태우라!”고 외치는 2014광주비엔날레는 불이 난 전시장 벽을 뚫고 나오는 거대 문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제레미 델러의 작품 <무제>에 대해 제시카 모건은 “문어는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 세력을 나타내는 오래된 이미지이다. 촉수 달린 괴물이 여러 방향으로 다리를 뻗치면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모습은 어떤 특정 국가들을 상징하는데, 광주에서 문어를 많이 먹은 작가가 지역적인 소재를 작업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의 유쾌하게, 기획과 각 작업을 설명하는 총감독은 광주비엔날레가 당면한 문제를 비현실적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연기로 꾸며진 전시장 통로 벽면, 전체 줄거리에 충실한 동시대 유명 작가들의 작품, 각 공간의 성격에 따라 밀도와 강도를 달리하는 영민한 기획력. 지금 광주비엔날레를 들여다본다.  



SPECIAL FEATURE Ⅰ

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우기_최효준


SPECIAL FEATURE Ⅱ_ Interview

1. Okwui Enwezor  오쿠이 엔위저 하우스 데어 쿤스트 관장·2015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

2. Bartomeu Mari  Ribas  바르토메오 마리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관장

3. Sally Talent  샐리 탤런트 리버풀비엔날레 디렉터

4. Annette Kulenkampff  아네트 쿨렌캄프 카셀 도쿠멘타 대표이사

5. Abdellah Karroum  압델라 카룸 아랍현대미술관장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를 불태우라_장석원 




안드레아 바워스(Andrea Bowers) 

<자본주의 흡혈귀(The Capitalist Vampire)> 

2013 발견된 카드보드에 마커

(*일러스트레이션: 월터 크레인) 

419.1×302.26cm  





Special Feature Ⅰ

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우기

●  최효준 경기도미술관장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제시카 모건(Jessica Morgan) 감독은 다섯 개의 ‘독립적인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불, 연기, 파괴, 권력과 같은 주된 모티브가 39개국의 111명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다루어지는데, 대략 반수가 여성작가인 22명의 한국작가들을 통해서도 다양한 정치적 상황이 담론화되거나 개인적인 기억이 시각화되어 드러난다. 세계의 언론 매체들이 1980년의 항쟁을 과거의 불행한 사건과 연계시켜 효과적으로 다룬 작업으로 임민욱의 행위 극을 호의적으로 언급한다. 그녀의 작업이 관람객들에게 잊혀진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열고, 과거는 우리의 현재에 어떤 의미인지, 어떤 역할과 어떤 의무를 우리가 가져야하는지, 어떤 힘이 변화의 과정을 가진 것인지 등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런 질문이 전체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화두처럼 던져졌다. 이번 비엔날레 전시 전개에는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우선 안하던 방식으로 스펙터클 효과와 통합 효과가 도모되었다. 


비엔날레의 중심적 모티브인 불과 연기를 시각적 배경으로 연출하기 위하여 전시장 전체 벽들을 영국 팀 엘 울티모 그리토(El Ultimo Grito)가 디자인한 거친 픽셀 사진 프린트로 도배한 것이다. ‘화이트 큐브’ 전시장의 흰 벽 전체를 뭉글거리는 불과 연기 도안으로 덮은 결과 과거와 달리 매우 ‘감성적’인 비엔날레를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을 받았다. 배경음악이 아닌 전시프로그램으로서 조아킴(Joakim)의 음악도 그런 감성적 통합의 효과를 내었다. 공간 연출 면에서 보면 (현장에서는 혼동을 주기도 하지만) 도면상에는 유도 동선이 거의 완벽하게 짜여 있다. 그런 동선 전개는 일단 관람객을 안심 시켜줄 것이다. 전체적으로 비서구권 작가가 80여명이 포함되었고 아시아 작가가 51명으로 대략 절반에 달했고, 신작이 출품작의 36%, 작가의 90% 이상이 광주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하는 작가들이라고 한다. 작고 작가가 여럿 포함되었고 현역 작가들의 경우도 구작들이 두루 선정되어 2년 이내의 최신의 결과들을 모아 보여주어야 한다는 ‘빠름’와 ‘새로움’에 대한 강박에서 대체로 벗어난 듯 한 인상을 받았다.       

      

전시와 함께, 공연, 연주, 행위극 등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세실리아 벵골레아(Cecilia Bengolea)와 프랑수아 세뇨(Franois Chaignaud)의 퍼포먼스는 그 중 압권으로 보통의 관람객들에게는 인간이 처한 억압적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처절한 몸짓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엔날레답지 않게 스펙터클한 규모를 앞세우거나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대형 설치가 별로 없어 관람객이 작품을 마주해서 첫 눈에 압도되는 대신, 가상의 작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넓은 세상을 만나서 미학과 맥락과 의미에 접할 수 있도록 유도되곤 하였다.1)  비엔날레로서는 이례적으로 평면 작업, 회화 작업, 특히 구상 회화작업의 비중이 높아서인지 건조하거나 난삽하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귤슈운 카라무스타파(Gulsun Ka ramus tafa), 브렌다 파하르도(Brenda Fajardo), 아포스톨로스 게오르기우(Apos tolos Georgiou), 탕디신(Tang Dixin), 황재형, 류사오동(Liu Xiaodong), 슈시 술라이만(Shooshie Sulaiman), 안드레아 바워스(Andrea Bowers), 코넬 브루다스쿠(Cornel Brudascu), 비르기트 위르겐센(Birgit Jurgenssen)의 작품이 담은 이야기들은 다양하면서도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제레미 댈러(Jeremy Deller) <무제(Untitled)> 

2014 플렉스캔버스에 프린트 1,580×2,92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Modern Institute/

Toby Webster Ltd, Glasgow




테츠야 이시다(Tetsuya Ishida, 1973-2005)의 작업은 여러 점이 일관된 맥락 아래 전시되었는데, 야마시타 키쿠지(Yamashita Kikuji, 1919-1986), 로델 타파야(Rodel Tapaya)의 경우는 단 한 점이 전시되어 아쉬웠다. 개인전이나 회고전을 통해 그 흥미로운 작품 세계를 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2전시실 입구의 피오트르 우클란스키(Piotr Uklanski)의 섬유 설치와, 레나테 베르틀만(Renate Bertl mann)의 라텍스 설치는 강렬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이슬기,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귀네쉬 테르콜(Gunes Terkol) 등 아시아 여성들의 섬유 작업에는 전래의 속담, 가슴 아픈 이야기, 불편한 현실들이 개성 있는 톤으로 자국 고유 양식에 녹아들어 토착적 정조(情調)를 자아내었다. 과감한 공간 변형으로 돋보인 레나타 루카스(Renata Lucas)의 ‘건축적 개입’은 우리의 아파트 문화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기 이전에 현대미술의 성격을 대중에게 이해시켜주는데 적합하였다.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뉴욕 아파트의 실물 크기의 재현은 제가 살던 집 자랑에 그칠 뻔하였는데 카롤 크리스티안 푀엘(Carol Christian Poell)의 <스콰터(Squartter)>(2010)의 검은 말이 화룡점정의 역할을 해주었다. 뒤에 말할 주제와 작품들의 상관성(相關性) 면의 난조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그런 ‘개인기’로 상쇄된 셈이다.


과거 한 회 비엔날레의 영상 작업을 모두 감상하려면 한나절이 걸릴 정도여서 관람객을 지레 질리게 만들곤 하였는데 이번에는 영상 작업이 평면, 설치와 퍽 적당하게 안배되어 영상을 볼 엄두가 났다. 아난드 팟와르드한(Anand Patwardhan)의 영상은 인도의 불가촉천민이 부르는 저항(抵抗)과 해원(解寃)의 노래로 그네들의 승화된 아픔과 분노와 희망을 절절하게 전해주었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의 진열 공간 곳곳에 숨어있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패턴의 미지(未知)의 오브제는 의미, 의도를 떠나서 참신하였다. 위에 언급한 2014 광주비엔날레의 여러 특징들은 바람직하고 진일보한 것으로 보여 이후에도 ‘역진(逆進)’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특별전에 대하여 「중앙 SUNDAY」 기선민 기자는, <세월오월> 파문의 쟁점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사에서 (세금을 부담하는)관객으로부터 작품을 보고 그 예술성을 평가할 자유를 알아서 빼앗았다는 게 진짜 문제라 하였다. 담세자가 주인인가 징세자가 주인인가의 문제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노순택은, “국가가 벌인 못된 짓을 시시콜콜 쫓아다니며 욕을 해댄 작업을 국가가 운영하는 미술관에 번듯하게 전시해놓은 꼬락서니가 말 그대로 모순이다. 나는 모순택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모순된 상황은 광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관람객들이 되묻는다. “무엇을 불태우라는 말인가?” 보통 사람들로서는 애매하고 모호한 주제와 각 작품을 연관 짓기가 쉽지 않다. 파괴력 있는 선언적 제목을 내걸고, 더 강렬한 느낌을 주도록 번역하고(영문 제목은 명령형 ‘불태우라’가 아닌 명사형 ‘불태우기’다), 내건 주제 아래 이현령비현령 연결 지울만한 작품들을 두루 끌어 모은 것 아닌가? 제시카 모건은 말한다. “전시 주제에 대한 의미를 관람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다양한 주제를 모두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전시에 투영된 아이디어 몇 개만이라도 이해하고 희망을 가지고 가기를 바란다…… 한국미술과 그 맥락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연구했다. 이번 전시가 진지하면서도 재미가 더해져 희망에 대한 가장 강렬한 경험을 제공하고 감동을 안겨주거나 인상적이고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제목이나 주제가 그저 수사(修辭)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뚜렷한 개념과 주제의식을 가지고 깊이 연구하여 큐레이팅에 임했다는 진술이다. 큐레이팅의 경위를 참여 작가를 통해 들어보면, 모건은 주제의식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주관적 필터를 통해 거의 직감으로 작가와 작품을 선별했던 것 같다. 




조나타스 지 안드라지 <봉기(The Uprising)> 

2012 비디오 8분




그 스펙트럼이 세계 각 지역의 작고 작가와 현역 작가의 과거 활동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사실로 보아도 그렇다. 주관의 객관화에 미흡했을지언정 그 진정성을 받아들이고, 서방 언론 매체들의 한결 같은 찬사처럼 모건이 전 지구적인 사고로 무장한 예리한 큐레이터이며, 그 철학적 깊이, 미학적 안목, 전시 공학적 기량이 이번에 여지없이 발휘되어 전례 없이 완벽한 큐레이팅을 하였다고 인정한다 하여도, 그래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비엔날레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행사인가? 비엔날레가 50-60만의 명목상의 관람객을 동원하고, 스타 기획자, 스타 작가가 배출되고, 스타 기획자는 행사 폐막 전에 대륙을 넘어 스카우트되고, 세계 중요 평론가와 중요 언론 매체의 호평을 이끌어 내서 다음 행사의 안정적 예산 확보가 확실시 되면, 그것은 성공한 것인가? 행정가, 정치인, 지역 유지 등 운영 주체와, 앞 다투어 관계망 안에 들어오려는 소수의 컬렉터, 딜러, 기획자, 평론가, 기관운영자, 작가 등 미술 관계자들이 비엔날레를 기해 자리를 함께하고 그들만의 파티에서 성공을 자축하면 그것으로 한국 미술계의 발전은 보장되는가?2) 


20년간 900억 원. 막대한 공공예산이 투입되고 베니스비엔날레를 훨씬 상회하는 규모의 관람객을 동원하여 세계 5대, 또는 3대 비엔날레가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한다면, 이제 집계되는 수십만 관람객 개개인의 진정한 수용(受容)의 정도와 그 개별적 질(質), 그들 안에 일어나는 반응 양상에 대해 좀 더 예민하게 의식하고 체계적으로 탐구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3) 궁극적으로 이러한 행사의 개최로 시민들의 심미적 안목이 높아지고 미술계의 저변이 넓혀져 한국미술이 발전되기를 기대하고, 시민들의 역사의식과 현실에 대한 감수성과 문제의식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면, 대중 소통의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한 가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4) 미술 교육은 방향을 잃고 시장은 침체되고 저변은 취약하고 대중의 미적 감수성은 많이 비속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오늘 여기, 이토록 엄청난 공공예산이 투입되고 관심과 노력이 집중되는 국가적 행사에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간의 전시 작품은 왕왕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건드리되 개념 과잉, 구성 과잉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현대미술 작가들이 유행처럼 ‘불편한 진실’을 다루지만 그 강도는 적당한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게다가 비엔날레와 같은 잔치판에서 불편함이 제대로 드러나면 잔치판의 흥이 깨질 수 있음에랴. 이것은 시민운동 캠페인이 아니라 예술 축제니까……. 임민욱 퍼포먼스의 현장. 헬기가 굉음을 내며 선회하는 가운데 눈가리개와 유골함의 검정이 절제된 동작의 제의 가운데 천천히 움직이며 그것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섬광이 요란하고 이 모든 과정이 영상으로 편집되어 전시기간 내내 상영되며 관람객의 주의를 끄는데, 그 현장인 광장에는 유골 가득한 녹슨 컨테이너가 덩그맣게 웅크려 있어 민망하게 쓸쓸하다. 그 주위에는 추모와 애도의 촛불 한 자루, 국화 한 송이가 없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한 무엇이 아니라 구름 위의 존재 같은 분들이 기획한 특별한 정치적 예술적 행사이기에 함부로 끼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현실은 저 멀리 있고 오늘은 잔칫날이다. 축제에 온 이들은 ‘불편한 진실’을 그저 무의식적으로 의식하며 먹고 사진 찍고 놀고 즐기고 ‘역사’와 ‘정치’에 잠시 접맥되었음에 으쓱해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전시장 전체를 대체로 지배하는 ‘기이한 느낌’과 ‘묘한 분위기’5)를 문화적, 현대적으로 즐기고, ‘무언가 의미 있었음’에 자족하며 결국 진실은 늘 알 수 없고 직시하기에는 불편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돌아간다. 




테츠야 이시다(Tetsuya Ishida) 

<Waiting for a Chance> 

1999 Acrylic on board 145.6×206cm 

Courtesy of Tetsuya Ishida Commitee  




임민욱의 행위 극에 감동하여, 한성훈의 책 『가면 권력』을 찾아 읽고, 행사가 끝날 즈음엔 국가 폭력에 대하여 전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갖게 되어, 해원(解寃)과 화해를 향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도록 여론이 조성되는데 한 몫 하겠다고 마음 굳히는 이가 비엔날레 관람객 60만의 1%인 6,000명, 아니 0.1%인 600명이라도 될 수가 있을까? 사실 그런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요란한 퍼포먼스보다 발굴 직전의 유골이 부조(浮彫)처럼 드러나 있는 현장 사진 한 장이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때론 정지화면이 영상보다 연기보다 강력하다. ‘이미지의 힘’이다. 개념과 구성의 다이어트가 필요한지 모른다. 작가는 스타가 되고 이벤트는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드라마에, 채 정리되지 않은 통한의 과거사는 한갓 에피소드에 머물 뿐이라면 참 허망한 일이 될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관람객 면에서 베니스비엔날레를 앞질렀다. 사실 베니스에 가면 보통 아페르토(Aperto) 전시장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새벽부터 관람객이 줄서서 기다리는 곳은 틴토레토, 티치아노의 대작들이 전시되어있는 아카데미아(Accademia) 같은 곳이다. 그런데 비엔날레 전시장을 찾는 소수는 대체로 더 진지하고 심각하고 깊이 들어간다. 


현대미술과 그것이 전하는 현실의 무게를 지고 감당한다. 양보다 질이다. 우리는 사람 수도 더 많고 잔치판에 축제 분위기다. ‘불편한 진실’은 ‘즐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식 비엔날레에는 베니스보다 많은 내방객을 모으기 위해 볼거리, 즐길 거리, 먹을거리, 끌릴거리가 필수다. 그것을 한껏 즐기는 잔치가 파한 뒤에 ‘불편한 진실’은 그대로 남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비엔날레는 이제 미술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많은 이를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 된 도시마케팅의 수단으로 정착되었고 그 급부로 참여 엘리트 미술인에게는 경력 인증의 중요 관문이 되었다. 앞으로 차기 비엔날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질 것이다. 그것이 깊이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다음 감독이 외국인이 되든지 내국인이 되든지 비엔날레 자체가 성공과 새로움과 속도의 강박에서 벗어나고 시장논리로부터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이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어 대중의 느낌과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사회를 바꾸는데 실질적으로 일조하거나, ‘순수’에 천착하여 우리 구원의 마지막 보루인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살리고 감동으로 우리 영혼의 불을 지피는데 한 몫 하거나,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서 대안적 모델을 생각한다. 해마다 번갈아 열리는 일본의 에치코츠마리 트리엔날레(Echigo-Tsumari Art Triennale), 세토우치 트리엔날레(Setouchi Triennale), 이치하라 아트믹스(Ichihara Art Mix)들을 주목하게 된다.6) 그 행사들은 다르다. 거기에는 지역성이 있고, 지역의 역사와 전통과 풍습이 있고, 지역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내방객들과의 소통과 교류가 있고, 드러나는 변화가 있다. 연대와 협동과 자조(自助)로 산촌이 어촌이 소도시가 살아난다. 작년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의 개념이 ‘바다의 복원(復元)’이면, 바다의 복원에 대해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하여 시나브로 바다는 복원되어 간다. 올해는 소도시 이치하라가 내년에는 다시 산촌 에치코츠마리가 그렇게 바뀌는 흐름을 타고, 그 흐름은 행사가 없는 다른 두해에도 지속된다. 여기서 그 차이를 적시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서구 중심의, 서구 지향의, 속도와 스펙터클의 비엔날레와는 분명 다르다. 거기서 취할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런 류의 비엔날레/트리엔날레 출현에 대한 기대가, 희망으로서 구상으로서 논의로서 작은 전시의 형태로서 국내에서 이미 시작된 듯하다. 제목이나 주제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광주비엔날레의 터전을 불태워야 할 때가 된 듯하다.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다. 터전이 모두 불탄 그 자리에, 본말이 제자리를 찾은 목적의식과 모두의 관심과 생각 나눔과 연대와 몰입으로 새로운 광주비엔날레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각주]

1) 예컨대 제2전시실의 카미유 앙로, 코넬리아 파커, 가브리엘 오로스코,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의 오브제 작업은 모두 거의 어둡고 작은 것들의 모임으로 해독불가능하고 호기심을 일으키고 차분히 디테일에 집중하여야 제대로 감상이 되는바 여느 비엔날레와는 다른 시선이 요구되었다. 


2) 아트넷 뉴스(Artnet News)의 기자 죤 매코드는 제레미 델러가 대형 문어 배너 그림으로 촉수를 벋어 팽창하는 세계 미술계를 풍자했다 하고,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의 홀로그램 영상이 광주시의 문화적 융성을 지원하기 위함이라는 비엔날레의 목표를 의문시하고 미술 후원자의 야망과 비엔날레 형식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풍자하는 작업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진정 작가와 기획자가 의도한 바라면 ‘비엔날레의 터전을 불태우는데’ 일조할 숨은 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런지…….   


3) 비엔날레나 미술관에서 청소년 단체 관람객의 움직임을 보면 일정한 속도로 군사 분열하듯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관람객 총수로 100% 집계되는 이 경우 수용의 질과 반응 양상을 운위할 바가 못 된다. 그들 탓만도 못한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설명문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보통이다. 쉽지 않은 것이 현대미술인데 그것을 소통시키려니 참 어렵다.


4) 한두 예로, 100여명의 작가가 초청되는 관례 상 한 작가에 할당된 대체로 작은 공간에서 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데 제한이 크므로 관련 텍스트 작업이 세심하게 더해져서 자료로서 비치되고 부담 없이 자료들을 살필 수 있는 거치대, 휴대용 의자와 같은 보조 장치들이 광범위하게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30분 간격으로 하루 열 번 이상 이루어지는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은 썩 좋은데 내용적으로 더 명료하고 깊어지고 다듬어지면 좋겠다.(필자가 함께 한 네 번의 도슨트 해설 내용이 모두 달랐는데 편차가 컸다.)


5) 블로그의 관람 후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긍정적인 표현이다.


6) 퍼블릭아트, 2014년 8월호 졸고 참조



글쓴이 최효준은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에서 MBA과정을 밟았다. 국제적 기업의 플래닝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아트스튜던트리그에 드나들다가 각별한 뉴욕의 기운에 감염되어 좋아하던 미술을 일로 만들어 아트컨설턴트가 되었다. 삼성문화재단 현대미술 수석연구원, 서울시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를 겸한 전시과장을 거쳤다. 서울대 미술사학 석사과정과 원광대 조형미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북도립미술관장 시절 관람객과의 소통에 관련된 다양한 경험과 공부를 했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장 겸 창작스튜디오 팀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도미술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로버트 하이네켄(Robert Heinecken) 

<뉴스 아메리카에서 깨어나다(Waking Up in News America)> 

1986 혼합매체 





Special Feature 



1. Okwui Enwezor 오쿠이 엔위저

   하우스 데어 쿤스트 관장·2015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


[Gwangju Biennale]


Q: 당신이 기획했던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질문이다. ‘연례보고: 일 년 동안의 전시(Annual Report: A Year in Exhibitions)’를 주제로 열렸고,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비엔날레를 총괄했던 총감독으로서 전반적인 진행과정을 회고하자면  


A: 광주 비엔날레와 같은 전시는 변화의 지속적인 과정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하나의 전시는 다른 전시와 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비엔날레들과 연결된다. 나는 비엔날레를 조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다양하고도 젊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젊은 큐레이터들을 포함시켰다. 비엔날레가 작품을 전시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지적인 문화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자리 잡고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험하고 싶었다. 하여, 양질의 큐레이터 양성 프로그램, 전시 프로그램 등의 중요한 이벤트들이 제7회 광주비엔날레를 중요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중국의 중앙미술학원(Central Academy of Fine Arts, CAFA)과 협력해 베이징에서 주요한 컨퍼런스를 개최해 ‘도시성(civicness)’의 개념을 논의하기도 했는데, 호주, 중국, 인디아, 미국, 영국 등에서 다양한 패널들이 발제자로 참가했다. 이렇게 많은 협력을 거쳤다는 것을 대부분은 알아차리지 못 했겠지만 사실 비엔날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들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비엔날레가 의미할 수 있는 다양한 면모를 소화할 수 있었다. 


Q: 개인적으로 어떤 점이 성공적이었나  


개인적으로 큐레이터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6년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 이를 통해 큐레이터들은 매회 비엔날레와 관련된 공공 프로그램들(Public Program)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현재 이 양성 프로그램은 매회 비엔날레의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고 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내가 SFAI(San Francisco Art Institute) 학장이었을 때 기획한 것으로, 당시 나는 논리적이면서도 큐레토리얼한(curatorial) 것을 모두 아우르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간단히 말해 전시자체를 이끄는 장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당시의 고민들이 프로그램에 적용됐고, 샌프란시스코아트인스티튜트의 제자들, 영국 런던의 RCA(로얄콜리지오브아트) 학생들, 광주의 예술대학생들 등과 협력 했다. 또한 그 프로그램에 참여코자하는 많은 국제적 콜들, 지원서들을 받았다. 이 밖에도, 같이 일했던 젊은 큐레이터들, 김현진과 랜지트 호스코테(Ranjit Hoskote)가 특히 매우 자랑스럽다. 


A: 광주비엔날레 진행 당시에 행정상의 문제는 없었나  


Q: 없었다. 굳이 문제를 찾자면, 사실 내가 한국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언어적인 문제가 있긴 했다. 하지만 전시적 측면에선 문제가 없었다. 모든 마감을 제때 맞췄고, 경험한 비엔날레 중 가장 빠르게 잘 진행됐다. 다른 비엔날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팀은 내가 일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고, 광주비엔날레 팀은 지역적인 문제에 있어 오랜 경험과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조합되어 좋은 비엔날레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나 광주 야구팀 기아 타이거즈 경기에도 참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모든 기관과 프로젝트가 당연히 파라다이스일 수만은 없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2008년 비엔날레는 문제없이 운영됐고, 재정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광주에서 일한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A: 그동안 진행한 비엔날레들이 정치적인 사안을 다루는(political charged) 비엔날레라고 평가된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Q: 인식이 곧 현실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비엔날레를 비롯한 전시가 세계를 생각하고 세계의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 문화, 경제는 세계의 단면으로, 자연스레 전시와 접목된다. 전시도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것들을 예술 안에서 완결된 형태로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예술의 비판적인 관계와 연결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한다.


A: 광주에서의 경험이 앞으로 열릴 베니스비엔날레에 도움이 될까  


Q: 요즘, 지난 6년 간 베니스비엔날레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보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각 국가의 파빌리온이라는 오래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구조, 모델은 본전시와 다르고, 90개의 각기 다른 나라의 거대한 파빌리온과 1,000여 개의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 이 점은 압도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중의 기대와 다양한 이벤트의 카오스 속에서 어떻게 베니스비엔날레가 질적 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것이 베니스와 광주의 차이다. 광주에서 나는 현대미술을 조사하고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비엔날레의 특성 분석, 주요 전시와 미술계의 핵심 담론, 문화의 흐름과 이슈를 한 장에 모았다. 베니스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광주에서의 경험이 나를 베니스비엔날레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로델 타파야(Rodel Tapaya) 

<카부니안의 지팡이, 숫자를 매겨도 셀 수 없는

(Cane of Kabunian, Numbered but Cannot be Counted)> 

2010 캔버스에 아크릴




[Venice Biennale]


Q: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A: 단적으로 말해, 미술관이 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면, 비엔날레는 제안을 하는 공간이다. 미술관은 연구적 측면이 강조돼 체계화되고 제도화된 부분이 있지만, 비엔날레는 조금 더 사회 현상에 치중한다. 최근, 비엔날레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비엔날레를 필요로 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 경계가 점차 모호해져가고 있다고 해도 비엔날레와 미술관은 끝까지 구분될 필요가 있다. 비엔날레는 ‘지체(delay)’ 과정을 자신의 매커니즘으로 삼은 미술관과 자신을 차별화하여, 끊임없이 제안하는 하나의 역동적 ‘파괴’ 모델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Q: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무엇을 보여줄 예정인가   


A: 비엔날레를 통해 다른 포지션에 있는 예술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다. 전시에서 무엇을 할지 아직 밝힐 수 없지만, 1980년대에서 1990년대 비엔날레가 지니고 있었던 ‘실험적인 본성(experimental nature)’에 대한 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이번 비엔날레에선 구작보다도 신작에 가능한 많이 집중하려 하고 있다. 


Q: ‘주변부’에 대한 담론을 많이 제시했다. 그 점도 엿보일까  


A: ‘주변부’라는 말은 이미 구식화된 언어가 됐다. 세계가 변하는 속도가 빨라서 이제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는 사라진지 오래다. 이 와중에 어떤 특징을 가지고 새 시각을 전달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이 많다. 


Q: 비엔날레의 장소성과 관련해 세운 전략이 있나  


A: 비엔날레 전반적인 구성은 회고전, 특별전, 설치, 공공미술 등일 것인데, 이들은 특정한 담론을 형성해낼 것으로 예상된다. 또, 비엔날레 안에 다수의 역사적인 작품을 특별히 설치할 예정이기도하다. 1895년부터 개최된 비엔날레는 내년에 120회를 맞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베니스비엔날레를 역사 속 에피소드로 회부하고자 한다. 그러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베니스비엔날레의 기념일 이라는 점을 이용해도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있다.



나이지리아 칼라바르에서 출생한 엔위저는 뉴욕 뉴저지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현재 뮌헨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1996년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대규모 기획전의 디렉터로 활약해 오고 있으며, 2002년 카셀도쿠멘타 11,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 디렉터, 2012년 파리 라트리엔날레 수석 큐레이터를 역임한 바 있다. 현재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 관장이며, 『Nka: 아프리카 현대미술 저널』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이기도 한다. 오는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정됐다.




Okwui Enwezor




2. Bartomeu Mari Ribas 바르토메오 마리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관장


[Gwangju Biennale]


Q: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말해 달라  


A: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명성은 그 시작시기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직접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먼저, 공간을 구성하는 크기와 그 수준 높은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좋은 작가들도 많이 발굴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개인적으론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비엔날레는 하나의 커다란 미술관 전시처럼 느껴졌다. 미술관과 비교할 때, 이전의 비엔날레들에선 보다 큰 모험정신과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술관 전시나 아트 페어, 비엔날레 사이에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역시 이 점을 다시 환기하게 됐다.


Q: 인상적인 작가나 작업이 있었나  


A: 규모면에서, 그리고 시각적인 면에서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작업들이 매우 많았고 따라서 이번 비엔날레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작가로는 이불, 임민욱, 정금형, 김영수, 구정아, 양성철, 황재형 등이 인상적이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알거나 기억하게 됐다. 


Q: 제시카 모건의 기획 중 인상적인 점이 있다면  


A: 매우 우아한(elegant) 디스플레이를 했다고 생각한다. 엘 울티모 그리토(El Ultimo Grito)가 보여준 전시장 전체를 둘러 싼 벽지 프로젝트는 조화와 균형의 강력한 센세이션(sensation)을 보여줬지만, 다른 많은 비엔날레가 그러하듯, 미학적 부분에선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절충적(eclectic)이었다. 


Q: 비엔날레는 그 것이 열리는 장소의 장소성 혹은 지역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이번 비엔날레에선 잘 반영이 됐나  


A: 추상적(abstract) 비엔날레는 흥미롭지 않다. 내가 판단할 만큼 장소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번역이 충실했다는 전제하에)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이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또한 길고도 잔잔한 기억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시적(poetic)이었다고 생각한다.


Q: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터전을 불태우라.’는 개막 전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주제가 잘 실현됐다고 생각하나  


A: 나는 분열(disruption), 파괴(destruction), 파열(rupture)의 과정을 통해 재건하겠다는 의미로 그 주제를 받아들였다. 서구의 사회, 특히 오래된 유럽사회는 변하고 있고, 심지어는 붕괴되고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론 유럽사적 맥락에 대한 메타포로서 바라봤고, 흥미롭게 봤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통치하는 사람들은, 이 심오한 변화들을 지지하는 편에 서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에선 흥미로운 역설(paradox)이 발생했다고 본다. 


Q: 올해 광주비엔날레 직전에 열린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프로젝트’에서 한 참여작가의 작품 전시가 유보되고, 결국 작가 스스로 자진 철회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슈였는데,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이 있나  


A: 사회적으로 검열(censorship)은 허락돼선 안 된다. 내 생각에 이곳의 누군가가 아주 큰 실수를 했다고 판단된다. 정치인들은 공인이며, 풍자는 억압되지 말아야 할 비판의 한 방식이다. 


Q: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 두 공간에서 전시는 다르게 선보여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A: 개인적으로 비엔날레와 미술관이 매우 다르길 희망한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 최근에는 오히려 그 둘 사이의 간극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 그리고 불행히도, 차이는 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Q: 다른 비엔날레와 비교하여 광주비엔날레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그 크기와 완벽한 조직이다! 아쉬웠던 점으로 개막식을 얘기하고 싶은데,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쇼와 관련되어 할 만한 일은 없었다. TV스펙터클(TV spectacle)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Q: 광주비엔날레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A: 신선함과 강력한 모험정신을 항상 유지해야 할 것이다. 진부해져서는 안 된다!




피오트르 우클란스키(Piotr Uklanski) 

<무제(크게 벌려), Untitled(Open Wide)> 

2012 황마, 대마, 면




[MACBA]


Q: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이하 MACBA)의 정확한 역할을 이야기해 달라  


A: MACBA는 바르셀로나와 카탈로니아(Catalonia) 지방의 가장 주요한 현대미술관이다. 카탈로니아, 스페인 그리고 국제적인 작가들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조성하고, 국제적 연계성을 제공하며, 교육에 몰두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multifaceted)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이곳에서 만들어가는 예술의 창의적 면모를 자극하고 질적으로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카탈로니아의 가장 중요한 예술기관이다. 


Q: MACBA가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컬렉션이 있나  


A: 우리 컬렉션은 세계2차 대전 이후 시작됐다. 우선, 역사적으로 아방가르드 한 것들을 수집하진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는 1960년부터 70년대로, 카탈로니아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던 시점이다. 이 시기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변화를 “이끌었던(lead)” 매우 중요한 기점이기도 한데, 매체와 재료가 다양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이 매우 달라졌다. 이 시기 작품들은 아직 전세계적(global)이진 않지만 다분히 국제적(international)이다. 이 밖에도 지중해지역(북아프리카에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에서 만들어진 예술품들을 선보이고 싶어서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수집하고 있다. 


Q: 사실 한국 사람들은 카탈로니아 지방의 현대 미술과 친숙하지 않다. 큰 흐름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나  


A: 카탈로니아 지방의 미술에는 특정한 큰 흐름은 없다. 다만 매우 강력하고 개인적인 입장들만이 있다. 어쩌면 개인들의 목소리(single voices)로 예술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카탈로니아 지방의 미술의 특징이다. 


Q: MACBA는 어떻게 지역성을 반영하고 있나  


A: MACBA는 그곳의 지역적 상황들과 매우 강력하게 연관되어있다. 무엇보다, 그 지역 관람객 우리는 많은 지역 파트너들, 작가들, 갤러리들, 다른 미술관과 기관들과 연계되어 일한다. 우리의 가장 큰 목표 중의 하나는, 세계 최고의 것을 이 지역으로 가져오고, 이 지역 최고의 것을 전세계적으로 프로모션하면서 카탈로니아(Catalan) 문화를 국제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Q: 카탈로니아 미술이 미래에 어떠하길 바라나  


A: 작품의 높은 퀄리티와 언제나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점을 유지하길 희망한다.


Q: 큐레이터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점이 있다면  


A: 나는 예술작업을 사랑할 뿐 아니라, 작가들과 함께 일하기를 좋아하는 큐레이터다. 알려지지 않은 지점들을 드러내는 것을 즐긴다. 


Q: 곧 있을 당신의 중요한 계획에 대해 얘기해 달라  


A: MACBA는 현재 매우 중요한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 이 변화를 잘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이자, 가장 우선적인 계획이다. 



스페인 에이비사에서 출생한 마리는 2008년부터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 건축재단의 큐레이터, 네덜란드 로테르담 비테 데 비트현대미술관 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2년에는 치아-치 제이슨 왕과 타이페이 비엔날레 공동감독으로, 2005년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스페인관의 큐레이터로 활약한 바 있다. 지난해 8월부터는 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현대미술부문(CIMAM)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Bartomeu Mari Ribas




3. Sally Talent 샐리 탤런트

    리버풀비엔날레 디렉터


[Gwangju Biennale]


Q: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말해 달라  


A: 잘 기획됐다. 5개의 전시 공간으로 나뉜 거대한 공간을 큐레이팅하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일관성있게 잘 구성해냈다. 전체 전시가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보여서 재미있었고, 작가군이 매우 다양하고 좋은 작업이 많았던 점,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고, 다수의 퍼포먼스가 포함된 점 등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제시카 모건이 굉장한 도전을 했고, 성공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내용 안에 역사적인 것을 함께 담기는 매우 어렵다.


Q: 비엔날레처럼 보이기보다는 미술관 전시 같다는 비판여론도 있다  


A: 전시장소가 컨테이너 같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미술관 전시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비엔날레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맞추기는 힘들다. 모건은 규모가 큰 미술관 전시에 익숙하다. 이번 비엔날레를 보다보면, 그가 큰 규모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많은 작업을 커미션하는 것에, 전세계의 다양한 작가들을 끌어오는 것에 충분히 익숙해 보인다. 한편, 한국에서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환상적인 특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작가들도 많이 알게 되었을 것이고, 같은 큐레이터로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Q: 인상적인 작가나 작업이 있었나  


A: 아르헨티나 작가 세실리아 뱅골레아&프랑수아 세뇨(Cecilia Bengolea&Francois Chaignaud)의 퍼포먼스에 강하게 이끌렸다. 또, 이불의 작업을 인상적으로 봤다. 해외 관객으로서 중요한 그의 작업을 볼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좋았다. 임민욱의 작업도 아주 재미있게 봤다. 로만 온닥(Roman Ondak)의 작업, 나우푸스 라미레스 피구에로아(Naufus Ramirez-Figueroa)의 도자 작업들이 좋았다. 이완과 이슬기도 인상적이었고,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의 세라믹작업도 좋았다. 


Q: 제시카 모건은 해외에서 많은 유명한 작업을 가져왔다고 본다. 처음엔 그 작업들을 볼 기회를 얻은 것이 좋았지만, 동시에 나는 약간 불편함도 느꼈다  


A: 큐레이터를 다른 나라에서 초빙할 때, 그들은 문화적으로 자신이 아는 작품들을 다루는 것이 더 편하다. 따라서 런던에서 큐레이터를 초청했다면, 당연히 그 곳 작가들이 소개될 여지가 많다. 다른 한편으로, 비엔날레에서 일을 할 때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작업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다. 지역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큰 문제로 작용한다. 국제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 모두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균형을 찾아야한다. 모건은 잘해냈다고 본다. 몰랐던 지역작가도 소개했고 역사적 작업도 있었다. 그 작업들이 포함된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Q: 당신이 언급했던 작업들말인가  


A: 맞다. 특히, 임민욱의 작업이 그렇다. 그 작업을 이해하기위해서는 역사적인 것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광주에 사는 사람들과 연관되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Q: 해외에서 작업을 가져오더라도 새로운 작업들이기를 기대했다. 커미션에 쓸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A: 아니다. 예산은 충분했다. 광주비엔날레는 가장 예산이 많은 비엔날레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전시를 기획할 때, 모든 작가에게 신작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큐레이팅할 수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기획적으로 논리 정연한 전시를 개최할 때, 커미션을 많이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따라서 기존의 작업과 커미션한 작업이 적절한 비율로 구성되어야한다. 나의 판단으로는 모건은 커미션작업과 기존작업의 조화를 잘 이뤄냈다. 특히, 공동 커미션을 추진했는데, 그 역시 매우 현명했다고 본다. 


Q: 20주년 기념전에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커미션을 주었지만 위원회는 그 작품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고 작가는 결국 작업을 걸지 않기로 했다. 한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슈였는데,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이 있나  


A: 상황에 대해 알고 있다. 개인적으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검열은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 믿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누구든 작품 검열에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한국 미술계의 상황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직접적으로 코멘트 할 만큼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다만, 그 작가가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유감스럽다. 또한, 큐레이터와 위원회가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던 것도 유감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일반적으로 우리는 발언의 자유를 이해해야만 하고 예술기관이 작가에게 제공하는 공간도 이해해야만 한다.


Q: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터전을 불태우라.’는 개막 전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주제가 잘 실현됐다고 생각하나   


A: 제목이 음악싱글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에 처음 주제를 들었을 때 웃었다. 1980년대는 시기적으로 매우 중요했고, 그 시기의 음악에서 재건, 재생이라는 주제를 가져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모건은 그 메타포를 잘 활용한 것 같다. 몇몇 자극적인 작업들은 지역 관람객들에게 꽤 도전적인 것이었는데, 솔직히 용기 있는 일이었다. 


Q: 광주비엔날레가 더 발전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A: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미술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세계 탑 비엔날레중 하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위치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내용 안에서 어떻게, 어떤 사람들하고 일해야 하는지에 있어서 아주 조심성을 기해야 한다. 현재 운영 중인 젊은 큐레이터 양성 프로그램은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니 그런 프로그램들을 바꾸거나 변하지 말아야한다. 전시 면에 있어서는, 용기 있는 전시를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만 온닥(Roman Ondak) 

<우주 측정하기(Measuring the Universe)> 

2007 퍼포먼스




[Liverpool Biennial]


Q: 리버풀비엔날레와 다른 비엔날레의 차이점이 있는가  


A: 광주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예산도 1/5밖에 안 된다. 비엔날레에는 레지던시, 토크, 퍼포먼스 등 여러 프로그램이 동반되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닫고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서 비엔날레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이렇게 일하는 방식에서 조금 구별되는 것 같다. 


Q: 이번 리버풀비엔날레에 특별한 내용이 있는가  


A: 많은 것이 있는데 다른 비엔날레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비엔날레 안에 많은 개인전이 열린다. 각 작가 당 한 개씩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8-10개의 작품을 보여준다. 커미션을 주어 신작도 많이 포함된다. 역사적인 작업을 현대미술 안에 풀어낸 작업들도 있고, 솔로 프레젠테이션을 많이 선보인다. 

 

Q: 현재 영국 미술계의 거대한 흐름이나 특징이 있다면  


A: 요즘 아주 흥미로운 시기다. 전세계적으로 젊은 작가들이 최근 정치적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와 비슷하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과 연관하는 것은 개인적으론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퍼포먼스가 다시 부흥하고 있다. 


Q: 곧 있을 당신의 중요한 계획에 대해 얘기해 달라  


A: 내가 3년 전 비엔날레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낀 점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다. 서펀타인갤러리에서 일할 때는 한 프로젝트를 위해 5년이나 7년간 아주 깊게 일했다. 하여 최근 10년 계획을 발표했다. 10년 동안 5개의 비엔날레, 5개의 공공미술작업, 5개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것이다. 발표로 인해,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준비 중인데, 여러 비엔날레들 사이에서 오버랩되는 리서치 교육에 의한 조직을 만들고 싶다.



탤런트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런던 서펀타인갤러리의 프로그램 책임자로서, 전시회, 건축, 교육을 통합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했다. 헤이워드갤러리, 서펀타인갤러리 뿐만 아니라 공공미술 프로젝트, 병원, 학교 등에 광범위한 전시를 감독해왔다. 서펀타인갤러리의 '파크 나이트시리즈'를 출범시켰고 한스 울리히 오프리스트와 공동기획한 '서펀타인갤러리 마라톤 시리즈'를 포함하여 공연, 음향 이벤트, 영화, 학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왔다. 국내외에서 열리는 학회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세계비엔날레협회(IBA)와 메탈(Metal)의 이사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Sally Talent 




4. Annette Kulenkampff 아네트 쿨렌캄프

   카셀 도쿠멘타 대표이사


[Gwangju Biennale]


Q: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말해 달라


A: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뛰어난 역사적, 예술적 입지를 보여줬다. 또한, 흥미롭고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낸 덕에, 한국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얘기해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또한, 불, 폭력, 파괴, 변화와 같은 중심생각을 비엔날레의 전반에 걸쳐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전달해낸 것 같다. 폭력과 파괴로 가득한 전시는 그 누구에게도 공감 받지 못한다는 기존의 사실에 대비돼 이번 비엔날레는 성공적이고도 적절했다. 


Q: 인상적인 작가나 작업이 있었나


A: 특히,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와 낸시 키엔홀츠(Nancy Kienholz)의 작업이 좋았다. 독일에서 막 재발견된 오토 피에네(Otto Piene)의 몇몇 작업들도 좋았다. 또, 카미유 앙로(Camille Henrot)과 그리스 작가인 블라시스 카니아리스(Vlassis Caniaris)의 작업도 기억에 남는다. 또한 한국작가로는 김영수, 이완, 윤석남이 인상적이었다.

 

Q: 비엔날레는 그것이 열리는 장소의 장소성 혹은 지역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이번 비엔날레에선 잘 반영이 됐나


A: 이번 비엔날레에선 매우 호소력 있는 방식으로 한국의 역사가 국제적 예술계의 토픽(topic)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지역민들이나 외국 방문객들에게도 경험의 새로운 장을 열어 줬으며, 충분히 ‘관계적’ 비엔날레였다고 생각한다. 


Q: 다른 비엔날레와 비교하여 광주비엔날레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이제 20년의 역사를 간직하게 된 광주비엔날레는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가장 크고 중요한 비엔날레 중 하나다. 광주뿐 아니라 세계의 전 지역에서 관람객들을 유치하고 있는 광주 비엔날레의 성공적인 미래를 가로막을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Q: 광주비엔날레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A: 현대미술 비엔날레에서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은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에게 제약 없는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언제나 그 중심테마로서 편치 않은 주제를 택하고 그에 대한 발언을 유도한다.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보여준 것 같이 성공적이고 뛰어난 예술 행사는 정치적이고 재정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제약 없는 자유를 지지(승인)할 때만 실행될 수 있다.


Q: 올해 광주비엔날레 직전에 열린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프로젝트’에서 한 참여작가의 작품 전시가 유보되고, 결국 작가 스스로 자진 철회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슈였는데,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이 있나


A: 작가와 큐레이터들에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는 점이 도쿠멘타가 가진 최대장점이다. 만약 비엔날레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더 이상 개최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관여로 인해 예술적이고 기획적인 면에서 아이디어를 잃게 되는 것은 비엔날레 정신의 죽음과도 같다. 예술은 완전히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도쿠멘타에도 항상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고, 시민들의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도쿠멘타는 큰 성공을 거뒀고, 여전히 오히려 이런 논쟁을 통해 예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금형 <심폐소생술 연습(CPR Practice)> 

2013 퍼포먼스




[Documenta]


Q: 정확하게 카셀 도쿠멘타 대표이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A: CEO로서 나는 매니징 디렉터역을 한다. 우선 매회 시작하기 위한 팀을 조직해야 한다. 재정에 관한 것 외에도 팀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예술감독이 도쿠멘타를 열 장소를 정하면 그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조율하는 일도 내 몫이고, 카셀시의 지원을 받기위해 그들과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내 일이다. 종종 도쿠멘타와 관련해 발생하는 공공문제도 해결해야한다. 결국, 도쿠멘타가 성공적으로 열리기 위한 모든 조율에 관여한다고 보면 된다. 단, 예술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예술감독에게 책임이 있다. 


Q: 그렇다면, 예술감독의 역할은 정확히 무엇인가


A: 거기에 도쿠멘타의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 매회 새로운 예술감독은 완벽한 공백(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해 모든 걸 새롭게 창조해야한다. 도쿠멘타가 열릴 건물이나 팀도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것을 재조정해야하는데, 바꿔 말하자면, 예술감독은 이로써 자유로운 결정권을 가진다. 카셀도쿠멘타의 시작은 세계2차대전 시기, 완전히 파괴됐던 도시 카셀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반영해 매회 도쿠멘타는 항상 새롭게 피어난다. 


Q: 매회 주제 역시 예술감독이 자유롭게 전적으로 결정하나


A: 완전히 그렇다. 이사회(CEO)는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는 예술감독을 결정한다. 모든 과정은 독립적이며, 결정 이후에는 그들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절대 관여할 수 없다. 예컨대, 도쿠멘타의 다음 예술감독은 아담 짐직(Adam Szymczyk)으로 결정됐다. 그는 앞으로 컨셉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텐데, 이사회는 그가 제시하는 컨셉을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이사회에 남은 것은 무조건 “예스”라는 대답뿐이다. 


Q: 도쿠멘타는 4~5년에 한번 씩 연다. 다른 비엔날레들은 2년 만에 여는데, 여기서 특별한 차이가 발생하나


A: 그것이 카셀도쿠멘타가 비엔날레가 아닌 이유이다. 초반부에는 4년인 경우도 있었지만, 현재에는 5년에 한 번 열리는데, 이 점은 도쿠멘타를 매우 성공적으로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5년이란 시간동안 예술은 많이 변화를 겪게 되며, 예술감독에게는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4년여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말인 즉, 그만큼 준비기간이 길다는 의미다. 이것이 비엔날레와의 차이다. 10년은 너무 길고(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에 한번 열린다), 5년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에 매우 좋은 기간인 것 같다.


Q: 카셀시민은 도쿠멘타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A: 현재, 카셀은 공식적으로 ‘도쿠멘타시티’로 불리고, 점점 사람들은 그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제7회 도쿠멘타에서 요셉보이스(Joseph Beuys)가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은 일이 있었다. 카셀은 소규모 도시이기 때문에, 이 경우 모든 이가 예술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사람들이 이 작업에 대해 호의적인데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예술은 언제나 확실하지 않고 깨지기 쉽다. 강한 투쟁이 있고 항상 어렵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새로운 것은 원하지 않는다. 


Q: 펀드레이징에 관련한 당신의 팁을 말해줄 수 있는가


A: 요즘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카셀’이 하나의 대명사이자 키워드이기 때문에 그 점이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다른 비엔날레들은 점점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국가들이 점점 어려워져서 펀딩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사실, 도쿠멘타는 스폰서 찾기가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스폰서인가” 역시 아주 중요하고 조심해야 할 만한 문제이다. 도쿠멘타의 스폰서는 카탈로그에 로고만을 실을 뿐, 다른 어떤 것에도 관여할 수 없다. 도쿠멘타가 마켓이나 상업적인 것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도쿠멘타가 계속해서 지켜야할 필수요소이자 장점이다. 조언을 해주자면, 스폰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하여, 우리는 매회 예술감독이 정한 컨셉과 내용을 정확하게 어필하려 노력한다.  


Q: 다음 카셀 도쿠멘타 주제가 정해졌나


A: 생각하는 주제가 있지만 비밀이다. 아직 참여작가들이 결정되지는 않았다. 내년에 공개한다.


Q: 곧 있을 당신의 중요한 계획에 대해 얘기해 달라


A: 나는 카셀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싶다. 해서, 역사 투어와 도쿠멘타 투어를 기획하고 있다. 역사투어는 아주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도쿠멘타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3년 동안 해야 할 일이 많다.



독일 하노버에서 출생한 쿨렌캄프는 프랑크푸르트 요한볼프강괴테대학교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올해 봄부터 카셀 도쿠멘타/프리더리치아눔 페어안슈탈퉁스 박물관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1980년에서 1988년까지 프랑크푸르트의 게링-쿨렌캄프 미술관을 공동 경영했고, 1989년에서 1994년까지는 본 독일연방공화국 예술전시관의 출판실장이었다. 이후, 슈투트가르트 뷔르템베르크 예술단체의 관리이사와 이사장직을 역임한 후,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관연합의 관리이사로 일한 바 있으며, 2011년부터 ‘슈투트가르트 문학관의 친구들’ 관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Annette Kulenkampff 



5. Abdellah Karroum 압델라 카룸

   아랍현대미술관장


[Gwangju Biennale]


Q: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한 바 있다. 그에 대한 리뷰를 듣고 싶다


A: 당시 기획 아이디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능케한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역량에 매우 감명 받았다. 설치와 코디네이팅에 참여하코자 하는 사람의 수에 놀랐는데, 어쩌면 보수적일 수도 있는 이 오랜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하는 점이 좋았다.


Q: 올해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말해 달라


A: 개인적으로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이자 주제인 ‘터전을 불태우라’가 매우 맘에 든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비엔날레의 팀과 큐레이터들은 작가들이 전시제목보다 더 강력한 작업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왔던 것 같다. 뛰어난 작업들이 많았으며,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작업들은 비엔날레를 벗어나더라도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다. 특히, 한국 작가로서는 이불작가의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Q: 다양한 비엔날레에서 일한 큐레이터로서, 비엔날레는 그 것이 열리는 장소의 장소성 혹은 지역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A: 비엔날레는 항상 세계와 연결점을 찾기 이전에 지역 프로젝트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엔날레의 큰 체계는 환경과 맥락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작업을 만들어내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기사를 생산해내느냐가 비엔날레의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예술이 발생하는 공간이나 예술의 한계, 혹은 가능성에 대한 질문과 토론을 불러일으킬 때 비로소 비엔날레는 성공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시로서의 비엔날레는 작품에 대한 표현 외에도 시민으로서의 예술가의 생각을 반영해야한다. 기획자들은 다른 지역에서 왔더라도, 비엔날레의 문맥 안에서 역사, 지리, 지정학적인 문맥을 함께 읽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내가 경험하기로, 광주에서 비엔날레는 정치적 차원의 역사적 이벤트로 역할하며, 매번 이 점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비엔날레들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은데, 마라케쉬(Marrakech)와 베닌(Benin), 다카르(Dakar)에서 내가 기획했던 비엔날레들은 모두 정치적인 암시를 지니고 있었다.


Q: 다른 비엔날레와 비교하여 광주비엔날레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광주비엔날레는 모든 지역의 동시대 표현들이 만나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의 작품과 아이디어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 지역적 특성에서 광주비엔날레의 특성이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Q: 올해 광주비엔날레 직전에 열린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프로젝트’에서 한 참여작가의 작품 전시가 유보되고, 결국 작가 스스로 자진 철회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슈였는데,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이 있나


A: 전시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전시는 항상 토론과도 같고, 좋은 전시를 위해 작가와 큐레이터가 대화를 해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시에서 작품을 철수하라는 정치적인 개입에는 반대한다.




류 사오동(Xiaodong Liu) 

<18명의 아라한:중국 본토와 타이완 사이 18명의 군인들> 

2004 캔버스에 유화 각 200×100cm




[Mathaf]


Q: 마타프(Mathaf: Arab Museum of Modern Art, 이하 마타프)의 의미를 알려 달라


A: 아랍어에서 ‘mat'haf’는 ‘박물관’이라는 뜻이며, 내가 카타르의 도하에서 이끌고 있는 기관의 이름 역시 ‘마타프: 아랍현대미술관(Mathaf: Arab Museum of Modern Art)’다. 마타프는 아랍, 터키, 이란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모던/컨템포러리 아트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Q: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우선, 시간의 틀(Time Frame)이 다른 점이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차이다. 또한 미술관에서, 전시는 주로 컬렉션에 속한 작품들을 포함해 이뤄지고, 이는 매우 긴 기간 동안 연구나 관람객 유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해 각각의 작품을 어느 맥락에 위치지어야 할까를 고민한다. 이와 다르게 컬렉션이 따로 없는 비엔날레는 항상 큐레이터의 의사를 따르며, 위원회는 큐레이터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다. 이 차이가 궁극적으로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차이를 만들고 있다.   


Q: 마타프의 예술감독으로서 당신이 집중하고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A: 지난해 처음 마타프에서 일하게 됐을 때부터 미술관을 대학과 유사하게 만들고있고, 연구를 전시, 교육프로젝트와 연계하고 있다. 오늘날 미술관이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카타르 도하의 아랍현대미술관(Mathaf: Arab Museum of Modern Art)에서 디렉터를 맡고 있는 카룸은 다수의 프로젝트를 설립하거나 예술행사를 감독한 바 있으며, 미술 실천과 경향에 관한 다수의 기고문과책의 저자로 활동하면서, ‘00세대’와 ‘큐레토리얼 사절단’(Curatorial Delegation) 개념을 창안하기도 했다. 현재, 미술관 내에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만들어 교육 프로그램에 실험성을 더하여 관련 교육 기관과도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으며, 올해에는 아랍현대미술관에서 치러질 쉬린 네샤트 개인전과 웨일 쇼키의 개인전을 기획 중이다.




Abdellah Karroum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를 불태우라

●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



터전을 불태우라! 무엇을 불태우란 말인가? 제시카 모건(Jessica Morgan)이 제시하는 2014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도발적이다. 물론 여기서도 불태울 것은 많다. 그러나 서구권에서 요구되는 것과는 크게 거리가 있다. 근대화 과정부터 서구권은 세계의 중심을 자부하며 동양의 문명을 침탈해왔다. 그 결과 동양권은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근대화를 겪었고 식민지 지배 이후에도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현대를 구축했다. 아시아는 이제 발언을 시작하고 있다. 과거의 아시아와 현재의 아시아가 융합하면서 새로운 아시아, 현대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 중이다. 아시아는 서구권에서 말하는 모더니즘의 붕괴나 해체주의를 되뇌지 않는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는 서구인의 눈으로 터전을 불태우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시관 앞마당의 대형 스토브 두 대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전시장 외벽에서는 불난 집에서 탈출하는 대형 문어가 꿈틀거린다. 




2008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전경




제1 전시관을 들어서면 이불의 벌거벗은 몸이 거꾸로 매달려 남성의 폭력 사회를 규탄하는 영상이 관객을 맞이한다. 전시관을 돌다보면 산불 현장에서 가져온 검게 탄 잔해들을 꿰어 육면체 공간에 매달아 숲을 되살린 작품(영국, 코넬리아 파커, Cornelia Parker), 건물이 타고 남은 잔해로 재구축한 집(아르헨티나, 에두아르도 바수알도, Eduardo Basualdo), 인간-동물 형상 56개의 도열(남아프카공화국, 제인 알렉산더, Jane Alexander), 얼굴과 귀, 입 등에 핸드 마이크를 단 인물을 그린 회화(중국, 탕디신, Tang Dixin), 지름 60㎝ 금속 원주 둘레에 촘촘히 박힌 노즐로부터 파란 불꽃이 나오는 컴컴한 방(덴마크, 올라퍼 엘리아슨, Olafur Eliasson), 어둡고 텅 빈 방의 끝에서 유령처럼 홀로 독백을 하는 홀로그램 인물(프랑스,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 Dominique Gonzalez-Foerster) 등을 만난다. 전반적인 전시 구성이 세련되고 우아하다. 강력한 전복을 요구하는 전시가 이렇게 포장될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과격한 해체마저도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껴져야 하는 모양이다. 




2010 광주비엔날레 <테디베어 프로젝트>




전시의 내용과 수준, 디스플레이, 관람 후 전체적으로 오는 전시의 느낌 또한 상쾌하다. 광주비엔날레가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이후 그렇게 해왔듯이 서구권 전시 전문가의 기획 능력을 빌려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포장의 결정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광주비엔날레의 진면모가 없다. 광주비엔날레만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채 우리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차용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사실 광주비엔날레의 터전을 불태우는 사건이 개막 한 달 전 진행된 특별전 <광주 정신>전에서 벌어졌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을 기념하기도 하는 그 행사에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10.5×2.5m)이라는 대형 걸개그림이 걸리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림의 내용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군과 대인시장에서 주먹밥을 나눠주던 오월 어머니가 힘차게 세월호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담은 것이었다.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 중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조정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해서 그린 장면이 문제되었다. 




2012 광주비엔날레 볼프강 라이프

(Wolfgang Laib) <망망대해>




큐레이터 중 한명이 광주시에 보고를 했고 시측에서 전시 불가를 통보해 왔으며, 작가들은 예술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항의하는 한편 일부 작가들은 동반 철수했고 책임 큐레이터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며 광주권 작가들은 비엔날레 개혁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였고 결국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사퇴했다. 근 한 달간에 걸쳐 이 사건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일국의 대통령을 치졸하게 비하한다는데 대한 비판과 옹호, 작품 철수를 두고 일어난 관권 개입과 표현의 자유의 문제, 국비 지원의 전시에서 국가 원수 모독에 따른 예산 삭감의 우려, 비엔날레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개혁의 요구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광주비엔날레는 개막 이전에 이미 불태워져 전복되고 있었다. 대표 이사는 사퇴했고 이사장인 시장은 명예이사장으로 물러서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신임 대표 이사를 두고 광주권 원로 화가가 물망에 오르는 등 전복 이후에도 혼란은 가중되었다. 광주비엔날레의 구조적 모순은 시장이 이사장인 이사회 관료적 비전문성에서 비롯된다. 광주비엔날레 이사회 23명은 광주시장과 행정부시장, 광주지역 미술관장, 단체장을 포함해 대학교수, 법조인, 기업인 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비엔날레 전반의 운영 및 전시에 관한 논의가 불가능하다. 




2006 광주비엔날레 마이클 주

(Michael Joo) <보디 옵푸스케터스>




비엔날레의 생리를 알고 전략적 대처를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서로 논의하며 꾸려 갈 수 있는 형태로 바꾸기 전에는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전 대표이사가 근 10년 간 전제적 권한을 행사했던 것도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를 두고 시장의 동의만 구하면 무엇이든 자행할 수 있는 구조 때문이었다. 민주적 논의 구조로 바꾸기 전에는 이렇게 둔중하고 비효율적이며 무능한 이사회는 여전히 또 하나의 전제적 권력을 허용하게 될 것이며 권력 편중에 의한 부작용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권력과 비엔날레 논의 기구는 분리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은 별도의 지지구조를 만들어 말 그대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논의 구조는 비엔날레의 현황과 미래적 전략을 가다듬으며 광주비엔날레만의 존재 이유를 회복해야 하며 새롭게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 비엔날레의 예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해외에서 낯선 외국인 기획자들을 불러 막후에서 진두지휘하며 그 권력이 오래 동안 유지되고 빛나기를 바라는 따위의 행보로 서구적 성향을 추종하거나 껍데기만 그럴 듯한 모양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2006 광주비엔나레 슈민 린(Shu-min Lin) <내공>




광주비엔날레가 아시아 대표 비엔날레를 자부한다면 우선 아시아권 비엔날레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탐색하며 교류해야 한다. 20년 동안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를 이용은 했을지언정 아시아 복판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또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자부한다면 전시 예산, 관람객 수 등을 그 규모를 자랑하려 들지 말고 전시 행사의 독자성, 차별화된 방향성으로 주목 받고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 비엔날레 기구를 만들어 그 가운데 광주비엔날레가 세계 중심에 든 것처럼 착각에 들게 하는 일도 부질없는 짓이다. 비엔날레는 태생부터 기구화, 제도화된 문화적 틀에 반항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것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제 문제들과 만나 담론을 만들고 시대성을 여는 종류의 비엔날레는 언제나 제도적으로 길들여지기 보다는 그것과 거리를 두면서 비판적 목소리를 높여 왔다. 권력을 추구하는 비엔날레는 좌초된다. 규모를 자랑하고 관객 숫자를 헤아리는 비엔날레는 보잘 것 없다. 민주적 논의 기구를 통하여 쟁쟁하고 긴밀한 진로가 조율되고 효과적으로 이를 실천하는 비엔날레가 바람직하다. 일련의 사태로 광주비엔날레는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야말로 바닥까지 추락하는 전복 속에서 오히려 제대로 세울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태우려면 송두리째 태워라. 잔재를 남기지 말고. 그리고 지혜롭게 건설하라.  



글쓴이 장석원은 공간 편집장(1983), 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2000),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2004), 홍콩 베니스비엔날레 참가작가 선발 심사위원(2006), 광주아트비전 <Asia Panic> 전시총감독(2009)를 역임했으며 1984년 전남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올해 평론집 『소통의 비밀』을 출간한 그는 현재 전북도립미술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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