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 Art in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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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 Made in Korea |
루치오 폰타나는 1899년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주로 공동묘지의 비석과 조각 작품을 제작하던 아버지와 함께 같은 일을 한 후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조각 학교에서 돌 조각, 석고, 형상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밀라노에 있는 도자 공방에서 흙으로 만든 테라코타 조각과 바다 밑에서 자라는 식물 형상들을 만들면서 사실화와 추상을 접목한 자유로운 스타일을 찾았다. 이탈리아에서 조형물을 제작하던 폰타나는 1940년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위험해지자 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이때 아르헨티나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미술학교를 세우고 가르치며, 1946년 새로운 미술 재료, 네온 불빛, 뉴 테크놀로지, 형태가 뒤틀린 캔버스 등을 사용해 작업한 학교 동료이자 아방가르드 그룹 멤버인 메디(Madi)와 함께 4차원 미술 공간 창조와 공간 자체에 초점을 맞춘 『메니페스토 블랑코(Manifiesto Blanco)』를 출판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작업실과 조각 작품이 모두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것을 본 후, 1949년 51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캔버스를 처음 사용했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를 오가면서 두 대륙과 두 국가의 미학을 몸에 지닌 폰타나는 빛이 들어가게 할 목적으로 화면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구멍은 또한 무한한 공간과 4차원 공간을 표현했다. 1950년 중반에는 이탈리아 무라노에서 많은 양의 유리 뭉치를 주문했다. 이 뭉치를 망치로 부신 후 화면에 붙여 관람객을 향해 앞으로 튀어나온 조각들이 주위를 반영하게 만든 작업을 선보였다.
1.<Spatial Concept, The Quanta> 1959
Water-based paint on canvas with slashes, 6 parts
Dimensions variable Private collection, Italy
ⓒ 2019 Fondazione Lucio Fontana/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IAE, Rome
폰타나의 대표적 작업으로는 화면을 칼로 찢은 작품이 있다. 그는 화판에 물감을 칠한 후 마르기 전에 칼로 화면을 찢고, 그 부분을 정교하게 만져 중간이 벌어지게 한 후 뒷면에 까만 가제를 붙여 새까만 공간이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공간 뒤편이 아예 비어 있어 작품이 고정된 흰 벽을 투영하기도 한다. 1958년 유럽이 핵폭탄의 위협과 냉전으로 불확실한 시기에 모노크롬 회화, 즉 한 가지 색상의 캔버스를 칼로 찢어 전시한 그의 작품은 기존 그림에 대한 정의를 파괴한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젊은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를 통해 폰타나는 관람객이 작품에 창조된 공간인 ‘허공’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작가는 쉬워 보이지만 화면을 칼로 찢는 행위조차도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완성해 나갔다고 말했다. 이런 폰타나의 작품이 전 유럽 미술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당시 유럽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함께 수많은 전시를 열고 교류했다. 작품이 주위를 반영하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낀 작가는 1961년 뉴욕 전시회 때 도시를 방문한 후 뉴욕의 건축 자재에 관심을 가졌다. 동, 구리, 알루미늄 재료를 캔버스 화면으로 사용해, 거울 같은 화판 앞에 선 관람객을 반영하며 주위 환경과 작품이 서로 연결되는 관계를 강조했다. 캔버스도 사각형, 타원, 오각형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시도했다. 작품을 벽에 한 줄로 거는 대신 작품이 움직이는 것처럼 여러 방향으로 거는 방식을 제시했다.
<Spatial Concept, Expectations> 1959 Oil on canvas
with slashes 35 3/4×35 3/4in. (90.8×90.8cm)
Olnick Spanu Collection, New York ⓒ 2019 Fondazione Lucio
Fontana/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IAE, Rome
폰타나는 공간에 대한 상상력으로 작품을 공간에 크게 선보임으로써 설치 예술의 미래를 열었다. 일례로 어두운 방에 초록색 별이 비치는 설치작품을 통해서는 화면에 구멍을 내 밑이 보이게 하는 원리를 이용했다. 어두운 방을 지어 안쪽에 초록색 네온 형광등 빛을 켜고, 벽에 작은 구멍을 많이 뚫어 초록색 빛이 구멍을 통해 비치게 했다. 검은 방은 작가의 캔버스이며, 초록색 별은 캔버스에 낸 구멍이며, 초록색 네온 빛은 밑에 있는 공간 색상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회화와 설치 공간의 표현을 일치한 것이다. 한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갤러리 913 천정에 설치된 네온 구조는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The 9th Milan Triennial)’에 출품한 작품을 재현한 것이다. 1951년 폰타나는 공중에 번뜩거리는 빛을 표현하기 위해 당시 선전용으로 사용하던 네온 불빛을 사용해 100야드의 네온 튜브를 천정에 힘차게 돌고 도는 선으로 돌려 걸었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천정에 줄을 달아 네온 튜브를 여러 군데 고정시켜, 모빌처럼 설치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테크노로지에 민감했던 폰타나는 건축가와 협력해 설치 작품의 시조로서 이런 작품을 만들고 ‘환경(Environments)’이라고 불렀다.
<Olympic Champion (Waiting Athlete)
(Campione Olimpionico (Atleta in Attesa))>
1932 Painted plaster 47 5/8×36 1/4×27 9/16in (121×92×70cm)
Collezione d’Arte e di Storia della Fondazione Cassa di Risparmio,
Bologna, Italy ⓒ 2019 Fondazione Lucio Fontana/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IAE, Rome
이밖에도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시민권을 가졌던 폰타나를 기념하기 위해 뉴욕의 엘 뮤지오 델 바리로(El Museo del Barrio) 미술관에 폰타나의 마지막 설치작품 1점을 재현하였다. 그가 죽기 직전인 1968년 건축가와 함께 협업해 독일의 ‘도쿠멘타 4(documenta 4)’에 출품한 <스페이스 환경(Spatial Environment)>이란 작품이다. 이를 보는 순간, 폰타나의 거대한 ‘그림’처럼 느껴졌다. 하얀 벽으로 만들어진 작은 골목 같은 공간의 중앙 벽에 크게 갈라진 부분은 폰타나를 상징하는 칼로 찢은 자국이나 다름없다. 벌어진 선 사이로 보이는 공간에는 검은색이 칠해져 있다.
Spatial Concept, Nature (Concetto Spaziale, Natura)>
1959-1960 Terracotta 15 3/4×21 5/8×18 1/8in, 60lb.
(40×55×46cm, 27.2kg) Private collection, courtesy Neal Meltzer
Fine Art, New York ⓒ 2019 Fondazione Lucio Fontana/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IAE, Rome
회화 작업에서 캔버스에 찢은 선은 굽어진 천으로인해 안의 색상이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얀 벽의 찢어진 선은 벽의 재료를 끊어내어 마치 캔버스의 찢어진 선처럼 보이게 만들고, 뒷면은 검은색으로 칠해 회화에서 뒷 배경 즉, 찢어진 부분 밑으로 보이는 검은색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1949년 캔버스에 시도한 찢긴 화면과 1968년 거대한 벽에 시도한 선은 칼로 벤 선에 대한 그의 집착을 보여주며, 이러한 공간 표현은 결국 회화와 설치가 상통한다고 말해 준다. 루치오 폰타나의 회고전은 뉴욕 전시 이후 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로 순회하며 5월 17일부터 9월 29일까지 관람객을 만난다.
글쓴이 곽수는 1977년 샌 토마스 대학미술과 졸업 후 1979년 시카고 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다수의 개인전, 단체전을 한 바 있는 그는, 특히 뉴욕의 준 캘리 화랑의 전속 작가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 첫 회고전이 브라우의 미술관에서 시작해 2013년 조단 쉬니처 미술관을 순회했다. 저서로 『치유의 말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