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 Art in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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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 Made in Korea |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Seven Magic Mountains, Las Vegas, Nevada> 2016-2018
Photography by Gianfranco Gorgoni Copyright Ugo Rondinone,
Courtesy of studio rondinone and Sadie Coles HQ, London
그런 점에서 런던의 아트 엔젤(Art Angel)이나 뉴욕의 퍼블릭아트펀드(PAF)와 크리에이티브 타임(Creative Time) 등과 같은 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들의 작업은 공공미술에서 커미션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목적과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으로 예술의 공공성 실현과 표현과 소통 가능성의 확대를 목표로 삼는다. 아트 엔젤이 수행한 작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1993년 런던 이스트엔드의 작은 공원에 설치됐던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하우스(House)>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해 ‘터너 상(Turner Prize)’ 수상과 함께 K 파운데이션이라는 작가 그룹이 수여한 ‘최악의 작품상’에도 선정되어, 최고와 최악이라는 엇갈리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공공미술 역사상 가장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로 남았다. 언뜻 봐도 많은 예산과 복잡한 절차들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되는 이 작업의 모든 과정에는 아트 엔젤이라는 커미션 단체가 작가와 함께 있었다. 커미션 업무와 역할은 무엇인지 아트 엔젤이 ‘하우스’ 프로젝트를 수행한 과정을 통해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프로젝트의 예산확보를 위한 기금을 모으고 집 소유주와 개발자 그리고 관련 기관의 협조와 동의를 구하는 중재 역할과 행정절차를 3년 동안 진행했다.
물론 작품 구상과 제작은 작가에 의해 이뤄지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재료의 선택이나 디테일한 공정, 전문가의 기술 지원을 하는 등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 제작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감독했다. 또한, 작품의 의미와 장소적 맥락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도록 전시 장소와 위치를 선정하는 데에도 관여하며,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홍보와 유지관리, 관람객 안전까지 모두 책임졌다. 이처럼 프로젝트 하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하고 방대한 업무가 있다.
이렇듯 아트 엔젤과 같은 커미션은 기존 시스템에서 실현하기 힘든 공공미술 프로젝트나 초대형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작가는 어떤 한계에서도 벗어나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하여 무한한 상상을 펼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이 있었기에 비록 3개월이라는 짧은 설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하우스>를 생생하게 떠올린다. 철거민들의 삶과 이야기, 기억이 상처처럼 흔적으로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가 우리 가슴에 육중하게 내려앉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것이 장소 특정적 미술에서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일 것이다.
아키히토 오쿠나카(Akihito Okunaka) <인터월드 워터: 물 위의 물(Inter-world-water:
The water over the waters)> 2018 Polyolefin film, Fan 300×900×200cm
그렇기 때문에 최근 커미션에 의한 작품 제작은 일반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뿐 아니라 ‘뉴 장르 퍼블릭 아트(New Genre Public Art)’와 같은 다양한 프로세스형 프로젝트, 나아가 미술관 프로젝트 등에서도 이뤄진다. 또한, 영상 작업, 그래픽 작업, 일상과 밀접한 예술 작업 등 전 방위 예술 작업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미술의 경제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예술적 상상력을 마케팅에 적용하고자 하는 기업들 역시 커미션을 통한 지원을 다양하게 수행한다. 이렇게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기획자와 작가 간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제작되는 커미션 작품들은 기획 의도와 맥락이 잘 표현된 장소 특정적 작품으로, 때론 주제 특정적 작품으로도 완성된다.
또한 작품제작의 진행 과정에서 기획자와 코디네이터들은 작품이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 방법과 마케팅 등을 모색한다. 그럼으로써 애초 프로젝트가 계획했던 주제와 의도, 상상을 작품으로 구체화해 실현하면서 프로젝트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제미술 행사나 기획전시에서는 그 프로젝트의 의미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신작을 커미션하게 된다. 앞서 예를 들었던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일본의 ‘에츠코 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Echigo Tsumari Art Triennale)’,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그리고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처럼 장소성이 강조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많은 작품이 커미션에 의해 제작된다.
이들 미술 행사에서 커미션 작업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제안된다. 하나는 프로젝트의 정체성과의 관계되는 장소적 맥락성이며, 동시에 그해에 제안된 프로젝트 주제와 관계된 주제적 맥락성이다. 이 두 가지 트랙에서 기획자와 작가는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작가 고유의 작업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프로젝트의 장소성과 정체성, 주제적 맥락을 관통하는 작품이 구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으로 의견을 나눈다. 또한, 작가의 상상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부분들까지 디테일하게 조율하면서 진행한다.
이동현 <플라밍고> 무리진 홍학이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
올해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잠시 신이었던 것들’이라는 주제 아래 모든 작품을 커미션 제작했다. 작가들의 기존 작업을 토대로 이번 전시 주제를 잘 구현할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진 작가들을 선정했다. 이후 기획팀과 작가들은 새로운 작품 구상을 위한 긴 시간의 논의 과정과 현장답사를 하면서 작품을 계획했다. 작가 개개인의 작품이 어울려 우리의 주제를 하나의 전시로 만드는 것이기에, 작가 모두는 전시에 참여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 아이디어와 관련 자료들을 공유했다. 작가들의 작품계획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상상이다. 계획서 속의 상상과 이야기는 아주 멋지지만 어떻게 구체화하여 제작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후 작품을 현실화하는 작업에는 수많은 전문가와 테크니션의 도움으로 상상을 작품으로 실현해냈다. 이렇게 커미션된 작업은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와 주제성을 명확히 하면서도 장소에 조용히 어울렸다. 올해 새롭게 마련된 ‘광주비엔날레’의 ‘GB커미션’은 ‘광주비엔날레’가 태동한 배경이자 결코 잊을 수 없는 광주 정신의 지속가능한 역사화, 담론화의 시각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다양한 국적의 감독들에 의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맞춰 주제가 선정되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매번 광주 정신과 지역 정체성을 이야기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GB커미션’이란 명칭으로 광주의 정체성과 성격, 숨겨졌던 장소와 밝혀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작품으로 시각화하는 프로젝트는 매우 영리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작품 대부분이 전시됐던 구)국군광주병원에 설치된 장소 특정적 작품은 많은 관람객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경 <길 위의 생명을 위한 파빌리온(Pavilion for Life on the Road)> 2018 Veneer Variable installation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커미션에 의한 작품 제작의 역사는 아주 길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보는 대부분 작품들은 교회가, 왕궁에서, 봉건 영주들이 작품을 의뢰하여 제작된 것이다. 최근 커미션 제작이 고전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커미션의 주체가 더는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이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의 커미션 프로젝트 대부분도 일반 대중이 쉽게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연계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공적 영역에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 시대 커미션 작업의 혁신이 있고, 그래서 우리가 커미션에 주목하는 이유다. 우리 시대의 커미션은 공공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제작된 작업은 새로운 감성과 다양하고 새로운 것에 통섭하면서도 동시대성에 공감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 그렇게 제작된 작품들은 설치된 장소와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그곳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사람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설사 그것이 실현되기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커미션이 제대로 수행된다면 작가는 우리 눈앞에 상상을 작품으로 펼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예술을 공유하려면 우리는 커미션이 제대로 바람직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박수진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후기라깡이론에 있어서 실재와 작품분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 디렉터,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과 겸임교수, 서울시 창작공간 문래예술공장 총괄매니저, 학고재 수석큐레이터를 역임했다. ‘2018년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2016-2012 카이스트 SHuM 프로젝트’, ‘2013 창원아시아미술제’, ‘2011 영천별별미술마을’ 등 공공성과 생태에 관한 프로젝트을 기획 감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