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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1, Jun 2023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Germany

Cao Fei_Duotopia
2023.4.29-2023.8.19 슈프뤼트 마거스, 베를린

● 한정민 독일통신원 ● 이미지 Sprüth Magers 제공

Installation view of 'Cao Fei_Duotopia' April 29 - August 19, 2023 Sprüth Magers, Berlin Photo: Timo O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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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차 인생’, ‘회귀 서사’를 가진 만화와 드라마가 한창 유행했다. 인생이 리셋된다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묻는 작품들에는 불만족스러운 현생을 과거 회귀라는 초능력을 동원해서라도 바꾸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새로운 현실의 조건이 주어진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차오 페이(Cao Fei)는 현실과 가상현실, 개인과 국가, 기술과 인간, 역사와 허구 등의 이항적인 개념들 속에서 발생하는 다중적인 삶의 층위를 탐구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특히 삶의 활동 범위를 극단적으로 제약한 지독한 현실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던 팬데믹(pandemic) 경험이  반영된 작품들과 메타버스(metaverse) 속 삶의 가능성을 탐구한 결과들이 베를린 슈프뤼트 마거스(Sprüth Magers) 갤러리에 차려졌다.

페이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부분이 그가 1978년생 중국 광저우 출신의 작가라는 것이다. 그의 이 시공간적 배경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인데, 당시 광저우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이며 1985년에 ‘경제특구’로 지정된다. 이에 따라 광저우는 경제발전과 급속한 개방 정책으로 대거 유입된 팝문화, 일본 게임, 애니메이션, MTV와 같은 수입 문화들이 혼재한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고, 페이와 그 세대는 서구와 동양의 이러한 혼종적인 문화적 환경을 목격하며 성장했다.



<DUOTOPIA - 1st Edition> 2022 
3D rendering video, 9:16, color with sound,
 2min 40sec Courtesy the artist, Vitamin Creative 
Space and Sprüth Magers  © Cao Fei, 2023



시대의 증인이자 예술적 창작자로 활동하는 그는 이러한 거시적인 ‘세상’의 변화를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 그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미시적 서사를 카메라에 담는다. 하지만 작가는 개인과 중국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고 디지털 기술로 구현되는 메타버스가 대안적 현실로 제안됨에 따라 무너져가는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현상까지 ‘리얼리티’로 확장해 작품으로 다루고 있다.

베를린 슈프뤼트 마거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전시 <듀오토피아(Duotopia)>는 이러한 작가의 주제 의식을 기반으로 창조한 세계(들) - 제목의 du¯o는 중국어로 다(多)를 의미한다 - 를 초현실적이고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 <메타-멘터리(Meta-Mentary)>(2022)는 일상 공간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메타버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과 그 대답을 담은 영상이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이러한 상황 자체를 불편해하면서 대답하기를 꺼리는 반면, 일본 만화의 코스튬을 입은 인물은 메타버스가 제공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운전기사의 답변이다. 그는 메타버스는 실재하지 않는 가짜라고 대답하면서 핸드폰 애플리케이션이 제공하는 가상현실에 접속해 경로를 통제해가며 일을 한다. 우리는 가상현실에 가장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이 인물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이 더 이상 균질적인 개념이 아님을 의식하게 된다.



Installation view of <Cao Fei_Duotopia> 
April 29 - August 19, 2023
Sprüth Magers, Berlin Photo: Timo Ohler



이어지는 작품 <듀오토피아(DUOTOPIA - 1st Edition)>(2022)에서는 메타버스가 질문이 아닌 3D로 렌더링된 도시가 자리한 환경으로 사용된다. 광활한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도시는 하부 구조를 지탱하는 문어와 곳곳에 있는 해파리 모양 때문에 오히려 거대한 해양 생물과 더 가까워 보인다. 상부 건축 중앙에 있는 마천루는 끊임없이 회전하는 원형의 벨트가 둘러쌓고 있는데, 여기서 발광하는 네온사인이 퓨처리즘 이미지를 자아냄과 동시에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의 미래주의 선언이 활기찬 톤의 내레이션으로 선포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아름다움, 다시 말해 속도의 아름다움 때문에 세상이 더욱 멋있게 변했다고 확언한다.”

이 긍정의 메타버스에서 탄생한 페이의 새로운 아바타 <오즈(OZ)>(2022)는 바로 옆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천천히 부유하고 있다. 15년전 작가가 창조했던 RMB City에서 파생한 아바타 China Tracy의 뒤를 잇는 ‘오즈’는 인간의 상체와 기계에 연결된 문어 다리가 결합된 모습을 하고 있다. 외계 생명체 같은 다소 기괴한 모양이지만 두 작품에 등장하는 문어 다리들이 흐느적거리는 것을 보다 보면, 메타버스 공간과 아바타 오즈를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수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 보이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발전적인 역사 흐름이 이 장소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순환’, ‘다중’, ‘부유’ 등의 이미지로 채워진 공간의 나른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작가가 가상현실 공간을 디스토피아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것이 주는 애매모호함, 복잡성을 음미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품을 천장에 매달아 관람객들이 누워서 이완된 상태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을 같은 의도로 해석한다면, 작가는 관람객이 아직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이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해 서둘러 확정된 답을 내리는 대신에 다양한 가능성을 마음껏 상상하면서 긍정적인 것들로 이곳을 채워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아닐까?



Installation view of <Cao Fei_Duotopia>
 April 29 - August 19, 2023
Sprüth Magers, Berlin Photo: Timo Ohler



메타버스에서 나와 갤러리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작품들은 물리적 공간을 다룬다. <휴일(A Holiday)>(2023), <불안정한 섬(Isle of Instability)>(2020), <아직 살아있는(Still Alive)>(2023)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작가가 경험하거나 목격한 삶의 모습을 담아냈다. <휴일>에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혹독한 봉쇄를 겪어야 했던 중국인들이 사람과 자연을 그리워하며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사회적으로 연합되고 싶어 하는 열망이 나타나고, <불안정한 섬>에는 작가와 그의 가족들이 싱가포르에서 겪어야 했던 봉쇄 기간이 표현됐다.

세상과 단절된 채로 혼자 놀이를 하는 아이의 모습은 외로워 보인다.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다. 작품의 무대는 거실이 되고, 배우는 자녀들로, 작가가 손으로 제작한 오브제들이 소품으로 활용된다. 외딴 섬에 고립된 것만 같은 환경에서도 예술가는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페이는 작품으로 말한다.



<MatryoshkaVerse> 2022 
Double Channel HD video, 16:4.5, color with sound, 
37min 38sec Courtesy the artist, Vitamin Creative 
Space and Sprüth Magers © Cao Fei, 2023



조금 다른 맥락이기는 하나, 출구가 없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다른 작품 <노바(NOVA)>(2019)는 전시장 위층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중국의 남성 과학자가 소련에서 온 여성 과학자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과, 인간을 디지털 분자로 변환하는 실험을 아들에게 했지만 이것이 실패함에 따라 그가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못하고 컴퓨터화된 세상에 갇혀 떠도는 디지털 영혼이 된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플롯이다. 하지만 그가 우주복을 입고 시공간을 떠도는 장면들은 기승전결이 명확한 영화적 구성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전형적 SF 영화와 결을 달리하는 시각적 요소들이 작품의 주된 구성 요소를 담당한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와 다르게 <노바>는 20세기 중국과 소련이라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이 때문에 레트로 퓨처리즘(retro futurism) 스타일이 진하게 묻어나는데 CRT 모니터나, 영사기, 필름 사진 같은 복고풍의 오브제들과 공산국가 소련의 복식, 흩날리는 붉은 깃발 등 작가가 포획한 과거의 이미지들이 초현실주의적으로 화면에 배합된다. 이미 자본주의가 보편적 세계체제로 작동하는 지금, 두 공산국가가 함께 그렸던 유토피아와 영광, 꿈은 지나간 과거의 편린이자 멜랑콜리가 되어버리면서 작품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가미한다.



<MatryoshkaVerse> 2022 
Double Channel HD video, 16:4.5, color with sound, 
37min 38sec Courtesy the artist, Vitamin Creative 
Space and Sprüth Magers © Cao Fei, 2023



그리고 <노바>는 2019년에 제작된 영화지만, 팬데믹 이후 새로운 감상의 관점을 획득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현실 세상과 단절된 채 대부분의 시간을 디지털 세계에 접속하며 보낸 우리들의 모습과 영화 속에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채로 아버지를 스크린을 통해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와 우주인 모티브는 같은 층에 전시된 작품 <마트료시카버스(MatryoshkaVerse)>(2022)에서 재등장한다. 작품은 몽골과 러시아 국경에 있는 도시 만저우리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은 러시아, 중국 문화가 혼재하며 빚어진 비현실적인 풍경을 하고 있다. 거대한 마트료시카(러시아 인형) 건물과 놀이 공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이곳이 실존하는 곳인지, 3D로 제작된 세트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술적이다. 급격한 경제개발의 과정이 지나가고 남은 이 거대한 흔적은 과격하다고 할 정도의 문화적 혼종성을 드러낸다.



<MatryoshkaVerse> 2022 
Double Channel HD video, 16:4.5, color with sound, 
37min 38sec Courtesy the artist, Vitamin Creative
 Space and Sprüth Magers © Cao Fei, 2023



또한 두 개의 채널로 상영되는 이 작품은 왼쪽에는 코끼리를 사냥하는 원시인의 모습을, 오른쪽은 현재 관광객의 모습을 병치하면서 만저우리 지역에 흐른 시간성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영상 작품에서 문맥과는 맞지 않는 동물과 오브제를 화면에 등장시키는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사용한 작가답게, 이 작품에서도 선형적인 시간이 흐르는 현실의 풍경과 부자연스러운 형이상학적 풍경을 때때로 조합한다. 그래서일까, 무한한 성장 서사를 동력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휩쓸고 간 이 도시의 풍경은 폐허 위에 세워진 신기루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 <듀오토피아>에는 페이가 체화한 서사부터 전 지구적으로 함께 겪은 사건 그리고 내부이자 외부로 존재하는 메타버스까지 다양한 모습의 현실과 비현실이 모여있다. 그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과 디지털의 경계마저 허물어지고 있는 복잡한 삶의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균열을 포착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넓게 펼쳐내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세계에서 파생하는 단일 서사 대신, 다양한 세계와 서사들을 긍정하는 방향성을 견지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그가 현재 가장 동시대적인(contemporary) 작가로 거론되는 이유다. 이제는 위기가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시대를 작품에 반영하는 페이가 그려내는 세상이 혼돈과 불안의 모습이기보다는 낙관적이라는 사실이 왠지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PA


<A Holiday> 2023 Single-channel HD
 video, 16:9, color with sound Courtesy the artist, 
Vitamin Creative Space and Sprüth Magers 
© Cao Fei, 2023

 

글쓴이 한정민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핀란드 알토 대학교(Aalto University)에서 현대미술과 이론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독일에 머무르며 미디어아트를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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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한정민 독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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