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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9, Apr 2023

“우리가 폭풍이다”

France

Avant l’Orage
2023.2.8-2023.9.11 파리, 피노 컬렉션 - 부르스 드 코메르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 이미지 Pinault Collection - Bourse de Commerce, Paris 제공

Danh Vo 'Tropeaolum' 2023 Exhibition view of 'Avant l'orage' Courtesy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Aurélien M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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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곧 생존을 위한 투쟁과 진화의 역사다. 약 440만 년 전 최초의 인류가 출현한 이래 인류는 각종 자연재해를 비롯해 기근, 전염병, 바이러스, 전쟁과 같은 수없이 많은 대재난을 극복하며 존속해왔다. 그 과정 속에서 인류는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재탄생했고, 더 나아가 이제는 자신의 피조물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로봇을 구현하며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는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고 도리어 자초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가는 재해와 재난, 사건 사고들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온 세상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전 세계는 심각한 에너지·식량난에 직면했고, 이와 동시에 지구촌 곳곳에서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가뭄과 폭염, 홍수와 혹한 등 전례를 찾기 힘든 극단적인 이상 기후 현상이 잇따라 속출하고 있다. 그야말로 다중 위기(polycrisis)의 시대, 과연 아직도 인간이 지혜로운 존재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인류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 그 위대한 서사는 여전히 유효한가.



Dineo Seshee Bopape
 <lerato laka le a phela le a phela le a phela
 / my love is alive, is alive, is alive>(detail) 
2022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s 
Courtesy Dineo Seshee Bopape  
© Dineo Seshee Bopape Commissioned 
and produced by TBA21-Academy



인간과 역사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다시금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현재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피노 컬렉션 - 부르스 드 코메르스(Pinault Collection - Bourse de Commerce)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폭풍이 오기 전에(Avant l’Orage)>전을 진행 중이다. 총 15명의 아티스트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이번 테마전은 제국주의, 냉전, 인종, 젠더, 디아스포라, 기후변화, 환경 등 다양한 이슈를 넘나들며, 인간의 무지와 욕망이 불러온 재앙들이 남긴 흔적들을 되짚어 보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일종의 예술가들이 쓴 ‘백서’로 볼 수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은 단연 중앙 원형홀, 로톤다(rotonda)에 전시된 베트남 출신의 덴마크 작가 얀 보(Danh Vo)의 인-시튜(in-situ) 작업이다. 정글짐처럼 가로, 세로, 수직방향으로 조립된 목재 구조물 주변으로 떡갈나무 기둥과 가지들이 기대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붉은 주홍빛 꽃들이 핀 덩굴이 기어오른다. 식물적 상상력이 무척이나 돋보이는 이 설치작품은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한련화(Tropeaolum)>다. 투명한 유리 천장 돔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 아래 펼쳐진 광경은 매우 ‘자연’스럽고 그저 평화롭게만 보이지만 사실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인위적인 힘에 의해 초래된 결과물이다.



Benoît Piéron <L'Ecritoire> 2023 
Various Materials 105×103×64cm  
Exhibition view of <Avant l'orage> 
Courtesy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Aurélien Mole



먼저 전시장에 놓인 나무 기둥과 가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악천후를 견디지 못해 병들거나 강한 태풍을 맞고 쓰러진 것들이다. 밑동이 처참히 꺾이고 베어져 제대로 서지 못하는 나무 기둥을 위해 작가는 미국 농부이자 액티비스트인 크레이그 맥나마라(Craig McNamara)가 경영하는 ‘지속 가능한 숲’에서 구매한 목재들로 지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정글짐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여기에 기막힌 사연이 있다. 맥나마라는 다름 아닌 전 미국 국방부 장관, 우리에게는 '베트남 전쟁의 설계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의 아들이다. 4살 때 공산화된 고국 베트남을 보트를 타고 탈출했던 보트피플 출신인 작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강하게 깨우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작가는 맥나마라에게 사들인 ‘건강한’ 목재들로 무용지물이 된 떡갈나무를 지탱하는 구조물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전쟁, 난민, 이민자, 기후, 환경 문제를 한 편의 시나리오로 촘촘히 엮어냈다. 그리고 한련화라는 꽃 이름을 작품명으로 달았다. 한련화의 학명은 그리스어로 승리의 전리품을 의미하는 트로피(tropaion)에서 유래했다.



Diana Thater <Chernobyl> 2011 
6 Video projectors, 6 media players 
Dimensions variables 14min 27sec 
Pinault Collection Exhibition view of 
<Avant l'orage> Courtesy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Aurélien Mole



둥근 잎에서 방패를, 붉은 꽃을 보고 피 묻은 투구를 떠올린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가 고대 로마인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적군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장식했던 관습을 이름으로 붙인 것이다. 전쟁이라는 악습을 상기시키는 아름다운 꽃처럼 얀 보는 본인의 자전적 경험과 인물, 작업 행위, 오브제를 메타포로 적극 활용하여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생으로, 파괴에서 회복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한다.

얀 보의 접근이 개념적이었다면, 매우 직설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표출하는 작업들도 있다.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다룬 다이애나 세이터(Diana Thater)의 영상설치작 <체르노빌(Chernobyl)>(2011)이 대표적이다. 사고 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의 체르노빌 풍경이 포착된 이 영상은 작가가 2,200㎢ 면적의 출입금지지역(CEZ)에서 실제로 목도한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스크린에 비치는 황폐해진 땅과 버려진 빈 집, 붕괴된 극장, 멈춰버린 관람차, 출입금지 표지판, 레닌 동상.



Tacita Dean <Foreign Policy> 2016 
Chalk on blackboard 244×244cm Courtesy 
Tacita Dean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Paris;
 Frith Street Gallery, London © Tacita Dean Exhibition
 view of <Avant l'orage> Courtesy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Aurélien Mole



이 부재와 사멸의 이미지들 위로 거친 벌판을 가르며 힘차게 달리는 한 무리의 말들이 중첩되어 등장한다. 이들은 멸종 위기 종이자 현존하는 유일한 야생말, 프르제발스키(Przewalski)다. 죽음의 땅에서 야생마들은 용케 살아남았다. 무인지대(No Man’s Land)는 인간의 잔혹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냉전 이데올로기라는 헛된 이념 갈등 속에서 인간이 빚어낸 참극의 무대였던 체르노빌은 이제 야생 동식물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다. 인간의 손길이 사라지자 자연이 번성하는 이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인간 가면(Human Mask)>(2014)은 지진과 쓰나미, 원전 폭발이 연쇄적으로 덮친 또 다른 피해 지역 후쿠시마를 비춘다. 얼핏 로봇을 연상시키는 하얀 일본 전통 탈을 쓴 채,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한 도시를 홀로 배회하는 원숭이, 그의 정체는 일본의 한 전통 술집에서 서빙 일을 하는 후쿠찬(Fuku-chan)이다.



Hicham Berrada <Présage> 2018 
Still Video installation with synchronized 
video projectors Pinault Collection 
Courtesy Hicham Berrada / kamel mennour
 / Photo DR © Hicham Berrada / ADAGP, Paris, 2023



처참히 무너진 후쿠시마를 말없이 응시하는 후쿠찬, 그 모습은 어딘가 기괴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단지 사람을 빼닮아서가 아니다. 가면 뒤에 가려진 표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울고 있을까, (비)웃고 있을까. 인간이 모두 자기파멸한 곳,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원숭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가면이란 장치들을 동원해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려낸 <인간 가면>은 우리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Robert Gober <Waterfall> (detail) 2015-2016 
Wool, cotton, wood, apint on epoxy putty and resin, 
recycling pumps, lights and water 292×170×163cm 
Pinault Collection Courtesy Robert Gober / 
Matthew Marks Gallery © Robert Gober Exhibition
 view of <Avant l'orage> Courtesy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Aurélien Mole



이 밖에도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가이아나 출신의 흑인 페인터 프랭크 볼링(Frank Bowling)은 강렬한 색채 아래 세계의 대륙을 은밀하게 형상화한 지도 회화(Map Paintings) 작업을 통해 식민주의와 인종 문제를 환기시키는가 하면, 베트남 출신 프랑스 작가 투-반 트란(Thu-Van Tran)은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사용한 7종의 제초제를 각기 색이 다른 드럼통에 담아 무지개 제초제(Rainbow Herbicides)라 부른 사실에 착안, 다양한 염료를 섞어 전시장 벽면 전체에 투사해 고엽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다. 또한 조나타스 지 안드라지(Jonathas de Andrade)는 어부들이 자신들이 낚은 물고기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상상의 애니미즘적 의식을 통해 먹이 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인간과 피식자의 관계를 역강조한다.



Frank Bowling <Texas Louise> 1971
 Acrylic on linen 282×665cm Pinault Collection
 Courtesy Frank Bowling © Frank Bowling /
 ADAGP, Paris, 2023 Photo: Charlie Littlewood



이처럼 전시는 세상을 뒤흔든 재난들을 나열하며,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요구한다. 인류의 재난 사에서 불가항력적인 천재(天災)보다 더 비극적인 대목은 이미 경험한 과오를 되풀이하거나, 예고된 위험을 알고도 방치한 인재(人災)다. <폭풍이 오기 전에>는 우리를 향한 경고다. 종말론을 잠식시킨 2000년, 파울 크뤼천(Paul J. Crutzen)은 인간이 지구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요 주체라는 인류세(Anthropocene) 개념을 제시했다. 여전히 학문적 논란은 많지만, 이미 현실화된 것 아닌가. 동일한 맥락에서 에마누엘레 코치아(Emanuele Coccia)가 남긴 전시평은 매우 간결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폭풍이다(Nous sommes l’orage).PA



Jonathas De Andrade <O Peixe> 2016 
Film Still 16mm transfered to HD file 
38min Pinault Collection Courtesy the artist 
© Jonathas De Andrade Exhibition view of 
<Avant l'orage> Courtesy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Aurélien Mole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을 전공, 「미디어 시대시각 예술의 해체미학」을 연구했으며, 현재 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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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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