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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9, Apr 2023

방정아_욕망의 거친 물결

2023.3.9 - 2023.4.16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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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하는 이들의 유연한 연대


새하얀 주광색 조명과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출된 완전무결의 공간 백화점. 소비의 주체와 객체 모두가 필사적으로 돋보여야 하는 이곳은 매번 들어설 때마다 외롭다. 신상 더미를 헤치며 괜스레 움츠러드는 어깨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무릅쓰고 6층 신세계갤러리에 도착한다. 쇼윈도의 상품 마냥 정갈하게 ‘진열’된 회화 대신에 어딘가 키치하게 느껴지는 걸개 형식의 그림이 전시장 중앙에 턱 하니 걸려있다. 화면 위에서는 일렁이는 선을 물결 삼아 몇몇 사람들이 유영하고 있고, 그 너머 빨래를 하다 우연히 고개를 돌린 여성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국제시장 어느 옷 가게에서 볼 법한 표범 무늬의 니트다.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작가 방정아의 <욕망의 거친 물결>(2023) 속, 해류에 몸을 맡긴 채 표류하는 인물들은 수면 위로 고개만 내밀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초연한 표정 속에서 ‘당신도 이 물결 속으로 들어와도 좋다고, 거친 물결 속에라도 우리가 함께라면 괜찮다’라는 천연덕스러운 속삭임을 읽는다.

작품의 뒷면으로 돌아서면 후면에 덩그러니 새겨진 글자를 통해 이 작품이 폐현수막을 이용한 것임을 알아차린다. 누군가의 욕망의 도구로 기능하다 목적이 달성됨과 동시에 버려진 현수막에 작가는 색과 선과 빛을 부여하여 ‘바다’라는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상업적 문구라는 상흔을 지닌 채, 이 (과거의) 폐기물은 표류하고 유영하는 이들을 품는 바다가 되기도 하고, 고목나무의 그늘처럼 전시장에서 찰나의 안락함을 부여하는 안식처로 기능하기도 한다. 전시의 출발점에 서 있는 다소 거친 제목의 투박한 이 작품 속에서 나는 방정아의 이번 개인전을 아우르는 키워드인 포용과 연대를 읽어낸다.



<멀리 봐>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53×45.5cm



줄곧 다뤄오던 ‘정치’에서 한걸음 물러난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다가간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록 표정은 없을지언정 그 누구 하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는 허영이나 욕망, 또는 처지를 비관하는 데서 오는 좌절이나 절망 또한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묵묵히 삶을 살아내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존재하는 주체일 뿐이다.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 역시 이들을 보고 동정이나 측은지심과 같은 위선적인 감정을 갖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가 저 화면 속의 인물이 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지극히 평범한 장면 속에서 우리는 되려 이해받고 위로받는다.

<젊음의 서글픔>(2022), <기 센 동네>(2022) 속 인물들은 소통이 부재하는 오늘날 그저 서로의 곁을 묵묵하게 지켜주는 것으로 소통을 대체하고 있으며 상호 연대하고 반려(伴侶)한다. 비단 인간뿐이랴, <숲 숲 고마워>(2023)의 식물들은 작가의 작업실 베란다 한 켠에서 서로 기대어 의지하면서 생명력을 얻고, <서로 다른 물결>(2023)은 서로를 껴안아 더 큰 바다를 만들어내며 <돌멩이와 마른 해초와 새 깃털이 엉킨 해변>(2023)에서는 대지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품는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꽉 끌어안는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삶 앞에 주저앉을 타자에게 <멀리 봐>(2023) 한마디를 건네면서 말이다. 어떠한 목적성 없이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타자가 되면서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공존의 모습이다.



<해풍. 결심들>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65.1×90.9cm



전시장 내 황홀하리만치 붉고 은밀한 방에서는 작가 본인과 그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동료이자 친구인 두 명의 지인들과 <백작 놀이> (2023)를 통해 또 다른 존재가 되어보기도 하고 <고상한 토론>(2023)을 시도하거나, 허심탄회하게 <결심에 대한 이야기>(2023)를 나눈다. <고상한 토론>에서 토론에 집중하지 못하는 작가의 모습이라던지 ‘결심’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추상성과 비현실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들의 대화는 그다지 흥미롭거나 대단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서로에게 곁을 내어 주는 한, 화면 속 공간을 부유하는 대화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그들만의 역사가 될 것이고, 상호 관계 맺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상한 토론>에서 두 남성은 하반신이 석고상인 ‘비인간’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람과 자연과 같이 동종 간의 관계 맺음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물과 같은 이종 간의 관계 맺음까지도 아우르며 더불어 산다는 것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축 발전>(2021)에서 보여주는 단면처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과 각종 부조리, 아이러니 그리고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인간다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발언의 방식이 과거에는 분열과 불안, 폭로와 고발의 형태를 지닌 시대적 언어였으나, 이제 그가 취하는 시대의 언어는 따스한 포용과 연대다. 자본주의의 꽃인 명품관의 사이에서 서로 기대어 자라는 작은 들풀과 꽃들의 연대를 이야기하고, 모든 것이 딱딱한 백화점에서 말랑한 감각으로 세상 모든 존재를 바라보는 삶을 이야기한다.  


* <백작놀이>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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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수연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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