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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6, Jan 2023

황란_Becoming Again

2022.11.2 - 2023.1.8 베이커 뮤지엄(The Bake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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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정교하게 상상된 아름다움


허리케인 이안(Ian)의 피해지역이었던 미국 플로리다주 남서부 네이플스에 있는 베이커 뮤지엄(The Baker Museum)에서 작가 황란의 개인전이 지난해 11월 2일 시작되었다. 전시 제목 ‘다시 시작하다(Becoming Again)’는 자연재해가 지난 뒤 보금자리를 정비해야 하는 지역민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시기에 적절한 메시지였다. 개막식 행사가 끝나고, 전시장으로 올라가 황란 작품을 직접 마주하는 관람객들은 “Amazing”, “Stunning”, “Fantastic”이라는 감탄사를 감추지 못했다. 관람객과 작품의 만남에 있어, 비판적인 안목에 길들어진 비평이 아닌 감상자의 교감이 작품에 더 에너지를 주고 있음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이번 전시는 황란의 초기 대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부처 이미지의 <휴식 II>(2009)를 포함하여 최근 샹들리에 시리즈 중 하나인 <숨겨진 숭고함>(2022)까지 서로 다른 작품들을 모은 작은 회고전이다. 다섯 개의 분리된 공간으로 나누어진 전시 중 가장 큰 공간에 있는 전시 제목과 같은 <다시 시작하다>(2017)는 관람객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다. 색실과 작은 구슬로 장식된 한국의 족두리는 동양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유도하고, 영상과 설치가 어우러진 작품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삶의 행복과 유한함을 담아내고 있다.

화사한 혼례 장면과 전시장 중앙에 작은 단추와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매화 설치 작품은 화려하게 만개하던 꽃이 지는 영상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에 비해 상대적인 고요하게 전개된 <물의 정원>(2010)은 벽면 안쪽으로 들어간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거대한 샹들리에 위로 끝없이 내려오는 물줄기 영상이 펼쳐져 있다. 작품 앞에 가지런히 놓인 방석은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평정하는 시간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 마지막 코스는 참여 프로그램으로 전시장에서 영감을 받은 관람객이 색색의 단추를 직접 골라 작가처럼 핀을 이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벽에 설치할 수 있다.

작가가 이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메시지는 분명했다. “인생에는 순환과 계절이 있고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이 작품을 보며 관람객이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한바탕 세상을 삼켜버린 허리케인 앞에 인간은 얼마나 미미한가, 우리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허리케인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전시장의 작품을 보며 ‘예술의 작품이 허리케인 같은 무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 종교, 지역, 문화를 넘어 교감이 확장되는 황란의 작품이 가진 진정성, 그가 추구한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휴식 II(Rest II)>
 2009 플렉시글라스에 메탈단추, 
핀 108×60in Courtesy of the artist



물성과 정신성의 만남

황란의 작품을 처음 대하는 관람객은 그 아름다운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작은 부분이 흔한 단추라는 점에 놀란다. 최근 작품에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크리스털이 추가되어 조명 아래 빛을 발하고 있지만 처음 시작은 단추와 핀이라는 단순한 재료였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단추에 핀을 끼워 벽에 고정하면서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재료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전시장 입구에 있는 <휴식 II>다.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둥근 광배를 배경으로 머리에 관을 쓰고 우아하게 앉아 있는 관음보살의 자태를 은빛 메탈 단추로 포착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하단에는 존귀한 부처의 모습을 이루던 작은 점(단추)이 세상 속으로 흩어져 가고 있다. 부처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1cm 남짓의 작은 단추는 전체 안에서 그 존재감이 없었지만 부처의 모습이 해체되면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개인이 하나의 메탈 단추라고 할 때, 각자의 본성 중 고귀한 것이 발현되어 부처가 되고 그 부처의 파편은 다시 개인이 되어 세상 속에 확산한다.

황란 작품의 주재료인 단추, 실, 핀은 하나의 물질이다. 어려웠던 시절 작가의 손과 마음에 들어온 이 작은 물질은 작품이라는 과정으로 승화되어 오고 있다. 현대 미술에서 물질을 전시장에 옮겨온 ‘오브제(Object)’의 개념은 일상과 예술 작품 사이에 간격을 좁혔고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의식의 확장을 가져왔다. 수많은 단추는 사물로 가졌던 본래의 기능을 지우고 창작의 메커니즘에서 중요한 은유의 열쇠가 된다. 단추가 부처의 몸이고, 단추가 궁궐의 기와가 되고, 매화 꽃잎이 되고, 거미가 되고, …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면 되는 것이다(견월지망)’라고 했듯이, 단추가 만든 부처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에 깊은 교감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의 의도, ‘마음의 치유’가 될 것이다.


상대성의 조화와 화합, 융합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주제는 황란 작품에서 가장 본질적인 삶과 죽음, 생명의 순환을 담아낸다. 생명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은 다시 생명으로 이어지듯, 황란 작품에는 상대적인 요소들이 병치되어 있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고정된 것과 유동하는 것, 눈이 부신 아름다움과 그것이 사라져가는 쓸쓸함, 화려함과 소박함, 전통과 현대,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같은 상대적인 것들이 서로 밀어내거나 저항하지 않고 순환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육중한 건축적 이미지가 강조된 작품 <빛의 시작> (2015)은 2015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 개인전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파리의 ‘개선문과 에펠 탑’의 이미지가 단추, 구슬, 라이트 박스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중반 한국의 궁궐, 남대문의 지붕 기와에 관심을 가지면서 둥근 단추로 지붕의 유연한 곡선을 연출하는데 자신감을 가진 작가는 프랑스의 문화적 상징을 자신의 시각 언어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일상의 단추가 아닌 한지라는 전통 재료로 한글 모형을 한 ‘한글 한지 단추’로 만들어졌다. 익숙한 단추의 둥근 모양으로부터 기하학적인 구성의 한글 자음과 모음을 건축과 연결한 기발한 작품이다.

단추, 핀 같은 가벼운 소재는 작품의 표면에서 이미지를 전개시키고 있다면, 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플렉시 글라스다. 투명해서 그 존재감이나 무게감이 전달되지 않지만, 작품이 공간에 서 있게 하는 지지대가 된다. 황란은 초기에 벽에 단추를 직접 박는 설치 작업을 했다. 전시가 끝나고 그 작품이 벽에 남아있을 수 없는 상황이면 수고스럽게 제작한 작품이 무산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작가는 그 해결하는 방안을 투명하고 강한 소재인 플렉시 글라스에서 찾은 것이다. 구조적 견고성을 주는 기술에 대한 이해는 작품의 여러 변주를 가능하게 했다. 과학과 예술,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실질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사이에서 작가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이란 결코 허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그 현실에는 서로 다른 것이 얽혀 있지만 작가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결하고 융합해 나가면서 자신만의 진정성과 독자성을 다진다.



<물의 정원(Garden of Water)> 2010 
플렉시글라스에 크리스털, 구슬, 핀, 
비디오 프로젝션 91×118in Courtesy of the artist



상상을 여는 아름다움

<치유하는 숲>(2021)에는 오직 하얀색의 매화, 하얀 지붕의 궁궐이 있다. 눈부신 황금빛 하늘을 배경으로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매화의 풍경은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고자 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발현된 것이다. 황란 작품에 매화, 궁궐, 샹들리에, 신부의 가체, 거미 같은 구상적인 이미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상을 여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또한 작가는 시각적 풍부함을 위해 영상 이미지를 작품에 겹치고 공간에 확대되는 효과를 주어 상상을 현실적 체험으로 구체화한다. 눈으로부터 마음의 즐거움을 여는 ‘상상의 샘’과의 만남은 아름다움의 차원을 상승시킨다.

최근 작품인 샹들리에 시리즈 중 이번 전시에 나온 <숨겨진 숭고함>은 크리스털 단추로 만든 ‘샹들리에’와 조선시대 왕비가 궁중 대례에 사용하던 ‘가체’가 겹쳐 있다.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두 오브제 사이를 연결한 것은 아름다움과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만남이다. 조명은 없지만 눈부신 빛이 가득히 퍼지는 것 같은 샹들리에와 가체의 존재감은 명예, 영광, 지고함이 어우러져 ‘대단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아름다움’이 그 자체가 된다. 삶과 죽음, 덧없음, 관계성, 상상력을 넘어가면서 만나는 아름다움은 이제 영혼을 위한 양식이 된다. 영혼은 아름다움 속에서 자란다.  


* <다시 시작하다(Becoming Again)> 2017 플렉시글라스에 한지 단추, 구슬, 크리스털, 핀, 비디오 프로젝션 94 1/5×165 1/3in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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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현수정 뉴욕 독립큐레이터, 뉴저지 몽클레어 주립대학 아시아미술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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