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7구에 위치한 마이욜 미술관(Musée Maillol)에 지난 9월 8일 새로운 전시가 내걸렸다. 티켓을 확인받고 입구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금발의 한 성인 여성이 초록색 스웨터로 머리를 감싸고 벽 안을 들여다보듯 선 뒷모습에 멈칫하며 시선을 빼앗긴다. 벽에 크게 프린트된 전시 개요 텍스트를 읽기도 전에 말이다. 저 여자는 뭘 하는 것일까? 의문을 가지는 찰나, 이 전시가 하이퍼리얼리즘, 즉 극사실주의 작품을 집결한 것이란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맞다. 뒷모습의 그녀는, 작품이다. 스페인 빌바오, 네덜란드 로테르담, 호주 캔버라, 벨기에 브뤼셀과 프랑스 리옹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은 바 있는 전시가 드디어 파리에 상륙했다.
Carole A. Feuerman <General’s Twin>
2009-2011 Oil on resin, Unique Variant of
6 + 2AP 61×38×20.5cm Courtesy of Institute
for Cultural Exchange, Tübingen
© the artist Consigned to Galerie Hübner & Hübners
전시의 타이틀은 ‘하이퍼리얼리즘. 이것은 신체가 아니다(Hyperréalisme. Ceci N’est pas un corps)’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실제 신체와 너무나 흡사하다. 보는 이들은 예술과 인체를 결합한 극사실주의 작품 앞에서 실제와 같은 크기의 완벽한 물질적 재현이 주는 일루전(illusion)에 큰 혼란을 느낀다. 실물보다 거대한 사실적 재현 작품을 마주한 감상자들은 어느새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로봇공학이 적용되었거나, 또는 순수한 예술적 창조물의 휴머노이드가 보여주는 혼란스러운 유사성에 마주해서는 자신의 지각능력이 심각하게 시험받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전시된 입체 작품들은 맨살, 간신히 감춰진 주름, 불룩한 근육, 빛나는 피부 등 인간의 신체를 아주 미세한 결함까지 놀랍도록 정밀하게 재현한다. 옷이나 신발, 머리카락, 자세 등은 실제보다 더 현실적이다. 해부학적으로까지 정밀하다 싶은 재현은 감상자들을 매료시키지만 동시에 혼돈에 빠지게 한다. 작품의 완벽성에 경탄을 금치 못하던 관람객은 이내 외관과 실존의 경계,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깊은 감상에 들어갈수록 실재하지만 진실이 아닌 패러독스적 이미지에 생경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풍경과 모습이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면, 실제적인 작품을 통해 자각과 성찰을 이끌어 내는 하이퍼리얼리즘은 결국 실제보다 더 현실적이라 할 수 있겠다. 현실의 정확한 복제품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Installation view of
<Hyperréalisme: Ceci n’est pas un corps>
September 8, 2022 - March 5, 2023
Photo: Thomas Faverjon
부제 ‘이것은 신체가 아니다’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에서 따왔다. 1928년 그가 담배 파이프를 유화로 그려 놓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썼을 때 사람들은 물었다. 파이프가 아니면 무엇인가? 마그리트는 이것은 파이프를 그린 그림일 뿐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말장난 같은 그의 답변에 사람들은 역시 괴짜 아티스트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사실 이 인식은 실제는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이며, 인간의 이성에 의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와의 차이는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예술이란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상상을 통해 해체, 재구성되어 작품의 실재로 재현되는 것이고, 이는 진실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 진실인지, 인간의 이성에 각인된 이미지가 진실인지, 이를 똑같이 재현해낸 작품은 진실이 아닌지 하는 의문 말이다.
Evan Penny <Self stretch> 2012
Silicone, pigment, hair, aluminium 122×81×69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Institute for
Cultural Exchange, Tübingen © Evan Penny
“이미지는 실재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극사실주의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시선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를 다시금 확인시키면서도 진실은 교묘하게 한 꺼풀 벗겨내었다.”
모방과 재현, 감탄과 혼동, 실제의 것과 비교. 인체는 언제나 예술적 영감의 일부였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부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다비드(David)>(1501-1504)에 이르기까지 조각작품은 미술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로 인해 유발되는 감정은 다양하다.
John DeAndrea <American Icon - Kent State>
2015 Griselle in oil on bronze with acrylic hair
Woman: 113×108.5×61.5cm Man: 18×182.5×61cm
Courtesy of Galerie Georges-Philippe &
Nathalie Vallois, Paris and Institute for Cultural Exchange,
Tübingen © the artist Photo: Clérin-morin photographie
이 전시에서 미술관은 하이퍼리얼리즘 장르의 선구자 격인 듀안 핸슨(Duane Hanson), 존 드안드레아(John DeAndrea), 조지 시걸(George Segal)이 전통적 기법(모델링, 몰딩 및 폴리크롬 적용)으로 신체의 사실적 표현에 집중한 작품을 가져왔고, 론 뮤익(Rone Mueck), 샘 징크스(Sam Jinks), 파비앙 메렐(Fabien Mérelle) 그리고 현대 미술 현장에서 끝없는 말썽꾸러기와 같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같은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특색을 살려 새롭게 변형한 하이퍼리얼리즘의 작품들을 가져왔다. 따라서 이 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이 사조가 발전, 진화되어왔는지를 반영해 40개의 작품을 초대해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미술애호가들에게 이들 작품이 현실, 예술 또는 단순한 복제 중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로서 기획된 셈이다.
전시는 작품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창작과정의 비밀도 일부 공개한다. 이 모든 작품은 추상적 표현은 모조리 제외하고 오로지 인체에 대한 세심한 표현에만 집중되어 만들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이퍼리얼리즘의 시초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위시한 196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맞서 등장한 반동이었기 때문이다. 액션페인팅 등의 기법으로 우연에 의존하고 작가의 심리적 표현에 집중한 추상표현주의, 거대한 소비사회와 광고의 이미지를 예술에 적용한 팝 아트에 이어 대두된 하이퍼리얼리즘은 실제와 절대적 진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신체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Tony Matelli <Josh> 2010
Silicone, steel, hair urethane and clothing
Edition of 3 77×183×5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Institute for
Cultural Exchange, Tübingen © Tony Matelli
이를 위해서는 카메라가 정확히 담아내는 이미지인 사진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는데, 아티스트들은 잡지 사진이나 개인 사진에서 작품 모델의 출처를 얻고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프로젝터 등을 사용하거나 실제 사람의 몸을 이용하여 주형을 뜨기도 하였다. 현재 하이퍼리얼리즘은 전 세계적으로 진화되고 발전되어 널리 퍼져 있다. 전시에 참여한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들이 이를 증명한다.
“작품의 목적은 그것이 아름다운 것에 있지 않다. 작품이란,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이 존재하는 대상을 극사실적으로 복사해 재현하는 뛰어난 기술일 뿐이라는 판단에 맞서 핸슨의 이 말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작품을 보다 보면 우리는 이들이 어둡고, 때로는 아이러니한 인간성의 거울이며 불합리의 한계까지 감상자들을 몰아붙이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Valter Casotto <Stringiamoci a coorte>
2017 Mixed Media 120×50×6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Institute for
Cultural Exchange, Tübingen © Valter Adam Casotto
Photo: Luca Vascon
마치 인간의 인체와 삶의 전시실에 온 듯한 경험을 하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주름지고 미세한 결함까지도 상세하게 표현된 전라의 인체 작품들뿐만 아니라 먼지를 뒤집어쓴 노동자들, 택배 상자를 깔고 누운 노숙자, 온몸에 털이 수북하게 난 소녀,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노파 등을 보면서 과연 우리의 인체와 사회를 이토록 주의 깊게 본 적이 있을까 성찰하게 된다. 현대 사회 속의 인간성에 대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의 현존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하이퍼리얼리즘 작품들은 이처럼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인간 복제’, ‘모노크롬’, ‘신체의 일부분’, ‘왜곡된 시선’ 등 6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 이 전시에서는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및 기타 아카이브를 통해 작업 중인 모습도 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정교한 기술, 때로는 놀랍고, 혼란스러운 발견과 깨달음, 성찰이 교차하는 전시는 2023년 3월 5일까지 계속되며 일부 작품은 마이욜 미술관의 영구컬렉션으로 소장될 예정이다.PA
글쓴이 김진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의상학과 불어불문학을 복수전공 졸업했다. 2016년 프랑스로 유학해 팡테옹 소르본 파리 1대학(Université Paris 1 Panthéon-Sorbonne)에서 조형예술 전공 학사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조형예술과 현대창작 연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사와 예술이론 연구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2020년 개설한 유튜브 채널 ‘예술산책 Artwalk’을 통해 현대미술 관련 콘텐츠를 업로드하며 구독자들과 교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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