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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2, Sep 2022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2022.6.1 - 2022.9.25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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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채색화인가?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논란에 대한 생각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에 대한 여러 논란을 지켜보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현대 민화를 전시한 것에 대한 기존 미술계의 반발과 저항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시공간에 기회를 줄 만큼 현대 민화가 가치 있냐는 불만이다. 채색화란 용어가 적절한가, 이야기해보자. 채색화는 말 그대로 색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표현한 그림이다. 중국에서는 단청(丹靑), 채회(彩繪), 채묵화(彩墨畵), 공필화(工筆畵) 등으로 불렀고, 우리나라에서는 단청, 채화, 엄화(罨畵), 생색화(生色畫) 등이라고 일컬었다. 일본에서는 채색화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이 용어를 받아들여 지금은 널리 사용하고 있다. 채색화는 특정한 나라, 어느 특정한 시기의 그림이 아니라 이미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개념이다. 마치 민화라는 말이 1929년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본의 오츠에(大津繪)를 지칭하기 위해 만든 개념인데 지금 오츠에만을 민화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양화와 한국화에는 세상을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먹을 통해 삼라만상을 나타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색을 통해 만물을 묘사하는 것이다. 전자는 수묵화라 일컫고, 후자는 채색화라 부른다. 외견상 두 기법의 그림이 평화롭게 공존했을 것 같지만, 실제는 둘 사이를 명확하게 차별하는 위계가 형성됐다. 중국의 화론을 보면, 문인이 즐겨 그렸던 수묵화는 높이 세우고 화공들이 그렸던 채색화는 낮춰보았다. 채색화란 개념은 단순히 기법에 따른 회화형식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통해 축적된 동아시아의 중요한 회화 언어다. 서양에는 채색화란 개념이 없다. 본디 태생이 채색화고 지금까지 계속 채색화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묵화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그림이다. 동아시아에서도 채색화로 시작했지만, 후대에 문인들에 의해 수묵화가 유행하면서 채색화와 수묵화란 이원적 구도를 형성했다.



전시 전경



한국의 전통회화에서 채색화의 가치를 처음 주목한 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Asian Art Museum)의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였던 백금자(Kumja Paik Kim)다. 그는 1998년 기획한 전시 <희망과 열망: 한국의 장식화(Hopes and Aspirations: Decorative Painting of Korea)>에서 한국 채색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채색화를 고분벽화, 불화, 궁중회화, 민화로 분류했다. 채색화는 민화의 상위개념이다. 그는 처음에 채색화를 전시회의 제목처럼 ‘장식화(decorative painting)’로 지칭했다가, 2006년 『한국의 미술: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 컬렉션 하이라이트(The Art of Korea: Highlights from the Collection of San Francisco’s Asian Art Museum)』 도록에서는 아예 우리 발음대로 ‘Chaesaekhwa’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한국 채색화의 시작은 고구려 고분벽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이 역사시대 붓그림으로 전환되면서 등장한 그림이 고구려 고분벽화인데, 그것은 수묵화가 아니라 채색화다. 고려시대에도 그 시대를 주도한 그림이 고려불화란 채색화다. 채색화는 한국회화의 정통성을 갖고 풍성하게 발전하다가 조선시대에 그 판도가 바뀌었다. 중국에서 전래된 문인화-수묵화가 주류로 부상했고, 한국의 뿌리 깊은 전통을 가진 채색화는 비주류가 되었다. 조선을 이끌어가는 세력인 양반들이 문인화-수묵화를 선호하면서 비롯된 현상이다. 채색화는 궁중회화나 불화나 무속화와 같은 종교화처럼 실용적인 그림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고, 일반인이 좋아하는 감상화에서는 그 세력이 미미했다.



성파 <수기맹호도> 2012 
패널에 옻칠 162×570cm 작가 소장



그렇다면 현대 민화는 어떠한가? 생각보다 현대 민화에 대한 편견이 깊고 복합적이다. 현대 민화에 대해 가장 많이 쏟아낸 비판은 현대 민화가 베끼기나 색칠 공부라는 인식이다. 이는 현대 민화가 아마추어의 취미생활로 시작해 모사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택한 데서 비롯한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아, 모사를 단순한 카피라고 매도했다. 사실 모사는 중국 남제시대 사혁(謝赫)이 제시한 창작 방법인 육법 중 하나인 전이모사(轉移模寫)에서 나온 말로 전통 속에서 창작을 모색하는 원리를 보여준다. 현대 민화에서도 모사가 미술의 대중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고 민화 붐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는 선기능을 했다.

채색화는 문인화의 전통적인 편견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엘리트 집단인 문인이 수묵화를 문인화의 핵심 기법으로 선택하면서 수묵화는 자연스럽게 격조 있고 고상한 그림 형식으로 부상했고, 채색화는 직업화가의 그림과 더불어 폄훼의 대상이 되었다. 북송의 소동파(蘇軾)는 형사로 그림을 논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다름없다고 직업화가의 그림인 화공화(畫工畵)를 비판했다. 남송의 조희곡(趙希鵠)은 “가슴속에는 만권의 책이 있고, 눈으로는 앞 시대의 진귀한 명화를 실컷 보며, 또한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천하의 반은 되어야 바야흐로 붓을 댈 수 있다”며 문인이 그린 문인화가 직업화가들의 그림보다 우월한 이유를 강조했다.




스톤 존스턴(Stone Johnston) <승화>
 2021 4채널 비디오, 사운드 설치 12분



신분 차별에서 비롯된 문인화적 편견이 오랜 세월 동안 중국 화단은 물론 조선 화단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을 이끌어간 선비는 문인화를 내세웠고, 정신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졌다. 특히 김정희에 의해 문인화론이 보다 정예화되고 영향력을 가지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화단은 전통적인 문인화론의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문인화-수묵화는 회화를 격조 있는 그림, 정신성이 높은 그림으로 한층 끌어올린 역할을 했지만, 백성의 삶과 밀착하는데 소홀한 역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채색화 중 하나인 민화에 대한 편견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민화를 ‘속화(俗畵)’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인화의 관점에서 격조가 낮은 그림, 저속한 그림을 뜻했다.

그런데 조선의 화단을 지배했던 문인화론이 현대에도 유효한가? 정신성만 중요하고 기법은 경시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높은 학문과 견문을 바탕으로 그린 격조 있는 그림만이 좋은 그림일까? 뜨거운 가슴으로 그린 감성적인 그림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최근 수묵화-문인화가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해가는 현대에 전통회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대중문화 시대에 우리가 불러낸 전통은 수묵화-문인화가 아니라 민화와 궁중회화와 같은 채색화다. 한국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취향에 부합하면서, 옛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랜 세월 불공평한 대접을 받았던 채색화가 오늘날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는 현상이 흥미롭다. 민화와 같은 채색화는 단순한 전통의 복고가 아니라 전통을 현대와 강하게 연결해 한국 현대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전시 전경



지금은 민화의 시장이 확대되고 유능한 젊은 미술작가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창작민화가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한국적인 색채와 이미지라는 막강한 무기로 무장한 현대 민화는 오히려 외국에서 관심이 높다. 현대 민화의 책거리 전시가 세계적인 박물관 빈 벨트뮤지엄(Weltmuseum Wien)에서 열리고 있고, 원래 오는 11월 1일까지 예정했던 전시를 2023년 4월까지 연장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처음 취미생활로 시작된 현대 민화가 최근에는 창작영역이 확대되면서 상당한 미술 운동으로 급부상했다. 전통미술이 복고풍으로 유행한 경우도 드물지만, 미술의 대중화가 자생적으로 이뤄진 일은 세계미술사에 유례없는 현상이다. 지나치게 서양적이고 중국적인 것에 휩싸인 우리에게, 민화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힘이 있다.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데 관심이 있거나 한국적인 이미지로 세계화하려는 작가에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편견이나 이해관계, 이데올로기의 색안경을 훌훌 벗어 던지고, 우리 전통의 보석 같은 존재를 갈고닦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 이정교 <사방호> 2022 자작나무 합판에 채색 800×800×235c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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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병모 한국민화학교 교장, 경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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