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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1, Feb 2020

권민호_새벽종은 울렸고 새아침도 밝았네

2019.12.22 - 2020.2.16 문화비축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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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의 시대, 노동을 기억하는 법



문화비축기지는 1970년대 만들어진 산업시설로 비상시를 대비해 석유를 비축하던 탱크들로 이뤄진 공간이다. 40여 년을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다가 2017년부터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유산을 문화공간화 하는 사업은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어 전국 곳곳에 여러 공간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본래 시설이 갖고 있던 특징을 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제약으로 인해 본래의 모습이 제거되고 그 공간이 갖는 상징성과 기억을 놓쳐버리기 쉽다. 그러나 문화비축기지의 T4 공간은 저유탱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매우 강한 인상을 준다. 높은 층고를 가진 원형의 공간이자 2열로 기둥들이 반복적으로 서있는 전시장은 작가에게나 기획자에게 쉽지 않은 공간이며 동시에 매우 도전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권민호의 개인전 <새벽종은 울렸고 새아침도 밝았네> 2020년 문화비축기지에서 개최되는 첫 전시이다. 전시를 위해 폐쇄된 원래의 입구를 등지고 서면, 정면의 작품 <포항제철+당인리 발전소>를 중심으로 4개의 작품들이 후면에 둥글게 돌아가며 배치되는 구조로 설치되어 있다. 협업작가인 김인근(미디어아티스트)의 사운드아트 소리가 공간을 감싸고 인터랙티브하게 반응하는 이재옥(인터랙티브 디자이너)의 조명 장치들과 함께 묵직한 공간의 분위기와 어울린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형의 제도 책상들 위로 겹쳐진 기름종이들이 있고 그 주변에 도면을 그린 누군가의 것일 법한 오브제들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 뒤로 같은 크기의 화면이 있어 도면이 펼쳐진 위에 짧은 애니메이션 영상이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작가가 조합하고 콜라주한 도면, 그리고 직접 그린 도면과 드로잉들이 겹쳐진 위에 또 한 겹의 영상이 움직이는 것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무수한 톱니바퀴들이 돌아가고 터빈 장치를 움직이는 증기가 뿜어진다. 철로 위에는 기차가 계속 들어왔다 나가고 조명은 끊임없이 회전하며 빛을 쏜다. 모든 것이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근대를 넘어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기계장치들과 건축물들-포니자동차, 포항제철과 당인리 발전소, 석어당과 주상복합 건물, 현대 중공업이 생산한 국내 최초의 유조선 등-이 마치 생명체처럼 반복해 움직이고 작가가 그 시대를 상상하며 떠올린 아기돼지, 암탉과 병아리, 그리고 광대가 그려진 대형 풍선 등이 은유적으로 뒤섞여 있다.


작가는 중학생 시절 친구 집에서 봤던 친구 아버지의 금고 속 장면을 떠올렸다 한다. 으레 금고라고 하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군것질 거리가 가득했다. 이질적인 두 이미지가 교차된 그 순간이 작가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고 그것은 혼돈스러운 그 시대를 표현한 작품들로 환원되었다. 차갑고 기계적인, 성장을 위해 온 나라가 내달렸던 그 시기가 권민호 작가의 작품을 통해 마치 모던 타임즈보다는 윌리 윙카의 공장에 가까운 환상과 향수가 뒤섞인 이미지와 감정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감정은 작가가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노동의 의미, ‘새아침에 새벽종을 들으며일터로 나가던 그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의 삶과 노동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가 공감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주도한 산업화의 시대는 역사라는 집단의 기억 속에서 공적 권력에 의한 폭력, 가치의 충돌 등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개인의 삶 안에서는 지난 세월을 열심히 살아낸 나와 내 가족의 수고와 추억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건축가들도 사용하지 않는 기름종이 위에 목탄과 연필로 선을 긋고 손으로 직접 드로잉을 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에 의한 수고와 그것으로부터 얻어진 성과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산업화시대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들어선 지 오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혼돈을 겪어가며 우리는 각자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가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최첨단의 시스템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과거의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소박한 즐거움을 좋아하는 레트로 유행을 보면 그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은 것 같다. 도면은 건물이든 기계든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한 밑그림이다. 평면의 도면을 보고 있으면 3차원적으로 펼쳐진 공간이 상상된다. 작가가 그린 도면 속에서 먼 과거의 것들과 현재가 혼란스럽게 얽혀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상상한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에 기대어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포항제철+당인리 발전소목탄연필 포토 콜라쥬디지털 애니메이션드로잉애니메이션스크린 240×240cm, 1080×1080px, 400×400cm 사진권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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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권성아 큐레이터, 아시아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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