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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3, Dec 2021

이원호_오만가지

2021.10.29 - 2021.11.30 자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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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모두의 이야기


이원호의 개인전 <오만가지>는 탑골공원 근처 국밥집에서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정말 그에게서 시작일뿐인 것이 일곱 대의 모니터에서 일곱 명의 연기자가 연기하거나 설명하는 ‘그’, 유회장은 일곱 명의 필자가 국밥집 남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낯선 글을 받아들었고 사전에 연습을 한 것도 아니지만 전문 연기자들의 독백은 꽤나 재미가 있고 몰입도도 매우 높다. 나아가 여기서 긴장감을 높이는 것은 연출자들의 개입이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 온전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가 감정을 잡아가는 과정, 연기를 판단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연출의 개입, 다시 반복되는 연기자의 대사에 이르는 과정이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만가지>는 필자와 연기자, 연출, 작가 이 네 명의 구성원이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이제 막 생성되고 있는 인물을 둘러싼 네 주체의 서로에 대한 이해, 수용, 충돌의 지점이 발생한다. 이 편집되지 않은 잉여의 과정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 과정에서 탈락되는 것, 즉 상실되는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우리의 삶이, 이 사회가 남겨진 결과들만 기억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기체로서의 시스템에 대한 은유

이원호는 다양한 주제와 방법으로 사회를 다룬다. <부·동·산>(2015)과 <부(浮)부동산>(2015)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기본 요소이면서 욕망과 계급, 정치의 중심이 되는 부동산 문제를 실제 부동산 사장님의 매물 브리핑 퍼포먼스와 노숙자의 집인 종이박스를 구매하는 행위로 보여주었다. <진품명품전(傳)>(2015)은 오래된 골동품 감정 프로그램에 감정을 신청한 작품들을 구입해 전시장에 가져다 두었는데 감정을 신청하는 이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로또를 산 이들의 토요일 오후가 그렇듯 뜻밖의 행운을 바라는 인간의 심리까지도 보여주었다. 또한 연기자와의 작업을 처음으로 선보인 <적절할 때까지>(2019)에서는 연기자들에게 작가에 관해 쓰인 비평 글을 읽게 했다. 글을 읽어 내려가던 전문 연기자가 멈칫하는 부분은 비평의 소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작가가 대상에 대한 깊은 관찰을 토대로 이러한 작업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사회의 변화 속에서 발생하는 사정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는 작은 것들, 그 디테일에 관한 통찰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잃어버리는 사람들

이원호가 유회장이라 이름 붙인 남자를 만난 곳은 탑골공원이다. 작가는 이 장소가 뒷 광장과 익선동, 즉 낙후된 곳과 소위 ‘힙한’ 곳, 노인과 청년 세대, 노숙인과 젊은 소비층 등 다양한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세대와 빈부, 이데올로기와 같은 사회의 경계들이 다층적으로 충돌하는 곳이 바로 여기인 것이다. 유회장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각각의 독백에서 이 인물은 남자이기도, 여자이기도, 치매에 걸려 아홉 살 아이가 된 노인이기도 하다. 제목의 ‘오만가지’가 이야기하듯 일곱 필자의 마흔 아홉 개의 이야기는 한 사람에서 출발한 일곱 필자의 창작물이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그와 나 사이의 공백, 필연적 틈

이야기의 카타르시스는 보통 주인공에 동화되는 데에서 온다. 그런데 그와 나 사이의 성별, 세대, 정치색의 차이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지점도 있다. 이원호는 이 이해의 균열을 보여주되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협업은 <부(浮)부동산>에서는 노숙인들과 함께였고 <층 Ⅰ>(2013)에서는 행인의 적선을 구걸하는 이들과 함께였다. <오만가지>에서 필자와 연출자, 연기자에 이르기까지 그의 협업의 주체들은 변화하지만 협업의 과정에 공통되는 것은 협상이다. 노숙인과 걸인들에게선 각각 종이박스와 적선 받은 돈, 적선 도구를 흥정을 통해 구입했고, <오만가지>에는 유회장을 구현하기 위해 하나의 정체성을 두고 협상을 벌이는 연기자와 연출자, 작가가 등장한다. 이원호의 사회와 시스템, 관계에 대한 성찰은 우리가 다름으로 판단해 배제해버리는 그 균열을 틈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우리

사실 개인의 무용담은 환영받기 쉽지 않다. 범인의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귀 기울여 들을 성의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역사는 무수한 개인들의 이름을 삭제한 채 주요 사건의 연대기로만 남는다. 그러나 이원호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유회장’의 이야기를 마흔 아홉 개의 갈래로 만들고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그 길을 열어 두었다. 그럼으로써 이 이야기들은 모두의 이야기이자 모두에게로 향하는 이야기가 되고 무수한 상호작용, 이해, 의미와 가치의 발견이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여기서 작가와 협업자는 비단 연기자, 필자, 연출가일 뿐 아니라 탑골공원의 그들 그리고 ‘YOU’ 바로 당신이다.


*이원호 <오만가지> 2021 다채널 비디오, 49개의 에피소드, 종이에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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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배혜정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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