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182, Nov 2021

몸이 선언이 될 때

2021.10.13 - 2021.11.3 보안1942 아트스페이스 보안 3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몸과 선언의 행간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일환 전시 <몸이 선언이 될 때>는 낙태죄에 맞서온 생존과 투쟁의 매끄러운 서사를 그리지 않는다. 몸이 선언이 될 때, 각성한 몸들은 다시금 생존과 쟁투의 선언을 끌어안으며 스스로를 재편하고 관계 맺는 변화의 과정을 기대하지만, 각성한 몸들의 집단적 용기는 더러 오랜 부침과 실패를 맞고 피로와 체념으로 점철되곤 한다. 그럼에도 선언이 된 몸들은 규범으로부터 서로를 이어내며 불안과 위험을 견디며 빗장을 부순다. 그런 점에서 전시 제목은 순서를 바꿔 ‘선언이 몸이 될 때’로 읽으며 행간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아트스페이스 보안 3에서 2층 보안북스로 이어지는 동선은 감각적 재현과 출판물을 각각 배치하여 교차적 감상을 의도한다. 지하에 위치한 본 전시장은 한낮의 광장이 심중에 품어온 몸들의 내밀함과 고백이 품은 하강의 감각을 주지시킨다. 밀도 있게 채워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은 각각의 작품들을 연결할 수 있다. 입구에는 일렉트라 케이비(Elektra KB)의 <시위피켓_AAA>(2021)가 ‘나는 애초에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I was Never Yours)’는 선언으로 포문을 연다. 선언은 몸을 통제해온 국가 이데올로기와 인구정치의 배경을 향한다. 한국전 전후로 몸에 반공을 새긴 전쟁포로를 담은 전규리의 <산증인>(2021)에 이어, 이길보라의 <My Embodied Memory>(2019)는 남성과 국가가 등치된 배경 속에 준비되지 않거나 친족의 요구로 임신을 중지한 작가와 어머니, 할머니의 자전적 고백을 잇는다. 여성 혐오의 역사는 남아선호 습속에서 여아 낙태를 강제하지만, 낙태죄의 그림자는 안전은커녕 권리를 박탈하고 선택을 방치한다.


임신 중지는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고립 속에 홀로 떠안아야 하는 일로 치부된다. 그렇기에 3대에 걸쳐 반복되는 경험을 연결하는 작가의 시도는, 체념의 일상에 기인한 고백일지라도 신뢰와 용기를 길어낸다. 자기 고백에서 시작하지만 자조적으로 끝맺지 않는 작업들은 키라 데인&케이틀린 레벨로(Kira Dane & Katelyn Rebelo)의 <미즈코>(2019)에서 일러스트와 종이 재질의 몸을 찢고 나오는 실타래로 원치 않은 임신과 유산을 회고하는 장면으로 연결성을 더한다. 영상은 태아살해와 낙태권으로 양분하는 단선적 구도 너머 임신 중지가 언어로 봉합할 수 없는 몸의 단절과 상흔, 부채와 우울의 공백을 남기고 있음을, 그렇다 해도 자신의 선택을 타율적 판단과 강제에 양보할 수 없음을, 하여 충분한 회복과 애도를 위한 시간과 지원이 필요함을 환기한다. 재생산권을 통제받는 여성은 남아선호 환경의 생존자이기도 하다. 전규리의 <다신, 태어나, 다시>(2020)는 육십갑자의 과도한 의미가 여아의 생사여탈을 좌우해온 역사를 겨냥한다. 1990년 백마년생 여성은 길들이기 어렵다는 편견이 해당연도의 여아 유산을 부추겼음을 말하는 작가는, 생존했을지라도 ‘기센 여자’ 프레임이 삶의 궤적마다 따라붙었음을 기억한다. 60년의 간격을 관통하며 또 다른 백마띠 여성의 계보를 가늠하는 작업은 당신의 삶이 내 존재를 보증한다고 확언한다.




강라겸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 2021  

싱글채널 비디오, 모니터, 사운드, 타투 시술 의자,

혼합설치 4분 15초 가변 크기

<몸이 선언이 될 때> 제작지원 작품




국가 이데올로기의 착취 속에 희생당하고 생존해온 여성의 역사는 다시 쓰인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울퉁불퉁한 연대기: 터져 나온 저항, 몸의 발화들>(2021)이 정리한 사건과 구호 타래는 역사를 경유하고 개인의 작업에 가닿으며 전시장 바깥을 향한다. 이는 곧장 폴란드의 낙태법을 둘러싼 투쟁 현장을 기록하고 자료를 모은 에이피피(A-P-P, Archive of Public Protest)의 <거리 투쟁의 아카이브>(2020-)로 이어진다. 낙태죄 폐지요구는 국경을 넘는 연대를 만들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하지만 운동은 좌절 속에서도 장애와 빈민, 퀴어, 해고노동자, 예술가를 망라한 연대의 그물을 펼친다. 투쟁은 제도적 변화뿐 아니라 통제와 규율에 반목하는 몸들을 기억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고단한 삶과 투쟁의 궤적에도 제도에 포획되기를 거부하는 몸들은 이상한 친족을 이루며 비규범적 공존을 꿈꾼다.


트랜지션(transition) 중인 몸을 아카이빙하고 퀴어 공동체의 장면들을 배치한 일렉트라 케이비의 <핵친족주의 이후의 퀴어적 변화들: 돌봄과 상호 원조의 급진적 가족 구조, 사이보그와 여성 신을 중심으로>(2021)는 대각선 반대편 모서리에 배치된 강라겸의 <소원도>(2013),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2021)와 묘한 공명을 이룬다. 신화적 모티프를 빌려 국가와 친족을 초과하는 재생산과 관계의 이야기를 몸에 다시 새기는 강라겸의 작업은, 앞서 <산증인>의 전쟁포로 옆에서 다른 방식의 각인을 행하며 몸을 쓰다듬는다. 희생과 착취로부터 연대와 투쟁의 시간을 엮는 작업과 기록들은, 실패와 부침의 일상에서도 선언이 있기까지 필요했을 기억과 애도를, 선언이 누락한 몸들의 공동체를, 새로운 존재를 환대할 수 있는 선언들의 끝없는 갱신을 시도하며 고백과 응답의 신호들이 웅성이는 어두운 카타콤으로부터 ‘함께 살기 위한’ 변화와 쾌락의 성좌를 반짝인다.  


* 에이피피(A-P-P) <파업 신문(The Strike Newspaper)> 2020 신문 인쇄물 58×38cm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남웅 미술평론가

Tag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