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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9, Aug 2021

황재형: 회천回天

2021.4.30 - 2021.8.2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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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 화가가 짓는 ‘사람 사는 세상’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황재형의 작품을 보면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말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의 작품은 도끼였다. 우리의 얼어붙은 안이와 무신경을 깨트리는 큰 도끼였다. 전시 <회천(回天)>은 ‘광부 화가’가 40년 동안 벼려온 도끼 같은 작품들을 세 파트로 나누었다. 1부는 인물(‘광부와 화가’), 2부는 풍경(‘태백에서 동해로’), 3부는 인물과 풍경(‘실재의 얼굴’)으로 편집해 광부들의 삶을 ‘그때 그곳’에서 ‘지금 이곳’의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된 곳으로 확장시킨다.


작품마다 사람살이의 체취와 온기로 담금질 된 빛을 품고 있었다. 그 빛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약손이자 작가의 마음이다. 광부의 작업복을 그린 <황지330>(1981)은 빛에 의해 드러난 부분과 그림자가 생긴 부분이 공존하며 비극적인 상황을 예각화한다. 특히 그림자 속의 신분증을 자세히 묘사하여, 작업복이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유품임을 드러낸다. 덕분에 우리는 갱도 매몰사고로 사망한 작업복의 주인공(‘김봉춘’)을 알 수 있고, 구체적인 인간을 통해 막장 속 광부의 세계로 진입한다. 곁에는, 헤드랜턴에 의지하며 갱도에서 석탄 가루가 내려앉은 도시락을 먹은 광부들이 있다. <식사> (1985)에서 빛은 광부들의 실상을 극화하는 장치가 된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불빛에 의지하며 허기를 달래는 광부들의 현실이 극명하게 부각된다. 


갱도 밖에는 개천을 물들이는 노을의 지독한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작은 탄천의 노을>(2008)은 탄가루를 비롯한 생활 오수가 뒤섞인 사북의 탄천에 금빛 노을이 비친 광경이다. 오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 위에 도금된 노을로 누렇게 번들거리는 탄천은 우리를 참혹한 현실로 데려간다. 작가는 1990년부터 탄광촌에서 대자연으로 시선을 넓힌다. 그에게 풍경은 사람이었다. “광부의 표정은 곧 집의 표정이다. (중략) 산의 표정은 그곳 사람들의 표정이다. 사람은 산을 닮고 산은 사람을 닮았다.” 그래서 설경의 황톳빛 산 능선과 계곡을 그린 풍경에 ‘어머니’(<어머니>(2005))라는 제목을 불일 수 있었다. 이때, 대상의 내면에 육박하고 사실성을 획득하기 위해 흙과 석탄을 물감에 섞어서 실감을 극대화한다. 삶과 예술의 일체화를 꾀했던 작가는 1980년대에 탄광에서 3년간 광부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경험을 자산으로, 지금도 여전히 탄광촌과 광부들의 삶을 치열하게 ‘전신(傳神)’한다.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서스테인웍스




절망 속에도 삶이 이어지듯이, 빛은 <드러난 얼굴> (2017)처럼 머리카락 드로잉에도 동행한다. 머리카락은 예전에 도입한 판자 같은 오브제의 연장선에 있다. 수많은 머리카락을 붙여서 제작한 작품들은 탄광촌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아름답고도 섬뜩하게 구현한다. 여기서 빛은 머리카락 조형에 생기를 부여하며, 과거의 흑백사진이나 회상 장면처럼 삶의 심연을 건드린다. 나아가, 흑연으로 그린 <알혼섬>(2016)에서 빛은 천길 물속처럼 깊어진다. 빛의 절정은 <아버지의 자리>(2011-2013)와 <존엄의 자리>(2010)다. 캔버스 가득 클로즈업한 늙은 광부 부부의 초상은 이번 전시의 소실점이 된다. 왜냐하면 전시 작품들이 이들 부부에게 수렴되기 때문이다. <황지330>은 <아버지의 자리>의 노인이 입었던 작업복이 되고, <어머니>는 <존엄의 자리>와 내통한다. 그래서 전시는 두 노인의 삶으로 재구성한 흑백의 다큐멘터리 같다. 진폐증에 걸린 ‘아버지’의 눈빛과 백두대간처럼 팬 어머니의 주름이 모진 역사를 증언한다. 


작가는 대상에 내재한 빛을 채굴하는 ‘광부(光夫)’다. 핍진한 묘사로 소외된 광부의 삶에 밀착하며, 빛의 속성인 희망을 형상화한다. 이는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배달노동자의 과로사나 평택항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환기하며, 막장은 탄광촌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도 있음을 알려준다. ‘검고 어둡지만 결국 희망을 노래하는’ 작업은, 부단히 ‘사람 사는 세상’으로 향한다. 그의 작품은 빛을 문, 속정 깊은 도끼다.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서스테인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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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아트북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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