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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8, Nov 2014

아카이브 충동

Archival Impulse

오쿠이 엔위저는 지난 2008년 뉴욕에서 사진전 '아카이브 열병: 현대미술의 도큐먼트 사용(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을 기획하며 자크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과 할 포스터의 「아카이브적 충동(An Archival Impulse)」, 이 두 글에 영향을 받아 아카이빙의 의의와 시대요구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아카이빙을 접목한 전시 형태가 봇물 터지듯 증가하고 있다. 25년 전 쯤 퐁피두센터에서 열렸던 '지구의 마술사들' 전을 필두로, 올해 개최된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베를린 비엔날레, 세마 비엔날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시와 행사들이 아카이브를 주요 맥락으로 다루고 있고, 앞으로 다가올 엔위저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 기획·진행 문선아 기자

'고백:광고와 미술, 대중'(일민미술관, 2012.5.18-8.19) 전시전경. 한국 광고의 역사 120년을 둘러보고, 대중소비 이미지에 내재된 구체적인 욕망과 이념, 가치체계를 파악해 보고자 기획됐던 전시다. 광고에 대한 아카이브를 선보였을 뿐 아니라 내용과 관련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같이 선보이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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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시에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예술가들은 그 스스로 아카이브를 과거의 기록으로서만 인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형식을 작업을 만드는 틀이자 과정으로 이용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확실한 트렌드엔 비판의 목소리도 동반된다. 새로운 담론을 창출하지 않고 과거의 것을 현재화 한다는 비판과, 현재 순수미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비판 등이 그것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아카이브 충동이 전시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 또 어떤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한 전시가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분명한 형태로 향후 지속될 것인지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특집은 총 세 파트로 구성된다. 큐레이터 박재용은 아카이브 충동과 관련하여 그 의의와 최근 미술계 경향을 제시한다. 이어 편집부가 정리한 아카이브 성향이 두드러지는 최근 16개의 전시(혹은 비엔날레)가 ‘아카이브를 위한 아카이브’와 ‘전시가 아카이브가 될 때’로 나눠 소개된다. 끝으로 심상용 교수는 아카이빙화된 큐레이팅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SPECIAL FEATURE Ⅰ

아카이브 열병이라는 전염병_박재용 


SPECIAL FEATURE Ⅱ-Ⅰ

1. 아카이브를 위한 아카이브_문선아

2. Disobedient Objects

3.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4.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

5. 아파트 인생

6. 제 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한반도 오감도

7.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카이브로 읽는 아르코미술관 40년

8.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9. Voyage to Biennale-한국현대미술비엔날레진출사 50년


SPECIAL FEATURE Ⅱ-Ⅱ

전시가 아카이브가 될 때_문선아

1. 총체적 난 극

2. 박이소 - 개념의 여정

3. MAGICIENS DE LA TERRE

4. 비디오 빈티지: 1963-1983

5. Not All Documents Are Records: Photographing Exhibitions as an Art Form

6. 사람아, 사람아 - 신학철·안창홍의 그림 서민사(庶民史)

7.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

8. 애니미즘


SPECIAL FEATURE 

아카이빙(Archiving)으로서의 큐레이팅(Curating)에 대한 소고_심상용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

 <자동건축(리소스 룸)> 2010 책, 나무, 

발견된 나무조각, 유리, 지도, 못, 로프, 외바퀴손수레, 

1968년에서 2008년까지의 혁명적 이미지가 

새겨진 41장의 실크스크린 프린트 가변크기

Photo: Estudio Michel Zabe. <City Within the City>

(아트선재센터, 2011.11.12-2012.1.15) 출품작





Special Feature Ⅰ

아카이브 열병이라는 전염병

● 박재용 큐레이터·통번역가



마치 ‘아카이브(archives)’와 관련된 것들이 유행이라도 하듯, 최근 국내 여러 전시에서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자체가 하나의 개념적 아카이브가 되거나, 아카이브가 전시의 일부로 들어가 있거나, 혹은 아카이브 자체로 전시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1)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2013)과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2014), 부산비엔날레와 연계하여 열린 <Voyage to Biennale-한국현대미술비엔날레진출사 50년> (2014), 그리고 이 글이 실릴 「퍼블릭아트」 11월호의 인쇄를 불과 며칠 앞두고 개막한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카이브로 읽는 아르코미술관 40년> 등에 이르기까지, 앞서 나열한 전시들은 서로 같지는 않지만 모두 아카이브를 키워드로 삼고 바라보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글은 이러한 전시의 경향이 어떠한 흐름으로 만들어져 왔고, 어떠한 참조점을 찾아볼 수 있는지, 어떤 지점을 바라볼 수 있을지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가능한 대답들을 논해보고자 한다. 


먼저, 잠시 국외에서 열린 전시들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관의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화제가 됐던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주제는 ‘모더니티의 흡수’로, 한국관은 건축가 조민석이 커미셔너를 맡아 ‘한반도 오감도’를 주제로 남한-북한 건축에 대한 방대한 아카이브 전시를 구성했다. 비엔날레 전체 감독을 맡은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펀더멘탈스(Fundamen tals, 기초·기본)’라는 제목으로, ‘창문’, ‘계단’ 등 오늘날의 건축물을 구성하는 각종 요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아카이브-공간을 구성했다. 지난해 열린 미술 비엔날레에서 총감독을 맡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는 그가 비엔날레 시작 전부터 공언한 것과 같이, 자신이 감독했던 2010년 광주비엔날레 <만인보(10,000 Lives)>를 확장한 주제인 <백과사전식 궁전(The Encyclopedic Palace)>을 선보였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보관하기 위해 설계된 상상의 공간에 대한 계획안에서 영감을 받은 이 주제를 통해 지오니는 미술과 비미술을 오가고 다양한 작품과 자료가 서로 중층적으로 섞인 전시를 제시했다. 한편, 샤르자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샤르자문화재단은 매년 개최하는 3일간의 컨퍼런스인 ‘마치 미팅(March Meeting)’에서 2010년 프로그램의 키워드를 ‘아카이브’로 삼아 진행하기도 했다.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

(일민미술관, 2006.11.10-2007.1.28) 전시에서는 

한국미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소장품 200점과 60여 점의 

다큐멘터리자료를 선보였다. 사진은 전시전경.




이 행사에는 레바논의 아쉬칼 알완(Ashkal Alwan), 98 위크스(Weeks), 인도의 팟닷마(Pad.ma) 등 아랍-아시아 지역의 여러 기관과 작가들이 참여해 어떻게 동시대 미술과 관련한 아카이브와 프로젝트들을 세워나가고 있는지에 관해 발표했다.2) 시간을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기획해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에서 개최한 2008년의 전시 <아카이브 열병: 현대미술의 도큐먼트 사용>이 있다. 자크 데리다(Jacque Derrida)의 책에서 제목을 차용한 것이 분명한 이 전시는 기록의 수단으로 사진(과 영상)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가의 작업을 통해 ‘아카이브’의 면모들과 가능성을 살펴봤다. 엔위저는 전시와 더불어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에세이 「아카이브 열병: 역사와 기념비 사이의 사진」을 제시했다. 사진과 아카이브, 형식으로서의 인터넷을 통해 가능케 된 메가-아카이브, 미술관-박물관 체계에 포섭되지 않는 것으로서의 아카이브, 작가 스스로 전개해 나가는 유사-아카이브를 언급하며, 이러한 작업들이 역사의 '발굴 현장'을 '건설 현장'으로 바꾸어 나가는 시도라 칭한다. 그는 아카이브 충동을 지닌 작업들을 통해 역사적인 것에 관한 상처나 트라우마만을 떠올리는 문화에서 유토피아적 비전을 향한 변화를 엿보는 듯 하다.


한편,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 또한 포스터의 에세이와 마찬가지로 제목에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포스터의 동시대 작가 분석과 달리 아카이브라는 개념 자체를 들여다본다. 책은 ‘프로이트적 인상(A Freudian Impression)’이라는 부제와 함께 아카이브의 어원인 그리스어 아르케(Arche)에 관한 설명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르케는 ‘시작(commencement)’과 ‘명령(commandment)’의 의미를 동시에 띄는 단어로, 아카이브는 결국 특정한 법칙을 통해 권력이 시작되는 지점을 뜻하게 된다. 그러나 아카이브는 또한 양가적인 존재로 제시된다. 프로이트 식의 죽음 ‘충동(Death Drive)’이 만연한 곳인 동시에 (부재하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몸부림의 장소라는 것. 데리다는 근대 이후 서양에서는 아카이브가 열병처럼 늘어가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은 부재의 흔적만을 담을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아카이브를 통해 바라보아야 할 것은 파악 불가능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도래할 미래의 지점들이 되며, 아카이빙의 도구와 함께 변해가는 ‘기록의 방식’과 ‘사고의 틀’ 또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주제가 된다.


포스터와 데리다의 논의는 아카이브(혹은 아카이브적 요소를 활용한 개별 작업)에 대한 전향적 사고를 가능케 하며, 이는 리쾨르와 푸코의 에세이와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근본적 지점들이다. 리쾨르의 입장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해석학적 관점에서 아카이브란 고정된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미상의 재해석을 기다리는 재료다. 푸코의 경우 아카이브는 그가 기본적으로 취하는 접근법의 연장선상에서 모종의 지식 생산과 분류를 위한 도구요, 궁극적으로는 권력과 관계된 것으로서 읽힌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카이브란 결코 선형적으로 통합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열린 관계의 가능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도 아니다.




키즈크플랭크(Kijkplank) <Mats Horbach> 

2012 Photo: Sam van Grinsven 

<네덜란드에서 온 새로운 메세지-네덜란드 건축디자인>전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 2013.8.14-10.30) 

출품작. 전시는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네덜란드의 

건축과 디자인을 소개하고, 그 배경에 놓은 디자인 

방법론을 살펴보고자 했다.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인문학적 아카이브가 동반됐다.




충동적 아카이브


사실, 위 논의들은 서양 철학, 역사의 전통과 이에 맞물린 사회문화적 변화, 흐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아카이브’를 제목에까지 전면적으로 내세운 국제적 큐레이터들의 전시 또한 우리에게 필요할 논의와는 결이 조금 달라 보인다. 말하자면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아직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단어인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가지고 전시와 씨름을 벌이자니 지금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는 해야겠으나, 참고할 것이라고는 기후도 토양도 다른 외국에서 벌어진 일 밖에는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도 있겠다. 대체 동시대 미술이라는 이 좁은 영토에서, 한국에 있는 우리는 왜 갑자기 비슷한 시기에 여러 아카이브 전시를 마주하는 것일까. 혹은, 지금 이곳에서 아카이브란 과연 무엇일까. 만약 지금 동시대 미술 전시의 영역에서 참조할 수 있는 것들이 오직 국외 사례들뿐이라면, 우리의 아카이브 전시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때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지점은 또한 무엇이 되어야 하겠는가. 


먼저, 왜 아카이브 전시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동시대 미술 전시에 반응하거나 전시가 제시하는 담론을 반영하는 일은 흔치 않다. 오히려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은 그 반대의 경우이며,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일련의 아카이브 전시들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카이브 전시는 지금 한국 사회의 어떤 지점을 반영하거나 그에 반응하는 것일까. 불편한 대답이지만, 여러 비극적 사고를 통해서 내려지는 결론은 ‘근본적인 것의 부재에 대한 응답’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체계의 부재, 역사의 부재, 정돈된 자료나 관점의 부재, 더 나아가 반성과 비판적 관점의 부재. 지금 한국의 상황은 아카이브가 ‘열병’으로 일컬어질 만큼 우후죽순 솟아난 역사를 딛고 쓰인 데리다의 논의나, ‘기존의’ 아카이브 미술과는 결이 다른 아카이브 미술을 관찰하며 유토피아를 엿본 포스터의 관점 등과는 그 출발점이 다르다. 불편하면서도 고무적인 사실을 언급하자면, 최근 한국에서 개최된 여러 아카이브 전시들은 만들어진 역사나 연대기를 새롭게 해석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애초에 정리조차 되지 않은 채 맥락 없는 자료 더미로 쌓인 것들로부터 최초로 연표를 도출하고 맥락을 부여해나가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보아탱발리즈(Boîite-en-valise, 

여행가방 속 상자) 시리즈D> 1961. 

뒤샹은 자신의 작업을 여행가방 안에 아카이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아카이브란 무엇일까. 데리다나 푸코를 조금 꼬아서 말해보자면, 우리에게 아카이브란 도래하기 전에 존재조차 하지 못한 어떤 것일 테다. 그러니 우리는 존재하는 아카이브에서 도래할 미래를 찾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바꿔 말해, 우리에게 아카이브란 도래할 미래를 위해 그것을 먼저 존재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카이브가 선행하고 그것에 대한 해석이나 방향 제시로서 전시가 존재해야 하겠으나, 우리에게는 선행되었어야 할 것이 부재하거나 희박하게 존재한다. 아니, 아카이브란 그 자체로 해석과 방향이 함께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아카이브들이란 실상은 데이터베이스나 문서 저장고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어쩌면 한 때의 유행으로 그치고 말거나, 심지어는 아카이브 전시를 할 수 있는 재료가 고갈되어 뜻하지 않게 흐름이 끊어질 지도 모르겠지만, 아카이브 전시가 이어지는 지금이야말로 애초에 마땅히 존재했어야 할 아카이브들을 요구할 수 있는 시점일는지도 모른다.


자, 이제 마지막 질문까지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참조해야 할까. 미술, 동시대 미술, 아카이브, 아카이브 전시를 생각하기 전에,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온 몸으로 겪어나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초 혹은 기본을 쌓아나가고자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에 알맞고 적절해 보이지만 실상 전혀 다른 역사와 맥락 위에서 이루어진 것들은, 우리 손이 닿는 곳에 놓여있다. 이것들을 참조점으로 삼을 것인가. 혹은 우리가 스스로 참조점이 될 것인가. 이 모든 흐름을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면, 우리의 참조점이 단지 열병이나 충동만은 아니어야 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테다.


[각주]

1) 이 글에서는 이 같은 유형 모두를 ‘아카이브 전시’로 통칭하기로 한다. 각각의 유형에 관해서는 향후 보다 상세한 논의를 진행할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

2) 발표내용은 샤르자문화재단 웹사이트의 영상 아카이브에서 살펴볼 수 있다. www.sharjahart.org/march-meeting/march-meeting-2010/programme



글쓴이 박재용은 큐레이터,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사무소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플랫폼 인 기무사>와 <미디어시티 서울> 작품 제작과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영국문화원 예술팀과 아시아문화개발원 연구원, 일민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다. 장혜진, 현시원과 <큐레이팅 스쿨 서울>을 열었고, 큐레토리얼 이니셔티브인 워크온워크의 일원으로 활동중이다.




사이몬 데니(Simon Denny) 

<Analogue Broadcasting Hardware Compression> 

2013 아르세날레 전시전경, 제 55회 베니스비엔날레 

<백과사전식 전당(Il Palazzo Enciclopedico)>

 Photo: Francesco Galli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Special Feature -Ⅰ

아카이브를 위한 아카이브

● 문선아 기자



1. Disobedient Objects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 2014.7.26-2015.2.1


정치적 폭력을 기록한 칠레의 민속예술직물부터 모바일 폰의 정치적 비디오 게임에 이르기까지, 사회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사물들을 예술과 디자인적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기획된 아카이브 전시다. 사회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초점이 맞춰졌으며, 전시되는 대부분의 사물들은 해당 사회운동가들로부터 직접 대여됐다. 사물들이 만들어진 맥락은 신문스크랩이나 설명서 혹은 영상으로 제공됐고, 디자인적으로 그 물건들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가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창작자의 설명이 전시의 디스플레이나 인터뷰 등의 형식으로 제시됐다. 전시는 크게 ‘주도’, ‘발언’, ‘무리형성’, ‘연대’의 흐름으로 구성 됐고, 관련 디자인이 선보였다. 검열을 피하면서 언론의 힘을 조종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회운동가들은 커다란 꼭두각시 인형, 팜플렛, 벽보, 현수막 등을 사용했는데, 걸프전에 반대하며 쓰인 인형과 2012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반정부시위 시기의 손으로 쓴 벽보, ‘조지를 점유하라(Occupy George)’와 같은 훼손된 화폐들이 선보였다. 무리를 만들고 연대하는데 효과적인 가방이나 티셔츠, 배지의 디자인들도 함께 놓여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었다.


한편, 전시의 마지막에는 최근 30년간의 사회운동과 관련된 디자인 사례를 시리즈로 선보였는데, 1979년 이후 모든 시위를 자료 기반으로 시각화하여 관람객들로 하여금 사회운동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게 했다. 성차별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게릴라 걸즈(Guerrilla Girls)의 마스크나 사형제도에 반대하며 만들어진 티키 러브 트럭(Tiki Love Truck) 등이 선보였다. 전시되는 사물들은 복잡한 환경 내에서 효율적으로 반응하기 위해 대부분 비전문가들에 의해 제한된 재료로 만들어졌다. 하여 만들어진 사물들은 때로 예술과 디자인의 기본적인 정의를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하는데, 관람객들은 이 과정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정치적 사회운동이 발명의 묘안을 풍성하게 해왔는지를 파악할 기회를 가졌다.




<Guerrilla Girls> Image ⓒ George Lange 




2.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5전시실 

2013.2.28-9.22


건축가 고 정기용이 작고 직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약 2만 점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1년 간 연구를 진행한 후 구축된 정기용 아카이브 2천여 점을 선별 공개한 전시다. 이를 통해 사람 사이 삶의 교류와 세대 간 소통을 중시한 정기용의 생각과 흔적을 돌아보며 잊었던 삶의 가치를 되새겨 보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총 8가지 세션으로 구성됐다. ‘건축의 뿌리’에서는 그가 1972년부터 1986년까지 파리에 유학하며 실내건축, 건축, 도시계획을 차례로 공부해 실무의 기틀을 쌓은 과정을 아카이브를 통해 보여줬다. 푸코, 아날트 콥, 앙리 르페브르 등 그가 영향을 받은 프랑스 68혁명을 이끈 신지식인들의 저서 역시 전시됐다. 또한 자료를 통해 그가 이 시기에 모든 것이 땅에서 나와 땅으로 돌아가는 흙 건축에서 큰 영감을 받았음이 제시됐다. ‘거주의 의미’는 그의 주택작업을 상징화한 말로, 이 세션에서는 <‘광주 목화의 집’ 조경 스터디> (2004), <‘의왕 청계동 주택’ 평면 스터디>(1995) 등 그의 ‘집’과 관련된 플랜들을 총 망라해 놨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 건축 플랜은 ‘성장의 공간’에 모였다. 학교, 도서관 등의 건축에선 특히 정기용 특유의 상상력과 사용자에 대한 애정이 드러났다. ‘추모의 풍경’에서는, <‘부산 민주공원’ 개념 스케치> (1996), <‘제주 4.3 평화공원’ 단면 스터디>(연도미상) 등에서와 같이, 격리된 공간이 아니라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장소로서의 추모의 공간 플랜이 제시됐다. ‘도시와 건축’에선 문화연대, 서울건축학교 등에서 각종 활동을 하면서 도시를 보고, 읽고, 표현한 정기용의 적극적인 발언을 엿볼 수 있었으며, ‘농촌과 건축’에선 급속한 개발 아래, 소외된 장소인 농촌에서 그가 그려낸 주민들에게 필요한 삶의 건축 플랜들이 선보였다. 이는 ‘무주 프로젝트’와   ‘흙건축 작업’으로 구체화됐다. 한편, 마지막 세션인 ‘정기용의 도서관’에선 그가 생전에 남긴 드로잉, 스케치, 많은 글과 메모가 전시됐다. 정기용의 삶과 철학을 아카이브로 집약한 이 전시는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13’을 수상했다.




전시전경




3.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

대한민국,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지하1층~4층 

2013.8.31-11.24


지난 1969년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출신인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가 설립한 이후, 40여 년간 1,400여 장의 음반을 제작하며 재즈, 클래식, 민속음악, 현대음악 등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 온 독일의 유명 음반사 ECM의 음반 아카이브 전시다. 아시아 최초이자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전시에는 얀 옐리츠카, 마요 부허, 에버하드 로스, 토마스 분쉬, 자샤 클라이스, 피터 노이저, 장기 라툴리에, 제랄드 밍코프, 뮤리엘 올슨 등 지금까지 ECM에서 발매된 2,000여 명이 넘는 연주자들의 1,400여 장의 모든 앨범들이 전시되고 주요 명반들에 대한 집중 소개가 이뤄졌다. 여기에 다양하게 마련된 리스닝 존에서 앨범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의 입구에는 페테르 노이서의 ‘콘스탄츠 호수’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 코너에서는 개별적인 청음 박스에서 ECM의 초기 명반을 들을 수 있도록 전시해뒀다. ‘ECM라운지’를 마련해 쇼파에 등을 기대고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시각적으로는 40여 년간, 유럽과 미국의 200명에 달하는 화가,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제작된 1,400여 장의 ECM 앨범들을 한 눈에 확인하면서 ECM의 앨범 자켓 디자인 역사를 제대로 음미하며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ECM의 독특한 앨범 자켓 디자인은 현대미술작품을 연상케 하며 전 세계 음악 애호가뿐 아니라 많은 디자이너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함께 참여한 유명 작가들의 ‘커버웍 전시 원본’ 역시 따로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됐다. 또한, ECM과 아이허가 그간 함께해 온 다양한 영상작업도 함께 전시장의 곳곳에 상영돼 이목을 끌었다.

전시는 음악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공간 안에 풀어냄으로써 음악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음악 전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시전경




4. 아파트 인생

대한민국, 서울역사박물관 

2014.3.6-5.6 


서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아카이브 전시다. 중산층의 표상이 된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파트 개발로 인해 쫓겨난 철거민의 이야기, 그리고 차가운 콘크리트를 따듯한 고향으로 여기는 아파트 키드의 이야기 등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인의 삶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버린 아파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같이 고민해보고자 기획됐다. 총 세 세션으로 구분되어,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에서는 해방 이후 최초로 건설된 종암아파트 관련 자료, 아파트 공급에 따른 중산층 양산의 역사와 아파트 생활문화를 공급한 여성(어머니와 복부인)에 대한 자료가 전시됐고, ‘쫓겨나는 사람들’에서는 철거민의 역사와 함께 광주대단지 이주 사건을 비롯, 철거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목동과 상계동의 이야기가 전시됐다. 


‘아파트 내고향’에서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이름으로 18명의 주민이 스스로 재건축 예정인 둔촌주공아파트에서의 삶을 기록한 작업을 선보였고, 또한 시민 공모를 통해 총 10인의 사진이 전시됐다. 특히, 전시장에 통째로 등장한 ‘서초삼호아파트 한 가구(111㎡, 33평)’가 통째로 전시장으로 옮겨져 이목을 끌었다. 1978년 지어진 후 현재 재건축 철거 예정인 이 아파트는 사용하던 가구 등의 생활재부터 아파트 내장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 옮겨졌는데, 1980년대 전형적인 아파트의 모습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밖에 아파트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정재호, 최중원, 안세권, 금혜원, 이은우, 박찬민, 장수선, 한정선, 김은숙, 조미영, 정희우, 장민승, 심봉민, 최성훈, 박상화, 차지량, 신지선 현대작가 총 17인이 참여한 ‘프로젝트 APT’도 연계전시로 열렸다. 전시는 ‘아파트’와 ‘서울의 역사’에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했다.




정재호 <북악기념비-정릉스카이아파트> 

2005 한지에 목탄, 과슈 130×388cm 




5. 제 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한반도 오감도

이탈리아, 베니스시 카스텔로 공원 내 한국관 

2014.6.7-11.23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총감독을 맡은 올해의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는 그가 ‘모더니티의 흡수:1914~2014’를 주제로 각 국가의 100년사를 소환한 만큼, 총 65개 국가관의 대부분이 아카이브 전시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한국관. 단순한 아카이빙 전시에 그치지 않고, 여러 예술적 요소들을 도입하며, 완성도 높은 배치(display)로 전시의 가독성을 높인 결과 ‘황금사자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전시에는 29인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으로 남과 북이 분단된 이후 지난 100년 간 나타난 다양한 건축적 현상을 서울과 평양을 대비시키며 보여줬다. 제목은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보다 다각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과 전체성을 의미하는 조감도에 대비,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라 명명했다. 


전시는 크게 1. ‘삶의 재건(Reconstructing Life)’, 2. ‘모뉴멘트(Monumental State)’, 3. ‘경계(Borders)’, 4. ‘유토피안 투어(Utopian Tours)’ 총 네 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첫 세션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이뤄진 건축과 도시재건과정을 제시함으로써 그 이면에 어떤 기억과 욕망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가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김일성 대학’과 ‘세운상가’ 등 남북한 건축의 대비를 통해 각 도시의 기념비성과 이념성을 폭로했다. 세 번째 세션에서는 DMZ와 같이 남북을 분리하고 연결하는 경계들에 대한 건축적 관심사를 물리적이고, 개념적이며, 감정적인 것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마지막 세션은 북한 건축가와 예술가에게 다양한 커미션을 의뢰해온 닉 보너(Nick Bonner)의 컬렉션으로 구성됐다. 다양한 국내·외의 건축가, 시인과 문인, 화가, 사진가와 영화감독, 큐레이터와 수집가들의 작업들이 모인 전시는 남북 건축의 공유와 차이의 교점들을 효과적으로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전시전경




6.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카이브로 읽는 아르코미술관 40년

대한민국, 아르코미술관 1F 스페이스필룩스 2F 아르코아카이브

2014.10.24-11.30


아르코미술관 개관 40주년을 맞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구 국립예술자료원)과 아르코미술관 아카이브가 소장해온 전시 아카이브 가운데 약 450여 점을 선별하여 공개한 전시다. 1974년, 미술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을 시작한 ‘아르코미술관’을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제도권 미술계의 지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상정하고, 전체 미술계의 지형도를 그려보고자 하는 기획으로 마련됐다. 시기별로 1. ‘만남의 미학’, 2. ‘신세대 : 시간표도 없이, 깃발도 없이’, 3. ‘문화적 복합체, 전시’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미술관 40년 전시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첫 섹션에서는 큐레이팅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던 1970-80년대, 소그룹을 중심으로 사회와 관계했던 작가들의 활동을 관련 아카이브를 통해 재조명했다. 특히 무산된 <현실과 발언 창립>전(1980)에 대한 조명을 통해 한국 정치적, 문화사회적 상황과 연계지어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1990년대 신세대 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살피는 두 번째 섹션에서는, 1990년대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과 이슈를 당시 미술가, 커미셔너, 평론가들의 인터뷰로 재구성한 영상 아카이브와 기획자의 전시서문, 평론글, 현장 사진 등을 묶은 전자북을 통해 제시했다. 한편, 세 번째 섹션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하나의 문화이자 매체로서 작용하기 시작한 ‘전시’에 대한 집중탐구를 보여줌으로써 관람객들로 하여금 전시를 사람과 사물, 공간이 상호 작용하는 역동적인 문화 복합체로서 인지하도록 했다. 전시는 한 장소에서 일어났던 과거 전시들의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장소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킬 뿐 아니라, 미술계의 전체 지형도를 훑어볼 수 있도록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카이브의 역할이 더 이상 단순한 사실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기억, 비평이 혼재하는 관계적 의미의 망을 형성해, 전시를 다층적으로 해독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 역시 성공적으로 제시했다.




전시전경




7.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대한민국, 일민미술관 전관 

2014.6.26-9.21


50,000여 점에 달하는 책과 관련 자료를 보유한 인문학박물관의 소장품을 재구성한 아카이브 전시로, 인쇄물, 유물, 액자, 사운드 등 총 500여 점의 소장품을 선보였다. 문자를 읽고 쓰는 인간의 행위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고자하는 의도로 전시가 기획되었으며, 1. ‘모더니티의 평행 우주’, 2. ‘인간의 생산’, 3. ‘이상한 거울들’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섹션에서는 해방 전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개별 행위자들이 경험한 모더니티의 양상에 주목하기 위해 각각 서울과 지방 농촌 출신의 가상의 주인공 두 명을 내세워, 이 주인공들이 유년기부터 특정 연령대까지 인쇄물의 형태로 읽거나 보았을 법한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평행하게 제시해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책이 교육의 매개체로서 특권적 지위를 누렸던 1980년대 이전에 초점을 맞춰, 학생과 군인, 샐러리맨과 지식인, 농민과 공민, 시민과 국민 등 당대에 보급된 ‘인간’의 청사진과 그에 전제된 ‘사회’의 구상들을 선보였다. 


특히, 일제시대의 농민독본에서 군부 독재기의 국민교육헌장독본에 이르는 인간 생산의 기획들이 우리의 현실과 대비되어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과거의 물건들을 다양한 사운드와 영상, 이미지의 모음으로 재구성해 선보였다. 일본 아사히 신문사의 출판물에 담긴 식민지 말기 조선의 이미지, 1950년대 한일 미군기지의 주변 풍경, 현대화된 여성의 다양한 모습, 잡지의 곁다리 그림 뿐만이 아니라, 근대화와 더불어 불려왔던 노래들과 함께 목사로 전향한 무장 공비의 목소리, 1950년대 말 프랑스 파리 유학생의 수기 등도 선보였다. 전시는 우리의 교육과 교양이 어떤 인간과 사회를 지향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있는 그대로 전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1930년대 생의 국민학교 학습장부터, 1950년대의 농민 교육서와 여성 잡지, 1960년대 생의 서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시물들을 사운드, 영상, 설치물 형태로 다양하게 변형·전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도정업적-혁명 1주년 기념>

(경기도 공보실, 1962)




8. Voyage to Biennale-한국현대미술비엔날레진출사 50년

대한민국, 부산문화회관 대·중전시실 

2014.9.20-11.22


‘2014부산비엔날레’의 <특별전Ⅰ>으로 열린 전시다. 1958년 <제5회 국제현대색채 석판화비엔날레>와 1961년 <파리청년작가비엔날레>에 한국 작가들이 최초로 참가한 이후,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현대미술이 비엔날레라는 국제적 전시시스템과 어떤 상호 연관 속에서 성장해왔는지 일괄하고, 지금 이 시대에서 비엔날레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대전시실의 전시와 중전시실의 전시로 나뉘어져, 대전시실에서는 해외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시대별로 정리하고 그 가운데서 특별히 주목받은 작품들을 선별하여 선보였다. 중전시실에서는 이와 성격을 달리하여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큐멘타적 성격을 강화하여 작품과 연관된 부속자료들도 동선에 따라 배열했다. 전시에는 출품작을 위주로 해당 작가의 대표작들이 선보였으며, 내로라하는 한국 작가 48명의 작품 총 109점이 전시됐다.


전시장의 한편에는 아카이브 실이 마련되어, 참여 작가들의 도록이나 관련 도록, 당시의 기사들, 연표 등을 함께 전시하여 비엔날레에 대한 정보들을 관람객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형식으로 구성한 ‘한국현대미술의 비엔날레 진출사’가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참여한 48명의 작가들을 인터뷰하여 당시의 상황들을 영상과 도록으로 기록하고 이 결과물들을 아카이브실에 함께 전시했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약 50여 년 동안 <상파울로비엔날레>, <인도트리엔날레>, <카뉴국제회화제>, <리옹비엔날레>, <카셀도쿠멘타>, <베니스비엔날레>, <시드니비엔날레>, <요코하마트리엔날레>등 전 세계에서 펼쳐진 각종 국제전 행사에 지속적으로 출품해온 한국 작가들의 위상을 확인하고, 그 작품들을 직접 실견할 수 있었다.




권오상 <Huge Bust>

 C-프린트, 혼합재료 218×280×165cm





Special Feature -

전시가 아카이브가 될 때

● 문선아 기자



1. 총체적 난 극

대한민국,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2013.1.18-3.3


10명의 안산 장애인 종합복지관 이용자가 ´무늬만 커뮤니티´(총감독 김월식)와 함께 만들어 낸 아트링크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도 곽동열, 이아람, 조강이, 송미경, 고재필, 김보용 총 6명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커뮤니티 아티스트, 조각가, 연극배우, 국악 무형문화재, 미디어 아티스트 등)들이 참여했다. 일반적인 장애인 연극이나 공연은 예술체험을 통한 자기역량 강화 및 사회 적응 능력 함양 등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그와 다르게 지적장애인들과 작가가 함께 ‘차이’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과 존중, 편견과 이해, 동질성과 불일치를 드러내며 소통하는 협업의 과정 자체에 의미를 뒀다는 점에서 다른 공연과는 차별화됐다. 


이 총체적 다원예술프로그램은 공연과 전시로 이뤄졌는데, 1월 18일 진행된 공연은 10명의 장애인들과 6명의 예술가들이 반년 여 동안 함께 발견해 낸 장애인들만의 장기를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는 난장극으로 이뤄졌다. 50분간 10명의 장애인이 그림그리기, 사진찍기, 요리(라면끓이기), 탁구, 클라리넷, 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한편, 참여과정에서부터 프로그램이 진행됐던 동안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보여준 몸과 다양한 표현의 언어들은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아카이브 형태로 선보였다.(2013.1.18-3.3) 일회성 공연으로 선보일 수 없는 과정을 관람객들과 나눔으로써 프로그램의 내용을 공유하고 목적을 잘 전달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전시전경




2. 박이소 - 개념의 여정

대한민국, 아트선재센터 전관 

2011.8.20-10.23


국내 미술계에 포스트모더니즘 예술론을 소개한 작가로 평가되는 박이소의 드로잉을 모아 선보인 전시다. 개념미술가이자 설치작가로 알려져 있는 작가는 자신의 관념과 태도를 끊임없이 노트와 드로잉으로 기록했으며, 작품을 전개하는 미디어로서 드로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드로잉은 크게, 일반적 의미의 표현적이고 선언적인 (한편으로 확장된 회화라고 말할 수도 있는) ‘드로잉(Drawing)’, 작업의 개념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표상하는 ‘개념 드로잉(Drawing Concept)’, 작품 제작과 설치를 위해 상황에 맞게 그가 반복적으로 수정한 ‘설치 포트폴리오(Installation Portfolio)’로 구분될 수 있는데, 전시에서는 그의 드로잉과 드로잉적인 초기 회화 230여 점이 선보였다. 전시는 드로잉의 형식적인 차원이 아닌, 작가의 작품 세계에 드러나는 주요 키워드를 설정함으로써 그의 드로잉을 개념적으로 재맥락화 했다. 


2층의 전시장에서는 드로잉과 드로잉적인 초기 회화를 통해 정체성(identity)과 자아(ego),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사회 정치적 이슈들을, 3층 전시장에서는 긍정, 만남과 소통, 그리고 새로운 이상향에 대한 성찰을 개념 드로잉과 설치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선보였다. 전시의 흐름은 그가 참여했던 전시에서 제안되고 제작 설치됐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하여 유기적으로 그의 전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특히, 3층 전시장에는 박이소 작업세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21권의 작가 노트 사본, 박이소의 현대미술 및 드로잉에 대한 교육학(pedagogy) 자료, 작품 제작 및 설치관련 자료, 작가의 육필 원고 및 번역서, 박이소의 친구들이 작성한 박이소에 대한 기억들(서면 인터뷰)이 전시됐는데, 이를 통해 관람객은 박이소의 삶과 예술의 여정을 구체적인 사료와 자료로서 경험하고 추억할 수 있었다. 또한, 1층 라운지에서는 전시기간 동안 작가가 라디오에서 녹음한 ‘Endless Jazz 컬렉션’ 중 일부를 청음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행복해요”를 위한 드로잉> 

2004 종이 위에 연필과 색연필 21×30cm




3. MAGICIENS DE LA TERRE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1989.5.18-8.28


<지구의 마술사들(Magiciens de la Terre)>은 1989년 장-위베르 마르탱(Jean-Hubert Martin)이 기획해 1989년 퐁피두센터와 파리의 비에뜨(Villette) 공원에 있는 그랑드홀(the Grand Halle at the Parc de la Villette)에서 선보인 기념비적 전시다. 마르탱은 “지구상의 80%를 무시하고 있는 100%의 전시(one hundred percent of exhibitions ignoring 80 percent of the earth)”라고 칭하며 순수예술, 모더니즘, 정체성을 중시하고 있는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서 무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총 망라해 선보이고자 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 마이크 추쿠켈루(Mike Chukwukelu), 후앙 용핑(Yongping Huang), 리차드 롱(Richard Long), 지그마 폴케(Sigmar Polke), 장가르 사이 시얌(Jangarh Singh Shyam), 울라이(Ulay), 제프 월(Jeff Wall), 지미 우루루(Jimmy Wululu) 등 총 100명의 작가가 전시에서 선보였으며, 모더니즘의 엄숙한 관습을 깬 전시로 중요하게 평가됐다. 


전시는 여전히 서구적 가치와 시각이 투영된 또 하나의 제국주의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후 문화적 다양성, 지역적 특수성, 주변과 중심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전 세계 예술계의 전시 방향성과 담론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올해 7월 2일부터 9월 15일까지 파리 퐁피두센터에서는 이 전시의 25주년을 기념하는 또 다른 아카이브 전시 <지구의 마술사들, 기념비적 전시회고하기(Magiciens de la terre, a look back at a legendary exhibition)>가 열렸다. 본래 전시의 역사적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고 되새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진 자료, 일지, 드로잉, 카탈로그, 필름 등이 함께 선보였다. 또한, 올해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테이트 모던에서 역시 이를 기념하고자 <지구의 마술사들 재고하기(Magiciens de la Terre: reconsidered)>를 기획했는데, 이 행사는 본래 전시의 필름 프로그램 구성과 중요성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시점에서 식민주의 영화사 및 유산, 세계화 담론에 대한 확장된 논의를 이어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퐁피두센터 전시 전경




4. 비디오 빈티지: 1963-1983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원형 전시실 

2013.10.2-12.31


퐁피두센터의 뉴미디어 소장품 중 비디오아트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전개되어온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 작가 52명의 작품 72점이 한국에 소개됐던 전시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작가들로 구성된 전시는 1960-70년대 현대미술사의 일부를 이루는 비디오아트의 역사를 태동기에서부터 회고했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 ‘퍼포먼스와 셀프 촬영’에서는 1960-70년대의 남미, 북미 및 유럽지역 작가들이 비디오라는 매체를 처음 사용한 작업들이 소개됐다. 백남준, 닐 얄터(Nil Yalter), 발리 엑스포트(Valie Export), 폴 매카시(Paul McCarthy), 댄 그라햄(Dan Graham),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rramovic)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의 연관관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2부 ‘텔레비전: 연구, 실험, 비평’에서는 초기 영화사와는 구분되는 비디오라는 매체를 가지고 시도됐던 실험이 주로 소개됐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텔레비전의 공공성을 탐구한 작품이나 비디오 시그널과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수동적 매체가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텔레비전의 역할을 모색한 작품들이 상영됐다. 3부에서는 차학경, 안나 벨라 가이거(Anna Bella Geiger),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등 비디오라는 매개체에 대한 고찰, 연출적인 요소들의 등장, 신체를 촬영하고 텍스트와 내러티브를 인용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태도’를 기록하거나 구체적인 형태와 개념을 거부한 작업이 소개됐다. ‘비디오 빈티지’라는 전시 제목이 드러내듯이, 전시는 비디오가 등장하던 시기와 같은 관람 환경인 빈티지 스타일의 공간 속에 재현됐다. 전시에서 다루는 1960-80년대는 TV의 보급으로 대중문화가 대두하던 시기로 가정의 중심에 벽난로 대신 TV와 소파가 놓인 시기였다. 백남준, 게리 슘(Gerry Schum), 발리 엑스포트처럼 TV를 새로운 전시공간으로 인식하고 TV 채널을 통해 작품을 각 가정으로 상영하는 실험들도 활발히 이루어졌던 때다. 이를 상기시키기 위해 저녁식사 중에 비디오 작품을 대면했던 당시의 관객들처럼, 비디오 빈티지전의 관객들도 편안한 소파와 구형 CRT 모니터로 꾸며진 18개의 거실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가 마련됐다.




<끝없는 프레임(The Eternal Frame)> 1976 

Conception ANT FARM ⓒ David Ross,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  




5. Not All Documents Are Records: 

Photographing Exhibitions as an Art Form

영국, 리버풀 오픈아이갤러리 

2014.7.5-10.19 


“모든 도큐멘트(문서)가 기록은 아니다 : 예술의 한 형태로서의 사진전”이라는 다소 혁신적인 제목으로 열린 ‘2014 리버풀 비엔날레’의 협력전시다. 전시에 참여한 한스 하케(Hans Haacke)와 유고 물라스(Ugo Mulas), 이라 롬바르디아(Ira Lombardia), 크리스티나 드 미델(Cristina De Middel) 총 네 명의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진’이라는 매체가 ‘사실’을 기록한다는 그 근본적 특성을 노출하거나 왜곡하여 그 이면을 폭로했다. 특히, 카셀 도쿠멘타(Documenta)와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리버풀 비엔날레(Liverpool Biennial)라는 중요한 세 가지 국제 아트 플랫폼을 그 소재로 삼았는데, 이 행사들이 ‘비엔날레의 모델’이라고 불리며 당대의 특정한 아트신을 기록(photographing)하고자 정기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기록에 대한 또 다른 기록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하케는 나치의 반계몽주의와 검열이 성행했던 1959년 ‘카셀 도쿠멘타2’ 당시의 행사를 기록한 26점의 흑백사진을 공개했다. 


그가 학생일 때 작업한 이 초기작들은 전시 디스플레이와 관람객들, 그들 간의 힘의 권력관계에 대한 그만의 특정한 시각을 제시하면서 한 점 한 점이 그 자체로 예술이자 사회에 대한 코멘트가 됐다. 이와 유사하게 물라스는 ‘혁명의 비엔날레(the biennale of the revolution)’로 불리며 검열에 반대하는 군중시위의 근원지가 됐던 1968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해프닝을 담은 작품들을 공개했다. 전시에서는 당대 시위를 이끌었던 피켓이나 배너의 문구, 기록 영상들이 함께 선보여 정치적 소란과 사회적 반항이 난무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제시했다. 한편, 롬바르디아는 가장 최근에 열린 ‘도쿠멘타(dOCUMENTA)13’의 도록에 허구의 작가들을 즉흥적으로 껴 넣은 작업을 선보였고, 미델은 1964년의 잠비아의 공간 프로그램을 허구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리버풀 비엔날레의 향후 발전상을 상상하는 커미션 작품을 선보였다. 두 작가는 허구의 기록을 진실의 기록과 섞음으로써, 아카이브의 허구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로렌조 푸지(Lorenzo Fusi)가 기획한 이 전시는 “사진이 전시의 역사를 생산하는 장소로서 남는가, 혹은 예술의 독립적인 자치 영역으로 남아 순수한 도큐멘테이션(기록)을 극복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아카이브와 사진의 관계, 사진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유고 물라스 <베네치아(Venezia)> 1968 

Proteste studentesche XXXIV Esposizione 

Biennale Internazionale d'Arte Photo: Ugo Mulas 

ⓒ Ugo Mulas Heirs Courtesy Camera16 contemporary art




6. 사람아, 사람아 - 신학철·안창홍의 그림 서민사(庶民史)

대한민국, 경기도미술관 기획전시실 C, D존 

2013.4.4-6.23


역사 속 익명(匿名)인들의 이야기를 리얼리즘 화법으로 재현한 신학철, 안창홍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그림 서민사’라는 맥락에서 재조명한 전시다. 관람객들이 작품 속 인물의 모습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를 경험해 온 보통 사람들의 무게를 재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현실의 장 속에서는 부재로 남아있지만, 실제로는 그 모두가 각각 역사의 주체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철은 권력의 억압과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는 보통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며, 한국의 시대상과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작업한다. 특히, 사진을 이용한 일련의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역사적 사건 속 가공되지 않은 구체적 삶과 사회적 현실 그대로를 리얼리즘 그림으로 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근대사-종합>,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에서, 구한말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1990년대까지 실재하는 역사의 상흔과 지나간 사건들을 형상화된다. 


그 속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인, 정치인, 연예인에서부터 당시 사회적 사건의 인물들, 보도사진 속 익명인 등 당대 속 평범한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그는 이렇듯 수없이 많은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하나의 시대를 만들어낸다. 치밀하게 담아낸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그들이 존재했던 역사를 서술한다. 안창홍은 변화하는 시대와 상황을 통찰력 있게 인식하여, 자전적인 이야기를 포함한 다양한 인물들을 작품의 소재로, 개인과 사람에 집중하는 일관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표현한다. <베드 카우치>에서는 일반인들의 누드를 그려낸다. 하나의 존재로 명확하게 부각되어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모델의 표현에서, 개별 인물들에 집중하며 내면을 끌어내고 개별적 특성을 부여하는 안창홍의 작가적 힘을 엿볼 수 있다. 또한, <49인의 명상>, ‘아리랑’ 연작에서처럼 사회 속 개인의 부재와 익명성으로 관심을 이동시키기도 한다. 특히, 전시에서는 신학철의 대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와 작품의 밑그림, 그리고 거대 구상의 소재들이었던 아카이브 자료를 함께 전시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작가의 시각적 역사 인식의 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도록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였다.




전시전경




7.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

미국, 뉴욕 국제사진센터

(The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2008.1.18-5.4


<아카이브 열병:현대미술의 도큐먼트 사용>은 자크 데리다와 할 포스터에게서 영향을 받아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기획한 전시다. 전시는 아카이브를 구성하는데 필수적인 기록 매체 중 하나인 ‘사진’과 ‘영상(film)’에 주목했으며, 196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아카이브와 관련된 현대미술 경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먼저, 아카이브가 어떻게 생산되고, 저장되어 사진과 정보로 순환하는가를 살피면서 관람객들로 하여금 아카이브의 본성과 의미를 매체와 관련하여 생각케 했다. 이후, 아카이브가 박물관에서 보는 것과 같이 케케묵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와 반대로 아카이브 충동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아카이브의 형식을 통해 이미지의 의미를 정교히 해나가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다양한 현대 작가들을 소개했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출처 불명의 역사 기록물들로 구성한 포토 몽타주, 스틸사진으로 만든 영화, 허구의 인물들로 채워진 가상의 사진 인명록 등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아카이브를 차용하고 해석하거나 형태를 바꾸는 등의 형식을 선보여 그 구조와 내용에 대한 작가들의 탐험을 반영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타시타 딘(Tacita Dean), 스탠 더글라스(Stan Douglas), 한스 피터-펠드만(Hans-Peter Feldmann), 하룬 파로키(Haroun Farocki),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sz-Torres), 토마스 러프(Thomas Ruff), 파잘 세이카(Fazal Sheikh) 등이 참여하여 내용적으로는 정체성과 역사, 기억과 상실에 대해 재고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는 아직까지도 아카이브를 둘러싼 미학적 관심을 반영하면서, 그와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반응으로 사진과 영상에 대한 이해를 보여줌으로써 현대작가 세대 간 대화의 창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무제(총에 의한 죽음)> 1990 끝없이  

복제되는 종이프린트 22.9×114.1×83.6cm 

ⓒ The Felix Gonzalez-Torres Foundation




8. 애니미즘

대한민국, 일민미술관 전관 

2013.12.6-2014.3.2


애니미즘은 사물에 영혼이나 주체적 성격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으로, 합리와 이성으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배척되거나 무시되어 왔다. 그러나 그 억압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이 ‘애니미즘’ 개념과 관련하여 20세기 초에서 동시대에 이르는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과 연구 아카이브를 함께 선보였던 전시다. 애니미즘을 통해 오늘날의 현대성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하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국내·외 36개 팀 작가의 작업 50여 점이 소개됐다. 유형학적 사진 작업의 기틀을 만든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Candida Hofer)는 실험실과 박물관을 다룬 연작을, 실험영화의 선구자 렌 라이(Len Lye)는 20세기 초에 만든 실험 영상을, 애니메이션의 아버지 월트 디즈니는 춤추는 해골을 소재로 직접 연출한 1929년 작업 <The Skeleton Dance>를 선보였다. 


또한, 독일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는 최신작 <Parallel>(2012)를 통해 생명과 자연, 가상의 경계를 언급했다. 애덤 아비카이넨(Adam Avikainen)은 한국에 체류하며 2층 전시장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는 대형 회화작업을 창작해 선보였다. 한국 작가들의 작업으로는 근대화 이후 토착 무속 신앙의 급격한 성쇠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박찬경의 사진작업을 비롯, 시각예술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임흥순의 <비념>(2012), ‘미디어시티서울2012’에 소개되었던 구동희의 영상작업 <Under the vein>(2012), 한국적 풍경의 배면에 내재한 원초적인 야성과 토착성을 보여주는 김상돈의 <Mirror>(2009), 무당의 숨을 불어넣은 유리병 작업을 통해 예술과 주술이 가진 보이지 않는 힘에 주목하는 길초실의 <Breath Taking>(2012) 등이 선보였다. 또한, 인문학박물관과 동아일보 아카이브 등 여러 시각자료 아카이브에서 수집한 자료들이 함께 공개됐다.




전시전경




Special Feature 

아카이빙(Archiving)으로서의 

큐레이팅(Curating)에 대한 소고

● 심상용 미술사학 박사·동덕여자대학교 교수



1. 아카이빙으로서의 큐레이팅, 몰락의 레토릭 


최근 큐레이팅에 이상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체계적인 아카이브를 구성하는 것을 마치 큐레이팅의 주 업무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 즉 아카이빙화된 큐레이팅이나 아카이빙으로서의 큐레이팅이 그것이다. 이 글로벌한 기류는 늘 그래왔듯, 그것에 편승해온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산되고 있다. 행위나 활동상의 표면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론과 지식의 방법론에 있어 큐레이팅과 아카이빙이 전적으로 다른 차원에 속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경계에 대한 인식이 모호해지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큐레이팅, 더 나아가 지식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0년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 miliano Gioni)가 비엔날레를 ‘이미지 아카이브’로 재정의하는 기획을 광주에서 실행했을 때, 필자는 미국 미술전문지인 『아트인포(ARTIN FO)』의 책임 편집자인 벤 데이비스(Ben Davis)와 매우 상반된 경험을 가졌다. 


데이비스는 지오니의 <만인보(10,000 Lives)>가 “비엔날레 전시가 의미 있는 전시일 수 있다”는 자신의 소신을 회복시켜주었다고 했다. 반면, 필자는 그것을 표류하는 현대미술의 진실에 대한 정당화, 또는 은폐기제로서 비엔날레의 기능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보고서로 읽었다. 큐레이팅이 아카이빙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게 와 닿았다. 당시 이미지 아카이브로서 해당 전시에 대한 나의 경험의 일부는 다음과 같은 것 이었다 : “20세기 초반의 창녀들을 찍은 20여 장의 사진에서 시작해, 다시 수십 개의, 때론 수백 개가 넘는 이미지들로 이어지는 동선은, 만일 감독의 말처럼 ‘관객의 눈을 괴롭히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페터 피슐리(Peter Fischli)와 다비드 바이스(David Weiss)가 장장 20년 동안 협력한 작업의 결과인, 3천 장의 컬러 슬라이드가 수학적으로 배열된 전광 테이블(light table)을 따라 30m를 걸은 다음, 워커 에반스(Walker Evans)를 리포토(re-photo)한 세리 르빈(Sherry Levin)의 50여 장의 사진이 있는 방에 도달했을 때 이미 피로감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제 제 1전시실이 겨우 끝나갈 즈음인데 말이다!) 피슐리와 바이스의 전광 테이블을 내려다보느라 숙여야 했던 목을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높게 배치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들을 보기 위해 치켜들어야 했다. 그런데,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를 그토록 반복해서 보아야 할 필요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 맞은 편 벽에 걸린 워홀을 리프린팅(re-printing)한 일레인 스터드번트(I. Sturtevant)의 이미지처럼 두 점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그랬다면 ‘이미지 아카이브’ 내지는 ‘기록 보관소’라는 컨셉에는 걸맞지 않았겠지만 (…)” 1)




이병복의 작업노트 전시전경 

<이병복, 3막 3장>

(아르코미술관, 2013.5.3-6.30)   




이미지 ‘아카이빙으로서의 큐레이팅’의 경험은 르빈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곧 이어 한스 페터 펠트만(Hans-Peter Feldmann)이 9.11테러 관련 신문들의 1면만을 모아 정확하게 3열로 배열해놓은 151장의 신문들과 마주해야 했다. 2전시관의 후반부 쯤 이르렀을 때, 작품과 중성적인 게시물과의 경계가 완화되기 시작했다. 작품이 콘텐츠로 해체되고 재약호화 되는 과정이 가속화되고, 예술이 시간의 조각들로 파편화되는 ‘의미의 화학적 소거’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Philip Anderson)의 표현을 빌리면, “많아지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 전시물들이 매우 많을 때, 감상 행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 간의 내적 충돌이 야기되면서 각각의 독자적 의미가 뒤섞이고, 저항과 혁명성이 마모되고, 감상은 균질화 된 것들에 대한 반응인 주의산만으로 경사된다.


독극물학자에 의하면 “독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양이다(The dose make the poison).” 이 사실이 단지 감상행위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큐레이팅, 특히 비엔날레 큐레이팅이 치열한 인식의 대상을 현실에서 데이터로 전환할 때, 즉 현실인식의 질을 방대한 양의 자료로 대체할 때, 큐레이터가 아키비스트화 될 때, 큐레이팅의 내부에서는 필연적으로 독성(毒性)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자신이 맞서 싸워야 할 것을 오히려 수단으로 삼고 내재화하기 때문이다. 급박하게 변모하는 동시대의 동향을 살피고, 관찰하고, 감시하고, 저항하는 살아있는 지성의 작업과 체계적인 아카이브를 구성하는 기술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부터 발원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엔날레 뿐 아니라 현대미술관의 아카이브화 역시 종말의 표지일 수 있다.  


체계적으로 분류된 수천, 수만 개의 이미지 데이터들을 재빨리 지나치거나 어슬렁거리도록 재구성하는 기획은 계보학적으로 수퍼마켓의 소비주의와 헐리웃의 구경거리문화로부터 도래한 것으로, 수단이 무엇이건 부정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그 본래적 기능이다. 이 현실기피의 기묘한 제도화야말로 파국을 향해 달음박질치는 현대지식 세계의 전형화된 풍경이다. 이미지의 포만감은 현대의 인지잉여를 소모시키는 방법으로서는 효과적이지만, 주체를 막다른 길로 인도할 개연성이 크다. 감각이 비만상태에 이르면 모든 것이 동일한 것이 되는 의미의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문제 삼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이렇듯 데이터의 양은 권태를 양산하고, 이는 의미의 매립지화, 지식의 매장술로 이어진다. 데이터들을 취급하는 지식에서 데이터들에 잠식당한 지식으로의 급속한 이행이 일어난다. 이 지식은 주체를 보완하는 전통적인 지식과는 무관하다. 


아카이빙으로서의 큐레이팅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다루는 방식이다. 오늘날 ‘아카이브 프로젝트’ 같이 단지 멋스러워 보이는 전시 제목 붙이기의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카이브적인 시각이 이미 인식체계의 깊숙한 데까지 파고든 결과, 심지어 작가들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데이터로 인식하고,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미래의 고고학자의 관점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데이터로서 작가와 작품들을 대하는 것이다. ‘즉물적 고고학’의 냉소적인 손을 거치면서 현재는 김이 새고 긴장감이라곤 없는 따분한 것이 되고 만다. 이렇듯 현재의 아카이빙 붐에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현실은 그 안에서 살아야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냉정하게 다루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특권적인 국외자로서 현실을 성공적으로 객관화하고 잘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그러한 착각을 유지시키는 기만적인 증거물로 작용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통제한다는 착각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당하고, 취급자의 기만적인 인식 속에서 역으로 저항할 수 없이 취급당한다. 아카이빙으로서의 큐레이팅은 앎을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앎을 분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세 키워드로 아시아를 

주제화한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2014.9.2-11.23) 전시전경. 냉전, 전통, 여성에 대한 

아카이브를 보여준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여느 비엔날레들과 다르게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한국영상자료원(KOFA)에서 40여 편의 영상을

상영하고 있기도 하다. 전시전경 ⓒ 서울시립미술관




2. ‘백과사전식 큐레이팅’의 환상


큐레이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글로벌 큐레이팅 1.0 세대인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은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나 사이 톰블리(Cy Twombly) 같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늙어가는 거장들’을 몰고 다녔다. 로버트 스토(Robert Storr)에 의하면 그는 고작 “스타의 이름에 의존하는 버라이어티 쇼의 거장”이었을 뿐이다. 그가 내세운 ‘태도의 예술론’의 의미에 대한 온갖 거품에도 불구하고, 그는 곰브리치와 그린버그 사이에 비좁게 난 통로를 왕래한 모던아트의 보수주의적인 신도에 지나지 않았다.2) 제만의 후계이자 1.5 세대쯤인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는 눈치 빠르게도 슬쩍 빗장을 풀어 ‘관객의 독재(The dictatorship of the viewer)’를 내세웠다. 물론 그것은 유명작가상에 원로작가상, 최고작가상 등, 온갖 것을 동원해 모던 아트의 영웅들이 망각되어가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 베니스의 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한 전략이긴 했더라도 말이다. 


밀레니엄 세대이자 글로벌 큐레이팅의 2.0 세대인 지오니에 이르러서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주의와 보수주의로의 회귀가 점입가경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스스로 백과사전파를 자처하는 그는 광주가 제공했던 기회를 자신의 본 연구의 리허설 정도로 삼더니만, 이윽고 베니스에서 꿈을 펼쳤다. 전시의 제목은 <만인보(10,000 Lives)>에서 진일보해 <백과사전식 궁전(Il palazzo Enciclopedico>으로 달았다. 백과사전은 그 안에 담긴 용어와 사건들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는 인상으로 인해, 일견 소수, 특권, 엘리트, 서구중심 등과 같은 지나간 가치들과의 대척지를 형성하는 듯하다. 하지만 백과사전적인 윤리적 기준을 문제 삼는다면, 그는 명백하게 자격 미달이다. 사용자의 참여가 허용된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에 관해 말하면서 래리 생어(Larry Sanger)가 언급했듯, 사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엄격한 기준들 가운데 하나가 내용에 선전과 홍보의 목적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과서나 미래에 대한 예측수단으로 활용되어서도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 

<Embedded Fetish> 2006. 

마시말리아노 지오니가 이끈 제8회 광주비엔날레

 <만인보(10,000 Lives)>(2010.9.3-11.7) 출품작




하지만 지오니의 <백과사전식 궁전>은 선전과 홍보의 음험한 계산들과 무관하지 않다. 뷔르텐베르크 미술협회 대표 이리스 드레슬러(Iris Dressler)가 이 사실을 잘 간파했다. 그에 의하면 그것은 역동성이 결여된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된 거대하고 총체적인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것으로, 그것을 관류하는 맥락이 무엇인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론 모더니즘의 영웅적인 내러티브와 그로부터 파생된 거장의 신화들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 다른 한편으론 “100여 년 전 서구인들의 식민시대적인 수집광 태도”로 비서구 세계를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다.3) 글로벌 큐레이팅은 이미 전적으로 시장-제도권에 흡수, 병합되었다. 이 세대에게 큐레이팅은 모순을 드러내는 대신, 두둑한 기금과 V.I.P.와 파티로 세상을 멋진 곳으로 치장하는 정치적 병참술의 일환이다. 지나간 영광의 존속, 제국시대에 대한 향수, 상권 보호 및 재건과 관련된 처연한 도구적 지식으로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반면 ‘불의에 대한 감각’이나 ‘무사공평한 지성’등과는 놀라울 정도로 결별해 있다.       


현재와 같은 식이라면, 베니스로부터 현실에 대한 첨예한 인식과 성찰에 기반하는 회복된 예술의 소식이 들려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백과사전적 큐레이팅은 불온한 역사의식과 국가들 간의 힘겨루기, 막대한 판돈이 걸린 자본의 흥행을 키우기 위해 동원된 전략에서 반 발자국도 안 떨어져 있다. 이 번지르르한 것은 실상 서구 우위로 구성된 작가목록의 시장가치를 평가 절상시키는 기제의 일환인, 곧 ‘예속된 큐레이팅’의 한 레시피(recipe)일 뿐이다. 그것은 말하도록 허용된 것들만 말하는 체계적으로 사전 조율된 언설들로 구성된다. 예속된 큐레이팅은 전시 초대로 평가 절상되는 미술가들과 그들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기관이나 사람들, 글로벌 블록버스터 전시나 미술관 여행자들을 비즈니스 대상으로 하는 여행 사업가들, 그리고 세계를 돌며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큐레이터들의 집단을 위한 사유화된 예술의 병참전략의 일환이다. 그러한 큐레이팅은 공적 영역으로서의 예술을 더욱 위축시켜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백과사전식 아카이빙은 민주적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차별 없이 객관적으로 취급했다는 인상을 풍긴다. 적절한 공간연출로 그러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별은 상위의 수준에서 완료된다. 적절한 자료들과 데이터들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지식과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4) 데이터는 민주적으로 다루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는 지식은 오래된 비민주적 지식체계와 여전히 제휴되어 있다. 그래서 아카이브의 중립성은 배열이나 배치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오염된다. 체계적인 아카이브는 그 지적인 인상으로 인해 부정한 권력의 홍보나 특별히 정당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돈벌이를 위해 자주 고용된다. 아카이브는 쉽게 현실에 영합하는 권력추구욕으로 나아간다. 아카이브가 위계질서와 자본의 침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환상일 뿐이다.5)




 백남준 

<‘조지 마치우나스 추모 공연’-요셉 보이스와 듀오 콘서트> 

1978 ⓒ Photo: Ivo Dekovic  




3. 아카이빙화된 큐레이팅의 한 진실


아카이빙은 생각하는 것처럼 정보와 자료를 취급하는 중립적인 접근이 결코 아니다. 그것에 큐레이팅의 맥락이 개입할 때는 더욱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조작이나 배제, 은폐의 도구로 전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의 데이터 지향적이고 도구적인 인식론으로 인해 아카이빙은 지식의 혁신적인 생성과는 거리가 먼 활동이다. 여기서는 예컨대 “미디어 아카이브 시스템을 위한 국제화된 기준을 마련한다.” 같은 언설들이 미구(微軀)의 거리낌조차 없이 토로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 즉 세계의 기관들이 하나의 동일한 유통망에 편입되고, 정보와 자료들을 평가하는 ‘단일하고도 체계적인’ 준거 틀이 공유되고, 그것에 의해 ‘엄선된’ 정보와 자료들을 공유하고, 공유된 자료를 기초로 교육하고 사고하는 세계가 훨씬 앞당겨질 거라는 자명한 사실에 대한 성찰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배제된다.  


많은 데이터가 확보된 분야를 선호하는 아카이빙의 속성은 관심사를 먼 과거나 현실이 아닌 근접한 과거로 결집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이 주제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통제하고 싶어 하는 부정한 정치나 시장권력이 동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라는 것이다. 양자가 상호적인 제휴로 나아갈 개연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또한 이는 상대적으로 기록들을 남기지 못하도록 억압되었거나 소외되어 온 경험이나 창작의 결과물들을 재차 소외시키는 억압의 지연과 소외의 극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결과물을 산출하기 어렵도록 제약이 가해져 온 경험이나 창작의 분야를 결과적으로 다룰만한 가치가 없는 분야로 재차 분류함으로써 부당한 현실에 눈감고 보수주의적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적 일탈을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큐레이팅이 객관적인 태도와 체계화를 내세우는 아카이빙으로 기우는 현재의 상황 자체가 이미 큐레이팅의 무기력과 좌절을 암묵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앞) 올리버 크로이와 올리버 엘져

(Oliver Croy and Oliver Elser) 

<The 387 Houses of Peter Fritz> 1916-1992 

<Insurance Clerk from Vienna> 1993-2008 

(뒤) 잭 위튼(Jack Whitten) <9-11-01> 2006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백과사전식 전당(Il Palazzo Enciclopedico)> 

Photo: Francesco Galli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치열한 현실인식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 그리고 대대적인 종합이 아니라 불완전성을 원칙으로 하며 백과사전적(encyclopedique) 지식이 아니라, 분리되고 다시 덩어리들로 연결되도록 그 안에 개방과 균열의 가능성이 확보된, ‘군(群)-학문적(encyclopedante)’ 지식으로 나아가는 것(에드가 모랭, Edgar Morin), 그럼으로써 예술과 현실성찰을 묶고, 지식과 반성을 연계하는 것이 큐레이팅이 회복해야 할 저항으로서의 지식 기획의 방향이요, 방식이다. 큐레이팅은 종합하고, 체계화하고, 범주를 구성하는 기술이 아니라, “방향을 내고,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 지식이어야 한다.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odo)의 시가 전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대 길을 내는 자여, 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각주]

1) 심상용, 「비엔날레, 어디로 가는가?」

2) Robert Storr, 「Prince of tides-interview with 1999 Venice Biennale Visual Arts Director Haraald Szeemann」, 『Art Forum』, May, 1999. 

3) ‘문소영의 문화 트렌드:광주비엔날레 닮은꼴인데 한국 작가는 안 보이네’, 2013. 6. 9.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0465

4) Philippe Breton, 『L’Utopie de la communication, La Decoverte』, 1977. 

5) 뤼시앙 스페즈, 「인터넷과 정신의 지배」, 베르나르 라까생, 피에르 부르디외,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백의, 2001, 128쪽 참조.



글쓴이 심상용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제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와 박사(D.E.A.), 파리 제 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시장미술의 탄생』, 『속도의 예술』, 『천재는 죽었다』, 『현대미술의 욕망과 상실』, 『그림 없는 미술관-대중시대 미술관의 모색과 전망』, 『명화로 보는 인류의 역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제 9의 예술 만화』가 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큐레이터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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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 큐레이터·통번역가,문선아 기자,심상용 미술사학 박사·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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