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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9, Feb 2014

창의적 창의도시

Creative Cities

뜨고 있는 도시들이 있다. 바로 홍콩과 아부다비. 루브르와 구겐하임은 아시아의 거점을 홍콩으로, 아랍·중동권의 거점을 아부다비로 삼아 진입하려 하였다. 홍콩 계획은 진행이 원활하지 않아 중단되었지만 홍콩에 서구룡지구와 같은 새로운 문화지역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아부다비에서의 오픈은 향후 3~4년 내에 새로운 중동권 미술관과 함께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러한 미술관들의 분점(Branch)설립의 움직임은 도시에서 문화를 이끌어내어 도시를 증진시키려는 창의도시(Creative City)의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
● 기획·진행 문선아 기자

창의도시의 성공적 사례로 들 수 있는 영국의 ‘게이츠헤드.’ 원래 탄광촌이었던 도시는 철저한 연구 끝에 개발이 진행되어 현재 한 해 평균 2천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전시, 공연에 기반 하여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매년 40억 파운드(약 8조 4천억 원)에 이른다. 사진은 도시의 상징 밀레니엄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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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Ⅰ 

여전히 주목할 만한 창의도시_문선아 


SPECIAL FEATURE Ⅱ 

도시는 무엇을 창조하는가_류제홍

 

SPECIAL FEATURE Ⅲ 

위대한 도시를 위한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_한은주


SPECIAL FEATURE 

‘돈 먹는 괴물’에서 창조 지식의 허브로 가다_윤대영, 인터뷰 안대웅 



창의도시에 대한 생각은 하루 이틀 만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1990년대 학문 용어로 개념이 발생되었으며, 새로운 정책의 방향으로 채택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럽 전역에서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재생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창의도시’ 개념은 창의성과 문화산업의 역할에 대한 상징적인 약속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어 스페인의 ‘빌바오’, 뉴욕의 미트패킹 지역과 ‘브루클린’, 중국의 ‘798 지구’ 등의 성공적 사례들은, 또 다른 지역에 새로운 창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북돋았다. 한국은 현재 ‘국내 4대 거점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오래된 폐광이나 공장 지대를 새롭게 단장하여 새롭게 예술 지대로 태어난 예들 역시 창의도시의 사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는 3월 개관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 파크(이하 DDP) 역시 창의도시추진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자, 이제 ‘창의도시’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번 특집에서는 창의도시의 개념을 정리하고, 앞으로 창의도시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봤다. 류제홍은 기존 사례들을 바탕으로 창의도시에 있어 보완되어야할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담론의 추이를 짚어봤다. 한은주는 창의도시에서 적용된 공공미술, 공공디자인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도시차원에서 미술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점들이 보충되어야할지를 제시했다. 더불어 윤대영과의 인터뷰로 DDP의 속살을 들여다 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홍콩 서구룡지구에 생길 ‘M+’의 예상도 

Day Scene 'View of M+ from Hong Kong Island' 

ⓒ Herzog & de Meuron Courtesy of Herzog & de 

Meuron and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Authority





Special Featur 

여전히 주목할 만한 창의도시

 문선아 기자



요즘은 어느 지방엘 가도 각 도시를 대표하는 미술관, 박물관이 하나쯤은 있다. 지방자치가 강화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적 도시 만들기에 경쟁적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적정한 규모와 번듯한 외관을 지닌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도시가 갖춰야할 잇-아이템(it-item)이 된 분위기다. 문화를 이끌어내어 도시를 진화시키려하는 이런 움직임은 비단 오늘 내일 일이 아니다. 외국에선 도시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97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고, 국내에선 2000년 즈음, ‘창의도시(Creative City)’라는 개념과 정책이 도입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왔다. 이제 심지어 도시자체를 문화적 아이콘으로 만들 계획이라 하니, 그 기반이 되는 ‘창의도시,’ 그 개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아부다비에 설립될 

‘루브르 미술관(Louvre Abu Dhabi)’ 내부 예상도  




창의도시란?


창의도시는 개념은 1990년대 피터 홀(Peter Hall), 찰스 론드리(Charles Landry)와 같은 유명한 학자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발생되었으며, 영국의 문화미디어체육부가 창의도시를 새로운 정책의 방향으로 제시하면서 현시되기 시작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재생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창의도시’ 개념은 창의성과 문화산업의 역할에 대한 상징적인 약속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창의도시를 단적으로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행정적 용어로 등장하여 이론적, 경험적인 고찰을 통해 정립되어 가는 과정에 있으며,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의미에서 창의도시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민으로 하여금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계획하고, 창의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유기체로서의 도시’(Landry), ‘‘창의적 계급’이 모여 창의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도시문화 내지 내적 환경’(Richard Florida)이라는 의미로 정의되기도 하며, 고급문화의 도시, 혁신적인 도시, 창조적인 개인과 산업, 실천이 있는 도시, 지역적 차원에서 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 등 다양한 맥락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다만 심미성과 창의성을 새로운 도시 문화의 비전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만 창의도시의 근본적이고도 공통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개념적인 사항을 조금 더 따져보자면, 사실 문화와 도시를 연결 짓는 개념으로는 ‘문화도시’가 먼저 있어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유럽의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전통적인 공업도시들은 도시의 생존을 위해 슬럼화된 공간에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문화를 통해 도시를 바꿔나간다는 개념으로 문화도시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문화도시는 본래 기존의 ‘도시의 문화적 완성도’를 지닌 도시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던 1990년대, 산업의 정체가 본격화되자, 문화도시의 개념이 전환된다. 낙후된 공장지대와 폐공장, 산업시설을 문화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도시를 재생한다는 것이 문화도시의 핵심이 되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신자유주의와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금융자본의 성장과도 그 맥락을 같이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금융자본은 더 좋은 투자처를 찾아 다양한 유형의 파생상품을 만들며 프로젝트형 금융개발을 추진했고, 그 결과 창의적 자본이라 일컫는 예술품과 미학적 건물, 도시 인프라 구축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예술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고, 도시규모의 프로젝트에 급진적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문화도시’의 내용이 바뀐다. ‘문화도시’의 성립여부는 기존의 완성도가 아니라 ‘문화를 통해 도시를 얼마나 혁신했느냐’가 기준이 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룬 영국 공업도시 글래스고가 문화도시를 상징해오던 ‘문화수도’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변화된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새로운 용어를 필요로 했고, 이에 ‘창의도시’라는 개념이 대두됐다. 간단히 말하자면, ‘창의도시’는 넓게는 ‘문화적 도시’ 안에 포괄되는 개념이자 좁게는 ‘문화도시’를 대체한 개념인 셈이다. (사실 창의도시의 영문 ‘Creative City’는 ‘창조도시’로 번역되기도 하나, 이번 특집에서 ‘창의도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기존 창조도시의 좁은 개념을 탈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협소한 의미에서 볼 때, 문화도시가 도시가 지닌 문화성을 어떻게 보전하고 육성하여 기호화할 것이냐에 관심이 있는데 반해, 창의도시는 문화산업을 통해 어떻게 창의적인 경관을 만들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내고, 창의계급(고급창의인력)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이렇게 ‘도시’는 창의도시라는 담론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는 장소로 변모했다. 




광주에 설립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상도  




창의도시의 모델들


주지하다시피 창의도시는 기본적으로 행정적 모델에 기반한다. 사례들을 살펴보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창의도시의 몇 가지 모델들을 짚어보자. 첫째로 앞서 언급한 바 있듯, 1985년부터 “문화유산 보전과 유럽의 문화적 통합에 기여한 도시를 대상으로 문화수도를 정하자”라는 기치로 해마다 한 도시를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 지정했던(현재는 6개월 주기로 두 도시를 지정하는 것으로 방식이 바뀌었다) ‘유럽 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모델을 들 수 있으며, 이 모델은 창의도시의 개념을 정리하고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국내 경쟁제도까지 마련하고 있을 정도다. 


둘째로 ‘유네스코창의도시’모델은 특정 예술 형태에 바탕을 둔 네트워크다. 문화적 도시환경과 문화·예술·지식정보산업 분야에 인적 자원 등에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도시 안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독자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도시들 중 문학·영화·음악·공예 및 민속예술·디자인·미디어예술·음식 총 7개의 분야를 구분하여 선정한다. 전 세계 19개국 34개 도시가 지정된 가운데, 국내에서는 서울특별시(디자인)와 경기도 이천시(공예), 전북 전주(음식)가 선정된 바 있다. 또 다른 모델로 도시의 행사를 기반으로 한 모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군소 도시들은 연례 문화행사를 유치하고 자본을 동원해 창의도시를 건설 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바로 영화제와 음악제, 미술제(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경우로 해외사례로 프랑스의 칸, 독일의 베를린, 이탈리아의 베니스, 영국의 에든버러, 독일의 카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며, 국내 사례로 부산, 부천, 통영, 광주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쇠락하는 산업지역에 문화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진행된 정책적 문화산업모델이 있다. 탈산업화를 경험하는 도시들을 위해 대안적 경제 기반을 발전시키는 것을 주목표로 출발했으며, 이후 문화산업과 창의산업의 경제적 고속·거대성장을 기반으로 한 ‘창의클러스터(creative clusters)’ 논의로 더욱 진전되었다. 이 모델은 소규모 도시나 동네에 특화된 집중지역을 만듦으로써 창의활동을 증가시키고 생산과 소비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해외사례로 런던의 소호(SOHO), 혹스턴(Hoxton)과 같은 문화특구, 과자 공장과 정육점으로 가득했던 거리를 패션과 예술의 거리로 재탄생시킨 첼시마켓(Chelsea Market)과 미트패킹 지역(Meatpacking District), 공장지대를 예술 지구로 변화시킨 중국 다산쯔의 798지구 등을 들 수 있으며, 낙후된 공장지대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형성한다는 점에서 넓게는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과 런던의 테이트모던까지도 이 모델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공적인 사례들을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홍콩의 서구룡지구와 국내의 서울시 창작 공간 사례 역시 이 모델에 위치시킬 수 있다.  




뉴욕 ‘첼시마켓’의 내부전경  




변화하는 창의도시


초기의 창의도시는 유명한 건물을 유치하는 식의 선도개발(flagship development)이 많았다. 특히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성공적 선례를 제공하자 개발자들은 앞 다투어 도시를 상징하는 창의적인 인기 건축물(starchitects)을 세우기에 바빴다. 물론 건축물로 도시를 대표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이 경우 프로젝트 수행에 있어서 막대한 초기 자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본 조달이 어려울 뿐 아니라 유지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더욱이 도시에 문화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경우, 시간이 흐르면 건축물만이 휑뎅그렁하게 남기 십상이었다. 우후죽순 생겨나던 이러한 형태의 창의도시는 2008년 이후 위기를 맞았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 금융 시장은 급속한 상황에 빠졌고, 오늘날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의 건축 산업이 큰 타격을 입는 바람에 건축물에 집중한 창의도시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도시들보다 금융자본이 집중되었던 도시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따라서 오늘날 창의도시의 개념은 다시 한 번 변모하고 있다.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식의 창의도시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를 충실히 하자는 움직임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 사회적 기업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경제가 형성되고,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이 만들어지는 등의 공동체 형성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의 사례와 같이 전문적 창의계급의 가치보다 시민적 창의성이나 공동의 가치, 네트워크를 통한 집단의 활동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달리 경쟁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서로 관계하며, 공유하고, 함께 살아보자는 주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화도시를 창의도시가 대체했던 것처럼, 이 새로운 흐름을 위해 또 다시 ‘공동체도시’ 또는 ‘공유도시’라는 개념이 생겨나기도 했다.)




수십 년간 파리에 신선한 음식을 제공해오던 시장가가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로 탈바꿈됐다. 

9만 3천 평방미터 넓이의 이 문화센터엔 

매년 7백만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방문한다.  




창의도시는 현재진행 중


살펴보았듯 ‘창의도시’ 개념은 문화도시에서 창의도시로, 다시 공동체도시로 일면 진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창의도시의 넓은 범주 안에서 다양한 도시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고 그 스펙트럼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실례로, 아부다비, 홍콩 두 지역은 모두 문화중심도시를 다시 꿈꾸고 있다. 아부다비는 북부의 사디얏 아일랜드(Saadiyat Island)를 문화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 향후 3~4년 내에 루브르박물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의 분관을 포함, 자이드 국립박물관, 퍼포밍아트센터, 안도타다오의 해양박물관 등의 개관할 예정이다. 홍콩 역시 1998년 ‘아시아문화예술중심지 서구룡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조성계획’을 발표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해당지구에 근현대 박물관인 엠플러스(M+)와 시추극장(Shih Tzu Theater) 등을 건립하고 있다. 이 두 계획은 스페인의 빌바오나 런던의 게이츠헤드 사례와 꼭 닮아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이 계획들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문제가 있는 모델이므로 추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선례들을 바탕으로 두 지구는 그 문제점들을 보완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구룡지구는 헤르조그 드 뫼론(Herzog& de Meuron) 등 유명 건축가를 내세워 인기 건축물을 짓고 있지만, 건축물 의존도를 낮추고 도시민들을 문화권 내로 흡수하기 위해 관객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프로그램들을 이미 진행하고 있는 식이다. 일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균형을 맞추려 하는 것. 따라서 각기 진행되고 있는 창의도시들은 도시의 맥락에 맞게 세밀한 수정을 동반하여 계획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문화도시-창의도시-공동체도시 개념이 서로 재매개화 되면서 창의도시의 형태나 모델의 스펙트럼이 외려 넓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있다. 국내 4대 거점 문화도시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으로, 경주를 ‘역사문화도시’(총 사업비: 3조 3,533억 원, 기간: 2004-2023)로, 전주를 ‘전통문화도시’(총사업비: 1조 7,109억원, 기간: 2007-2026)로, 부산을 ‘영상문화도시’(총사업비: 1,600억원, 기간: 2005-2014)로,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총 사업비: 5조 3,000억 원, 기간 2004-2023)로 개발하겠다는 것. 특히 광주는 홍콩에 뒤질세라 2003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종합조성 계획’을 발표, 약 13만m²규모의 ‘국립 아시아문화전당(Asian Culture Complex)’을 필두로 하여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지나치게 큰 규모’, ‘부재하는 콘텐츠’, ‘과연 누가 관람객이 될 것인가’하는 등의 우려의 목소리가 큰 가운데, 과연 국내 도시의 맥락에 맞게 설정되어 ‘창의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지 꾸준히 지켜볼 일이다.  




가와고에 도시 전경  





Special Feature  

도시는 무엇을 창조하는가

 류제홍 문화전략전문가



2010년부터 서울과 이천, 전주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되었고 다른 도시들도 추진 중이지만, ‘창의도시’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성과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창의도시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필요한 상황이다. 단순히 한국의 유행주기가 짧아서 논의가 시들해진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도시 브랜딩으로서 ‘창의도시’가 정작 도시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가 불황이다. 이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창조경제’가 앞에 섰다.



‘창의도시’는 문화가 도시화되고 

도시가 테마화된 형태다.   


‘창의도시’는 여가와 소비가 중요해지고 ‘문화’가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1990년대부터의 움직임이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의 흐름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문화가 도시브랜딩의 재료로서 작동하는 ‘문화도시’ 논의를 통해 도시화된다. 이후 문화도시는 예술, 역사, 교육, 생태 등의 스펙트럼으로 분화과정을 거쳐 창의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에서 ‘창조’로 이동하는 과정은 정책적 비전의 진화나 발전이라기보다는 세계적 유행을 표면적으로 모방하고 급변하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한 것이라 봐야할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서구의 성공적인 사례들에 숨은 전략을 모방하기보다는 명시적인 하드웨어와 결과를 벤치마킹하였고, 정치적 변화에 휘둘리고 경제적 위기에 취약한 국내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서울을 포함한 지자체의 도시브랜드 네이밍의 수준을 보면 정말 세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좋은 말은 거기 다 있다. 거리도 시설도, 축제도 도시도 테마화되고 스토리를 갖는다. 하지만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 실질적인 삶의 방식의 질적 변화가 아닌 정치적인 명분이나 도구로 전락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세계적인 유행을 따라하는 것보다는 국내적인 유행을 반영하는 것이 그나마 실질적인 정책이다. 부동산의 가치증식이 어려워졌고 도시개발이 더 이상 수지맞지 않게 되자 다른 시도들이 가능해 졌다. ‘창조도시’라고 불렀던 이름을 ‘창의도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개발 위주의 도시정책이 더 이상 어려워진 국제금융위기 이후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는 정부의 ‘창조경제’라는 정책기조에 따라 ‘창조’라는 말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게다가 국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창의도시 정책이 현실에 적응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지방자치의 결과로 축제가 보편화되고 아웃도어 활동이 일상화되면서 더 많은 활동들이 필요해졌다. 체험과 관광이 아웃도어 활동으로 융합되었고 건강과 미용, 행복이 의미 있는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소셜(the social)이 뜨고 있다.




‘마나즈루 써머 페스티벌’ 전경




‘창의도시’는 경제위기 속에서 

피어난 생활문화의 반영이다. 


전통적으로 도시의 기능은 지배자가 다스리는 정치영역, 재화가 모여 교환되는 경제영역, 인구가 밀집된 중심지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순화하여 말하면 정치적 기능, 상업적 기능, 문화적 기능은 순차적인 주도권을 갖는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권력을 과시하던 공간이었던 도시의 광장은 상업자본가의 득세로 시장으로 변했다가 현재는 문화적인 기능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정치적 기능은 여전하지만, 도심에 있던 생산기지는 수도권으로 이전하였고, 유통거점은 도시 외곽으로 이전했고, 도심 주거기능이 약해진 대신 사무와 소비공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토지와 부동산의 가치증식이 예전 같지 않고, 서울 외곽과 기타 지역의 도시들의 경우 기능이 정지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휴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한편으로 창의도시의 거점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간을 통한 가치증식을 재가동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과연 공동화된 도시에서 가치의 창조가 가능할까. 예술과 디자인이 도시를 살릴 것인가. 


에반스와 필리다(Graeme Evans and Phyllida Shaw)가 2004년 영국 문화부(DCMS)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를 통해 도시를 살릴 수 있는지의 가능성이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도시재생의 촉매와 동력으로 문화활동을 바라보는 ‘문화주도형 재생’(Culture-led Regeneration) 방식은 문화를 통해 쇠퇴한 도시이미지의 쇄신을 추구하는 도시선도개발(flagship development)의 형태를 취하여 대규모 문화시설을 건립하거나 대형이벤트(올림픽, 박람회 등)를 도시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하였으나, 문화자원을 관광산업의 활성화 수단으로만 사용하여 소비지향형 정책으로 그쳤다. 막대한 예산투입으로 도시재정이 악화되고, 고용의 질이 하락하였다. 두 번째 유형은 문화활동과 도시재생이 분리되어 진행되는 ‘문화도구형 재생’(Culture and Regen eration) 방식으로, 문화전략이 전략계획이나 기본계획 단계에 완전히 통합되지 못하여 문화활동의 주체를 지속성 있게 형성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냈다. 비즈니스 파크나 복원된 산업 부지에서 문화는 부차적이고 도구적인 프로그램의 수준에 머문다. 


세 번째 유형은 문화활동이 환경, 사회, 경제 분야의 활동과 통합되어 진행되는 ‘문화통합형 재생’(Cultural Regeneration) 방식으로 초기에는 문화지구, 문화산업클러스터 등의 물리적인 기반을 만드는 것에 주목했고, 21세기는 문화의 창의성이 도시산업의 새로운 기반을 구축하는 적극적인 도시통합형 모델이다. 예를 들어 ‘버밍험 르네상스’ 계획은 “시의회 예술, 고용, 경제개발 협력위원회”를 통하여 예술활동이 도시정책 및 도시계획과 통합된 사례이고, 바르셀로나의 경우 문화정책이 도시재생의 가장 핵심적인 의제로서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도시재생을 위한 계획이 수립될 때마다 문화적인 이슈를 중심에 놓았다. 초기 셰필드, 도클랜드 등의 문화산업 모델은 볼로냐, 가나자와, 홍콩 등 다양한 비즈니스가 결합된 창의도시 모델로 발전한다. (“The Contribution of Culture to Regeneration in the UK”, LondonMet 참조) 예의 보고서가 지적한 것처럼 문화를 수단화하거나, 문화시설과 대형 이벤트로는 도시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 도시를 살리는 창의도시가 되려면 창의적인 다양한 시도들이 자유롭게 추진되어 도시계획과 생활세계에 문화적 이슈와 전략이 융합되어야 한다. 생활세계의 중요성에 주목한다면 서울시의 디자인 테마보다는 이천의 공예도자 테마와 전주의 음식테마가 힘을 갖는다. 이천 창의도시의 경우는 창조경제의 모델로 인도네시아에 소개되기까지 했다.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 

수영장 전경 사진제공: 류제홍  




서울시의 경우 하이아트 명작들과 스타마케팅에 기반한 연예산업만 성황을 이룰 뿐, 새로운 창작 문화컨텐츠의 생산은 부진한 상태다. 다른 지역들은 서울에서 성공한 작품만 재개관하는 수준이라서 신진 예술가들의 등용문이 되지 못한다. 다만 최근 몇 년 간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으로 실용음악 학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공공미술(public art) 프로젝트는 마을 만들기와 결합하여 커뮤니티아트로 발전하였지만 전국의 유치원화를 가속화하였고,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문화적 접근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공예의 경우는 생활 기반을 잃었기 때문에 예술도 상품도 아닌 애매한 프로모션만 반복되고 있다. 참여의 강도는 강해지고 있지만 시민은 아직도 대상으로서 참여하는 것이지 주체로서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공원과 광장과 같은 전통적인 공공공간에서의 시민 혹은 민간단체의 거버넌스를 보면 명확히 나타난다. 창의적 인재양성 과정은 문화기획자 양성과정처럼 시스템과 로드맵이 없이 산업예비군 양성을 무한반복할 뿐이다. 


정책과 생활은 낮은 수준에서만 연결되어 있고 생활문화의 고유한 영역은 설정되어 있지 않다. ‘문화예술’은 범주상의 애매함으로 인한 정책적 혼돈에도 불구하고, 고급예술과 장르적 문화의 영역을 일상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이는 ‘생활방식의 총체’라는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정의에 기반 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의 일상적 실천과 세대간 소통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일상 영역에서 문화적 현상들이 팽배해지는 시대, 예술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생활이 되면서 ‘문화생활’은 ‘생활문화’로 ‘세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생활문화예술의 한 조직 형태인 동아리/동호회의 활성화와 공공섹터/제3섹터의 일자리를 연결하는 것은 생활문화예술의 사회적 경제적 특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서울시의 일자리 활성화 정책을 보면 이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전통시장 발전을 위해 ‘시장매니저’ 70명을 시장에 배치하기로 했고, 푸른도시선언의 전략계획에서 조경 영역에 ‘도시정원사’를 배치하는 구상을 했다. (이광준·류제홍 「서울시 전통시장 유형별 실태조사 및 신시장 모델 도출 연구」(2013)과 공공조경가그룹 「푸른도시선언 전략계획」(2013) 참조)


시민들 대부분의 보편적인 욕망으로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One-Source를 발굴하는 전략도 있다. 문화자원을 모으고 문화능력을 길러 문화의 기저를 형성함으로써 Multi-Use를 가능케 한다. 스토리는 노래가사가 되고, 노래는 공연이 되고, 무대 위의 공연은 현실의 인생무대를 변화시킨다. 이것을 ‘사회적 드라마(Social Dramas)’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사회적 드라마는 지속가능성을 획득하기 위해 종종 사회적 경제의 형식을 취한다. 2만 여개의 영국 스토리클럽은 퇴직한 노인들이 지역의 스토리들을 모으고 아카이빙하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하는 일을 한다. 일부는 자원봉사로 일부는 지자체의 스토리과(Story Department)에 소속되어 공공부분의 일을 한다. 『해리포터』보다 더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천사들의 전쟁(Shadow Mancer)』은 영국의 스토리텔러들이 이야기를 수집하고 구성하여 텔링하는 방식을 취한 소설이다.    




코인스트리트 가브리엘 부두 상업시설

(Gabriel's Wharf) 

사진제공: 류제홍  




소셜 제품, 소시오 비즈니스, 

창조 플랫폼은 집단 창의성을 불러일으킨다.


창의도시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도시, 그래서 창의적인 활동이 자유로운 도시다. 절대적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상대적 ‘창의’는 유에서 새로운 유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창조적 작업은 모방에서 출발한다. 신구논쟁의 결과, 새로운 것은 편집과 변형, 융합에 있는 것이다. 나아가 개인의 창조성을 넘어 집단적 창조성이 가능하다. 2010년대의 키워드가 “예술”에서 “창의”로, “문화적인 것(the cultural)”에서 “사회적인 것(the social)”으로 이동하면서 문화의 사회화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기능적인 관점과 집단적 구성체의 모임 활동이 중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문화경제적 관점과 사회적 경제의 체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사회적인 것”의 유행은 도시 공동체 논의와 함께 위기의 시기를 반영한다.(Gerard Delanty, Com munity, 2010) “예술”은 “문화예술”로, 다시 “생활문화”로 세속화되는 과정은 상부구조로서의 예술과 문화의 토대가 불황국면에서 약해지면서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경제”의 하부구조가 강화되는 과정과 같다. 공동체운동은 커뮤니티비지니스(CB)로, 마을만들기는 마을기업으로, 시민단체는 사회적 기업으로, 민간 구성체들은 협동조합으로 변화하고 있다. 



글쓴이 류제홍은 문화평론가 1.5세대로서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시각문화연구(Visual Cultural Studies)를 전공(PhD)했다. 희망제작소(2006)와 서울시 도시갤러리추진단(2007), 문화부 문전성시 컨설팅단(2008-09)을 거쳐 서울시 공공조경가로 활동 중이다. 광장과 공원, 마을과 전통시장 등 공공공간을 프로그래밍하여 “장소”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공공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청년메이커로서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코인스트리트 워터프론트 

사진제공: 류제홍    





Special Feature  

위대한 도시를 위한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대표



도시는 우리 일상이 펼쳐지는 환경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공적이거나 사적인 속성의 공간들이 병치되어 인간 개개의 일상을 뒷받침해주고 다시 삶에 영감을 주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위대한 도시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의 보편적 관심사 안에 존재해 왔고, 이상도시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로 이어졌다. 르네상스 시대 인간의 삶과 도시기능을 하나의 완결된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관계지어 해석한 필라레테(Filarete)의 스포르진다(Sforzinda), 19세기말 카밀로 지테(Camillo Sitte)의 도시미론에서부터 빛나는 도시, 가든시티, 최근의 뉴어바니즘에 이르기 까지 이상적인 도시에 관한 제안들은 각 시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더불어 인간의 공간적 욕망을 담고 있다. 창의도시도 이러한 맥락가운데 하나이다.


창의도시의 근본적인 취지는 도시의 창의적 가능성을 발굴하고 드높여 다양한 측면에서 도시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방법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공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특정한 시설이나 장치를 세우는 하드웨어에 기반한 접근에서부터, 도시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무형적인 프로그램을 기존 도시공간의 속성에 맞게 적용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접근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대개는 위대한 도시 만들기에 관한 도시 행정가들의 정치적 선전에 가시적 도움이 되는 하드웨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현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건축위주의 하드웨어 보강에는 도시 물적 자원의 유한성이나 운영프로그램의 빈곤함과 부딪힐 수 있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이에 비해 도시공간에 도입된 예술과 디자인은 좀 더 가볍고 부드러우며 즉각적인 방법으로 도시의 창의적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쿤스트하우스’ 전경  




성공적으로 적용되었을 경우, 건축위주의 도시개발이 짚어내지 못한 미세한 공간을 도시생활과 엮어 활력과 영감을 주는 장소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때때로 창의도시의 개념이 공공미술이나 공공디자인의 보다 광범위한 도시적용만으로 좁게 해석되거나 모든 예술적 개입이 도시공간에 긍정적으로만 작용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사실 도시공간에 적용된 예술적 개입이 늘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그 형상이 어떠하던 간에 예술품도 도시영역 안에 물리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다양한 감각적 자극을 유발한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늘 즐거움을 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시공간이 개별 예술가나 디자이너에게는 에고(ego)의 성취와 전파수단으로, 정책결정자에게는 행정 전시장으로 오용될 가능성도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선전의 효율적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스탈린이나 중국 문화혁명시기 마오쩌둥의 정치선전 방식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애초에 이러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공공장소에 가해진 예술적 개입은 예상치 못한 오독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다시 창의도시 발제의 근본취지로 돌아가보자. 그것은 이 시점에 맞는 위대한 도시 만들기에 있을 것이다. 위대한 도시란 찬란한 건축물이나 값비싼 예술품의 향연이 펼쳐져 세계곳곳에서 그 도시의 이름이 회자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공공미술이나 공공 디자인과 연관된 행정들은 도시 브랜딩과 관광자원화라는 미명하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것을 우선시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나고 활기가 넘치지만 차분하고 정적인 공간이 어우러져 있는 도시. 밀도가 있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넘치지만,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도시. 도시공간의 대부분이 온건하고 평범하지만, 몇몇 매우 독특한 특징들로 매력이 넘치는 공간을 품고 있는 도시. 찰스 론드리(Charles Laundry)의 주장대로 위대한 도시는 좋은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의 균형감이 공공미술과 공공 디자인만으로 획득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앞서 언급한대로 공공미술의 도입이 지니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감안할 때, 예술개입의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재고할 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언급하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창의도시 구현을 위해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을 적용할 때 그 동안 다소 간과해왔던 유념해야 할 요소들을 짚어보자.


첫째, 위대한 도시 만들기의 중심에는 항상 우리의 일상이 있어야 한다. 특히, 현대도시에서는 일상성에 관한 속성이 공간과 장소를 지배한다. 1989년 뉴욕 시티 프라자에 설치되어 있던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가 주변 회사원들의 빗발치는 민원으로 인해 철거되었다. 1979년에 ‘건축 안의 예술(art in architectur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라에게 의뢰된 이 작품은 1981년에 설치되었다. 이 당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세라의 작품이 설치되자마자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비판이 팽팽히 맞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완성직후 무려 1300여명의 주변 회사원들이 철거서명에 사인을 했다고 하니, 당시 논쟁의 뜨거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일상적 출퇴근 동선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그 공간을 자주 이용하는 주변 회사원들이 세계적 명성의 예술가의 이름을 거부하게 만든 이유였다. 이에 대해 세라는 장소 특정적으로 디자인된 이 작품이 도시공간을 재해석했다고 반박하였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디자인한 

포르투칼 리스본의 ‘오리엔테 기차역(Garedo Oriente)’전경. 

1998년 개최된 엑스포를 맞아, ‘인도항로 발견 400주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21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도시로 변모하기 

위한 공공디자인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오리엔테 기차역은 그 프로그램의 대표작.




그러나 예술적 해석과 개입이 인간 일상의 본질적 흐름을 방해한다면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 반대자의 의견이었다. 도시공간의 일상적 의미와 예술적 개입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의 적용은 창의적 소통과 교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도시에 대한 포괄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둘째, 도시에 대한 물리적 환경조건과 비물리적 요구사항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성황리에 설치되어온 모리스 아기스(Maurice Agis)의   <드림 스페이스(Dream Space)>가 2006년 끔찍한 비극의 무대가 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드림스페이스>는 관람객이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매고 형형색색으로 꾸며진 PVC외피에 바람을 넣어 만든 초거대 구조체인 드림하우스의 내부를 경험하면서 관람객도 그 작품의 일부가 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 사고 당시 축구장 절반만한 드림하우스의 지지대가 풀리면서 하늘로 솟구쳐 두 명의 여자관람객이 죽고 세 살짜리 유아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아기스는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고, 영국법원은 건강과 안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그에게 유죄를 내렸다. 법적인 선고보다도 자신의 작품으로 인해 소중한 인명훼손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작가는 심각한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 ‘<드림스페이스> 사건’은 예술작품이라고 하여 공공장소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요구사항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근래 미술관계자와의 대화에서 예전 서울 스퀘어 건물에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걸어 다니는 사람(Walking Man)>이라는 작품의 심의과정에 얽힌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도시 관련 전문가들의 안목을 탓하는 내용이었는데 심의위원들이 감히 줄리안 오피라는 유명작가의 작품설치에 다양한 트집을 잡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들은 심의위원들의 의견은 도시의 공공장소에 설치될 것이라면 당연히 따져서 점검해야 하는 요소들로, 예술작품이라고 공공 안전문제에 예외가 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만약 밤에 구현되는 이 작품이 주거시설이나 숙박시설 인근에서 잘 보이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면, 인간의 생리상 잠을 청해야 하는 밤 시간 동안 빛 폭력에 시달려야만 한다. 이러한 점들이 묵과된 채 한동안 LED조명을 이용하여 건축물의 전면부를 전광판으로 두르는 미디어 파사드가 우리나라 공공미술의 참신한 도구로 과대포장 된 적이 있었다. 공공미술이나 공공디자인은 단순한 창작행위가 아니다. 공공장소에 설치되며 공공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공미술의 특성상 해당 작가는 충분히 도시공간의 공공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반드시 도시 및 건축관련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도시민의 건강과 안전성에 관한 충분한 사전조치가 행해지도록 하는 행정적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의사결정이나 진행과정이 결과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도시계획 및 건축과 공공미술이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체계하에서 다루어 져야 한다는 점이다. 익히 잘 알려진 1980년대 프랑스의 라 데팡스 신도시 활성화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모리스 아기스(Maurice Agis) <드림스페이스V>  




1950년대 파리의 위성도시로 계획되어 건립된 라데팡스는 투자환경조성을 통한 기업유치에 집중적으로 신경을 썼다. 그러다 보니, 구도심인 파리와 문화적 격차도 커지고 점점 삭막해 져갔다. 이에 프랑스정부는 미테랑 집권 이후부터 공공미술을 도입하여 높은 건축물 위주의 도시공간을 순화시키고 예술적 인프라를 확충하여 구도심과 문화적 격차를 줄이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철저히 관주도로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우선 라데팡스 개발청이 도시이미지에 맞는 컨셉을 잡고 작품을 선정하고 실행하였다. 도시 정체성에 주안점을 두고 도시의 인프라와 결합된 공공미술을 추구하였다. 예를 들어, 지하철 역사내부에 다양한 작품을 배치해두어 도시일상과 밀접한 장소에서 시민들은 매일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현대 건축물과의 조화를 위해 동시대 다른 나라 예술가들의 작품의 설치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보다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별하여 그 시대에 향유되어야 할 예술품을 시민들에게 제공한다는 개념도 내포되어 있었다. 더불어 장소 특정적 미술을 도입함으로써 도시공간의 리듬을 일깨우고 개별 공간적 특성이 도시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하였다.


또 하나 우리가 눈 여겨 볼 사례가 있다. 산업혁명기 런던과 함께 영국의 2대도시였던 브리스톨이 1970년대 이후 급격히 산업이 쇠퇴하여 도시공간은 활력을 잃고 슬럼화되어 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조된 재건사업으로 인해 불명확한 도로체계와 도시정보가 도시생활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1980년대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건축가, 도시계획가, 시공무원, 지질학자, 예술가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였다. 도시의 아이덴티티와 도시정보를 다시 구성하고 다듬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관련 위원회를 조직하고 브리스톨 시청이 행정적 지원을 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민간, 중앙행정기관, 지방행정기관, 시민위원회가 같이 움직이면서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해 나간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접근하는 것도 두드러지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1980년대에 시작된 일이 최근까지도 장기계획 하에 진행되고 있다. 2011년에서부터 2030년에 이르는 다음단계의 장기계획을 수립을 위해 공공미술 전략 매뉴얼을 최근에 완성한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계획과 통합적으로 연계하여 진행된다는 것이다. 




리버풀 ‘앨버트 독’ 전경. 

리버풀과 앨버트 독의 화려한 변신은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미술관이 들어서면서부터 

본격화됐다. 항구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있던 리버풀은 

‘앨버트 독’을 미술관으로 변모시키면서 2008년에는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됐다.  




브리스톨 지구계획, 중심부 전략계획, 문화전략계획 등이 모두 공공미술정책을 내포하여 통합적으로 관리 운영된다. 이를 통해 도시의 물리적 장치와 비물리적 프로그램들은 일관된 지향점을 가지며, 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드러난 공공미술에 관한 구체적인 인식의 방향성이 아직까지는 모호하다. 일부는 공공미술이 빈 공공공간에 조각작품을 설치하거나 지루하게 긴 옹벽이나 담장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간한 「공공미술에 관한 보고서」(2011)에 따르면, 기념조각상 설립이 주류를 이루는 1960-70년대를 거쳐 제도에 의한 의무적인 예술개입이 시작된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공공미술은 이러한 인식의 양상 속에서 전개되었다. 2000년 이후, 도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공미술이 적용되어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도시계획의 큰 틀에서 공공미술이 다루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초기의 조각상 세우기에 골몰했던 공공미술의 경향이 점차 도시공간의 프로그램과 합쳐져 경험위주로 가고 있다. 


도시는 고정된 물리적 장치들의 각축장이 아니다. 각각의 크고 작은 공간들이 매 시간마다 점유의 밀도와 실행되는 행위의 유형이 달라질 수 있는 살아있는 유기적 복합체이다. 일견 도시의 어느 부지에 세워지는 건축물이 한 사람의 건축가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건축 및 도시계획 관련 법규로 만들어진 행정 가이드라인과 다양한 심의과정들을 거쳐 구현된다. 특정부지의 소유권이 특정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물 자체가 지니는 도시 내에서 공공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단계에서 공공성에 대한 검증과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갤러리라는 한정된 공간이나 정해진 사회적 계급에서 향유되던 예술이 이제 일상이 펼쳐지는 도시공간으로 나와 공공의 정서적 순화, 나아가 도시 활성화 등 창의적 가능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공미술은 미술계만의 사안이 아니다. 그 동안 ‘미술’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었다면 앞에 붙어있는 ‘공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되짚어볼 때이다. 언급했던 거시적 틀 안에서 세부적인 실행전략을 보다 정교화 한다면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이 위대한 도시를 만드는데 하나의 큰 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라데팡스(La Defense)’ 전경




글쓴이 한은주는 공간에서 건축실무 후 영국왕립예술대학원에서 도시공간에서의 위치기반 인터렉션 디자인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시그그래프(Siggraph)』에 작품발표를 했으며,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초대작가였다. 공간건축 이사와 『SPACE』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소프트아키텍쳐랩의 대표이자 한양대 겸임교수로 혁신적 도시디자인과 건축을 고민하고 있다.




비정형의 형태가 인상적인 DDP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역작이다. 

분절적인 공간을 추구하는 블록 건축과는 달리 공간과 공간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건립 초기부터 

과도한 형태에 논란이 있어왔지만 건축적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풍경은 종종 사람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담는 최적의 그릇이기도 하다.





Special Feature Ⅳ 

‘돈 먹는 괴물’에서 창조 지식의 허브로 가다

● 윤대영 서울디자인재단 협력본부장 ● 인터뷰 안대웅 기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 파크(이하 DDP)가 마침내 베일을 벗고 오는 3월 21일 개관을 목표로 마무리 준비에 들어갔다. 공사 기간, 공공 건축물 사상 최대 예산인 4,840억 원이 투입되어 ‘돈 먹는 괴물’이라는 애칭을 얻어왔던 DDP. 지속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10일 프레스투어를 통해 공개된 DDP의 ‘아방’하고 ‘샤방’한 모습은 기자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내외부의 유연한 곡선 흐름을 강조하는 자하 하디드의 설계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원래 DDP는 오세훈 전 시장이 2006년부터 추진한 역점사업으로 '디자인 서울'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세계 속의 ‘디자인 메카’로서 ‘문화로 돈을 번다’는 컬처노믹스가 강조됐다. 하지만 국제적 랜드 마크의 당위성이 문제가 되면서 비판의 여론이 들끓었고 착공부터 완공까지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제 개관을 앞두고 DDP측은 한국 디자인의 미래 허브로서 디자인의 모든 것을 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시민들이 꿈꾸고(Dream) 만들고(Do) 즐기는(Play) 공간”이 되겠다는 DDP. 「퍼블릭아트」는 2009년부터 실무를 맡아온 서울디자인재단 윤대영 협력본부장을 만나 DDP에 얽힌 사연과 앞으로의 향방을 물어봤다.



안대웅(이하 안): 한 번 정리를 해주시면 좋겠다. 프레스 투어 때 박삼철 본부장이 5년 동안 준비하면서 욕만 들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게 기억에 남는다. 몇 가지 요소들을 알려준다면?


윤대영(이하 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시민 세금으로 오천 억이나 써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세금 먹는 하마’ 아니냐. 둘째, 동대문 역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시착한 비행접시 같다. 우리 역사 문화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 셋째, 주변 상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주변 상인들은 얼마나 혜택을 볼 수 있느냐는 문제다. 하지만 이제는 긍정적인 면을 봐주셨으면 한다. 동대문, 특히 동대문 운동장은 유서가 깊은 장소다. 1926년에 일본에 히로이토 천왕이 자기 아들 아키토 황태자의 결혼기념으로 한국에 운동장을 지은 거다. 그 당시에는 경성 운동장이었는데, 해방 이후 서울 운동장으로 바뀌고 동대문 운동장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하지만 88올림픽 때 잠실 운동장이 만들어지고 나서 사실상 슬럼화 되기 시작했다. DDP는 사실 슬럼화 된 도시를 재생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다.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물건 팔 기회를 증대시키는 것이 하나의 목표다. 이 지역의 교통이 혼잡화 되고 슬럼화 되어가는 것을 거주민 스스로도 불편해 했을 텐데, 서울시가 돈을 투자해서 새 건물을 짓는다고 하니까 반감부터 가지는 것 같아 아쉽다. 우리는 희망적으로 보고 싶다. 예컨데 DDP가 들어서고 나서 홀로그램 한류 공연장이 만들어져 최근에 오픈했다. 10년 간 유령 건물이었는데 롯데가 인수해서 리노베이션 했다. 앞으로 DDP를 중심으로 상권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알림2관 전경 




안: 2009년부터 이 일을 맡았다고 들었다. 중간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다. 중요했던 변화의 순간이 있다면 꼽아 달라.


윤: 처음 시작은 세계적인 랜드마크였다. 세계디자인도시(월드디자인캐피탈 WDC)로 선정되면서 오세훈 시장이 주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사업을 시작하고 보니 계속 질문이 들어왔다. 여기서 무얼 보여주려고 하느냐? 대답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고민 하다가, 작년에 문제를 푼 것이 바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는 가치다. DDP는 첫 번째로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디자인의 원형으로 본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뭐냐? 훈민정음 해례본을 들 수 있다. 바로 오는 3월 간송미술관 기획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 오세훈 시장에서 박원순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바뀐 방향성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하다.


윤: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을 ‘창의’, ‘디자인 서울’으로 바꾸겠다고 내세웠다. 그것이 약간 오해의 측면도 있지만, 오 시장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책으로 투입해서 발전시키려고 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 중 물론 과오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방향성이 바뀌었다기 보다 박원순 시장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간 측면이 있다. 박 시장이 해 온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는 그 자체가 서비스 디자인의 결정체다. 이미 그런 디자인을 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박 시장은 DDP를 창조 디자인의 원형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오 시장이 슬럼화 되었던 장소에 랜드마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 박 시장은 서비스,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에 대해 고찰한 분이다. 다른말로 오 시장이 컨테이너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박 시장은 컨테이너 사이에 컨텐츠를 넣는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다. 두 시장이 시기와 궁합이 잘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디자인 둘레길 전경  




안: 창조 디자인의 원형으로서의 DDP란 말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창조 경제의 원형을 ‘디자인’이라고 봐도 되는가.


윤: 디자인의 실체는 없던 분야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스마트폰 유리가 기존 유리보다 10배 강한 탄성을 갖고 있다. 이 유리를 발견하면서 터치 가능한 터치 디스플레이 기술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곤 스마트폰이 디자인됐다. 이렇게 지금의 창조 경제는 기술, 예술, 마케팅이 모두 결합되어 있다. 이런 디자인이 결국 상품화되고,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원가를 절감하고, 탄소발생률을 줄인다. 이런 관점에서 백남준 선생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술에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냈지만 미디어 산업에도 영역을 미쳤다. 또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생각해보자. 아날로그로만 존재했던 병원, 소방, 의식주 등 모든 생활에 새로운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진다. 결국 다자인은 광범위한 프로세스. 그것이 창조경제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키가 된다.



안: 나아가서 창조도시는 창조경제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장소라고 볼 수 있는가?


윤: 그렇다. 동대문을 보면 느낄 수 있는데, 길에 차가 막히면 아무도 못 가는 상황처럼 과거 동대문의 기능이 완전히 얽혀있었다. 여기에 서울시가 대규모 디자인 투자를 한 거다. 이후 교통 혼잡 해결, 주변 상권 변화 등에 대해 조사해봤더니 거의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었다. 물론 역사학자들은 많이 비판을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동대문 운동장 밑에 이간수문 성곽이 묻혀있었다는 것은 그 전까지는 몰랐었다. 누가 관심을 가지고 봤겠는가. 성곽이 발견되면서 한양성곽의 길도 이어갈 수 있었다. 해프닝이다.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기 때문에 (편익이 더 많기 때문에) 미래를 통한 길을 열어가고 싶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앤드 파크 조감도

(Dongdaemun Design Plaza & Park Bird's-eye view)




안: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프로젝트를 하고 있나 궁금하셨을 것 같다. 디자인계에서 94년부터 20년 넘게 이 일을 했지만 가장 어려운 점이 디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이다. DDP의 포인트 자체가 창조지식을 발표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필요한 무엇이든지 디자인이 만들어낼 것이다. 심리학자, 디자인 전공자, 미술 관련종사자 등과 함께 디자인 교육을 해 나가려고 한다. 시민들이 그런 목적으로 DDP에 다가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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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문선아 기자,류제홍 문화전략전문가,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대표,윤대영 서울디자인재단 협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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