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Issue 93, Jun 2014

애나한
Anna So Young Han

PUBLIC ART NEW HERO
2014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흔적 해석학
공간의 오렌지색 바닥은 관객이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단숨에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린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선을 따라가면 미니멀한 조형에 다다르게 되고, 또 다른 한 쪽 벽에서는 일련의 선들이 자유자재로 허공을 가로지른다. 맞은편에는 단순한 도형들의 애니메이션이 비춰진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애나한의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작가 애나한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추상적 요소들을 한 군데에 모아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묶어낸다.
● 김민하 객원기자 ● 사진 서지연

'A Place Where You and The Light Rest' 2013 Fabric, vinyl, carpet Size Variable 950×555×H341cm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작가가 구현해낸 공간은 펠트로 만들어진 오렌지색 바닥이 뿜어내는 따뜻함, 경쾌함, 밝음, 즐거움, 더 나아가서는 치유의 에너지까지도 체험하게 만든다. 이 모든 신체적 경험은 결국 ‘우리’에게로 초점이 맞춰져 생각의 전환을 통해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한다. 오랜 시간 해외에서 생활했던 그에게 어디론가 짐을 싸서 떠나는 일은 일상이었다. 살아가는 것과 관련해 익숙한 공간적 장소가 필요한 것이 동물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 유난히 공간과 장소에 대한 고찰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유학생활 내내 하나씩 모으며 정들었던 중고 가구들을 새로운 공간에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른 이들이 이미 지어놓은 공간 속에 자신의 물건을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예상치 못한 조합은 이내 작업의 모티브가 됐다. 이 과정에서 공간과 장소에 관한 아이디어는 확장된다. 애나한의 작업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Broke In Half To Be Bleed Out> 2010 

Acrylic on panel, fluorescent lights, vinyl 

61×61cm each (W322×H61cm installation)  




<파란 출구 (Blue Exit)>는 2차원의 평면에서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는 듯 과감한 탈출을 시도한다. 평면위에서는 이질적인 재료들이 결합하고, 천을 이용해 확장되어 또 다른 캔버스의 한 쪽 면과 연결된다. 캔버스와 또 다른 캔버스가 천으로 이어짐으로써 캔버스간의 거리가 변화되고 마침내 그 사이에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캔버스의 양옆을 확장시켜 왜곡된 원근감을 보여주는 <흘리기 위해 반으로 벌어진 (Broke in Half To Be Bleed Out)>도 같은 맥락이다. 공간과 장소에 관한 이야기는 지도 그리기를 시도함으로써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조금 색다른 길 (Walk On The Wild Side)>은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녔던 자신의 과거에서 다양한 문화와 환경을 접했던 기억을 자신만의 지도로 풀어낸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이 살던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새로운 장소와 마주하게 될 때, 순간 떠오르는 다양한 감정들을 기록한다. 작가가 느낀 감정들은 스스로 정한 기호와 도형으로 패턴화되어 일종의 지도로 나타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지도는 공간과 장소와의 첫 만남들을 추상적 이미지일 뿐이지만 전시장 안에 전시됨으로써 작가의 기억들이 환기되며 구체화된다. 이로써 공간에 대한 단선적이었던 기억의 층이 다른 공간들에 대한 기억과 겹쳐져 다층적인 형태의 지형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는 더 나아가 공간 자체를 직접적으로 변형하고 왜곡하여 재구성하는 작업들을 시도하기도한다. <아늑한 어느 곳 (Welcoming Nook)>은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작은 방의 한 벽에 마름모꼴의 노란 천을 급격한 경사로 설치하고 벽과 천 사이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을 마련해 놓는다. 노란색의 첫인상처럼 따뜻할 것이라 생각했던 관객들은 좁고 경사진 공간에서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서 이미지는 전복된다.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조형물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 안에서 신체 그 자체로 경험하는 새로운 인식과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Blue Under Smashing April Nostalgia> 2012 

Fabric, paint, printed vinyl 6×3.3m 

(Under the show titled, "Two Doors" by curator Baek, 

Ahyoung at the Busan Biennale Special Exhibition 2012)  




빛과 조명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공간을 변형시키는 것 또한 애나한의 작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다수의 작업들에서 빛과 조명 그 자체가 조형적인 요소로서 등장하는 이유는 친숙한 공간을 쉽게 이질적으로 만들거나 공간의 확장과 축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스코히건 스쿨 오브 페인팅 앤 스컬프쳐(Skowhegan School of Painting & Sculp ture)에서 진행했던 <12000145>가 그 대표적인 예다. 평소 공간을 완전히 컨트롤하면서 재구성하는 작업을 즐겼던 작가는 처음으로 자연광을 사용하며 작업하며 빛과 공간을 이용한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된다. 늘 인조광을 이용해 우연성을 예측할 수 있었던 화이트큐브와는 다르게 자연광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농장 헛간은 빛 그 자체만으로 공간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계기였다. 작가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문들을 모두 천으로 둘러싼 다음 일종의 빛의 통로를 조성하고 빛이 천을 통해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시간을 흐름에 따라 보여줌으로써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12000145> 2012 Fabric, mirror, 

fluorescent lights 84×370cm/120×370cm  




이후 독일 쿤스틀러하우스 슐로스 발모랄(Kun stlerhaus Schloß Balmoral)에서는 앞선 작업보다 훨씬 더 자연광을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그곳에서 작업한 <빛과 당신이 머무는 곳(A Place Where you and The Light Rest)>은 빛이 통과하는 물체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사되어 나타나는 이미지들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이로써 빛들은 천장이나 벽에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유희의 장을 만들어내고, 관객들 역시 공간 구석구석에서 온몸으로 빛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가장 최근 전시 <처음부터(Da Capo)>에서는 재구성한 공간 안에 자신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와 그동안의 삶의 흔적들을 꺼내 놓는다. 작가 자신은 “이기적이다”라고 표현하며 일방적인 감정배출의 장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가 재구성한 6개의 공간은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온다. 유년시절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기억이나 각 공간에 있는 미니멀한 조형들과 개인의 흔적들은 과거의 경험을 하나로 압축해 단순한 이미지로 드러내면서 지난 시절의 순간들을 한데 모아 환기시킨다.




<Agent Orange> 2012 Projector, red halogen, 

string, wall paint, felt, fluorescent lights, wood, 

circle mirror L1814×W815×H738cm




이렇게 애나한의 작업은 평면에서 출발해 확장되어 공간과 만난다. 현재는 관객이 공간을 경험하는 그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각이 직접 몸으로 전달되는 사건의 현장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의 공간에서 추상적 조형물과 벽면을 가득 메운 특정 색깔은 무질서하다기 보다는 관람객들이 오가는 매순간에 의해 새롭게 생성되는 긍정적인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즉, 어떤 고정된 바탕이나 전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 공간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마련하는 것이다. 이로써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관람객들의 움직임과 개별의 기억은 공간이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게 된다. 작품은 작가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했던가. 공간 옆에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라고 적힌 문구를 가리키며 먼저 맨발로 성큼성큼 자신의 공간 속에 앉아 이야기하자고 제안하던 작가는 “굳이 관객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관객이 원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공유하는 것이 의도라는 것. 그가 앞으로 만들어낼 공간이, 또 공간과 조우하게 될 우리가 더 기대가 된다.  




애나한




애나한은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을 졸업한 후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대학원에서 페인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오랜 유학생활 때문인지 그녀에게 새로운 장소와 조우하는 일은 언제나 작업의 모티브로 작용한다. 많은 요소를 사용하지 않고도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통째로 전환시키는 장소 특정적 작업에 관심이 많다.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비롯해 PrattMWP 10주년 기념전, 동방의 요괴들 In the City, 창원아시아미술제, 레지던스 네트워크 : 미술창작스튜디오 교류전, 부산 비엔날레 특별전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김민하 객원기자

Tag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