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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2, May 2014

신유라
Shin,Yoola

PUBLIC ART NEW HERO
2014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카오스, 코스모스, 무심한 흥겨움
콩나물 머리가 광섬유에 매달린 채 일렁인다. 귓가엔 의미심장한 민중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과 찬송가인 ‘빛의 사자들이여’가 오묘하게 겹쳐 들리고, 축 쳐진 사형수 몸뚱이 같이 느껴졌던 콩나물들은 어느새 빛을 발하며 음악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올챙이 떼로 전환된다.
● 문선아 기자

'평화 2013' 2013 비둘기 인형, 우레탄 폼, CD, 비단신, 실, 낚시용 미끼, 낚시 바늘, 못, 초, 촛농, 비누받침, 모기향 고정대, 페인트, 나무 패널 180×180×1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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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식재료인 콩나물과 그것과 형태가 비슷한 마이크, 빛나는 광섬유와 암흑같이 까만 색면, 진보를 대변하는 민중가요와 보수를 상징하는 찬송가. 작가 신유라는 이 단순하고도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을 뭉쳐 기묘하고도 흥겨운 상태를 만들어낸다. 어느 철학자의 말마따나 ‘형식’과 ‘내용’ 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 같던 세상에, 제 3의 요소로서 ‘상태’를 등장시키고, 기존에 있던 인식론적 이분법의 틀을 붕괴시킨다. 2009년부터 신유라는 주변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사물(오브제)들을 수집하여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그 재료들을 결합시켜 작업을 완성해내는, 일명 ‘접붙임 조각’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서로 다른 두 식물의 단면을 이어 하나의 개체로 만들어냄으로써 양쪽 식물 모두의 장점을 취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식물 재배법, ‘접붙이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는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졌는데, 앞서 언급한 <콩가-거룩한 인생> 역시 이에 속한다. 




<콩가-거룩한 인생> 

2012-2013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프레임, 마이크, 목발, 나무, 

엠프, MP3플레이어 Print size: 170×120cm Mic set:

135×19×43cm Amp: 30×29×19cm




‘접붙임 조각’ 시리즈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의 조합으로 기묘한 알쏭달쏭함을 자아내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내부에 위치한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금색 통발(<How Are You>)이라든가, 상추 더미 위에 올려 진 경적(<상추와 경적>)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일면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정체모를 쾌감을 관람객들에게 선사한다. 그리하여 작가의 작업들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가족처럼) 닮아 하나의 특정한 상태를 지향하고 있는데, 바로 ‘무심한 흥겨움’의 상태다. 기능이나 의미가 제각각인 사물들은 신유라의 작업을 통해 고유한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를 상실한 채, 한데 뭉뚱그려져 존재론적 전환을 이룬다. 이는 비단 고정된 다른 의미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해체’ 그 자체를 지시하며, 따라서 작업은 ‘의미’를 떠나 ‘상태’로 전환된다. 말하자면, 작가의 작업은 의미적 카오스(Chaos, 혼돈), 형태적 코스모스(Cosmos, 질서), 상태적 흥겨움(Ecstasy)을 지향한다.  


신유라의 작업은 언뜻 보면 그 익숙하지 않은 조합 덕에 형태적 혼돈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각각의 작업은 통발과 선풍기, 타이어와 빗, 대나무와 다리미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전에 사진 시리즈 ‘8:2’로 선보인 대걸레와 소시지 캔, 상추와 경적, 다시마와 댕기, 기타와 무 등의 조합들과 크게 결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실 본래의 사물의 의미를 상기하며 형태적 혼돈으로 인식하는 것은 관람객들일 뿐, 작가는 오히려 그 작업 안에서 형태적 질서를 찾아가고 있다. 예컨대 상추 위에 놓인 경적은 삼각 구도의 매우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작업에서 ‘사람’의 형태가 자주 등장하는 것 역시 작가가 작업을 통해 안정된 형태적 구도를 찾아간다는 반증이다. “작업에서 즉흥적 결합들을 시도하는데 있어 색과 면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거나 “각각의 양 사물 사이의 요(凹), 철(凸)이 마치 그 자리에 있어야했던 것처럼 딱 들어맞을 때, 필연을 느낀다.”는 작가의 말이 역시 이 사실을 반영한다. 즉흥적이고도 즉각적으로 결합하는 작업 방식을 지향하는 탓에 작가는 그 사물들이 위치 지어져야 할 형태를 타고난 예술가적 본능으로 추구하고 있다. 




<상추와 경적> 201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80×66cm 




오히려 작업 안에서 혼돈을 맞이하는 것은 ‘의미’이거나 ‘내용’이다. 일상의 음식재료인 상추와 위급상황을 알릴 때 쓰는 경적, 깁스 부목과 삼족오 도상 등 작가의 작업에서 재료가 되는 사물들은 대체로 함께 연상되기 힘든 것들이다. 신유라는 이 의미체들을 다 묶어 하나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편향적 시각이나 내러티브를 해체하거나 뭉뚱그려 괄호 속에 넣어 버린다. 초기에 사적 경험의 내러티브를 해체하던 작가는 점차 적극적으로 이 시대의 사회·정치·문화 전반에 걸친 모순, 부조리적인 상황들을 작업으로 가져온다. 관습적이거나 억압된 상황들, 사회 유지나 집단의 이기심을 위한 주장들, 지배와 피지배, 강자와 약자, 고급과 저급, 삶과 죽음 등 다양한 삶의 면면을 소외시키며 이분법적 시각을 드러내는 재료들을 한 데 묶어 개개의 의미를 해체시킴으로써, 정체되고 고착화된 의식을 환기시킨다. 의미와 내용의 해체를 통해 규정짓기가 파기됨으로써 우울할 수 있는 현실은 흥의 상태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를 맞는다. 


의미와 내용이 미뤄진 자리에 작가는 특정적 ‘상태’인 ‘흥겨움(붕 뜨는 상태)’을 불러들인다. 그는 ‘접붙임 조각’ 시리즈의 시작이 개인의 우울한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소회한다. 사물이 놓인 상태에 대해 어떤 ‘기분’을 느꼈고, 이 상태를 견딜 수 없어 다른 상태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고. 작가가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흥겨움’은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행위에 의해 우연적으로 모인 모든 재료들이 필연적으로 딱 맞아 떨어질 때 느껴지는 쾌감이며, 동시에, 사물들이 예기치 않은 조합을 이룸으로써 그 자체로 내뿜고 있는 정서적 울림이다. 작가는 스스로 이 ‘상태’가 전통 판소리에서 주인공들이 그들 삶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자연의 리듬으로 전환시켜 내적 갈등(한)을 승화시키는 구조와 유사하다고 밝힌다. 몇 가지 최근작을 보자. 5m 높이의 거대한 금색 그물망과 하얀 베일, 선풍기가 조합된 <How Are You>(2013)에서 작가는 일상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행위가 습관화돼 가고 있는 사회 현실을 작업에 불러들인다. 관람객은 원래 그렇게 있었던 것 같은 기묘한 형태의 조합과 생경하게 마주하면서 아날로그적으로 조금씩 흔들리게 조정된 작업에 같이 공명하게 된다. 고착된 감정이나 생각들은 이내 상태로 전환된다. 




<의족 삼족오문양 은띠회전체반> 2012 

부목, 나무, 체, PVC, 잉크, 나무 막대기, 모터, 천,

 LED조명, 아크릴 진열장 138×58×58cm  




<평화 2013>(2013)에서는 작가가 추구하는 형식미를 엿볼 수 있다. 중후한 에메랄드빛을 띠는 색면 위에 사물들을 하나씩 위치시키며 즉흥적으로 완성해간 작업은 실제로는 비대칭이면서도 대칭을 이루는 구도를 자랑한다. 관람객들은 권위를 상징하는 봉황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로, 봉황의 꼬리가 인조 넝쿨로 대체된 대통령의 표장을 마주하며, 이 각색된 작업 앞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기념촬영을 할 때 미묘한 흥겨움을 선사받는다. 작가는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화면 위에 촛대와 초를 설치하여 실제로 불을 밝혔는데, 여기서 2차원과 3차원의 형식을 자유롭게 오가는 작가의 대담함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의족 삼족오문양 은띠회전체반>(2012)에서 작가는 가족이 사용하던 발목 보호대를 삼족오도상이 은박된 낡은 채반에 넣어 빛을 발하며 빙글빙글 돌아가게 만들었는데, 발목 보호대는 진열장 안에서 유리 구두처럼 화려하게 부활하여,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으며 흥겨운 상태로 전환되고 있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인간의 근본기분으로 ‘불안이나 권태’를 이야기한 바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자의 유한성에서 비롯한 이 기분을, 신유라는 피하지 않고 맞닥뜨려 내용과 형식의 이분법적 인식론을 극복하면서 흥겨운 상태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작업을 통해 근본기분을 흔들면서,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공간과 분리된 개별적인 오브제 작업을 선보이던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간 자체를 오브제화하려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작가. 그가 또 어떤 작업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그리고 우리의 사고와 기분을 전환시킬지 기대된다.




<How Are You> 2013 통발, 선풍기 날개, 

모터, 천, 먹물, 페인트 500×60×60cm




작가 신유라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공학과, 리즈디 대학교(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회화과에서 학사학위를, 홍익대학교 대학원 섬유미술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노암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빛의 몽상>을 시작으로 2010년 인사아트센터(<The Grafted-접붙여진 것들>), 2013년 김리아갤러리(<How are you?>)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코리아 투머로우>전, <2011 태화강 국제 설치 미술제>, <사라예보국제페스티벌> 등 다양한 그룹전과 국제 페스티벌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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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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