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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8, Nov 2014

LEE KIYOUNG

2014.9.17 – 2014.10.11 갤러리 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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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수묵화의 새로운 경지



먹물이 모종의 힘에 의해 확산되거나 펼쳐지는 형국이다. 이 물리적 흔적이 순간 꽃이나 잎의 형상을 만들다 지우고 출현했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그려진 그림인지 혹은 대리석 표면에 새겨진 무늬인지도 잠시 헷갈린다. 격렬한 동세, 기의 흐름 같은 것들이 꽃을 닮은 형상 안에서 요동친다. 끊임없이 ‘생생불식’하는 자연현상을 은유하는 듯도 하고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생명의 본질을 암시하는 듯도 하다. 이기영은 여전히 한지에 먹과 모필, 물을 이용한 수묵화를 그린다. 그러나 이 수묵화는 종래의 익숙한 수묵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그는 먹과 여백으로 이루어진 표면을 상당히 감각적으로 제시한다. 수용성의 표면이지만 매끈하고 견고하면서도 매혹적인 빛을 방사한다. 순백으로 빛나는 단호한 화면은 백자의 표면이 자아내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하얀 눈처럼 아름답다. 




<Black Flower> 2014 

한지 위에 혼합매체(잉크 케이크, 피그먼트) 60×80cm




그 위로 밀착된 먹(검정)색의 다양한 농담의 변화와 색상 차이가 빚어내는 뉘앙스가 그림이 된다. 그것은 추상화면이면서도 동시에 꽃, 잎 등의 형상을 암시해주면서 벗어난다. 그러나 저 꽃과 잎 또한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시간, 행위, 질료의 우연적인 자취가 그대로 화면에 밀착되어 있고 그 상황성이 보는 이에게 몰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준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다분히 모더니즘적인 화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기영의 그림은 동양화의 전형적인 재료(소재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여전히 자연, 꽃을 다룬다)를 사용하면서도 그 재료를 보여주는 방식이 감각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Black Flower> 2014 

한지 위에 혼합매체(잉크 케이크, 피그먼트) 70×80cm




이기영이 보여주는 이 흑백화면은 절제와 단순성 아래 무성한 외침과 울림으로 자욱하다. 하얀 바탕화면을 배경으로 검은 꽃의 형상을 가진 이미지가 새처럼, 바람처럼 혹은 날카로운 소리나 파도처럼 흔들린다. 이 그림은 백색(무/허)의 공간에 검은 색(먹/유)이 넘나들며 교호하고 삼투하고 순환하는 듯한 모종의 기세를 펼쳐 보인다. 그런가하면 빠르고 느리고 거칠고 단호하다가 문득 예리하고 둔하고 느슨해지다 순간 격렬하게 상승하다 낙하하는 듯 상반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는 마치 음의 고저와 다양한 소리의 뉘앙스를 연상시킨다. 그는 화면 위에 흑과 백, 먹과 여백, 물과 모필, 있음과 없음, 형상과 비형상 등을 가지고 다채로운 상황을 연출한다. 그것은 마치 그려진 음들, 새겨진 청각, 암시된 신체들이고 이는 결국 자신의 초상이자 감수성과 감각의 이미지화이다. 작가는 한지 위에 소석회를 엷게 펴서 여러 번에 걸쳐 바른다. 이는 한지의 예민한 흡수력을 둔화시키고 물의 이동과 먹의 입자의 고착을 지연시키는 바탕을 형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Black Flower> 2014 

한지 위에 혼합매체(잉크 케이크, 피그먼트) 70×80cm




그 위에 먹으로 형상을 그린 다음 물기를 뽑아내고 그렇게 먹이 물에 의해 지워지고 남은 입자가 회칠한 한지 위에 응고된 것이 이미지가 되었다. 퇴묵을 이용하고 운필을 하고 아직 고착되지 않은 부분을 물로 닦아내어 흔적을 남기는 이 방법론에 힘입어 그의 수묵은 무척 감각적이고 세련된 미감을 두르고 있다. 특히 그는 물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동양화란 결국 물의 순리에 따르고 그 물을 다루는 그림이라면 그가 보여주는 이 장면 역시 물에 의해 먹이 이동하고 씻기고 응고된 여러 자취들을 화석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다분히 영상적이다. 동시대의 동양화작업, 특히 수묵화의 한 새로운 경지가 이렇게 보일 수 있다. 일종의 벽화기법으로 그린 이 그림은 먹을 이용해 채색화에 버금가는 색채 감각을 살리는 한편 먹으로 그려진 그림의 기존 상황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지점에서 예리하게 진동하고 있다.  




* <Breath> 2014 한지 위에 혼합매체(잉크 케이크, 피그먼트) 80×1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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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영택 경기대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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