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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4, Jul 2014

Walking in The Dark─박광수

2014.6.14 – 2014.6.26 쿤스트독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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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며 더듬고, 더듬으며 다가간다



박광수의 2012년 개인전 <Man on pillow>(인사미술공간)는 ‘좀 더’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망설임과 머뭇거림, 그리고 이에 수반하는 미끄러짐으로 가득했다. <새>(2012)가 있고, <좀 더 어두운 새>(2012)가 있다. 어두운 새가 아닌 ‘좀 더’ 어두운 새이다. 작가 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림을 그리다보니, 문득, 틀릴까봐, 잘못 그릴까봐 시작을 망설”이지만 그렇게 망설이고, 주저하고, 어렵게 시작한 선을 수습한다. 작가에게 그림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 흔적”이다. 다음 세계로 쉽게 발을 옮기지 못하기에 예상하지 못하는 손의 떨림을 수용하고, 조심스럽게 대상을 더듬는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반복’한다. ‘사이’의 공간을 지우고, 채우려 하지만, 언제나 그 ‘사이’는 존재한다. 작가는 ‘사이’가 없음을, 다 채웠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완벽하지 못함을 말한다. 대상을 한 번에 포획하려 하지 않고 ‘반복’을 통해 미끄러지는 다가감을 택한 것은 대상에 대한 숙고이자,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러기에 작가에게는 ‘좀 더’의 세계만 존재할 뿐이다.


2014년 개인전 <Walking in The Dark>(쿤스트독 갤러리) 역시 ‘좀 더’의 미학적 의미망에 놓여 있다. 대상은 포획되지 않고 미끄러진다. 이는 대상이 여전히 진동하기 때문이다. 대상이 숨을 쉬는 매 순간, 나아가 숨을 쉬지 않는 그 순간까지 작가를 자극한다. 나의 시선으로 재단했던 사소로운 것들이 나를 찌르고 움직이게 한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그 순간에 다다르기 위해 작가는 온 힘을 다한다. 손을 움직여 선을 긋는다. 선은 형태에 포획하지 못하고, 또 다른 선을 낳는다. 그 순간에도 대상은 숨을 쉬고, 멈춘다. 어둠은 잠식하지 못한다. 빛은 모든 것들을 날 것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강조하고, 그것만을 보게 하며 눈을 멀게 한다. 빛의 강렬함에 눈이 멀어갈 때쯤 빛의 세계가 가리웠던, 그래서 인식하지 못했던 실체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다. 




<숲에서 사라진 남자 1번> 2014 

종이에 잉크 42×29.7cm




익숙한 감각이 차단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감각이 발현되고 이는 대상에 다가간다. 이 사실을 인지하 자는 지금 여기에서 포획한 대상이 실체가 아님을 안다. 이는 중요하다. 완벽한 재현은 없다. 그저 다가감이 있을 뿐이다. 완벽함이라고 말했지만, 익숙한 체계에 의해 재단된 우글거림을 누르고 있던 힘에 불과하다. 자명했던 언어를 의심한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포획한 실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또한 완벽함이 아니라 완벽함에 다가가는 ‘태도’만이 실존할 뿐이다. <숲 속에서 사라진 남자 2>(2014)가 <숲 속에서 사라진 남자 5>(2014)로 변할 수 있듯이 그 세계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어둠은 오히려 실체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수용해야 한다. 어둠에 놓인 자들 역시 빛에 놓인 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세계를 단단히 하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명한 언어의 불가능성을 체험한 이들이다. 그러기에 포획하려 하지 않고 ‘좀 더’ 다가가려 한다. ‘검은 숲 속’과 ‘밝은 숲 속’이 아니라 ‘좀 더 어두운 숲 속’이 이들이 나아간는 발 걸음이다. 누군가는 ‘좀 더’의 세계가 확증적인 것으로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박광수는 이 세계는 그저 ‘좀 더’의 세계 일 뿐이다. 여전히 머뭇거린다.




<검은 숲속2> 2014 

종이에 아크릴 채색 100×70cm




박광수는 수제 펜을 사용한다. 스폰지를 엮어 만든 이 펜은 마치 고대인의 석창과 닮아 있다. 사냥을 위해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 한다. 작가는 마치 사냥을 하듯 어둠 속에서 그리고 빛 속에서 ‘관찰’한다. 이 관찰은 그간의 이분법의 경계를 무마하는 시작이다. <고기를 먹는 노인>(2014)의 게걸스러움은 굳건한 경계를 허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펜은 계속 움직인다. 관찰한다. 허물겠다는 당당함이 아니라 의심의 눈을 가지고 주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시작이다. 끝을 알 수 없다. 허물 수도 있고, 계속 주저할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세계에 놓이건 확실한 것은 그곳에 안주해 체계를 단단히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숲 속을 거닐 것이며, 어둠을 거닐 것이며, 그곳에서 만난 산 진승을, 우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사람을 관찰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은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온 것들을 더듬거릴 것이다. 또 다시 미끄러진다 해도 말이다.                                                     




* <고기먹는 노인> 2014 종이에 아크릴 채색 150×1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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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대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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