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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2, May 2014

이제 ─ 온기

2014.3.12 – 2014.4.18 갤러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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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결국 그림뿐



최근 참혹한 사건 앞에서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몰아치지만, 어렵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런 사회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계속 해야 한다면 어떠해야 하는 지다. 재난에 대한 예술의 재현과 대면의 의미는 동일본대지진이후에 좀 더 늘어난 듯 보이지만, 사유의 작업보다는 개념의 작업이 두드러질 때, 누군가 예술이 스스로 재난이 되는 것 외엔 없다라는 말에 동의하기도 한다. 이러한 서늘한 상황에서 마지막 날 찾아간 전시 <온기(Warmth)>는 좋은 그림이 가진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익숙한(?) 도시 일상의 재현을 생각했던 터라, 사물과 풍경의 디테일이 사라진 캔버스 위에 쓱쓱 그려진 붓의 흔적들과 미끈거리고 밝은 색 덩어리들에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젊은 작가가 가진 회화에 대한 녹록치 않음을 느끼고는 마음 한 켠이 스멀거렸다. <수레의 노래> <서울의 달> <봄장> <퇴근> <여름> <새벽하늘> <길> <피아노 레슨 > 등은 제목 만큼이나 평범한 일상이지만, 작가는 사물과 풍경을 그림으로 기술(記述)하는 것을 포기한다. 같은 제목으로 여러 작업을 보여준 것도 호명이 갖는 일반화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듯 하다.




<서울의 달3>

 2014 캔버스에 유채 90.9×90.9cm





작가는 무심하면서도 빠른 붓질로, 보여 지는 세계를 예쁘고 세밀하게 그리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작가는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인간과 사물의 흔적으로 알 수 있는 온기로 일상 속 삶의 의지를 표현하려 했다 말한다. 작가는 보이는 세계를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 시스템이 아닌 주체의 자각에 대한 공동성이 가진 희망을 놓지 않으려 보인다. 물감이 덕지덕지 붙어버린 작업실 바닥 위에 살짝 떠 있는 작가의 맨발을 그린 듯한 <둥실>은 그래서 더욱 절절하다. 빠르면서 거친 붓질의 직관적 묘사만큼 눈에 띄는 것은 풍요롭게 캔버스 위를 미끌거리며 퍼져가는 색이다. 마치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같이 사물과 풍경의 실제가 보이지 않지만 깊고 운동성 있는 실재로 전환되어 여기 저기로 흘러 다니고 있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하다. ‘따뜻한’ 온기가 아닌 ‘미지근한’ 온기는 작가가 세계에 대해 예술에 대해 갖는 서늘하지만 깊은 지각의 다른 말일 것이다.




<온기 3> 

2014 캔버스에 유채 32×41cm




아쉬운 점은 공간의 한계였을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였을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작품의 크기가 크지 않고 여러 개를 붙여 설치하여 하나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총체적인 재현이 불가한 현실에서 작은 온기의 희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적정 규모의 화이트큐브에서 작가의 작업을 전시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작가의 작업을 온전히 감상하거나 비평하지 못하고 최근의 시대 상황과 자꾸 연결하는 것이 무리수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재난은 사회면에 소개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상황의 알레고리일 것이다. “이럴 땐 결국 그림뿐” 이라는 작가의 말은 우리가 이 남루한 시대에 예술을 한다는 것의 무거운 상실과 무기력 앞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정진(精進)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며 바로 그 지점에 예술에 대한 기대를 놓지 못하는 우리의 미련과 마주한다.                     




<둥실> 

2014 캔버스에 유채 60.6×40.9cm




*<온기 2> 2014 캔버스에 유채 90.9×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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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채은영 우민아트센터 학예실장·미술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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