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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6, May 2021

Rick Prol_Cracked Window

2021.3.11 - 2021.4.24 리안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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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 수 없는 무너진 풍경을 바라보며



릭 프롤(Rick Prol)의 회화는 공간을 문제 삼는다. 물론 프롤이 제작한 회화의 강렬함은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New York East Village)에서의 생활상을 잘 반영한다. 당대 미국 국경 안팎의 상황을 가리키는 황폐한 도시 풍경, 칼에 찔린 몸과 헐벗은 몸, 시체, 마약, 폭력에 이르기까지 프롤의 회화에 등장하는 장소와 공간은 비위생적이고, 악취가 나며, 틀림없이 범죄에 노출된 것처럼 보인다. 삐죽거리는 선과 선명한 색을 입은 인물들은 분노나 고통, 절망 같은 감정을 분출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롤 작업의 멜랑콜리는 그가 회화 안에서 구축하는 공간으로부터 시작된다. 


리안갤러리에서의 개인전 <Cracked Window>는 총 열네 점의 회화를 소개한다. 그중 일곱 점의 회화에서 우리는 실내에 앉아 있는 인물을 볼 수 있다. 그는 대부분 칼을 들고 있거나 칼에 찔린 상태이며 시체와 함께 있고, 그가 앉아 있는 곳은 폐건물이나 화장실, 창고 같은 지저분한 장소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이 장소는 전시의 제목인 창문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프롤에게 창문은 중요한 모티프다. 일곱 점을 포함한 다른 회화에서 프롤은 캔버스의 사면을 나무 창틀로 감싸거나, 캔버스 한 가운데에 나무 창틀을 부착해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문인 것처럼 까맣게 칠해 부착하기도 하며, 캔버스를 창틀 안에 넣어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이 자신의 회화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이 창문 대부분은 깨져 있거나 다른 색으로 칠해지는 바람에 밖을 보게 만든다는 창문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Que Hora> 1982-1983 캔버스에 유채 169×102.5cm 

© the artist and Leeahn, Seoul Photo: Shi-Woo Lee





창문이 깨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예를 들자면 방치된 창고나 화재로 비어 있는 폐건물, 화장실 같은 공간은 우리 삶의 주된 공간이 아니다. 프롤에게 그런 공간들은 관리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아 삶의 찌꺼기가 모여드는 공간이다. 공간에 관한 이러한 감각은 당시 도시 재개발로 난장판이었던 이스트 빌리지의 상황을 떠올려보게 한다. 창밖으로 아무것도 없는 풍경, 그것은 도시 전체가 화장실같이 변해 버린, 집이 더 이상 집으로 작동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롤은 그림 안에 그려진 창문 밖에 좀처럼 풍경을 그리지 않는다. 창문이 여러 개 달린 빌딩을 밖에서 보는 시점으로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이 창문들은 우리가 갤러리에서 보고 있는 프롤의 회화-창문과는 다르게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밖에서 보든 안에서 보든 프롤이 그리는 창문 안에는 인적도, 사건도 없다.


프롤의 멜랑콜리는 그가 재구성하는 원근법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원근법은 회화를 열린 창문으로 보는 생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프롤이 실내를 그린 그림들 중 인물이 중앙에서 비켜 서 있는 그림을 보면, 1점 투시의 소실점이 위아래로 길게 왜곡되어 아예 소실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물이 화면을 꽉 채우도록 중앙에 그려지더라도 소실점의 왜곡은 잘 감춰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 오히려 인물이 천장과 바닥을 구성하는 선들이 만나는 모서리 두 개를 잇는 소실선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뒤틀리고 감춰진 원근법 위에 그려진 다른 사물들은 본래 위치에 따라 크기가 결정되어야 하지만 그것과는 아주 상관없이 아주 작게, 아주 크게, 혹은 원래의 크기대로 놓여 있다. 원근법은 르네상스적 합리성의 정수다. 프롤이 그리는 세계는 이 원근법으로 그려질 수 없는 세계다. 원근법을 가능하게 했던 합리적 인과관계는 완전히 깨지고 왜곡되어 왜 어떤 사건이 닥쳤는지 알 수 없고 다만 온몸으로 삶을 겪어내기만 하는 세계. 이 삶은 칼에 찔리고, 피를 흘리고, 머리통이 잘려나가도 멈추지 않는다.





<Simple Art> 1983 캔버스에 유채 137.3×100.9cm 

© the artist and Leeahn, Seoul Photo: Shi-Woo Lee





화장실을 떠난 프롤은 도시를 떠돈다. 이번 전시 중 가장 큰 작품이었던 <S.O.S>의 경우 자전거를 타고 허드슨 강을 건너는 여성이 등장하며, <Thief>에는 등 뒤에 이젤과 기타를 들고 뛰어다니는 남성이 등장한다. 특히 후자에서는 캔버스 한 가운데에 불투명한 창문이 부착되어 있는데, 이 불투명한 유리 아래로 캔버스에 그려진 다른 그림이 언뜻 보인다. 실내에서 본 창밖이 어두웠던 것처럼, 이들이 길을 떠도는 시간은 밤이다. 마약, 폭력, 범죄로 가득 찬 밤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내걸었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와는 걸맞지 않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프롤의 회화는 당대 미국의 단면을 포착한다. 그것은 창문 아래로 어렴풋하게만 보이는 그림처럼, 위대한 아메리카가 감추고 싶어 하는, 비합리로 가득 찬 풍경이다. 그러나 프롤의 깨진 창문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그 풍경은 감출 수 없다. 그것 또한 그림의 일부이며, 미국의 일부이고,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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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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