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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6, May 2021

상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

2021.3.2 - 2021.5.9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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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여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상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보다 보면 토머스 울프(Thomas Wolfe)의 『천사여 고향을 보라(Look Homeward, Angel)』가 문득 떠오른다. 특히 소설의 원제이기도 했던,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주인공의 탄식이 귓가에 맴돈다. “O lost”이 탄식을 번역한다면 “상실이여”가 어떨까 싶다.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우리 주변의 사람, 사물, 시공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는 과정에 대한 성찰임과 동시에 이에 저항하는 몸부림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시에는 총 13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관람객에게 친숙한 작가들부터 대전 지역의 젊은 작가들까지 고루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강철규, 김두진, 서민정, 크리스 버동크(Kris Ver-donck)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첫 번째 공간은 애도의 행위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 실연의 감정, 역사적 미술 작품들 속에서 찾은 상실의 원형적 이미지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들이닥칠 법한 단상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여지는 버동크의 영상 작품 <Presyncope>에서는, 어느 고층 건물의 옥상으로부터 천천히 하강하는 싱글 테이크 너머로 생전의 파편적 기억들로 가득한 담담한 독백이 흐른다. 작품의 제목은 실신(syncope) 직전(pre) 상태를 가리킨다. 무언가를 이미 잃어버렸거나 서서히 잃어가는 상태가 아닌 잃어버림이 임박한 순간에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되돌아보는 행위를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도입부에 배치된이 작품은 전시의 기조를 잘 나타낸다.




강철규 <벌목> 2020 캔버스에 유채 227×181cm




신미경, 안규철의 작업을 통해 사물의 소실과 유실을 다룬 두 번째 공간에 들어서면 신미경의 ‘번역’, ‘회화’ 등의 연작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작품들은 제작 후 10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는데, 그사이 어떤 비누 도자기들은 목 부분이 휘고, 액자 속 비누 회화의 표면은 금이 가기도 했다. 안규철의 작품으로는 <그 남자의 가방>이 전시됐다. 작품과 동명의 에세이집에 수록된 <버리기와 잃어버리기>라는 글은 의도적인 버림과 의도와는 무관한 잃어버림의 차이에 대한 명상이며, 전시에 영감을 준 글이기도 하다. 상실, 유실, 분실, 소실 등의 다양한 단어들만큼이나 사라짐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러한 단어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잃을 실(失)자는 손 수(手)자에 한 획을 더해 만들어진 글자로, 손에서 무언가를 떨어트린 모습에 기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이 글자를 다시 보면, 그 무언가를 떨어트렸는지, 필요가 없어 던져버렸는지, 아니면 잡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지 불분명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는 버림과 잃어버림 사이의 모호성에 대한 고찰로 보이기도 한다.


고정원, 백요섭, 양정욱, 정영주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세 번째 공간은 사라지고 없어진 주변 풍경을 기억하려는 작품들로 이뤄졌다. 재개발된 용문동 지역의 잔해들로 구성된 백요섭의 설치 작품과 선화동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의 오래된 간판들을 무상으로 교체해준 후 헌 간판을 가져오는 고정원의 <간판 교체 프로젝트>가 눈에 띈다. 고정원의 작업은 간판 설치 일을 하시는 부친과 함께했는데, 이렇게 부자가 함께하는 작업 방식은 마지막 공간의 조동환, 조해준 부자의 작품과도 연결된다.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2002 

혼합재료 가변 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마지막 네 번째 공간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에 대한 기록으로 박이소, 정연두 그리고 조동환, 조해준의 작품이 포함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표현한 정연두의 <내 사랑 지니>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작업으로 처음에는 슬라이드 프로젝션, 이후에는 디지털 프로젝션, 또 이번에는 4K 스크린으로 전시되어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꿈만큼이나 작품의 모습 또한 언제나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듯하다. 


동선상 전시의 마지막 작품으로 설치된 박이소의 <당신의 밝은 미래>에 이르면, 목재 구조물에 설치된 10개의 밝은 전등이 출구 옆의 빈 벽을 비춘다. 전시 공간의 흰 벽은 부재한 무언가를 투영하기 위한 공간으로 흔히 인식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가장 원형적인 형태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등들은 모두 벽을 비추고 직접 쳐다보기에는 너무 밝다는 점에서 영사기의 램프를 연상시키지만, 특정한 이미지가 결여된 빛만을 투영함으로써 무언가를 투영하는 행위 그 자체를 보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과 환상을 투영해 현실을 인지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변덕스럽고 언제나 미완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만 한다. 전시에서 제시된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마주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듯, 전등들은 태연히 흰 벽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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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계성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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