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멈춘 후에도 주위 물체의 반사로 인해 음이 계속 존재하는 현상을 일컫는 ‘잔향.’ 전형산은 소리가 공간에서 생성되고 소멸하기까지의 시간을 전시로 풀어냈다. 그의 화두는 음악이 아닌 소리의 생산을 통한 ‘구조화’다. 음악이 아닌 음향을 소음으로 인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작가는 오히려 귀에 거슬릴법한 로우-테크 사운드를 만들어 생소한 감각을 인지하게 하고, 소리의 영역을 확장한다. 독특한 부분은 ‘구조화’를 설명하면서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작곡(compose)’이란 영어 단어를 취한다는 점이다. 비록 전형적인 음악은 아닐지라도 전형산의 작업 역시 일련의 구조를 갖춘 소리라는 말일 것이다. 그는 소리 자체를 해체하거나 결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이동하는 모습까지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불신의 유예 #6_ here, now>
사운드 설치 100×20×40cm(2EA)
마치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구성된 빛, 소리, 기계 등은 관습적 인식을 흔드는 매개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일곱 개의 신작, ‘불신의 유예(suspension of disbelief)’ 시리즈 #1, #2, #3, #5, #6과 <4개의 작은 타자들>, 그리고 <소멸되지 못한 말>을 선보인다. 작가가 생산, 변주하며 가시화하는 소리가 어떤 식으로 관람객에게 감각적인 예술의 형태로 작용하고 소비되는지, 또 이러한 구조가 어떻게 현대미술계를 은유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것이 무엇이든 생산과 소비가 반복되는 현실에서 불확실한 의미나 가치에 관해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을 나선 후의 여운까지 섬세하게 느껴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