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Issue 167, Aug 2020

지희킴
Jihee Kim

주저하지 않는 몸, 저항하는 드로잉

PUBLIC ART NEW HERO
2020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타자화된 이들의 광장이자 축제가 된 지희킴의 화면은 유쾌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책에 담긴 세상의 문법과 지식을 자신의 이미지로 뒤덮어 버리는 솜씨, 그것이 전지의 종이를 거쳐 결국 벽 자체가 될 때 허물어버린 정형의 벽들에 대하여. 이들이 커지고 커지다 보면 어디까지 울려 퍼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것 말이다. 위기가 닥쳐도 목소리를 내겠다고 결심한 이들은 어디에서나 자신의 무대를 만든다. 지희킴 역시 흐트러진 신체 이미지를 마냥 방치하지 않고 온갖 색상 속에서 성대하게 배치한다. 드로잉을 통해 소통하고 또 저항하는 지희킴의 작업은 우리도 앵글을 바꾸면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거나, 더 오래 보거나, 빨리 보거나, 나눠 보면 말이다.
● 조윤지 기자 ● 인물사진 조준용 작가

'기묘한 살갗' 전시 전경 2019 갤러리 소소 사진: 조준용 © Jihee Kim All rights reserved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지희킴의 최근 작업을 먼저 보았다면, 신체 사이즈를 압도하는 이미지의 공격에 당황할지 모른다. 전지 이상의 종이를 가득 채우는 것도 모자라 미술관의 흰 벽을 제멋대로 점령한 물감들. 한결 같이 드로잉의 속성을 탐구해온 작가에게 이러한 경계 넘기란 오랜 시간 함께한 작업 태도다2007년부터 캔버스에 얼룩말 머리의 인간 군상을 그려온 작가는 익숙한 매체와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2011년 유학을 떠났다. 당시 관능적이고 획일화된 여성의 신체와 콜라주된 얼룩말은 마치 가면처럼 솔직한 몸을 어딘가 봉인해놓은 듯했다. 표현 방법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중 우연히 외국어로만 쓰인 책이 무척 낯설고 흥미로운 이미지로 다가왔고, 그 이후로는 학교와 지역 도서관으로부터 책 300권을 기부 받아 자신의화면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작가는 외국어 문단이 주는 거리감을 드로잉으로 덮어가며 자신의 언어로서북 드로잉을 개발해 나갔다. 드로잉의 발견은 그 후 런던, 타이베이, 서울 3개 도시에서 일반인과 함께한 드로잉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언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그려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지희킴이 이처럼 소통의 도구이자 표현의 소재로 중시하는 것은 처음부터 자전적인 기억의 장면들이다.





<겹의 기호들6> 2018 종이에 과슈,잉크 185×131cm 

설치 전경 사진: 조준용 © Jihee Kim All rights reserved 




작가는 종종 기억을 떠올릴 때면 에러가 난 컴퓨터에 팝업창이 통제 불능 상태로 겹쳐 뜨는 것 같은 현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미지들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가 한순간에 터져 나와기억의 끝말잇기를 한다. 의지와 상관없이 물밀 듯 덮쳐오는 기억들. 그 여정 속에서 캡처되고 수집된 장면들은 그의 작업에서 주로 몸으로 표상된다기억의 파노라마에 등장하는 몸은 직관적이고 쉽게 눈치챌 수 있는 대상들이다. 그 예로, <겹의 기호들>(2018)에는 온갖 동물과 인간 신체가 절단되거나 왜곡되어 나타난다. 이때 인간은 기능적 신체라든지 서사 진행자로서가 아니라, 동물과 같은 맥락에서 하나의 육() 덩어리로 이해된다. , 화면 안의 것들은 각각이 상징성을 가진다기보다는 모두 작가의 기억에 등장하는 존재들로, 생명이라는 덩어리로 묶인다. 그들은 얼핏 팝한 색상에 가려져 알아채기 어렵지만 어떤 식으로든 훼손된 상태다





<기묘한 살갗 5> 2018 종이에 과슈,잉크 

131×389cm 사진: 조준용 © Jihee Kim All rights reserved




이는 화면 전반을 뒤덮고 있는 흩뿌려진 물감,  체액으로 인해 확고해진다. 물감은 비체(/非體)적 속성을 띠며 마치 피, 눈물, 토사물 그 무엇으로도 보이는 동시에 그저 색채로서 유동적이고 우연하게 흘러내린다.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에 따르면 비체는 경계와 위치, 규칙을 존중하지 않으며 정체성과 체계, 그리고 질서를 교란한다.* 육체가 배설물을 내보냄으로써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처럼, 물감 또한 화면 어디서든 그저 터져버림으로써 상태를 숨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공간을 장악하는 이들은 온전한 하나의 신체 규범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다. 지희킴은 이를 액체적 사고라 명명하길 제안한다. 이는 처음 얼룩말을 그릴 때부터 작가가 작업에 포함시켰던 요소로, 당시에는 화려한 색상과 추상적인 마블링으로 비정형성을 담아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더 즉흥적이고 발산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전에는 정해진 구획을 마블링이 채웠다면, 지금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우연함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듯 질서를 어지럽힌다.





<5%> 2015 기부받은 책 페이지에 과슈 27.3×21.8cm 

사진: 조준용 © Jihee Kim All rights reserved 

 



그러한 도전은 아이러니하게도 깨끗하게 마무리된 몸의 외곽선과 충돌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깔끔한 선은 2019년 디스위켄드룸에서 진행된 작가의 실크스크린 퍼포먼스와 겹쳐 보이면서 판화로 찍어낸 것인가 착각하게 만들고, 흩뿌려진 물감이 어떻게 불쾌하지 않은 범주 내에서 구상적 이미지를 어지럽히는지 살펴보게 된다. 궁금증으로 화면에 더욱 가까이 가는 것, 이러한 접근방식은 작가의 의도를 잘 따라가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조각난 신체에 대해 에어백 역할을 하는 색상은 작가에게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이는 얼핏 비치는 비극을 멀찍이서 짐작하지 못하도록 하며 좀 더 섬세한 관람을 요구하는 유혹이기도 하다. 동시에 비비드한 컬러는 작업의 내용을 희비극이 어우러진 다층적인 차원으로 가져가는 도구이며, 군데군데 심어진 달콤한 케이크와 함께 관람객에게 열어두는 이야기의 틈으로 존재한다. 스케치 작업을 할 때 중시하는 이성적 판단은 온전히 감각에 내맡기는 색 작업을 할 때 덮어진다. 이렇게 터져 나오는 본질적 속성과 예측 불가능함은 벽 전체를 뒤덮으면서 신나게 해방의 아우성을 치고 있다.





<x=b> 2016 기부받은 책 페이지 위에 홀로그램, 스티커

 30×23cm 사진: 조준용 © Jihee Kim All rights reserved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작가는 방의 네 면을 가득 채우면서 주마등과 같은 풍경을 길게 이어보고 싶다고 한다. 다음 단계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작업의 이유이자 동력이 된다는 지희킴 작가에게 당신이 창조하는 희비극 무대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떤 대사를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 “엄청 시끄러울 것 같아요. 서로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제각기 자기 목소리로 무언가 말을 하고 있을 거예요.”  


* 바바라 크리드(Barbara Creed),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손희정 옮김, 여이연, 2017, p. 33





지희킴




작가 지희킴은 1983년생으로 동국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영국 골드스미스(Goldsmiths)에서 순수미술 석사학위를 받고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갤러리 소소, 디스위켄드룸, 송은아트큐브, 금호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OCI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최근에는 일본 도쿄 아트앤스페이스(Tokyo Arts and Space)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서울 종로구 올댓큐레이팅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조윤지 기자

Tag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