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복잡하게 얽혀있고 사람들은 서로 비추고 반사시키며 관계를 형성한다는 얼개에서 애초 이 작품은 출발했다. 본인의 화법, 이야기를 푸는 방식을 실험하고자 재밌게 진행했던 작업에서 단발머리 형태의 11개 헬멧을 만들어 대상에게 덧씌운 것 또한 단지 인물을 획일화시키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작품을 선보이자 사람들은 작품에 정치적 의미를 덧댔다. ‘한국 사회의 제약, 고립된 문화의 양식을 꼬집는다’는 설명이 붙었고, 그 잣대로 작품을 읽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의 작업은 경험, 본다는 것, 감각의 확장 등의 줄거리로 진행돼 왔다. 그는 자신이 처한 어떤 상황, 예를 들면 돌연 사랑에 빠졌거나 처연하다거나 타인과 단절된 고립의 상태를 작품으로 풀어냈다. 커다란 설치에 파란 실을 얽어 공간이 퍼져나가는 듯 완성된 작품이나 빨간 천으로 공간을 뒤덮고 세 개의 비디오와 세 타입의 사운드를 믹스 매치한 작품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사적이지만 대부분 공감하는 어떤 지점을 가시화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자신의 작품을 읽는 방식을 접하자, 혼란스러웠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처음 선보인 전시는 광화문 사거리 전광판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그는 아주 짧되 강렬한 영상을 만들어 광고로 범벅된 파사드에 송출했다.
<오래된 미래 #01>
2016 혼합재료, 전광판 900×1,900cm
민화 혹은 탱화 형식을 빌린 작품은 화려한 색으로 채워졌는데 가운데 놓인 수박은 썩었으며, 응당 나비가 있어야할 자리엔 파리가 들끓는다. 또 한 마리 살찐 쥐가 수박을 먹고 있다. <초충도>의 내러티브를 빌려온 작가는 자연을 그림 안으로 가져와 이상을 꿈꾸고 복을 기원했던 선조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긍정과 희망을 화면에서 지워버렸다. 여전히 계급주의가 팽창하고 서로 불신하며 극보다 더 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는 삶을 그는 전통 그림을 변형하고 다시 그림으로써 비약시킨 것이다. 이렇듯 불건전한 작품을 작가는 아름다운 이미지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매력적인 문구로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 사이에 슬쩍 끼워 넣은 것이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한 표정의 주최자로 사람들과 대면했다. 그가 꾀한 파격은 신선했다. 사람들 사이에도 회자됐다. 허나 그의 작품은 땅에서 좀 뜬 것 같은 공허함을 선사했다. “내 작품을 정치 코드로 해석하는 사람들에 당황하면서도 그런 코딩에 몰두하게 된다. 마침 몇 년 만에 찾은 나라가 낯설고 두렵기도 했다. 자칫 무모할 수 있었던 전시지만 큰 경험이 됐다”고 박민은 말한다.
<음장 창조 장치>
2012 MDF, 실, 거울 102×213×102cm
그는 요즘, 미국에서 공부하며 실험처럼 했던 작업에 집중해 있다. 같은 스토리와 방식을 유지하더라도 다시 만들면 확연히 다른 작품이 완성될 거란 직감 때문이다. 가령 <수용유희>만 하더라도 서양인들이 아닌, 우리 주변 인물들에게 단발머리 헬멧을 씌우고 “감정을 없애라”고 한들 정치·사회적 해석이 완전히 배제될 리 없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MDF에 푸른 실을 얽고 거울을 배치해 공간을 메웠던 <음장 창조 장치>(2012) 역시 ‘특정한 사물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기존 명제와 전혀 다른 해석이 제기될지 모른다고 작가는 여긴다. 아직 작품수도 많지 않고 새롭게 도전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그는 자신이 구현했던 아이디어를 다듬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면밀한 프로세스를 다지려 한다. 작품에 삶의 가장 큰 비중을 둔 박민. 그는 머리에서 줄기차게 뻗어가는 상상력을 자신만의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신경세포의 스케치북으로부터 온 이야기>
2014-2015 설치전경 비디오 맵핑,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관객의 실시간 트위터 메세지
박민
박민은 1984년생으로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미국 절먼 갤러리, 우드개리 갤러리, 브루클린 웨이페어러스 갤러리 등에서 수차례 그룹전을, 자바 스튜디오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 입주작가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현재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